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머나먼 귀양길(글/정진영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탄핵을 받다

문과급제가 가문의 영광이었고, 이로 인한 벼슬살이의 특권과 혜택도 많았지만, 관직생활이라는 것이 항상 영광과 특권으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벼슬길에 나아간[출사出仕] 직후에는 신참례新參禮라는 신고식을 치르느라 골몰했고, 좀 지나 육품六品 참상관參上官에 오르기 전까지는 늘 시비와 탄핵의 대상이 될까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오늘날의 관료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시비와 탄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를 맞고 심문[형문刑問]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사간원, 사헌부 관리들이 특히 그러했다. 사간원이나 사헌부의 자리는 청직淸職이라 하여 높은 식견과 깨끗한 행실로 관료들의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 주로 임명되는 자리였다. 그러나 왕이나 동료 관료들의 잘못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직무였으니 동료들에게 인심을 잃거나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당하거나 의금부에 하옥되기 일쑤였다. 더욱이 당파간의 대립과 갈등이 첨예한 시기에는 정치적인 문제로 형장刑杖을 맞고 귀양 가거나 심지어는 사약賜藥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으로 관리들은 사간원이나 사헌부의 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꺼리거나 회피하기도 하였다.

세자世子를 보필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이런저런 일들로 파직되거나 귀양 가거나 죽기도 하였다. 세자가 글을 읽지 않거나 사냥만을 일삼거나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부

왕父王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세자에게도 엄한 꾸중이 내렸지만 보다 강력하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세자 주위의 사람들에게 엄한 벌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선전기의 사화士禍와 후기 숙종과 영조 대의 당파 간 정권교체[환국換局]나 무고한 옥사獄事 등 훈구와 사림 혹은 붕당간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수많은 관리들이 죽거나 유배되었다. 말 그대로 선비들의 화禍가 극심한 시기였다. 이러한 사정에서 온전하게 벼슬살이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되면 중립적인 처신도 어려워진다. 이런 때는 벼슬이 곧 형벌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형벌에는 다섯 종류가 있었다. 태·장·도·류·사笞杖徒流死가 그것이다.

태형과 장형은 다 같이 매질하는 것이나, 태는 10대부터 50대까지 장은 60대부터 100대까지이고 또 태보다는 장이 매의 두께에서 조금 더 두터울 따름이었다. 태나 장은 흔히 몽둥이 같은 곤장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길이 1.1미터에 두께 8밀리미터와 1센티미터였으니 회초리보다 조금 큰 매에 불과하다. 매를 치는 부분은 볼기였으나, 남자는 아랫도리를 벗겨, 여자는 홑옷을 입힌 채로 형을 집행하였다. 곤장棍杖은 조선후기에 군영에서 도적을 다스릴 때 사용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두텁고 긴 것이 바로 치도곤治盜棍이다.

도형은 죄인을 관아에 소속시켜 일을 시키는 것이고, 유형은 죄인을 먼 곳으로 내쫓아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사형은 목을 매거나 베는 것으로, 극형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태笞나 장杖은 주로 하층민에게 적용되었고, 관리나 양반에게는 주로 유형 곧 유배형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양반이라도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는 태와 장을 맞거나 다양한 고문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죄가 가벼워 태벌이나 장벌에 처해지면 종으로 대신 매를 맞게 하거나 돈으로 속전을 하는 방법도 있었다. 흥부가 매 맞는 품을 팔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사정에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런 다양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과 같은 징역형이란 없었다. 죄인을 가두어 둘 감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감옥이 있었지만 그것은 미결수를 가두는 구치소일 뿐이었다. 굳이 찾는다면 도형徒刑이나 유형流刑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도형과 유형을 흔히들 유배 또는 귀양이라고 하였다.

귀양이란 고려시대의 ‘귀향형歸鄕刑’에서 온 말이다. 귀향형이란 잘못을 저지른 관원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귀양은 도형과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모두 멀리 보낸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도형은 유기징역에 해당하며, 또 주로 관아에 배속시켜 노역을 시키는 징역형이고, 유형은 무기징역에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도형에 처해져도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무기징역이라 하더라도 임금의 마음이 바뀌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곧바로 관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관리들에게 죄를 물을 때 가장 흔하게 적용하였던 것이 바로 이 유형이었다. 15,16세기 관료의 대략 1/4정도가 유배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붕당간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던 17세기 이후에는 그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귀양은 법률상으로는 최고 3천리 밖으로 보내는 것이다. 물론 죄인의 거주지로부터이다. 그런데 좁은 땅에서 3천리 밖으로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런데도 이러한 조항이 있게 된 것은 중국의 법조문을 그대로 베낀 때문이다. 물론 돌아서 간다면 3천리가 아니라 5천리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에 따른 문제도 만만찮았다. 그래서 저 삼수․갑산 같은 변방이나 흑산도․추자도 같은 외딴 섬으로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런 곳은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곳 주민들도 살아가기 쉽지 않았으니 낯설고 물선 유배객의 입장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주민들의 살림살이가어려웠으니 그곳 수령들이라고 해서 넉넉하게 돌봐 줄 수도없었다.더욱이 고향 가족들의 왕래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 유배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배 삼천리

