사랑방 안동, 26년의 회상(글/이효걸_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장)1988년은 제24회 하계올림픽이 서울 잠실에서 열렸던 해였다. 한국은 종합 4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고, 마치 한국이 세계에서 4번째로 힘 있는 국가인 듯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그해 늦가을 지금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 자리에 있었던 안동문화회관에서 안동문화연구회 모임을 끝내고 몇몇 사람들은 차나 한잔 더 하자고 옆 건물 4층에 있는 사랑방 모임 사무실에 모였다. 이진구 관장님, 임세권 교수, 임재해 교수, 김복영 씨와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이두호 씨, 신경균 씨 등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날 처음 참석했지만, 안동문화연구회를 몇 년 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몇몇 사람들이 과거의 안동문화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적 삶을 담아내는 지역문화잡지를 만들자는 데 공감하여 그해 봄에 안동지 창간호를 내면서 문을 연 사무실이다. 나는 이 모임의 발의자도 아니고 주도자도 아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사랑방 모임과 ‘안동’지의 출발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었고 어정쩡한 참여자가 되기도 했다.
내가 바라보는 사랑방 모임은 참으로 엉성한 모임이다. 인연 닿는 대로 모이고, 모였을 때 엉성하게 결정된 의견대로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나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때가 되면 사랑방 안동은 어김없이 나온다. 의사결정과정의 답답함과 아무도 구속받지 않는 구성원들의 행동방식에 대해 사랑방 멤버들 모두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불만이 쌓여 촉빠른 사람들은 나름대로 비판을 하다가 고쳐질 여지가 없음을 알고 이 답답하고 아리송한 모임을 빠져나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탓하지도 않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다. 그게 사랑방 모임의 유연성 때문인지 아니면 결속력의 느슨함 때문인지 지금도 도무지 알 수 없다. 빠져 나간 일을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인연이 닿는 새 멤버가 들어오면, 늘 하던 대로 할 뿐이다.
이 모임에 오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행동방식에 모두 속으로 답답해 하지만, 어쨌든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의 이 답답함은 어느덧 덤덤함과 어정쩡의 느긋함에 길들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모호함과 답답함으로 지치게 하다가 그것을 부지불식간에 덤덤함과 느긋함으로 치환시키는 것이 안동 사랑방 모임의 놀라움이다.
나는 사랑방 모임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마침내 끝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모임이 어째서 26년이나 계속되었을까 하는 사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으면서 때가 되면 모두 해결되고, 어정쩡 밍기지만 앞일을 야무지게 다진 것보다 더 꾸준하게 성과를 드러내며, 현재를 때우는 데 급급하지만 살아온 자취를 기억할 줄 아는 이상한 모임! 그것이 사랑방 모임이다.
사랑방 모임의 끝자리를 지켜볼 때가 되어서야 나는 이 모임이 26년의 세월동안 계속되었던 비밀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 모임이 바로 안동의 진짜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이 모임은 안동의 과거를 여과시킨 것이고, 오늘의 안동을 압축한 것이며, 앞날의 안동에 대한 예측 치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내밀한 자취가 26년 동안 발행된 ‘안동’지에 생생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오래지 않는 미래에 안동의 훌륭한 역사로 빛을 발할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