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이야기(글/사진/이순구_안동대 교수)
I.
나는 책벌레지만 책 읽듯이 음악도 듣는다. 요즘 나는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를 독서하듯 음반(LP, CD, DVD, MP3 등)으로 매일 듣는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말러의 음반(CD)과 DVD를 새로 더 사고 서울 예술의전당에도 말러 연주를 보러 갔다 와야 했다.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두만강 푸른 물은…’만 읊었고 어머니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내 자식이 어릴 때(거의 태교 할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거의 매일 집에서 서양 클래식 음악만 틀었고 클래식 음악만 듣게 했다. 그렇지만 자식은 자기가 좋아하는 팝송과 비틀즈, 포크송 등과 우리나라 유행가들만 선호했다. 음악 취향도 격세 유전하는 것일까? 제비 기질의 인간에게 클래식 음악은 남에게 잘난 척 하기 좋은 소재다. 고상한 인품도 아니면서 고상하게 보이고 싶은 제비 기질의 인간은 언제 어느 곳에나 상존해 있다. 한국에서 시인이라면서 폼을 잡고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안성맞춤의 교양이 바로 그 서양 고전음악 취향이다. 거기
엔 돈도 쏠쏠하게 많이 든다. 조금 그럴싸한 오디오와 그 소프트웨어들(CD, LP, MP3 등)을 사는데 필요하다. 지금 와서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젊은 날부터 그런 고상한 척 하는데 선수가 되어 돈을 쓴 게 얼마나 되는지 도저히 계산이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집에서는 주로 부인이 그런 음악, 미술, 문학 취향이 많은데 비해 우리 집은 남자인 내가 그런 취향의 제비라서 처가 많이 힘들고 고달픈 것도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중학교 때다. 초등학교 5-6학년을 중학교 입시 준비로 보낸 우리 세대라서 그런지 중학교에 입학하여 참 기분이 좋았다.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더 돌아가도 행복할 것 같다. 미술 시간은 내가 가장 칭찬받는 시간이었고 음악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L자 모양의 3층 신축 교사의 옥상에 있었던 그 음악실에서 우리는 노래도 불렀고 음악 감상도 했다.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 차이코프스키의 무용 음악,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들을 듣는 그 수업시간, 음악 담당 선생님이셨던 이지구 선생님은 아주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얼굴로 영화 이야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말씀해 주신 것 잊지 못한다. 부산 남항이 내려다보이는 그 음악실 유리창에 해맑은 햇볕이 비쳤다. 이지구 선생은 여름 하복 반바지(당시 부산에서는 내가 다녔던 경남중학교만 반바지 하복이었다)를 입은, 중1의 어리고 키 작은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다. 그리고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 일원으로 그 당시 1년 동안 우리 학교에 온 미스터 부춰에게서 영어회화를 2학년 한 학기 동안 배웠다. 수업 시간에 그 흑인 남자 선생님한테서 배운 노래 ‘올드 블랙 죠’는 지금도 나의 애창곡이다.
그 노래를 배웠던 그 행복한 수업 시간. 그런 행복한 수업시간은 다시 대학교 1학년 독일어 수업시간이었다. 그때 독일어 강사 선생님은 시인 송영택 선생(1933년 부산출생)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 고교 때 배웠던 국어 교과서의 ‘외국시인의 서정’에 나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주여 지난여름은 위대했습니다’하며 외었던 바로 그 시를 우리말로 번역했던 분이었다. 수업 첫 시간에 출신 지역과 고등학교를 물으시며 신원조회 하신다고 했다. 그분은 부산고등학교를 나온 분으로 신원조회에서 부산에서 고교를 나온 수강생(부산고, 경남고, 동래고)은 무조건 학점이 A+였다. 나도 그 덕에 독일어 과목 학점을 A+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영어만큼 독일어를 곧잘 하는 셈이다. 영어보다 독일어를 더 좋아하는 나 자신을 종종 바라본다. 사전만 있으면 독일어 문헌 독해에는 문제가 없다. 영어교육과 다니던 딸에게도 독어독문학을 부전공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같이 그 수업을 들었던 J교수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아, 그 엉터리…!! “라고 말한다. 그는 서울에서 고교를 나와서 아마도 (학점 짜다는 교양 과목에서), A+ 학점은 못 땄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정말 참 좋은 선생이었다. 내 자신이 특히 문학을 좋아했기에 더욱 그 분께 많이 경도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송 선생님은 후에 시는 거의 발표하지 않고 라이선스(성음) LP음반의 우리말 해설 혹은 번역문이나 쓰시는 것 아닌가. 대학졸업 후 음반 혹은 오디오 잡지에서 그분의 근황을 조금씩 그렇게 알았었다. 몇 년 전 마종기 시인의 시작詩作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팬 사인회(2010년 5월 26일, 서울 가회동 두루카페에서 티 탐임) 갔다가 바로 그 마 시인한테서 들은 말인데 그 송 선생님이 마 시인의 집에도 많이 찾아오셔서, 마 시인과도 거의 친구로 지냈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은 독일어 수업이 무조건 휴강이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선생님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우리나라 독자들은 헤르만 헤세, 카프카의 소설들을 거의 그분의 번역으로 읽었다. 최근 출판한 그 분의 한 권 밖에 없는 시집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M Books, 2012년)에서 ‘부산중학교’를 인용한다.
