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내 꿈의 엔진이 꺼지기 전에(글/임지희_안동대 국문과 겸임교수)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꾸고 산다. 그 꿈은 소박한 꿈일 수도 있고 아주 큰 꿈일 수도 있다. 꿈은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월 9일에서 10일까지 공연된 뮤지컬 <오디션>은 밴드를 결성한 여섯 명의 청춘 남녀들이 자신들의 밴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뮤지컬과 콘서트의 경계
무대에는 밴드 악기가 세팅되어 있다. 막이 열리자 여섯 명의 배우들이 각자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무대는 그들의 지하연습실로 설정되어 있다.
밴드단원은 리더 준철,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병태, 카리스마 넘치게 기타를 연주하는 찬희와 드러머 다복 그리고 톡톡 튀는 성격을 가진 매니저 초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롱은 다복의 여동생이다. 이들은 곧 있을 클럽의 지정 밴드 오디션에 참석하고 싶지만 보컬을 구하지 못한 실정이다. 보컬은 밴드의 악조건 때문에 계속 교체되었는데 클럽 오디션을 앞둔 상황에서 보컬이 밴드를 나가버린 것이다. 한때 노래를 잘하는 병태가 보컬이 되어 오디션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그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오디션에 탈락하고 말았다. 병태는 무대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해 노래를 한 소절도 부르지 못했다. 병태가 보컬이 되어 오디션에 참여했던 장면은, 과거 회상장면으로 처리되었는데 배우들은 장난감 같은 작은 악기를 들고 나와 익살스럽게 연주를 했다. 이것은 병태의 무대공포증을 강조시키는 반면 가벼운 웃음을 제공하였다.
병태는 카페에 아르바이트를 가서 연습하고 있는 단원들에게 전화를 한다. 병태가 일하고 있는 카페에서 노래하는 가수를 보러 오라는 것이다. 단원들은 병태의 카페에 가서 선아를 만나게 되고 선아에게 밴드보컬을 제의한다. 지하연습실과 카페의 장면전환은 테이블 하나를 갖다 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밴드 단원들은 선아에게 보컬이 되어주길 부탁하지만 선아는 거절한다. 단원들은 날마다 선아를 찾아간다. 매일매일 선아를 찾아온 단원들의 상황은 초롱이의 “우리는 오늘도 카페를 찾아왔습니다.”라는 대사와 배우들이 티셔츠를 일제히 벗는 것으로 연출되었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하여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고 있었고 티셔츠를 벗을 때마다 객석에서는 아주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한 유일하게 티셔츠를 벗지 않는 리더 준철에게 배우들이 “옷 좀 갈아입어.”라는 대사에 관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결국 선아는 보컬을 허락한다.
선아의 환영은 삼겹살 파티였다. 재미있는 것은 진짜 삼겹살을 무대 위에 구워서 그 냄새를 객석에 풍기게 했다. TV나 영화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흔하게 등장하지만 냄새는 경험에 의해 상상하기 마련인데, 직접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니 연극의 공간에서만 가질 수 있는 냄새의 체험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선아가 보컬로 합류한 밴드는 클럽 오디션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공연도중 기타리스트 찬희가 쓰러진다.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하여 점점 더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밴드는 집주인으로부터 연습실을 비워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찬희는 자기가 아끼는 기타를 팔아서 마련한 돈을 리더인 준혁에게 주면서 연습실 월세를 내라고 한다. 준혁은 매우 화를 낸다. 준혁이가 다시 찬희의 기타를 찾아오지만 찬희는 연습실에서 죽어 있다.
찬희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오디션에서 쓰러지고 연습실에서 늘 누워있는 모습을 설정하여 찬희의 몸이 병약하다는 정보를 관객들에게 제시해 주었지만, 찬희의 죽음에 대한 개연성 없이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단원들의 슬픈 흐느낌과 드러머 다복의 오열에 감정을 이입할 수 없었다. 또한 드러머 다복은 찬희를 좋아하는 게이로 설정되어 있어서 사회 통념적으로 게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들, 특히 십대 관객들은 게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비웃음을 던지는 반응을 보였다. 다복의 게이 설정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게이를 밴드 구성원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게이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인격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은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다복을 게이로 설정한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찬희에 대한 다복의 감정은 같은 밴드의 구성원으로서 또는 그가 따르는 형으로서 설정해 놓아도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찬희에 대한 다복의 감정을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채 게이로 설정해 놓아 아직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성 정체성의 문제를 단순화 해 버렸다.
클럽 지정 밴드 오디션에 찬희의 쓰러짐으로 인해 좌절을 맞본 이들은 마음을 추슬러 전국 밴드 경연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찬희의 죽음으로 인해 단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밴드 경연대회 날, 병태는 홀로 기타를 들고 경연대회에 참여한다. 병태는 샤막 앞에 나와 “원래 우리 밴드가 참석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나 혼자 참석하게 되었어요,”라며 노래를 시작한다. 병태가 노래를 시작하자 샤막 안쪽의 무대가 밝아오고 밴드 전체 단원들이 노래를 하며 연극은 끝난다.
이 연극은 갈등이 없다. 보통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갈등을 통해 인물들이 추구하는 대상을 인식하게 하고 인물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인물간의 갈등이 아니더라도 인물군과 대사회적인 갈등을 보여 주면서 인물들이 사회적 모순에 저항해 나가는 모습을 그려낼 수도 있다.
이 연극에서 갈등이라고는 기타를 판 다음에 벌어지는 찬희와 리더 준철의 갈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등을 통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또한 이들이 밴드를 위해 노력하는 치열성도 부족하다. 연습실 월세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병태뿐이다. 병태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설정은 보컬 선아를 만나기 위한 설정이지 밴드를 위해 치열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연극은 마지막 장면에서 ‘밴드의 멋진 공연에 대한 꿈의 엔진은 끄지 않는다.’ 라는 것을 분명히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단원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고 결말이 비극인 이 연극을 보면서, 관객들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엔진을 가동하겠다는 의지를 다지지는 못 할 것이다.
이 연극을 보면서 진한 감동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단원들이 가지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극에 확연
하게 드러나 있지 않고 밴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밴드를 향한 젊은이들의 꿈이 극의 내러티브와 플롯에 제대로 형상화 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극은 콘서트를 보고 난 후에 가지는 감흥을 가질 수 있어도 연극을 보고 난 후에 가지는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글을 마무리 하며
<오디션>은 연극을 보러 온 것인지 밴드 콘서트를 보러 온 것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극중의 밴드 공연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배우들은 각각 밴드 단원처럼 훌륭하게 악기를 연주하였고 노래도 하나같이 잘 했다. 음악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다. 음악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많은 요소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멜로디가 가슴 한 구석에 있는 감정을 끌어낸다면 가사는 정서를 조직화하여 재배열하면서 음악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자아개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디션>에서 밴드 음악이 없다면 아주 지루한 연극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연극은 영리하게 갈등의 부재를 음악으로 채워 넣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뮤지컬에서 중요한 것은 주제의 형상화이다. 주제를 인물과 플롯 속에 제대로 녹여 무대에서 재현할 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극, 감동을 줄 수 있는 연극이 되리라 확신한다. 연극을 보며 진한 감동을 느끼는 그 꿈에 대한 엔진도 영원히 끄지 않을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4호>
2012년 7,8월 141호부터 지금까지 지역에서 공연된 연극, 뮤지컬 평을 가감 없이 집필해주신 임지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