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제삿날(글/김윤한)후우- 하고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흡사 바라춤을 추는 스님의 소맷자락처럼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천장으로 춤을 추며 올라가는 담배연기 사이로 지난 삼십여 년의 세월이 활동사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이었다. 월곡댁은 담배연기를 다시 한 번 길게 빨아들였다.
외아들 명수가 올해 스물 아홉이니까 남편을 여의고 과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벌써 이십 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시집 온 지 십 년여나 되었을까, 뜻밖에 남편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었고 동네 한의원에서 한약 몇 첩을 달여 먹은 거 외에는 변변한 병원 한 군데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영원히 하직하고 말았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지만 혼인할 당시에도 남편에게는 병약한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었다. 시부모님은 그 이력을 아시는 것 같았지만 며느리에게는 끝끝내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았다. 명수 하나만 낳고 그 후로는 영 태기가 없었던 것도 아마 남편의 그 이름 모를 병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명수만 믿고 사는 겨. 사는 기 별 건가? 금방 세월 가고 명수도 장가가고 그럴 겨. 참고 살어. 그라믄 언젠간 옛날 야그하며 살 날 있을 겨"
장롓날 문상을 왔던 친정 아버지는 청상과부가 된 딸의 손목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내 떠나가셨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고 만 딸은 아버지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었다. 상처가 쓰리기는 하지만 건들면 건들수록 더 도져서 오히려 치유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는 그런 거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친정 아버지는 그날 이후 한 번도 혼자 살아가는 딸의 집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월곡댁도 마음 독하게 먹고 살 각오로 그 동안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친정에를 가지 않았다.
친정이 있기는 하지만 혼자 어린 자식을 키우며 한 가정을 지켜 나가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괜히 친정을 믿다가는 아무 일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남편이 죽은 후 삼 년만엔가 시부모마저 모두 다 돌아가시고 말았다. 뚜렷한 재산 없이 순 몸뚱이 하나로만 연명의 수단을 삼고 있었던 터라 어린 자식과 이 세상을 살아갈 길이 막연했다.
처음엔 이웃집에 품팔이도 하면서 근근히 두 식구 입에 풀칠 정도는 하였지만 젊은 과부의 몸으로 남의 일을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명수가 중학교에 들 무렵인가부터 시장 통에서 생선 장사며, 국화빵 장사, 남의 식당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어쩌다가 담배를 배우게 됐었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담배가 거의 유일한 낙이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 때라도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면 이 세상 온갖 시름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여태까지 잘 버텨 온 것은 외아들 명수와 담배연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을 아닐 거였다.
월곡댁이 시댁 고향을 떠나 아들 명수를 데리고 시내로 나온 것은 참 잘 한 일이었다. 물론 초기에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도 많았고 주위의 남정네들이 과부라고 어떻게 해볼 양으로 집적댈 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도 있었지만 명수가 고등학교에 들 무렵에는 두 평도 안되었지만 지금 하고 있는 건어물 가게도 얻을 수가 있었다.
젊은 과부가 남편 없이 이 세상을 버텨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잠든 어린 아들 옆에 앉아 긴긴 밤을 지샐 때면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녔다. 팔자를 고쳐버릴까하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가아련다. 떠나아려언다. 어리인 아들 손을 자압고……"
긴긴 밤이면 박복한 신세를 푸념하듯 유정천리노래를 자주 읊조리기도 했다. 젊은 여인네가 겪는 외로움을 잊는 길은 잡념이 들지 않도록 옆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게 최상 책이었다. 밤늦도록 죽어라 일만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잡념이 들 사이도 없이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이 만큼이라도 살 수 있는 건 그렇게 옆 안 돌아보고 살아온 한 덕분이기도 했다.
월곡댁은 워낙 바쁘게, 그리고 어렵게 지내온 탓에 그 동안은 남편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살아 왔었다. 이제 자식도 많이 자라 어미 품을 떠나고 끼니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처지가 되자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나면 어렴풋 남편에 대한 생각이 나기도 했다.
신혼 초 남편은 유달리 아내를 아꼈었다. 시부모님 몰래 삶은 계란을 조끼 주머니에 넣어서 슬며시 아내에게 갖다 주기도 했고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나 보면 언제 깨어났는지 잠든 아내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남편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늙은이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귓볼에는 그 당시 남편이 내뿜었던 거친 숨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었다. 생각이 자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미치자 월곡댁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베개를 다시 돋아 고이고는 돌아누웠다.
새벽녘에 혼자 사는 늙은 여자가 깨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담배를 피우는 일 말고는 없었다. 다시 애꿎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역시 담배는 호흡기에 안 좋은 게 틀림없었다. 담배연기 때문에 한참동안 기침을 해대던 월곡댁은 다시 서둘러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한 번 깨어난 잠은 좀체로 다시 오지 않았다.