부산중학교
산기슭의
목조 이층 교실에서 바라다 보면
거기 멀리 오륙도가 있었다
어지럽게 반사하는 눈부신 햇살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아른거렸다
그러나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가물거리는 난바다에는
무슨 음악 같은 것이 있어서
바람과 함께 뭍으로 뭍으로 밀려오며
시시각각 아기자기 변하고 있었다
오륙도와 이층 교실 사이에는
그래서 언제나 꿈이 넘실거렸다
바다가 보이는 교정 동쪽 끝에는
벚나무가 줄지어서 그늘을 지우며
시(詩)를 읽고 있었다
나 자신도 꼭 그런 중학교에 다녔다. 초량 산언덕에 있어서, 부산 북항과 오륙도가 보이는 부산중학교와 달리 내가 다녔던 경남중학교는 토성동 언덕위에 있어 교실에서 부산 남항과 영도가 보였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다시 또 되돌아가고 싶은 바로 그 중학교를 다니던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학과 미술, 음악 듣기를 바로 그렇게 시작한 셈이다.
II.
2005년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츄쿠바 농업생물자원연구소 및 연구단지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며 1년간 연구년 생활을 할 때, 어느 휴일(4월 17일, 일요일 밤 23:30경) 한밤중, 정명훈 씨가 일본 동경도립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연주하는 말러의 4번 교악곡 (G장조,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대중적임)을 NHK 교육 방송(2005년 3월 10일 東京오페라座 공연실황을 재방송)으로 시청한 적이 있다. 일본의 소프라노 가수 모리 마리에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천국의 삶’을 노래하는 것 보았다. 정명훈 씨는 나와 같은 나이로 그가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했던 것도 좋아하는 말러의 교향곡을 지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고백할 정도로 말러 친화적인 지휘자다. 그 공연실황을 보면서 일기장에 두서없이 쓴 사유의 낙서들을 다시 (부끄럽게) 베껴본다.
2악장이다. 봄밤 스산함 속에서 아내 먼저 잠자리 들고, 나는 아직 깨어서 지난 한 주 동안의 연구실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 나의 말실수, 그 실수로 인한 죄책감, 또 그로 인해 며칠 연구실에 안 나간 것 등등을 생각한다. …… 오늘 오후 아내 전화 카드로 한국에 있는 딸에게 전화… 그리고 밤 9시경 딸이 이 숙소로 전화해서 아내와 통화했다. 신문 스크랩했고, NHK-FM을 에어체크했다. … 3악장: 느린 악장, 마음이 스산하다. 책상에 앉아서 낯선 이국異國, 생소한 초목草木, 다른 언어… 그(정명훈)는 뛰어난(유명한) 마에스트로가 되어 있지만 (동년배인) 나는 무명씨無名氏, 존재의 미미함. 자신을 드러내기 부끄럽다. 그리고 지금 제 실수로 의기소침…… 나약함으로 또 담배를 피운다. 조용한 마음의 떨림, 고요 속에서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비상飛翔. 4악장: 대격변 breakthrough, ……극복, 나의 마음 여림은 아직도… 지난 아픔은 아직도… 그 여림, 스산함, 고독, 그 가냘픔, 그 폐허 위에 천상의 노래, 하늘의 기쁨을 노래하는 소프라노가 기다리고 있다. 그 노래를 다 듣고 다시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천상의 기쁨, 먹을 것 풍성한, ……베드로 준비, 마르타 요리, 배고파 죽은 아이가 천당天堂에 가서…… 즐겁게 노래하는 음악. 자정 지나 0시 15분, 음악 끝! 내 스스로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쳐들지 못할 때, 우리 뜻이 허물어진 뒤 그 파편들을 끌어 모으면서, 이제 인생의 겨울이 문전에 다가왔음을 절감할 때, 말러는 우리의 친근한 벗이 되어준다. 말러에게는 응석을 부려도 괜찮다. 그에게는 채찍이 없으니까.(정관호, 1990,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 삼성출판사)
2014년 2월 17일 아침, 쥬세페 시노폴리(1946-2001)씨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 노래, 1991년 녹음한, 4번 교향곡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 출근했다. 아, 정말 다른 느낌이다. 시노폴리 씨의 이 연주는 너무나 광막하고 처절하다. 말러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명랑하다고 정평이 난 이 교향곡을 너무 심각하게 연주하는 바람에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 몸과 마음이 밤하늘 저 높이 마치 달나라에라도 가 있는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교향곡 1악장 그 첫 시작의 청순한 소 방울소리는 참으로 맑게 내 마음을 흔든다. 음악은 사람 영혼을 뒤흔드는 바로 그 순간, 그 찰나가 들어있는 시간 예술이다. 말러의 교향곡 제 4번으로 건너뛰려면 신발
끈을 고쳐 매어야 된다. 그의 교향곡치고는 제일 간결하고 또 친숙하기 쉬운 선율로 꾸며져 있는데도 말이다…. 어떤 동기(motive)를 잡으면 법칙이나 기법이 우선하며, 정서보다는 논리, 선율성보다는 리듬감이 전면에 나선다. 따라서 남성적이며 전진적인 악상을 펼치기에 걸맞다, 이 기技에 가장 능했던 사람이 베토벤이다. ……. 선율이 뼈대가 되는, 노래하는 교향곡은 슈베르트적이다. 슈베르트적 특성은 매우 여성적이면서 내면적이다. 속도는 느려지고 리듬은 숨어서 흐르게 마련이다. 말러 교향곡들도 하나같이 모두 슈베르트적이다. 요즘 나는 말러에 미쳐서 말러만 듣고 있다(2014년 3월 13일). 4번 교향곡, 그윽하고 안온한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빈 필하모닉의 연주다. 말러의 현대성을 도널드 미첼 씨가 음반 해설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첫째는 말러의 아이러니가 무지막지하고, 파괴적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현대의 삶에 따사한 미소와 정서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둘째는 말러의 과장, 허풍, 끊임없는 호기심, 알려는 마음, 꼼꼼하게 따지고 캐묻기가 바로 이 시대정신(Zeitgeist)이란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말러의 현대음악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과거 음악과의 실마리나 연결점을 찾기도 하지만 단호한 단절도 취하는 그의 음악적 자세가 후대의 현대 음악 작곡가들과 부합되는 점이 많다는 점이다. 2000년이 시작될 즈음, 세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클래식 음악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까지 오케스트라 연주 레퍼토리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베토벤이 구스타프 말러에게 밀려나고 있었다.