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경가무극 ′퇴계연가′(글/임지희_안동대 국문과 겸임교수)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16일까지 공연된 <퇴계연가>는 퇴계 이황과 두향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가무극이다. 이 가무극은 개목나루를 무대로 하여 공연되었다. 이 가무극의 무대가 된 개목나루는 조선 선조 때 편찬된 『영가지』에 실린 임청각 앞 개목나루를 안동시가 문화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안동댐 야외 민속촌과 월영교 사이에 복원시켜 놓은 것이다. 아름다운 월영교는 자연스레 무대의 뒷배경이 되고, 개목나루를 복원하면서 지어진 체험동은 퇴계가 단양군수 시절을 보냈던 관가로 공간을 초월하게 된다.



 



공연의 의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있었던 사랑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어떤 대상을 만날 때 가슴이 뛰고 그 대상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그러한 사랑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원초적인 감정이기에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유리하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테마는 지금도 많은 예술장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퇴계연가>라는 제목은 중층적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는 ‘연가’라는 단어가 주는 사랑에 대한 향수이다. 또 다른 의미는 성리학의 대가인 대학자인 퇴계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퇴계는 대학자이다. 그런 대학자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퇴계는 범인과는 다른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퇴계의 사랑이야기에는 현대인들이 다가가기 쉬운 퇴계의 캐릭터가 그려질까?’ 등등의 지적 호기심을 갖게 한다.



<퇴계연가>는 단양관가 처마 밑에 바우라는 하인이 초승달을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가무극에서 바우는 하인과 해설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바우는 퇴계와 두향의 사랑이야기가 이 연극의 테마라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는 첫 번째 아내를 잃고 두 번째 아내를 얻었으나 두 번째 아내와 아들을 잃은 상태였으며, 두향은 관기였고 퇴계의 나이 48세 두향의 나이가 18세라는 정보 등등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바우의 통통 튀는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퇴계가 단양에 와서 선정을 베푸는 장면이 진행되고 두향의 마음에는 퇴계에 대한 사랑이 싹 튼다. 둘은 봄에 매화가 만발할 쯤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퇴계는 부임한지 9개월 만에 단양을 떠나게 된다. 친형이 직속상관인 충청도 관찰사로 오게 되자 공직 생활에 오해가 생길까봐 퇴계 스스로가 사직한 것이다. 그의 성품을 안 조정은 그를 다시 풍기군수로 임명한다. 이렇게 이별을 맞이한 퇴계와 두향은 그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퇴계연가>는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푸는 것과 두향과 나누는 사랑은 짧게짧게 장면화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주었지만 대부분 극 이야기의 정보는 바우의 해설을 통해서 드러났다.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바우의 해설을 통해 극이 진행되어서, 관객들이 극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보통 해설자는 관객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지게 하는 것이 연극의 기본원칙이다. 그런데 이 가무극에서는 관객들이 극에 몰입해야 할 퇴계와 두향의 사랑의 장면이라든가 서로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해설자를 자주 등장시켜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해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논리적인 이치를 따져서 극을 분석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퇴계와 두향은 헤어진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퇴계가 죽었다,’는 해설자를 통한 극 진행이다. 그 다음에는 두향이 등장하여 ‘찰나 같은 짧은 사랑’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자살한다. 사랑, 그리움, 자살이라는 감정의 몰입이 이어지지 않고 템포가 끊겨버린 이 가무극의 마지막 장면은 아무런 감동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에 연극적 리듬을 제대로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과 장 사이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연극이 처음 시작될 때 바우가 처마 밑에 걸어 놓는 달은 처음에는 초승달이었다가 한 과장이 바뀔 때마다 보름달이 되고 하현달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과장과 과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에도 효과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달은 막연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할 뿐이었다. 달의 원형적 이미지와 등장인물 가지는 내면 흐름의 연결고리가 없다. 그래서 이 기발한 연출기법이 극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느낌이다. 


<퇴계연가>는 퇴계와 두향의 이야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의 이야기를 공연화 하려면 상상적인 글쓰기가 반드시 덧붙여져야 한다. 상상적인 글쓰기는 많은 고민에서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부인인 허씨를 잃고 지적으로 부족한 권씨와 부부생활을 하면서도 퇴계는 ‘감정에 이끌려 대륜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삼강오륜을 무척이나 생활의 중요한 잣대로 여기고 친형이 직속상관으로 오게 되자 사직을 자초한 그에게 두향은 어떤 의미로 다가간 것일까?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두향이 시와 가야금에 무척 능했다고 한다. 함께 시를 지

으면서 함께 한 정신적인 유대감이 그들을 하나의 끈으로 묶었을 지도 모른다. 퇴계와 두향이 이별할 때 서로가 시를 지으면서 슬픔을 함께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로가 긴 이별을 하였을 때도 간혹 서신은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의 정신적인 사랑은 현재를 살아가며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퇴계연가>에서는 퇴계와 두향의 사랑의 이야기가 앙상한 가지 같다. 잎도 없고 꽃도 없다. <퇴계연가>는 퇴계의 사랑이야기를 통하여 인간 퇴계를 이해할 수 있는 깊이의 스토리를 가져야 한다. 



모든 공연의 전제조건은 그 공연이 가지는 의미이다. <퇴계연가>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퇴계와 두향의 사랑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공연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퇴계연가>를 통하여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 그 다음에 공연텍스트를 짜고 조직화, 구조화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여 놓는 까닭은 <퇴계연가>는 탄탄한 공연 텍스트 없이 단지 퇴계와 두향의 사랑이야기라는 테마에 몇 개의 노래와 춤을 가미하여 공연한다는 느낌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가무극은 퇴계라는 인물에 대한 접근성이 상당히 부족한 작품이다. 또한 관객들의 가슴에 내재한 사랑에 대한 향수조차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작품이다.



 



글을 마무리 하며

문화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안동에도 문화산업극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몇 편의 뮤지컬이 해마다 관객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지역에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를 뮤지컬로 공연함으로써 안동시민들에게는 공연문화를 제공하고 관광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뮤지컬들을 보고난 후의 감상은 늘 아쉬움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공연 텍스트가 가지는 수준은 고려해 보아야 한다. 공연이 일정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관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안동에서 지속적인 문화산업극으로 관객들과의 만남을 유지하려면 공연의 질을 늘 향상시켜야만 한다. 뮤지컬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만들어지는 공연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세련된 공연을 보여주어야 한다. 관객들이 한 번 그 공연을 보고 외면해버리는 공연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해마다 공연을 봐도 재미있는 공연이 되어야 할 것이다. <퇴계연가>가 내년에는  세련된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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