외아들 명수가 잘 자라준 것은 불행 중에도 큰 다행이었다. 누구를 닮았는지 명수는 유달리 총명했다. 남들로부터 애비 없이 자란 아이란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속도 깊고 공부도 잘 했다.
국민학교 오학년 땐가 명수가 저희 학급에서 선거를 통해서 반장이 됐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월곡댁은 명수 모르게 뒷방에 가서 남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울기도 했다. 그 날 밤에는 돌아간 남편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남들은 자식 때문에 골치를 썩는다고들 하지만 월곡댁은 한 번도 아들 명수 때문에 속을 썩여본 기억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라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대로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했었고 결국엔 일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명문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경제위기니 뭐니 해서 모두가 취업걱정을 할 때도 명수는 남보란 듯이 큰 기업체에 취직을 해서 군청색 넥타이를 메고 머리에는 무스를 힘차게 발라 빗어 넘긴 채 고향을 찾지 않았던가?
그래, 나는 참 복 받은 년이야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꽃 같은 아가씨를 얻어서 결혼도 했다. 게다가 며늘아기는 서울사람이라서 그런지 유달리 붙임성도 있고 자주 시집에 오지는 못하지만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안부 전화도 빠뜨리지 않는다.
아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꼴로 고향을 찾는데 그때마다 인삼이다 보약이다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다. 어제 저녁에는 모처럼 며늘아기가 시아버지 제사 때문에 하루 일찍 고향을 찾았다. 먼 여행이라 피곤할 텐데 시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갖은 아양을 떨었다. 홀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혹독하다는 말도 있지만 적어도 월곡댁에게는 예외인 듯 싶었다.
문이 훤하게 밝아지는 걸로 봐서 다섯 시나 되었을까? 일찍 잠에서 깨어나 조금은 졸리기도 해서 다시 잠을 청해볼까 하며 월곡댁은 몸을 쭈그리고 뒤로 돌아 누웠다. 그 때 집안의 정적을 깨고 급하게 전화벨이 찌르릉 울었다. 며늘아기가 깰 새라 급하게 마루로 달려나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고모님, 아침 일찍 죄송헌디요. 아부지가…… 아부지가요."
"빨리 야글 혀라. 뭔소린디"
친정 남동생이 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트럭에 받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삼십 분이나 지났는데 의식을 못 차린다는 것이었다. 친정이 있는 도시는 세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뒷 방에서 자고 있는 며늘아기를 깨웠다.
"새아가, 미안허다. 내 손으로 다 헐려구 그렸는디 안되겄구나. 잘 안 혀도 좋은께 니가 제사음식 준빌 좀 혀야 쓰겄구나."
염려가 되었지만 하나 뿐인 남동생이 사고가 났다는데 가보지 않을 수도 없어서 월곡댁은 하는 수 없이 오늘 제사준비를 며느리에게 맡기고 서둘러 버스터미널을 향해 총총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동생은 친정조카가 월곡댁에게 전화를 할 무렵에 깨어났다고 했다. 한쪽 팔이 부러졌지만 나머지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월곡댁은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병원에를 들렀다 같이 가자고 이르고는 오후 늦게까지 병원에 머물렀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아들녀석의 차를 같이 타고 오려고 해질 무렵까지 기다렸지만 아들녀석은 급한 볼일이 생겨 좀 늦는다고 했다. 밤 여덟 시가 지나서야 아들녀석이 허겁지겁 나타났다. 좀 늦었기는 하지만 이 길로 달리면 그나마 남편의 제사는 제 때에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들녀석이 모는 승용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벌써 밤 열 한 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며느리는 벌써 제상을 다 차려 놓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채 시어머니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구나 인자 지내야 안 쓰겄냐?"
월곡댁은 제상 앞에 세워져있는 남편의 사진을 내려다보며 한참동안 옛날 생각을 했다. 오늘은 며느리가 새로 들어온 후 처음으로 지내는 제사였다. 제사 음식상 위에 덮여져 있는 신문지를 한 장씩 걷어냈다.
순간, 월곡댁은 놀라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소고기 꼬치라든지 나머지 제사상은 그런 대로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지만 조기는 토막토막내서 매운탕이 되어 있었고 고등어도 머리는 잘려 나간 채 통째로 구워져 접시에 담겨 있었다. 게다가 제사에 안 쓴다는 갈치에다 듬성듬성 무를 썰어 넣고 고추장 양념을 한 채 먹음직스런 탕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월곡댁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비록 격식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이쁜 며느리가 온갖 정성을 다해 차린 제사상이 아니던가? 월곡댁은 갈치탕 위에다 놋숫가락을 걸쳐놓고는 잔 가득히 술을 따랐다.
"잘 혔다. 니 시아버지가 갈치를 되게 좋아혔니라. 며늘아기 덕분에 글케 좋아허든 갈치탕을 이십 년 만에야 맛보는구나."[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