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그의 예견대로 말러는 사후 백 년이 지나서 마침내 교향곡의 명장으로, 가장 사랑 받는 작곡가로 우뚝 섰다.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는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꼭 거쳐 가는 레퍼토리가 되었으며, 무릇 지휘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황경신). 아, 나는 무척 피곤하다. 말러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DVD도 봐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MP3로 말러 교향곡 6번을 또 듣는다. 아바도 씨가 지휘하는 6번 교향곡이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자기 스스로 적당한 시간을 찾아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는 자연의 힘(Music is a force of nature that had to find its own moment, fill its own vacuum)이라고 노먼 레브레흐트 씨는 올 1월클라우디오아바도(1933.6.26-2014.1.20)씨가 서거했을 때 그 추도문에 이 말을 썼다. 바로 그가 《왜 말러인가(Why Mahler?)》라는 책을 2010년에 썼다. 그 책을 이석호 씨가 바로 번역하여 그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오랫동안 핍박받은 유태인의 한이 깃든 말러 음악은 한국인의 감성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임헌정 서울대 음대 교수의 말처럼, 교향곡 2번 ‘부활’을 비롯한 말러의 많은 작품들은 한국인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고통 속에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말러의 인간적인 모습에 우리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2003년 임헌정이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기획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한 1996년 서울대 개교 50주년 기념연주회였다. 임헌정은 심신이 고갈된 상태에서 연주를 진행하다가 결국 1악장은 제자에게 맡기고 2악장부터 앉아서 지휘하게 되었다. 250명의 합창단이 “다시 일어서라(Auferstehen: 부활하라)!”고 외치는 마지막 악장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다시 일어섬(부활)”은 엄청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말러 대장정을 감행하게 되는 필연적인 계기가 되었고, 그는 1999년 11월 27일, 교향곡 1번으로 첫 연주회를 열었었다. 그 후 2010년 말러 탄생 150주년, 2011년 말러 서거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말러 열풍을 몰고 오기에 적격으로 서울시향(정명훈 지휘), KBS교향악단의 전곡 연주 시리즈에 이어, 지방 교향악단까지 말러 교향곡 연주대열에 동참했다고 한다.(월간 《객석》 2014년 3월호)
서울대 약대 출신의 약학박사, 특허심사관인 김문경 씨가 출판한 구스타프 말러 책은 처음에는 초기, 중기, 후기의 3권으로 출판되었다가 최근 합본으로 재출판(2010년)된 책으로, 음반과 악보에 아주 정통한 아마추어 음악애호가의 진지한 말러 탐구서로 나에게 읽혔다. 그의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말러 붐을 일으키는데 상당한 일조를 했다고 나는 본다.
말러는 “교향곡에 세계를 담아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세계적인 모순들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대에 활동한 그의 음악은 세기말의 분열과 불안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돈, 열정, 거침, 죽음의 이미지 속에서 그의 음악은 구원을 향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로 이어지는 교향곡 작곡가의 계보에서 말러가 정점을 이룬다고 평가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황경신). “나는 삼중으로 집(고향)이 없다(Three Times Homeless).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안인(지금의 체코 항가리 지역인 보헤미아 출신)이고,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며, 세계인 속에서는 유대인으로서 어디서나 침입자였고 환영해주는 곳이란 아무데도 없었다.” 말러는 전 생애에 걸쳐서 진정한 정착 없이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빈 오페라의 총감독이 된 말러는 ‘진정한 19세기인으로 니체를 신봉하는 전형적인 반종교인(오토 클렘펠러)’이었다. ‘방황하는 유태인’의 운명을 짊어진 말러는 서로 상반된 문화상황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삶이 흔히 그렇듯, 정신의 불안정, 지나친 자의식, 불안감, 권태 등으로 괴로워하면서 끝없이 위기적인 상황에서 살았다. 언제나 영원한 것을 꿈꾸었으며 그로 인한 불안과 절망으로 늘 방황하는 낭만주의자였다.(이경숙, 2003, 《예술가곡의 이해》, 선우미디어)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삶,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산 한 인간의 고백과 그 주변인들의 증언, 자식을 잃은 비극적 경험에 쓰라려야 했던 아버지의 심경(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 Kindertoten Lieder) 등은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말러의 음악을 듣고 인생이 바뀐 사람들의 경험담은 그의 음악이 가진 독특한 치유력에 공감하게 한다(황경신).
