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민들의 힐링카페 ′카페 맘′(글/이희수_프리랜서 기자)
손님도 직원도 모두가 힐링되는 카페
새해를 맞이하면 늘 새 달력에 그 해의 일정들을 적는다. 가족생일이며 집안 행사 그리고 휴일은 며칠이나 되는지. 매년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그 안에 인쇄된 다양한 기념일들을 단순한 활자로 취급하고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던 듯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달력을 넘기며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글을 읽을 나이가 된 큰 아이가 달력에 적힌 날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익숙한 날들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하다, 장애인의 날에서 잠시 멈췄던 듯하다. 아이에게 대강 설명하고 넘기려다, 함께 찾아보며 어떤 날인지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자료들을 보다 세종대왕의 조선시대 장애인 정책에 대해 읽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에게는 악기를 다루게 하여 그에 관련된 관직을 주고 70이 되지 않았더라도 장애를 가진 백성에게는 군 면제와 세금을 내지 않도록 했다. 같은 부문의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단체를 설립케 했고 그곳을 통해 일자리를 갖도록 독려했다.
세종 13년, 박연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날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단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아닌 수용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장애인이 전문직을 가지기에 외려 지금보다 조선시대가 더 불편함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동시청 지하, 장애인 직업교육장 ‘카페 맘’
안동시청 본관 지하 1층, 흔한 휴게실 대신 그윽한 아메리카노 향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지난 해 문을 연 ‘카페 맘’이다. 십 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저렴한 가격에 준비되어 있어 굳이 바깥걸음을 하며 커피마실을 다닐 일이 없다. 근래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워낙에 많이 생겨나다 보니 시청에도 직원들을 위해 구내식당처럼 문을 열었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커피를 내리는 이들이 다름 아닌 발달장애를 지닌 장애인들이라면 이야기는 다소 달라질 듯하다.
그곳에서 우리가 만난 바리스타는 은은한 원두색의 깔끔하게 다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베레모 형의 멋스런 위생모까지 착용한 박순진(23), 장운선(20) 학생이었다. 그들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안동진명학교의 학생들이다.
취재를 위해 얘기를 듣고 사전 정보를 들었을 때만 해도, 학생들이 몇 시간씩 상주하며 직접 서빙도 하고 커피를 만들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혹여 일을 하더라도 아주 단순한 일만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주방 뒤편에서 바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리고 이내 쟁반에 담긴 커피를 손님 자리에까지 내가고 미소 띤 얼굴로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는 모습을 보고, 구색만 맞춰서 일하는 건 아닐까 했던 아둔한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안동진명학교의 예비 바리스타들
안동진명학교에 있는 전공과는 총 5개 실습교과로, 학교를 졸업한 장애인들의 사회진출을 높이기 위해 실전에서의 훈련이 필요한 부문들로 나눠져 있다. 때문에 단순조립이나 운동화 세탁 등에서는 관계기관들의 협력으로 직업교육이 현장에서도 가능한 상태였다.
지난 2013년 교내에 바리스타 과정을 열고 시설을 마련했다. 현장에서의 직업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바리스타라는 전문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지만 박재호 교장, 소진혁 교감을 비롯해 전공과의 천경철 부장교사와 우인선 담당교사의 애정과 갖은 노력으로 결국 바리스타를 위한 교외직업교육장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리스타는 직접 사람들을 대면하는 현장에서의 직업교육이 필요하기에, 실제로 운영이 되는 바리스타 직업교육장이 절실했다. 이에 장애인 직업교육과 취업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여준 안동시청의 지원과 협조를 받아 기존의 휴게실을 새단장하며 바리스타 작업교육장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또, 경상북도장애인청소년자립지원센터와의 공동운영으로 안동진명학교 전공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안동지역 내 있는 타교의 발달장애인 학생들도 함께 직업교육을 통해 사회진출을 위한 발판이 되도록 했다. 오전에 주로 진명학교의 예비 바리스타인들이 나와 직업교육을 받고 오후엔 경상북도장애인청소년자립지원센터에서 나와 관내 다른 학교의 발달장애 학생들이 교육시간을 갖는다. 간혹 학생들의 실습이 아닌 시간에는 공동으로 운영하는 경상북도장애인청소년자립지원센터에서 상주 가능한 전담 코디를 따로 두어 일바 카페와 동일하게 운영을 하고 있다.
개업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점심 직후에 많게는 서른 명의 사람이 카페 안을 가득 메우고,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들로 북적일 정도로 나름 안정된 상태다. 학생들이 두 명씩 팀을 이뤄 돌아가며 카페 맘으로 직업교육을 나오는데 요즘은 박순진 학생과 장운선 학생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엔 운영에 대한 적자도 우려했지만 지금은 카페를 운영하고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형태의 월급도 꼬박꼬박 지급을 해주고 있다. 사회진출을 발판 삼은, 어쩌면 이곳이 그들의 첫 직장인 것과 다름없기에 일에 대한 성취감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직업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놓치지 않고 있다.
