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당 한약방 권오규 할아버지(글/이미홍)안동 사람이면 누구나 심심찮게 한번씩 지나다니는 문화의 거리, 그 거리가 시작되는 조흥은행 앞에서 문화회관 쪽으로 한두 발짝만 틀어들면 삼산동 우체국이 있다. 그리고 삼산동 우체국 앞에는 6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하게도 젊은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그러나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오래된 한약방, 동인당이 있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 그것은 달리 말하면 동인당이 그 사람들만큼 나이를 먹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곰삭은 이름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곰삭은 이름 뒤에는 60년을 한결같은 모양새로 한약방을 지키고 앉아 있는, 이 ‘동인당 한약방’의 주인, 한약방만큼이나 오래된 의원 ‘권오규(87)’ 할아버지가 있다.
한약방이 문을 닫을 무렵쯤 해서 권오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거리에서 한 발짝을 채 못 들여놓은 거 같은데 벌써 한약방 문 안이었다. 문을 들어서자니 권할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막 문을 나서려고 하고 있었다. 어떻게 왔느냐는 물음에 어렵사리 취재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런 거라면 난 안해! 취재는 무슨.”하시며 도로 신발을 신으실 태세다. 분명히 사전에 아들인 기용씨를 통해 승낙을 받고(그런 줄로만 알고) 찾아간 입장에서는 난감한 노릇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해서 같이 들어간 기용씨는 그런 아버지 앞에서 난처해하거나 미안해하기는커녕 한 술을 더 뜬다. 도움을 주기는 고사하고 ‘그렇게 다짜고짜로 말하면 어떻게 하느냐, 노인이 말을 하시도록 자꾸 이런 저런 말을 해가며 계속 이야기를 하시도록 해야지.’하며 면박을 주며 나무란다. 참 할 말이 없게 하는 부자이다. 가만히 보니 내켜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답변을 아들인 기용씨는 미리 알았던 듯 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옆에서 모시며 지켜본 기용씨 나름의 대처법이랄까 믿음 같은 게 있었나 보다.
‘그거 안 내면 고만이지, 내가 이런 거가 뭐 필요 있다고, 책에 낼려면 얘기 안 할란다.’라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내치시는 할아버지를 아들 기용씨까지 합세해 부탁드리기를 몇 차례, 드디어 권 할아버지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권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먹은 것들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고?
그때가 일제시대였어. 어릴 때 나는 학교를 못하고 한문만 배웠어. 그런데 그때 내가 생각하기에 한문만 배워서는 생활이 안되겠다 싶었어. 그래서 한약방에 가서 약을 달여주면서 한약방 생활을 시작했어.”
“그때 처음에는 내가 저 옹천에 강권일 한의원 하고 그리고 안동에 양춘당 의원 홍종승 씨한테 배웠거든. 내 발로 찾아가서 열다섯 살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양 문하에서 십 이년 동안 한약방 일을 배우면서 의서(의학서) 공부를 했어.
처음 일을 배울 때는 약재 다듬고 다리는 일부터 시작했지. 그 배운 걸 지금 일일이 말로 다 못 해. 의서 공부만 해도 의학입문에다 동의보감에다 이루 다 말할 수가 있나. 그 중에서도 이 ‘의학입문’ 의서를 주로 해서 공부를 했지. 요즘도 이 의서를 놓지 않고 매일 시간 있을 때마다 들여다 봐. 이제 안 보면 자꾸 잊어버리기도 하고 아침에 환자를 보기 전에 이래 책을 들여다보고 하면 잡생각이 안 생겨 맑은 마음으로 환자를 대할 수가 있거든.”
그러면서 앉은 자리 한 쪽에 가지런히 놓인 의학서들로 보이는 몇 권의 책들 중 맨 위에 놓인 손때가 묻어 반들거리는, 오래 전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보았던 것 같은 한지로 매여진 겉표지가 누런 책을 들어 보인다. 표지에 한자로 ‘醫學入門(의학입문)’이라 세로로 쓰여 있다.
그 당시 그 책 한 권 값이 50전이었는데, 당시 50전이면 쌀 반말 값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쌀 반말 값을 주고 산 책을 권할아버지는 오늘까지 보고 있으니 본전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겠거니와 권할아버지는 그때 일생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보물을 쌀 반 말 값에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60여년을 곁에 두고 아낌을 받는 책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이 책의 나이 또한 육십은 훨씬 넘은 셈이다.