말러는 사색적이고 독서광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문학 작품에 파묻혀 현실을 잊고 지내는 때가 많았다. 또 그는 문학적 재능, 특히 시작詩作에 능했다. 그의 문학 스타일은 E.T.A.호프만, 장 폴의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큰 영향은 의심할 나위 없이 《어린이의 요술 뿔피리(Des Knaben underhorn)》 시집에서 받았다. 그는 시인으로도 우수하여 자작시에 여러 곡을 붙였다. 말러는 뿔피리를 바탕으로 가곡집을 작곡하면서 원시를 생략 또는 결합하거나 적절 절묘하게 손질하여 자신의 음악을 표현했다. 따라서 말러의 음악과 가사는 가장 놀라운 관계를 가지고 잘 조화되어 있다. 말러의 작곡법의 극적 진실이 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르게 했다. (이경숙, 2002, 《말러와 그의 가곡》, 삶과꿈) 유대인의 숙명을 짊어지고 어려움을 겪은 말러가 가장 독일 정신을 표출하고 있는 독일민요시집 ‘어린이의 요술뿔피리’에 심취되어 20여년을 그 작곡에 보냈음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는 그의 심포니에도 이 가곡을 전용하고 있다. 말러는 단순히 가사로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몽환적 지향성, 비변증법적인 음악기법에 결정적인 영감을 받았다. 이 가곡들은 실로 말러의 대표적인 걸작이요 독일 가곡사에 그 독특한 존재를 자랑할 만한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말러는 민요에 대해, 특히 ‘뿔피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어린 시절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말러는 1860년 7월 7일, 지금의 체코령인 프라하와 빈의 중간 지역인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국경지방인 이글라우 근처 칼리슈트에서 14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이 유대인 지역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란츠 카프카, 슈테판 츠바이크 등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버지 베른하르트는 유대인이면서도 유대교보다 가톨릭에 친근감을 가졌고 또 독일 문화에 동화되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어 아이들도 독일적으로 교육시켰다. 이 영향으로 말러는 보헤미아, 이글라우의 음악적인 분위기와 다양한 음악, 근대 음악 민요, 유행가 등과 접촉이 가능했다. 그의 고향 근처는 군부대가 많았기에 늘상 군대 나팔 소리와 행진곡 소리가 들려왔었으며 설화와 민속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글라우에서 말러는 거리 악사의 손품금 음악, 군악대의 행진곡, 신호나팔, 유모와 아버지 고용인들이 읊조리는 여러 지방의 민요곡을 들으며 자랐다. 또 집시들의 강렬한 슬라브 음악과 춤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이경숙, 2002, 《말러와 그의 가곡》, 삶과꿈)
《말러, 그 삶과 음악》의 번역자인 임선근 씨는 역자후기에 이렇게 썼다. 말러의 음악과 오십 평생을 한마디로 ‘슬픔의 탐구’라고 했다 슬픔, 죽음, 삶의 이유, 구원, 삶의 저편(피안; 彼岸)같은 실존적 문제를 껴안고 그는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Dunkel ist das Leben, ist der Tod ‘,영어로는 ‘Dark is life, is death’)고 노래했다. 바로 이백李白의 비가행悲歌行 귀절이다. ‘대지의 노래’ 중의 첫 곡의 후렴구이다. 가장 서양적인 것(후기낭만주의의 서양음악)과 가장 동양적인 것[이백李白,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전기錢起의 송당시宋唐詩]이 융합된 문화가 바로 구스타브 말러의 성악 교향곡인 ‘대지의 노래(大地의 노래; Das Lied von der Erde)’이다. 구스타브 말러의 음악 중 내가 가장 좋아하고 많이 듣는 곡도 ‘대지의 노래’이다. 대지大地라고 하는 것 보다 그냥 땅이나 지상地上 혹은 인간이라는 말이 훨씬 그 원래의 노래 제목이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봄(대지의 애수를 노래하는 술노래; 이태백의 비가행悲歌行에 음악을 붙임)과 가을(가을에 고독한 사람), 그리고 젊음, 아름다움, 봄에 술 취한 사람, 그리고 이별, 이렇게 6개 악장을 이루고 있다. 악곡은 전형적인조울병(躁鬱病, bipolar disease) 증세를 그대로 나타낸다. 말러 자신이 바로 그런 조울병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정신적으로 늘 위태위태함을 잘 보였던 사람이다. 말러의 음악 전체에 퍼져있는, 작곡가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극단적 분위기 전환만 보아도 그 이유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말러는 때로 초인적인 생산성을 발휘하는데, 이 또한 조울증의 ‘조’상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극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동원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말러처럼 천재성을 만나면 압도적인 감동스러운 결과물을 빚어낸다. 말러가 감동적으로 써내려간 부활 교향곡(2번 교향곡)의 프로그램 노트는 그것만 놓고 볼 때도 과대망상 증세로 보인다. 그러나 감상자들은 그 음악을 들으며 말러가 글로 써놓은 주장들과 합치한다고 느낀다. (스티브 존슨 원작, 임선근 번역, 2011, 《말러 그 삶과 음악》, 포토넷)
말러는 애어른이자 어른아이다. 선진국일수록 그런 애어른, 어른아이가 많다. 그는 불타협 불복종의 오페라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휴가 때면 알프스 숲 속 오두막에 틀어 박혀, ‘무의식의 실험실’에 보관해 두었던 창작의 씨앗들을 꺼내 또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탄생시킨 사상가이다. “그와 교류한다는 건 면도날로 봉해진 폭탄을 쥐는 것과 같다”. “가까이 가면 델 것 같다”는 말을 듣던 날카로운 ‘자기 몰입형 인간’이다. 열아홉 살이나 연하의 알마를 여자로는 숭배하고 아내로는 하대했던 ‘자가당착적인 남자’였으며, 자기 작품에 대해 과대망상적이고 문학적인 장광설을 쏟아내 놓고는 그에 대한 세상의 소화불량증에 ‘망할 놈의 프로그램!’하고탄식하던 ‘조울병 환자’였다. 교향곡 열 편에 자신의 세계관을 집대성한 ‘음악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써놓았다. (스티브 존슨 원작, 임선근 번역, 2011, 《말러 그 삶과 음악》 역자후기, 포토넷)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은 시절의 말러가 가장 좋아한 작가였다. 그는 일생을 통해 사회문제와 사람이 겪는 고통을 절실하게 공감하며 고민하였다. 말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읽었고 여러 사람에게 그 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에 나오는 이반과 알료사의 대화나 종교재판의 상징 비유의 장면은 모두 암기할 정도였다.