청출어람을 바라는 교사, 청출어람을 꿈꾸는 학생
지난 10월 문을 연 카페 맘은 많은 이들을 변화시키고 감동시켰다. 박순진 학생의 부모님이 아들의 대견한 모습을 보고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던 때를 기억하며 새내기 우인선 선생님은 특수학교 교사로서의 소명감으로 전공과 학생들의 이 같은 발전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사실 다른 타 지역의 특수학교에도 바리스타 과정의 전공과가 마련되어 있으나 실제로 우인선 선생님처럼 교내 교사가 직접 장애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해서 바리스타 수업 진행을 담당하고 라떼아트, 핸드드립, 더치커피 제조 등의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는 없다. 그가 지난해 첫 부임지로 안동진명학교로 발령을 받고나서 5월 16일에 교내 바리스타 실습실이 생겼다. 중학생 때부터 특수교사로서의 꿈을 가졌던 그는 1년간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배울 만큼 커피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아마도 이 점이 장애인 바리스타 직업교육장인 카페 맘이 가지고 있는 강점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특수교사로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파악할 수 있으면서 바리스타 기술까지도 가르치니 일반 바리스타 강사들이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많은 변수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 중 어느 한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의 성인들도 수개월을 배워야 제대로 해낸다는 바리스타의 전문적인 기술들을 빠르게 익혀가는 학생들을 보고 우인선 선생님의 뿌듯함 또한 남달랐으리라 생각해 본다. 이 점은 우인선 선생님 또한 크게 감사한 부분이라 했다. 스스로도 좋아하는 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금은 더디게 그러나 야무지게
카페 맘을 방문한 때가 오전 시간이었지만 손님이 하나둘 끊이지 않고 오고 있었다. 학생들의 안전과 직업교육을 위해서 우인선 선생님은 옆에서 도움만 줄 뿐 실제로 커피를 다루는 일은 모두 학생들의 몫이었다. 기술적인 훈련들은 학교에서 완벽에 완벽을 위한 연습으로 쌓았으니, 카페 맘에서는 실전처럼 바리스타가 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교육의 연장이기도 하니 간혹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한다.
박순진 학생의 경우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많아지면 긴장을 늦추지 못해 갑자기 “장사 안 합니다” 하고 선전포고(?)를 한 적도 있었단다. 우인선 선생님의 능숙한 대처로 이내 카페 내 손님들이 웃으며 다시 커피를 주문하고 두 학생도 자연스럽게 주문받고 커피를 잘 내렸다는 후일담이다. 학교에서 실습을 할 때는 학생들이 직접 교내 선생님들에게 배달을 가는데 배달 번지가 틀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러한 여러 번의 연습과 공부가 지금의 카페 맘에 서 있는 두 바리스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직 정식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아니다. 이제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한지 1년이 채 덜 되었으니 올해의 목표는 자격증 취득이라고 한다. 어딜 가나 ‘자격증’이라는 공인된 증명이 주는 신뢰감을 알고 있기에 차근차근 준비하려 한다. 사실 학생들의 적응과 교육 그리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지난 해 공부를 하면서 전국지적장애인협회 장애인 바리스타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본선까지 진출했지만 안타깝게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대회가 1회였기에 사실상 발달장애 정도의 차이가 없이 경증과 중증이 함께 겨뤘으니 아직은 대회에서 보완되어야할 부분도 많았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올해는 한 층 더 단단해진 실력으로 재도전할 예정이라니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발달장애인도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전공과와 연계된 많은 직업교육장이 그러하지만 특히나 카페 맘이 갖는 직업교육장으로서의 효과는 발달장애학생들 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또 다른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들이 발달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이해의 폭에 대한 변화이다.
우인선 선생님은, 우려와 다르게 카페 맘을 찾는 많은 시청직원들이 학생들을 다르게 보지 않고 여느 일반 카페의 직원과 다름없이 대해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가끔은 귀여운 그들의 실수에 대한 너그러이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했다. 또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카페 맘에서 교육을 수행하는 학생들에게도 변화를 줬다. 특히나 약간의 중증을 동반한,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순진 학생의 경우, 이곳에서의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대면하고 서비스를 하는데 무리가 없을 만큼 성격이 밝아졌다며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직업교육의 목표는 결국, 발달장애인으로서 또한 사회 속 일원으로서 사회라는 틀 안에서 한데 섞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진출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가 바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충족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발달장애인들의 원만한 대인관계란 우리가 또한 만들어줄 수도 있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앞으로는 뜻있는 사업자와 연계해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의 기회를 제공할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카페 맘은 단순히 장애인 직업교육장이 아닌, 누구나가 교육되는 곳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몰랐던 환경에 부딪치고 부딪치는 만큼 성숙해지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카페 맘의 어엿한 바리스타 순진, 운선 학생은 ‘다를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뺀다면 정말로 다른 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패스트푸드점처럼 소음 속에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곳도 아니다. 손님도 직원도 좀 더 느긋하게 커피향을 맡을 수 있는 곳, 그리하여 요즘 코드인 ‘힐링’이라는 말을 은근슬쩍 집어넣어도 어색하지 않는 곳 바로 여기 ‘카페 맘’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엄마의 품처럼 보듬어주다, 카페 맘
카페 맘의 ‘맘’에 담긴 의미는 조금 특별하다. 처음엔 엄마라는 포근한 품을 가진 그런 따뜻함을 연상키에 충분해 그 이름에 큰 궁금증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카페 문을 들어서며 바깥에 걸린 간판에 ‘MUM’이라고 적힌 것은 다소 낯설었다.
알고 보니 교내 카페이름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름이라 한다. 한 달 치 커피 무료쿠폰 상품을 두
고 높은 참여률을 보였는데 그중 아담하고 포근한 카페 이미지와 어울리고 진명학교의 교화인 국화(Chrysanthemum)의 영어 학명과 영국식 엄마의 표기철자인 엄마(MUM)의 뜻을 함께 지닌 ‘맘’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명칭공모에 당선된 선생님이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올해 안동진명학교 전공과 바리스타 학생들은 자격증에 도전한다. 아울러 지난 대회에서 놓친 우승을 위해 학교는 물론 이곳 카페 맘에서도 하루 종일 커피향내가 끊이지 않을 듯하다. 커피향이 좋았던 것인지 아담한 그곳이 ‘맘’에 들어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인들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안동시청 지하에 이런 커피향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려줄 겸.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