죄를 지어 심문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유배가 결정되고, 유배지가 정해지면 서둘러 떠나야 했다. 관원인 경우는 의금부의 도사都事, 서리胥吏, 나장羅將 등이 압송하고, 관직이 없는 자는 역졸驛卒이 압송했다. 혹은 감옥에서 바로 떠나기도 하고, 혹은 집에 들러 사당에 고하고 가족, 친지 혹은 마을사람

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떠나기도 하였다. 죄인의 처지에 따라 또는 죄의 경중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유배 길에는 말이 필수였다. 투옥되어 형장을 맞은 경우에는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또 유배지까지 당도해야 할 일수를 맞추기도 어려웠다. 귀양길 또한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보통 하루에 80, 90리 혹은 백리 정도였지만, 중죄인의 경우는 2배로 빨리 가라[배도倍道]는 특별 명령이 떨어지기도 하였다. 이렇든 저렇든 시간에 맞추자면 말을 타지 않을 수 없었다.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역마를 이용하였지만, 그러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비로 말을 사거나 새내어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양반들의 유배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종이나 자제들을 대동했다. 유배길이 그래도 수월하려면 압송하는 관리에게 상당한 뇌물을 주어야 했다. 뇌물은 가족이나 일가친척의 도움으로 마련하였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길을 가면서 꾸어서라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전적으로 동행하는 자제들의 몫이었다. 압송관은 일정에 맞춘다는 명분으로 말을 급히 몰거나 쉬지 않음으로써 유배객을 고통스럽게 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양반이나 관리들의 유배는 공금횡령이나 백성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 등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대부분 당파간의 갈등이나 정치적인 문제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이것은 한 개인만이 감당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유배를 가든 가는 길목마다 일가친척들이나 이런저런 사회적 정치적 관계 속에서 맺어진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여비를 부조하거나 술을 대접하였다. 따라서 그 규모와 범위는 죄의 성격보다는 유배객의 정치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따라 달랐다. 특히 죄인이 권세가 출신이라면 비록 백성들에 대한 탐욕스런 착취 때문이라 하더라도 유배 길목의 고을 수령들과 아전들은 고을 입구에까지 마중 나와 음식과 술로 접대하고 여행 경비와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하기에 급급하였다. 물론 가는 길에 조상의 묘소에 들르거나 일가친척을 만나보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고을 원님과 며칠 씩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는 도리어 호사스런 여행길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지옥 길과 마찬가지인 경우도 많았다.

죄인이 고을에 당도하면 고을 수령은 이들을 감독하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수령으로서도 역시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한 고을에 열 명 이상을 배정하지 않도록 조처하기도 했다. 어떤 지방에서는 별도의 집을 지어 죄인들을 함께 거주하게 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인을 정해주어 그 집에서 거처하게 하였다. 세상은 공평하지 못했고,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돈은 법 위에서 놀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렇다면 그것은 후진사회일 따름이다.



죄인에 대한 대우는 사정에 따라 크게 달랐다. 권세가 있고, 유배지의 수령과 개인적인 친분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있다면 점고點考가 생략되는 것은 물론이고 연회에 초대되거나 심지어는 관아기생[관기官妓]의 시중을 받을 수도 있었다. 관내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의 유람도 가능하였다. 뿐만 아니라 관찰사나 인근의 수령들도 환곡을 빌려주거나 면포, 곡물, 반찬, 술 등 각종 생활용품을 수시로 제공하였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로 귀양을 갔을 경우에는 함께 참여하였던 유생이나 당파에서 조직적인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권세도 없고, 곧 풀려나지도 못할 경우에는 호의는커녕 온갖 굴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생계 대책 또한 스스로 마련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양반 유배객들은 서당을 열어 찾아오는 이웃 아이들을 가르쳐 생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고기라도 잡고 동냥이라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주인집에 신세를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세상일은 다양하였고, 정치권력이나 사회적인 지위, 그리고 시대와 주위의 환경에 따라 같은 유배생활이라도 그 실상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컸다.

가족이나 노비 등이 유배지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도 법으로 금하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할 경우에는 거주할 별도의 가옥을 빌리거나 새로 지어야만 했다. 물론 관에서 농민들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였다. 또 거주지 주위의 논밭을 빌리거나 사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물론 농사는 병작竝作을 주거나, 데리고 간 노비를 부려서 지었다.