그러고 보니 권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주변에는 온통 오래된 것들 투성이다. 오십 살이 넘은 주판, 아마도 골동품이었던 듯 자고 일어나보니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던 벼루를 대신해 중간에 새로 들여 놓은 벼루의 나이도 어느새 사십 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도 처방전을 먹으로 쓰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권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은, 손에 익은 붓의 나이는 한약방의 나이와 맞먹는다. 약재를 종류별로 담아 놓는 약재 상자가 보이길래 물어보니 그것도 나이가 사십은 넘었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오래된 것들이 손때가 묻어 반들거리는 점을 빼면 어느 것 하나 그렇게 낡았다거나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권할아버지가 지금도 그 물건들을 한결같은 손길로 아끼고 만지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사람의 손길이 깃들인 물건은 오래되어도 아니, 오래될수록 이렇게 빛이 나는 건가 보다.
지금은 내가 나이가 젤 많아
남의 밑에서 그렇게 십 년이 넘도록 배워서 지금의 자리에 한약방을 연 게 권할아버지가 서른 살 때였다. 동인당이라는 한약방 이름은 그때 집에 어른(부친)이 지어 주셨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여기 세를 들었지. 그러다 한 이십 년 돼 가주고 그때 돈 오십 만원을 주고 이 건물을 샀지. 그때 돈 오십만원은 참 많았다. 요 앞 삼산우체국이 그때는 식산은행이었는데, 오십 만원을 은행에서 대출을 내서 샀지.”
그 은행 자리가 헌병대가 되고, 그 헌병대가 다시 CIC로 바뀌어 들어왔다가 나가고 그리고 우체국에서 건물을 사서 들어왔다. 동인당은 한약방을 찾는 안동 사람들과 함께 건너 편에서 그 모든 일들을 지켜보며 권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왔다.
“그때 안동에 한약방이 열 대 여섯 개 됐을 거래. 그때는 한의원은 별로 없었지. 그때는 한약방을 하는 사람들 중에 내가 젤 젊었지. 근데 지금은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 이제 그때 한약방을 같이 하던 사람들 중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없어. 나 밖에 없어.”
그 말은 달리 말하면 옛날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는 이도 이제는 권할아버지 말고는 없다는 말도 된다. 지금은 한의원이 많이 생겨서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의원이 많지 않던 그때나 지금이나 한약방에서 하는 일은 똑 같다는 게 권 할아버지의 말이다.
“본대 이거는 한의원이 아니고 한약방이거든. 본래 옛날부터 한약방에서 진맥하고 조제하고 다 하게 되어 있어. 나야 지금도 처음 시작할 때의 전통적인 한방에서 하는 그 방법 그대로 하고 있지. 그러이 내가 하는 일이야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차이가 없지. 우선 환자의 안색을 살피고 증세를 묻고 진맥을 보고 증세를 판단해서 거기에 따라 약을 처방을 하지.”
동인당 한약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같이 고수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런 권할아버지도 끝내 풍속을 외면할 수만은 없어 그것도 남들보다는 한참 늦게 받아들인 게 한약 달여주는 기계다.
“전에는 한약을 지어 주면 가서 각자 집에서 달여 먹었지. 한약은 정성이 반이라. 집에서 정성 들여 달여 먹는 게 좋기야 좋지. 근데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한약방에서 다들 달여 주지. 야야, 여서 약을 기계로 다린 지가 얼마나 됐노? 한 오륙 년 되나?” 하며 할아버지가 안쪽에서 약을 달이는 이를 향해 묻자 저쪽에서,
“여 기계 들여논 지가 한 칠 팔 년 돼요”하는 대답이 들려온다. 
“요즘이야 여서 다 달여주니까 농도나 분량이야 정확하게 달여지지. 한약은 양을 정확하게 해서 진하게 달일수록 좋거든. 우리는 여서 지금 다섯 시간을 달여. 한약은 약재를 옳고 좋은 것을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하지. 법제(약재를 술에 볶는 것)도 잘 해야 되고. 나는 약재는 중국제는 절대로 안 써. 물론 여(한국)서 안 나는 건 중국에서 수입한 것을 쓰지. 우리나라에서 안 나는 거? 많지. 대표적인 게 감초지. 약방에 감초가 없으면 되나? 여서 안 나니까 사서라도 써야지. 무엇보다 맘을 잘 써야 돼. 잘못 맘 먹으면 한도 없는 게 이 일이야.”
