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안동이 만들어낸 새 안동문화(글/임재해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인 이형기의 '낙화'처럼,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은 떠날 때를 제대로 알고 떠나는가. 27세의 <안동>은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겨냥하며 청춘으로서 꽃답게 죽는가. 그렇다면 그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먼저 <안동>은 떠날 때를 아는 문화의 보기를 이룬다. 모두들 겉으로나마 아쉬워할 때 그만 두는 것이 삿대질 속에 황급히 떠나는 일보다 아름답다. 높이 올라가면 내려올 줄을 알고 나이 들면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올 줄 모르다가 떨어져서 망신을 당하고, 나이 먹을 줄만 알았지 물러날 줄 모르다가 젊은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망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문을 닫는 일도 민망한 일이다. 그러므로 27년의 역사를 스스로 마감하는 <안동>은 떠날 때를 아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새로운 협동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종래의 협동조합은 말만 협동조합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기관이나 다르지 않고, 조합원들의 이익보다 임원들의 배를 불리는 기업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 새로운 협동조합이다. 출자한 만큼 배당 이익을 가져가는 기업이 아니라, 능력껏 기금을 내고 꼭 같이 혜택을 누리는 것이 협동조합이다. 이처럼 경제적 이윤보다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협동조합이다.
‘문화모임 안동’은 진작 이러한 조합방식을 취했다. 창립주체 몇 사람이 소액 출자를 하고 사무실을 제공하는 데서 출발하였으며, 대부분의 운영위원들은 능력과 성의에 따라 연간 일정액의 회비를 자기 기준으로 정해서 냈다. 출자와 회비의 많고 적은 데 따라 돌아가는 배당이나 이익이 전혀 없다. ‘사랑방’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안동>지를 받아보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다만 지역문화를 담는 잡지를 만들어 시민들과 무상으로 공유한다는 가치 실현에 만족했다. 아무도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가치만 공유한 까닭에 지금까지 순조로운 지속이 가능했고 아름다운 마무리도 이루게 되었다. 그러므로 문화모임 안동은 지역사회에 새 협동조합의 모범적 문화를 만들어낸 셈이다.
<안동>지는 지역 언론이 아니라 지역문화를 표방한 문화잡지이다. 지역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주목하는 가운데, 특히 지역주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세계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안동에 3가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놓았다.
첫째는 지역사회의 사회사 자료와 전통문화를 취재한 내용이 풍부하다. 지금 조사하지 않으면 사라지거나 증언자를 만날 수 없어서 조사 불가능한 자료들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안동>지는 근현대사 사료이자 지역문화 보고서로서 장차 더욱 귀중한 자료 구실을 할 것이다.
둘째는 안동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발표 지면 구실을 함으로써, 지역 예술인들의 문예창작 역량을 높이고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예술인들에게 작품발표 지면이 있다는 것은 자기 존재감을 확보하는 좋은 기회이다. 뒤에라도 <안동>지를 보게 되면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동향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셋째는 예사 사람들의 예사롭지 않은 삶을 취재한 기사가 많다. 주민들이 저마다 자기 꿈을 일구어가는 삶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묵묵하게 살아가는 생활 이야기를 취재하여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안동사람들의 생활사 자료집이 되었다. 이 내용들은 <삼국유사>처럼 후대로 갈수록 가치가 더욱 빛나는 민속지 자료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현장취재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루고 그들의 생각과 꿈을 담았다. 사건이나 유물보다 한결같이 사람을 다루는 꼭지가 유난히 많았다. 사람을 중심에 둔 사람들의 잡지이자 사람 냄새 나는 삶의 이야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잡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목적을 겨냥한 홍보성 기사는 배제되었고 특정 단체의 이익에 편승하는 내용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철저하게 안동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담는 잡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돈깨나 있고 글깨나 쓰는 사람이 원고와 돈을 함께 보낸 사례도 있지만, 원고와 돈을 고스란히 돌려보냈다. 살림살이가 가난했지만 구차하지 않았고, 아무런 힘이 없었지만 결코 기죽지 않았던 잡지가 <안동>이었다.
<안동>이 간행되면서 안동시민들이 글 쓸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시민들 스스로 취재기자가 되고 답사가 구실도 겸하게 된 것이다. 현장답사를 하고 사람을 만나 취재기사를 쓰는 일은 누구든 최고의 지식 습득 기회가 된다. 잡지의 필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안동>지는 27년 동안 수많은 필자를 길러냈다. 그 역량은 안동문화를 수준 높게 만들어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웃고장에서도 <안동>지를 본받아 잡지를 만들었다. 영주와 예천에서 지역잡지를 제각기 만들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협동조합 방식이 아니면 오래가기 어렵다. 전주에서도 <전북문화저널>이 간행되어 서로 교류가 이루어졌다. 객지에서 <안동>지를 본 어느 원로교수는 안동대학 교수로 있는 제자가 운영위원과 후원자 명단에 없는 것을 보고 “자네는 안동에서 뭘 하고 있느냐?”하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처럼 <안동>은 대외적으로도 안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해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역 토박이들보다 전입해 온 지식인들이 <안동>에 더 적극적 참여와 후원을 한 점이다. 운영주체들이 주로 다른 고장에서 이주해 온 의사와 변호사들이다. <안동>이 매개가 되어 지역 지식인들을 한 동아리로 묶고 지역 문예인들과 서로 소통하게 만든 사실 못지않게, 출신지의 연고성보다 지역문화를 사랑하고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안동인이 되게 한 사실도 <안동>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자산이다.
이만 하면 <안동>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 떠나도 좋지 않을까.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