영조 무신란(1728년)에 연루되어 유배된 영남의 인사들은 각지 관청의 노비로 소속되어 노역이 부과되었다. 이들은 아예 가족을 대동하고, 또 노비를 거느리고 유배지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여 생활했다. 반역죄로 유배되었으니 쉽게 풀려나지 못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은 관노비로 묶여 있다 하더라도 자손들은 그 곳에서 양반으로서의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유배형은 당대에 한하는 것이었고,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주기적인 점고를 제외하고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도 없었다. 거주 지역 역시 관내 지역을 이탈하지 않는 한 어느 곳에든 상관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배라는 것은 당대에 한해 관계와 정계, 그리고 고향으로의 복귀를 금하는 것이었으니 강제 이주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귀양살이, 독서와 저술

묵재 이문건(黙齋 李文楗, 1494~1567)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경상도 성주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545년 9월에 유배길에 올라 한강을 건너 경기도 양지, 충청도 괴산, 연풍을 지나 조령을 넘어 11일 만에 성주에 도착했다. 성주는 서울에서 630리이며, 《의금부노정기》에 의하면 7일 반 일정으로 하루 평균 84리를 달려야 하는 거리이다.

이문건은 성주 유배지에서 부인과 아들 손자와 함께 생활했다. 유배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활동을 활발히 했다. 경주 부윤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경주에까지 가서 첨성대 등을 둘러보고 오기도 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연회에의 출입이 잦았고, 고을 기생과 어울리거나 유람도 다녔다. 이를 문제 삼는 아내의 질책에 대해 질투가 심하다고 푸념을 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청탁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물론 현물로 일정한 사례를 받았다. 손자의 교육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병이 나면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거나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문건의 유배생활은 일반적인 향촌 양반들의 일상생활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이문건과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조선시대 유배와 관련해서는 그래도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熹를 빼놓을 수 없다.

1801년 정조 임금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노론 벽파는 마치 잃어버린 10여 년을 되찾은 양 보수 수구의 길로 치달렸다. 다산도 화를 피할 수 없었다. 다산은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죄목으로 2월에 체포되어 27일간의 모진 고문 끝에 경상도 장기로 유배가게 되었다. 한강의 남쪽 사평에서 가족과 이별하고 충주에 있는 부모님 묘소에서 눈물을 뿌리고, 세재를 넘어 12일 만에 장기에 도착했다.

장기에서는 가끔 포구에 나가 해녀가 소라를 따는 것을 보기도 하고, 고래가 물을 뿜는 것을 신기해하기도 하였지만, 문득 앞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뒤를 돌아보며 가을비 같은 눈물을 뿌리기도 하였다. 술과 담배로 소일하기도 하고, 고향의 정경을 그려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같은 해 10월에는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사건帛書事件으로 형 약전若銓과 함께 체포되어 또 다시 한 달 가까이 모진 고문을 받았다. 형제는 함께 귀양길에 올랐다. 그러나 함께한 시간은 잠시였고, 이별의 슬픔은 오래다 못해 영원하였다. 형제는 나주에서 눈물로 이별한 후 형은 흑산도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16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다산은 18년간을 강진에서 보내야 했다. 형 약전은 《자산어보》를, 다산은 그의 3대 불후의 명작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심서》 등을 저술하였다.


유배생활은 어쩌면 부부간의 영원한 생이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다산의 아내 홍씨는 자신이 입던 다 낡은 다홍치마를 강진의 남편에게 보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렇게 옷으로나마 마음을 전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산은 아내가 그리울 때면 이 붉은 치마를 부여안고 통곡을 했을 것이다.

어느덧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어린 딸이 장성하여 시집을 갔다. 딸의 혼사에 얼굴도 내밀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어쩌면 해가 바뀌고 난 뒤에나 알았는지도 모른다. 다산은 고이 간직하던 이 치마 한 폭을 잘라 매화꽃 가지에 다정하게 붙어서 앉아 있는 참새 한 쌍을 그렸다. 그리고 이렇게 다정하고 화사하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매실처럼 주렁주렁 아들딸 많이 낳아 잘 살라는 기원을 시로 적어 딸에게 보냈다. 이것이 아버지로서 할 수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

다산이 저술활동으로 유배지의 삶을 살았다면, 추사는 그 암울한 현실을 글씨와 그림으로 승화했다. 추사체의 완성이 그러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한도歲寒圖〉가 그러하다.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 간 것은 그의 나이 54세 때인 1840년이었다. 62세에 풀려났으니 근 9년 정도 제주도에서 산 셈이다. 물론 이후 한 차례 더 함경도 북청에서 1년여 유배생활을 했다.