음력 14일의 달빛이 봄밤을 밝힌다. 법상동 큰방에서 말러 8번을 듣고 있다. 밤 열시. 여기서도 어린이 합창이 나온다.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는 장면이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남자(파우스트)를 구하는 장면이다. 조급한 마음, 급한 성격, 초조한 성깔은 말러나 나나 똑같다. 말러에게서 또 위로를 받는다. 계속 나는 말러만 듣는다. 구원, 희망은 꼭 어린 아이한테서 온다. 3번 교향곡에서도 어린이 합창단이 딩동딩동 하면서 등장하고 8번에서도 이렇게 등장한다. 희망은 바로 어린 것들에서부터 온다. 확실하다. (내게는) 말러가 말했으면 거의 진실이다. 나는 요즘 이어폰으로 자전거 위에서도 말러 가곡들을 듣고 학교 와서도 내내 말러 교향곡을 듣는다. 이러한 말러의 어린 아이에 대한 사랑은 말러의 열렬한 팬이었던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1912)〉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타치오 소년의 아름다움. 그 동경의 상투어! 널 사랑해! 예술과 미덕이 이제 와서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입을 다물고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정에 우롱당해 사랑에 빠진 그 남자(아센바흐)는 가당치도 않은 희망을 품은 채 몰래 뒤따라갔던 것……. 형식과 자유는 고귀한 사람을, 고귀한 사람까지도 타락의 나락으로 끌고 간다……. 비스콘티 감독의 유명한 영화 ‘베니스의 죽음’은 말러의 5번 교향곡 4악장인 아다지에토로 영화 전체가 가득 차 있다. 그 소설과 영화처럼 말러도 죽었다. 그와 함께 음악의 낭만주의도 죽었다. 그리고 근대도 죽었다. 그 이후 히틀러의 제3제국 등장과 함께 유태인 학살이라는 인류의 대범죄가 자행되었고 그 큰 전쟁이 끝나 비로소 현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귀족 계급이 사라지고, 노예가 사라진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베르디의 유명한 합창곡 ‘노예의 합창’도 헤브류(이스라엘) 유대인 노예들의 해방을 갈구한 것이고 그와 더불어 이태리 통일과 독립을 고취한 바 있다. 기독교를 니체가 노예의 종교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노예였던 유태인들의 사상이기 때문이리라.
말러는 왜 우리를 공격하는 동시에 위무하고, 내치는 동시에 쓰다듬는가? 어째서 들을 때마다 낯설고, 또한 슬프도록 친숙한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왜 말러인가?’라는 화두는 이런 질문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것은 ‘한 편의 거대하고 끔찍한 농담에 불과할지도 모를’ 무엇이 왜 삶이어야 하는가, 라는 말러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버림받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심장박동이 언제 멎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 운명을 지닌 필멸의 존재는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 대답을 구하고, 구하고, 또 구했다. 그리하여 이제 그 운명을 똑같이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찌르는 질문과 어렴풋한 대답을 듣는다. 그를 통해 이토록 두렵고도 생생한 세계 속에 혼자 남겨진 나약한 자신과 대면하며, 그와 더불어 절망 가운데서 싹튼 희망의 씨앗을 안간 힘으로 품는다(황경신). 말러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셰익스피어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공부하는 자세를 가졌던 괴테 그리고 늘 생성 변화되는 것을 제시했던 장 파울을 탐독했다. 장 파울과 마찬가지로 말러 자신도 수많은 자아정체성을 자신의 한껏 부풀린 과장된 자기투사 속에서 통일시켰다. 해학가와 풍자작가, 패러디 작가, 사유하는 철학자, 세상을 성찰하는 관찰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성 풍부한 작가, 자연숭배자, 열렬한 신자, 애수에 젖은 자, 나락의 깊이를 재면서 세상을 인식하고 간파하는 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교향곡 1번은 바로 장 파울의 소설 제목인 ‘거인(Titan)’이다. 계속 말러만 듣는 새벽, 봄 하늘 온통 황사 천지 부옇다. 레나드 번스타인 지휘 뉴욕 필 하모닉 연주. 교향곡 8번이다. 합창단과 독창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광포한 팀파니 소리가 머리를 내리친다. 손발 모두 짤린 체 붙잡혀서 신음하는 내 모습을 본다.
말러의 4번 교향곡의 4악장에 나오는 성악곡 ‘천국(하늘)의 삶(das himmlischen Leben)’은 먹을 것 걱정 없는(포도주와 빵, 야채, 고기, 생선이) 풍족한 노래와 춤, 기쁨의 세상이다. 지복至福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 가곡은 독일 전래동화집(브렌티노, 아르힘 두 사람이 합작으로 전래민화 수집 및 정리. 1806-1808년 출판) 《어린이의 요술 뿔피리》에 성악과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인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리니
세상의 것이 필요치 않네
지상의 고통소리 하늘 나라엔 없으니
모든 것들이 평온 속에 숨쉬며
우리는 천사의 삶을 누리며 매우 기뻐하네!
우리는 뛰며 춤추고 즐겁게 노래하니
하늘에서 베드로가 바라보네
성 요한은 어린 양을 (우리에서) 풀어주고
(도살자) 헤롯은 어린 양에 제물을 표시하니
우리는 이를 죽여 먹을 수 있고
하늘 나라 포도주는 돈을 낼 필요가 없네
천사들이 빵을 굽고
모든 종류의 야채가 하늘 나라의 정원에 가득하네
우리가 원하는 모둔 것을 얻을 수 있네
모든 음식이 준비되어 있고
사과 배 포도 등등
농부아저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 모두 준다네
사슴이든 토끼든 우리가 만든 함정으로 잡아들이고
모든 물고기가 물줄기 따라 즐겁게 헤엄치니
베드로가 그물과 미끼로 천국의 연못에 모두 몰아넣으면
마르다는 맛있는 요리를 한다네
천국의 노래와 비교할 수 있는 노래가 지상에는 없네.
수많은 천사가 춤을 추니 성 우르술라가 보고 웃네.
세실리아와 아이들은 하늘 나라의 음악가이고
천사의 목소리는 우리를 기쁘게 하니
모든 것이 깨어나서 기쁨으로 넘치네
이 곡과 대조적인 곡으로 말러의 오케스트라 가곡집 ‘어린이의 요술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의 제5곡인 ‘지상의 삶(Das irdische Leben)’이 있다.