다산에 비하면 그래도 유배기간은 짧았지만, 더 큰 슬픔을 맛봤다. 제주도 유배지에서 아내와 영원히 이별하는 슬픈 소식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내의 죽음을 듣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통곡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슴 저 밑바닥에서 저미어 오는 애끊는 마음을 통곡으로서만 다 풀어낼 수는 없었다.



“내세來世에는 우리 부부 서로 처지가 뒤바뀌어,

나는 죽고 그대는 천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가 내 아픈 마음 알아나 주었으면.”



또 누가 있어 이렇게 애절한 지아비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까?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추사의 애절한 고통이 오늘날 우리에겐 행운이라니.

유배객의 신세가 되었던 것은 높은 벼슬아치나 이런 이름 난 인물들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시골 선비도, 장사꾼도 죄를 지으면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경상도 단성 땅의 이름 없는 선비였던 김령金欞이라는 사람도 전라도 임자도에서 1862년부터 꼭 일 년 간 유배생활을 했다.

김령이 지은 죄는 임술년(1862)에 농민들을 앞장서 부정과 비리를 일삼은 수령을 축출한 것이다. 6월에 암행어사에게 체포되어 진주 진영에 갇히었다가 진주와 삼가에서 수차 조사를 받고 윤8월 마침내 유배 길에 올랐다. 조상들의 묘에 성묘하거나 친척과 인근 주민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길을 떠났다. 여러 벗과 집안 조카들이 멀리까지 함께했고, 아들은 행장을 꾸려 뒤따랐다.

김령은 이 길이 처음이 아니었다. 7년 전 1855년에는 그가 평생 스승으로 높이 존경했던 영남의 큰 학자였던 정재 유치명이 지도에 유배되자 이 길을 따라 찾아가 문안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찾아들었던 일가나 주막에 들러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행로를 빙 돌아서 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어느 곳 어느 집에서나 전일에 하룻밤 묵었다는 인연으로 혹은 다만 일가붙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성씨만한 사람 없네.”라는 시경詩經의 구절을 반복해서 읊조리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가는 길이 마냥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가마꾼이 도망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임자도에 도착한 것은 집을 떠난 지 16,7일 만이었다. 곧 주인집을 정하고, 먼저 유배와 있던 이런저런 사람들도 찾아와 반겨주었다. 압송관과 함께 왔던 집안의 친척들, 아들도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뿐이었다.

김령은 같은 유배 신세인 사람, 집주인 등과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혹은 주역周易을 읽고 시를 지어 마음속의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가끔은 임자도 진장鎭將의 초대를 받아 관아에 들어가 좋은 술과 안주를 대접받고 환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곳에는 전 개령開寧현감이었던 김후근金厚根도 귀양 와 있었다. 그는 개령현감 당시 김령과는 정반대로 비리와 탐학으로 농민들에 의해 쫓겨났다가 이곳에 귀양 와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 거의 매일 서로 방문하거나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고 운韻을 내어 시를 지어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김후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배객, 인근 섬지역의 선비들과 만나 매일이다시피 술과 회, 그리고 시를 지어 회포를 풀었다. 생활에 필요한 돈은 일가친척들과 친구들이 보내오는 것으로 충당하였던 것으로 보였다. 자진하여 온 여행이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좋은 세월이었다.

집과의 서신 왕래도 빈번하였다. 편지는 전주에서 들락거리는 장사꾼을 통해 진주로 전해지면, 이들이 다시 단성 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집에서는 통영 역말에 부치고, 통영에서는 해남 우수영에 보내면 우수영의 하인이 임자도로 전해 주는 식이었다. 이렇게 오가는 편지는 근 20여 일 만에 도달하거나 전해졌다. 편지뿐만 아니라 친척 또는 아들이 한두 차례 먼 곳까지 찾아오기도 하였다.

가끔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나 얽매이지는 않았다. 독서도 거의 매일 거르지 않았다. 하루를 건너면 다음날 그것을 보충하였다. 읽은 책은 주로 주역, 서경, 시경, 춘추좌전, 당시唐詩 등이었고, 특히 사기와 우리 역사를 바탕 하여 《역대천자문歷代千字文》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물론 《간정일록艱貞日錄》이란 이름의 일기도 썼다.

김령은 유배 온 지 꼭 1년만인 1863년 8월에 풀려났다. 아들이 서울에 가서 아버지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때문이었다. 고향에 돌아와서는 근 십여 일이나 축하잔치가 계속되었다.

김령은 유배에서 풀려난 다음다음 해인 1865년 7월에 세상을 뜬다. 아마 무절제한 유배생활이 건강을 크게 해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고향에 돌아와 세상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조정의 관료였던 아들의 힘이 컸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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