엄마, 아 엄마, 나 배 고파요!
빵 주세요, 배 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잠시만
내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곧 밀을 벨 테니!
그러나 밀을 베었을 때
아이는 계속 울고 또 울었네
엄마, 아 엄마, 나 배 고파요!
빵 주세요, 배 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잠시만
내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곧 밀을 타작할 테니!
그러나 밀을 타작했을 때
아이는 그대로 울고 또 울었네
엄마, 아 엄마, 나 배 고파요!
빵 주세요, 배 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잠시만
내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곧 빵을 구워줄 테니!
그러나 드디어 빵을 다 구웠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 관에 누워있네
‘빵을 달라는 아이의 울부짖음과 약속으로 아이를 위안하는 엄마’를 인간 삶의 한 상징으로 본다고 구스타브 말러는 친구인 나탈리 바우어 레히너(1851-1921)에게 말했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이 지연되어 너무나 뒤늦게야 오는, 마치 아이가 죽은 다음에 오는 것의 그 허무함, 무참함, 무용성無用性을 표현하려고 했다(이경숙 2002. 말러와 그의 가곡. 삶과꿈.). 나는 이 시의 ‘엄마’가 마치 요즘 관공서의 공무원들 같다고 생각한다. 초조하고 바쁜 늙고 힘없는 가난한 ‘아이’(민원인 혹은 국민)을 앞에 두고 기다려라!...또 기다려라!....그리고 또 다시 기다려라고만 말하는 그 철밥통 불친절한 공무원들 같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의 요술 뿔피리 가곡중 제6곡은 ‘물고기에 설교하는 파도아의 성 안토니오’이다. 이 곡은 2번 교향곡(부활)의 3악장에 나오는 멜로디 곡으로 어수선한 속세의 세상살이를 비꼬고 있다.
안토니우스 설교할 때
교회는 거의 텅 비었네!
그래서 그는 강가에 가서
물고기들에게 설교를 시작했네!
그들은 꼬리를 한들거리고
햇빛 속에서 모두 반짝거리네!
알을 배서 뚱뚱한 잉어
모래톱에서 찾아왔네
입을 떡 벌리고
정성들여 귀 기울였네!
이보다 더 좋은 설교 없었네!
물고기는 너무나 멋지다 생각했네!
뾰족 코의 곤들매기
상습적인 싸움꾼들도
서둘러 몰려왔네
좋은 설교 듣기 위하여!
그들 같은 이상한 광신자들도
—난 대구를 말하죠—
이보다 더 좋은 설교는 없었네!
대구는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네!
멋쟁이 장어들과 멋있는 철갑상어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부른데
공손히 나타나길 마음 정하고
설교의 맛을 보기로 했네!
게들도 거북이도 느리게 움직이는 그들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설교를 들으러 찾아왔네
그보다 좋은 설교는 없었네!
게들도 너무도 멋지다고 생각을 했네!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품위 있는 것 품위 없는 것
모두 고개 쳐들고
사람들처럼 심각하게
신의 가르침을 경청했네!
설교가 끝나자
모두 헤엄쳐 물러갔네
곤들매기는 훔치는 일로
장어는 사랑하는 일로
설교는 너무나 멋있었지
그러나 그들은 다른 것들과 똑같이!
게는 아직도 뒷걸음이고
대구는 여전히 거만부리고
잉어는 아직도 실컷 퍼먹고
설교는 모두 잊어버렸네!
설교는 너무도 멋있었지만
그들 모두 본래의 모습 그대로지요!
말러는 20세기에 발을 들여놓고 죽었다. 날 때와 죽을 때의 사회상에 큰 변화가 없었던 슈베르트, 멘델스존 시절이 아니다. 절대성과 영원성의 모럴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고, 예술의 다른 분야들에서도 근대적 특징이 싹터가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가 이끈 출구 밖에는 보다 자유롭고, 보다 현세대적인 음악에로의 통로가 열려 있었다. 교향곡 4번은 길이가 비교적 단촐하고, 또 듣기에 평이한 선율들로 짜여 있다. 또 내용으로 보더라도 기쁨과 소망 같은 것이 목가적牧歌的으로 엮어져 있어서 평안한 기분이 든다(나는 목가적이란 말 대신에 닭장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런데도 말이다. 첫 악장에 진입하는 방울소리를 듣는 순간에, 벌써 우리는 베토벤도 슈만도 부르크너도 아닌, 바로 말러만의 세계에 내던져진다.(정관호, 1990,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 삼성출판사) 말러의 작품에는 악마적 괴기취미怪奇趣味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살았던 세기말 풍조와도 관련되는가 싶게, 난숙한 탐미耽美의 늪에 꼬리를 담그고 있다. 능청스럽게도 그것들은 또 모양을 바꾸어서 궁극을 추구하는 확대로 치닫는다. 그가 집채만한 북을 만들었다던가, 1천 명이나 되는 연주자들을 무대에 올렸다던가(제8교향곡) 하는 행동은 그 변질된 기벽奇癖으로 보여진다.…’ 밖으로, 밖으로’ 뻗는 그의 확대욕, 깊이 빠져는 센티멘탈리즘, 농익은 미감美感의 탐구, 니체에 대한 기울음 등은 말러가 그 심성에 악마주의적 심미의식審美意識을 지녔었다는 증거가 된다.
말러의 작품을 소화함에 있어서 꼭 알고 넘어가야 될 또 하나의 특징은 밤(夜)에 대한 애착과 죽음에 대한 기호嗜好이다. 브루노 발터는 이를 ‘야상적夜想的 성질’이라 규정했다. 말러의 교향곡 1번과 5번에는 장송행진곡이 들어 있고, 7번에는 Nachtmusik(夜想曲)이라는 부제와 함께 2악장과 4악장이 야상곡으로 되어 있다. 그의 성악곡 곡명자체에 ‘밤’과 ‘죽음’이 많이 들어 있는데, 그것들 말고도 그의 작품 도처에 밤의 테마가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즐겨 사용하는 트럼펫 독주는 그 행진곡 스타일과 더불어 군대 영내에서 부는 밤 나팔 소리 바로 그것이다. 말러는 요한 슈트라우스 풍의 왈츠에서 당대 사회에 나타난 아이러니와 대조를 발견했다. 말러의 음악 속에서 왈츠는 비틀어지고 왜곡되며, 빈의 거리와 시골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뒤섞인다. 어디선가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들려온다. 독일의 전통 시와 슬라브적인 요소, 빈의 특성을 지닌 음악 재료들이 말러의 작품 속에서 절묘하게 혼합된다. 그 음악은 마치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며 왈츠와 향락에 탐닉하는 빈 사람들을 조소하는 듯하다.(최은규, 2008,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 마티)
크라우스의 음악회에 가는 행위는 일상생활로부터 도피하거나 감각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선과 자기 기만,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었기에,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모더니스트의 예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말러 역시 크라우스(Karl Kraus 1874-1936)의 날카로운 펜을 피할 수 없었다. 크라우스를 지지하는 평론가와 음악가들은 말러가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둘 다 신통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말러의 음악이 신파조 멜로드라마의 감각적인 효과만 추구한다고 비판했으며, 말러의 지휘는 내적인 논리보다는 표면적인 드라마와 색채에만 치중한다고 비난했다. 모더니스트들과 어울리면서 말러의 적들은 더욱 늘어났지만, 말러는 분리파 화가들뿐 아니라 쇤베르크와 쳄린스키 등 혁신적인 음악가들과도 각별한 유대관계를 유지했다.(최은규, 2008,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 마티) (청중 속의)우리는 듣는다는 행위를 통해 연주에 참여한다. 거저 홀에 전달되는 음악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연주회에 참관하는 것은) 음악의 경험에 꼭 필요한 일부이다. 음악가들을 듣게 하려는 아바도의 욕망이 청중에게까지 확장된 것 같다. 아바도는 말한다. “청중의 차이에 따라 공간에 감도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음악가로서 느낄 수 있어요. 연주자의 연주와 청중의 듣기는 서로 공명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험,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그것은 바로 청취의 소리였다. 청중,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음악가, 지휘자 모두가 말러를, 음악을, 서로를 듣는 소리였다.(톰 서비스, 장호연 옮김, 2013, 마에스트로의 리허설, 아트북스)
말러의 교향곡 2번의 4악장 ‘근원의 빛(Urlicht)’은 말러의 음악적 자의식을 비추는 바로 그 빛이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아무 의미없고 단지 거대하고 무서운 농담(마치 물고기에 설교하는 파두아의 성 안토니오스 같은)일 뿐이라는 것에 대한, 말러의 반성의 빛(자각)이다. 2번 교향곡이 실질적인 말러의 1번 교향곡인 셈이다. 단지 1번이 뒤에 작곡되었으나 출판만 먼저 되어 1번이 되었을 뿐이다. 2번 교향곡의 1악장, 2악장은 자아를 휘젖는 것(자기 반성)이라고 한다. 3악장은 세속의 모습이다. 바로 파두아의 성 안토니오스가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어제, 2014년 3월 27일) 밤 한 시 반 안동 도착, 동서울에서 심야버스 타고 왔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진짜 부활(다시 일어섬; Auferstehung)하고 왔다.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성시연 신임 지휘자의 취임 연주회로 부활 심포니 공연, 오케스트라 118명, 국립합창단, 서울시립합창단 100명, 독주자 이명주(소프라노), 김선정(알토)까지 모두, 220명이 출연하는 성대한 연주회를 직접 보고 왔다. 지휘자 성시연은 2007년 독일 밤베르크 말러 국제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을 만큼 말러에 정통한 여류 지휘자다. 저녁 8시 5분, 씩씩하게 지휘자 등장, 아주 박력있게 지휘한다. 힘찬 그 지휘를 보면서 무한한 에너지를 얻는 듯 했다. 무대 뒤에서 연주하는 관악기 주자들이 몇 번이나 오가는 모습! 아름답고 격렬한, 아주 큰 감동을 주는 연주회였다. 레코드나 CD로만 들었던 부활은 다 가짜였다. 진짜는 그 연주회에 가서 들어야 하는 것 알았다. “Auferstehen, ja, Auferstehen(다시 일어서라, 그래 정말, 다시 일어 서라!)”하는 피날레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빈 오페라의 총감독이 된 말러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오토 클렘펠러의 말처럼 말러는 전형적인 반종교인이었다. 방황하는 유대인의 운명을 짊어진 말러는 서로 상반된 문화 상황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흔히 그렇듯 정신의 불안정, 지나친 자의식, 불안감, 권태 등으로 괴로워하면서 끝없이 위기적인 상황에서 살았다. 또 창작자로서 말러는 언제나 영원한 것을 꿈꾸었고 그것으로 인해 불안과 절망으로 방황하는 낭만주의자였다. 그런 그의 모습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현대인의 한 초상이기도 한 것이다.
말러는 죽기 바로 한 해 전인 1910년 여름에 부인 알마와 건축가 그로피우스의 연문으로 고민하였고, 또 악화된 건강과 계속된 불면증으로 시달렸다. 그는 망설임 끝에 드디어 네델란드의 라이덴으로 프로이트를 찾아가 정신분석을 받는다. 프로이트는 많은 시간동안 주로 말러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분석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말다툼 끝에 어머니를 구타하여 어머니가 비참히 우는 모습을 본 말러는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안의 참담한 분위기와는 달리 집밖에서는 거리의 악대가 ‘사랑하는 아우구스틴’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말러는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말러의 음악은 심각하고 장중한 음악이 계속되다가 돌연히 너무나 이질적이고 때로는 대비되는 가볍고, 상냥하며, 유머에 가득 찬 음악을 내놓는다. 프로이트는 말러의 증세를 진단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함께 있는 이 상황을 어머니 이름을 따서 ‘마리 콤플렉스’라고 이름 지었다. 프로이트는 말러의 즐겁고, 아무 걱정 없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멜로디 부분이 ‘마리 콤플렉스’이고, 이것을 파괴하려는 이상한 아버지 같은 부분이 말러 음악에 있다고 진단했다. 당당하고 대담한 행진곡풍의 오스티나토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부분인 것 같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와의 유아체험이 말러의 잠재의식 속에 차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을 통해 말러는 많이 치유가 되었지만 그 뒤로 작곡을 할 수는 없었다. 말러는 부인 알마 마리도 ‘알마’라고 부르기보다는 ‘마리’라고 부르기를 좋아했고, 장녀도 ‘마리아’로 이름지어 애지중지했는데 그 딸을 잃고는 깊은 상실감과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이경숙, 2002, 말러와 그의 가곡, 삶과꿈)
III.
용두산龍頭山
용두산에는 늘
소슬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같은 것이 있었다
인기척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외로운 사람 한둘이 띄엄띄엄 서성이다가
어느새 없어지곤 했다
그래서 조금은 쓸쓸했지만
무엇인가 들려오는 것이 많았다
용두산에는 언제나
슬픔 같은 것이 있었다
따스한 입김과 들꽃 같은 몸냄새가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항구는 정물처럼 멎어있고
수평선 밖 아득히 난바다에서
가슴 설레는 시詩가 들리는 듯했다
용두산에는 사시사철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왔다
(송영택. 2012.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 BM Books.)에서
내 어릴 적에 살았던 곳이 바로 그 부산 용두산 밑이다. 소슬한 슬픔으로 가득 찬 용두산 공원은 바로 내가 그 곳에 갈 때마다 늘 느끼는 정서다. 부산이 고향인 송 교수님의 이 시는 그런 정서로 내가 충분히 공명할 수 있다. 말러의 음악에는 바로 그런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말러의 음악과 그 오십 평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슬픔의 탐구라고 했다(임선근, 역자후기, 말러 그 삶과 음악, 스티브 존슨 원저. 포토넷 2011.). 레나드 번스타인도 말러에 관한 영상에세이에서 유태인으로서의 슬픔, 비애, 부끄러움이 말러 음악의 전체를 둘러 싼 모든 것이라고 했다. ‘천국의 삶’을 동경했던 바로 그 소년이 다시 환생하여 지상에서 군대의 북치는 소년’이 되었고, 그 군대에서 탈영하다가 붙잡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바로 그 북치는 소년(the little drummer boy)이 바로 말러 자신이며, 말러의 음악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라고 했다. 그 모든 슬픔들이 다른 슬픔들을 치료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말러의 음악인 것 같다.
날짜: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11시 28분 43초
제목: 번역하신 책(말러)을 너무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임 선생님 번역하신 책을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안동에 사는 오십대 남자로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우연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고음악에 관한 책을 빌려서 보다가 그 번역 후기를 읽고 글 읽는 재미에 빠져 임 선생님 번역하신 다른 책, ‘말러, 그 삶과 음악’을 구입하여 조금 전에 다 읽었습니다. 그 책을 살 때 말러 앨범도 같이 사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말러 책과 고음악에 관한 책들 너무 번역을 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지의 노래 가사 부분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아마도 이경숙 말러 가곡 책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멘델스존, 하이든을 좋아해서 Naxos그 책들을 원서로 읽었지만 우리 말 책처럼 그렇게 쉽게 독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음악만큼이나 복잡한 말러 책을 임 선생님 덕분에 아주 침착하고 차분하게 참 잘 읽을 수 있었기에 그 감사함을 메일로나마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동에서 제비 올림.
Sent: Tuesday, November 20, 2012 2:12 PM
Subject: RE: 번역하신 책(말러)을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제비님께
안녕하세요? 부족함이 많은 번역서에 대해 격려의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책 번역을 몇 권 하면서, 제가 모르는 제2외국어 표기, 제목 번역은 특히나 고민스럽고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여전히 찜찜한 부분도 있어요. 편집자와 의견이 달라 조정해야 했던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제비님의 부드러운 지적에도 뜨끔합니다. 잘못된 점에 대해서 의견 주시면 다음 쇄를 찍을 때 반영하겠습니다. 고음악 책 나온 뒤에 번역 일 쉬는 중인데 다시 용기내야겠습니다. 참, 클라우디오 아바도 비롯해서, 요새 말러 교향곡 DVD를 싸게 장만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습니다. 80년대에는 레이저디스크 돌리는 호사가들을 좀 뜨악해하면서 LP에 청춘을 바쳤는데 요즈음 DVD로 '보고' 들으면서 새롭게 빠져듭니다. 얼마 전에 알라딘에서 아바도 에디션 싸게 팔 때 ‘특템’했지요.^^ 한 보따리 사놓고 틈날 때 하나씩 꺼내면, 뜻하지 않은 곡들과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임선근 드림
바로 그 분이 번역한 책의 말미에 써 놓은 역자 후기의 끝부분이다. “………이제 군대 간 아들 침대 위에 마음껏 펼쳐놓은 LP 음반들을 제 자리에 꽂아야겠다. 말러 얼굴을 늘어놓을 공간과 말러에 빠져들어 지낼 수 있는 많은 시간이 생기게 해준 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사랑을 전한다.” 어머니의 군대 간 아들의 빈 자리를 말러로 가득 채워 넣은 그 자애로운 글이 번역자 후기를 아름답게 장식해 놓았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