라면서 권할아버지는 종류도 많고 그 질도 천차만별인 약재를 다룸에 있어 의원이 마음을 바로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 번 세 번 강조한다.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행여라도 마음이 흔들릴 때는 ‘돈 보다는 마음이 먼저’라는 말을 권할아버지는 그렇게 가슴에 담고 살아왔다고 했다.
“이게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마음이거든. 이게 환자를 볼 때 마음이 말쑥하고 기운이 맑아야 환자가 눈에 들어오거든. 마음에 물질적인 욕심이 들어오면 환자를 봐도 어디가 아픈지 몰래. 이 환자는 돈이 많으니까 어떻게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싶으면 고만 진맥이 안 잡혀. 내가 특별히 그런 게 아니라 우리는 의학을 배울 때부터 본래 그렇게 배웠어.”
이거는 우리 아들한테도 내가 꼭 지키라고 그렇게 말했어. 옆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 아가 우리 넷째 아들이거든. 우리 아들이 한의원을 한 지도 근 십 년이 다 되었을 거라.”
같은 길 걷고 있는 넷째아들과 외손주
나중에 동인당한약방 옆에 나란히 걸린 동인당한의원의 주인인 한의사인 넷째 기종(47)씨에게 확인해보니, 그렇게 배우면서 아버지 그늘에서 86년에 한의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십팔년째라는 이갸기다.
-어느 쪽이 손님이 더 많아요?
“ 수입? 거 뭐 아무래도 오래한 사람이 더 많잖을라?”
거기에 대해서는 부자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기종씨도 “아직은 내가 어른보다 더 잘 벌지는 못하지요. 또 그래서도 안되고요(?)” 한다.
- 아드님이 가업을 이으신 셈인데, 그런 바람이 있으셔서 아드님을 한의대를 보내셨는지?
“나야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있어서 한의대를 가도록 권했지. 본대 내가 아는 걸 전해주기 위해서 처음에 대학을 졸업하고 한의원을 낼 때도 이 집 이층에 한의원을 내게 했거든. 지금은 옆으로 갔지만 처음에는 일 이층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 내가 아는 대로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도 했지. 지금도 한약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많이 애기해 주지. 환자들이 오면 침이나 뜸이 필요한 이들은 옆 한의원으로 보내기도 하고. 내가 뭐 받는 것은 없지.”
거기에 대한 기종씨의 대답은 이랬다.
“어른의 바람도 있었고 저도 원했고, 뭐 시작은 자의반 타의반이었지요. 어른이 옆에 있으시니까 아무래도 도움이 돼지요. 한의원에도 물리치료 같은 현대적인 기계도 들어오고 많이 바뀌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방편이고 잔가지지 본줄기는 아니거든요. 한방에서 보면 원칙은 어른이 하시는 방식이 맞지요. 자랄 때는 어른이 워낙 엄해서 무서웠던 기억 밖에 없는데, 요즘은 많이 누그러지셔서 오히려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러지요. 그리고 저도 이 자리에서 벌써 십팔년인데, 어른이 그만두시더라도 이 자리서 계속해야지요. 옮길 생각은 없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인근에 다복하기로 소문난 권할아버지라 저쪽에서 일을 보며 틈틈이 가물거리는 권할아버지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기도 하는 기용씨를 가리키며 자식들 일을 물어보았다.
-저기 옆에 계시는 아드님이 아버님 일을 돕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 아드님은 몇 째고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자가 이름이……? 자가 다섯째야. 내가 아들만 일곱이라. 딸? 딸은 여섯이고. 내가 6･25가 일어날 무렵에 서른 다섯에 아들 둘, 딸 둘 자식을 넷을 두고 상처를 했어. 그리고 서른 여섯에 열 아홉 나던 지금의 안사람한테 새장가를 갔어. 그리고 아홉을 더 낳았어. 캐나다에 가 있는 막내 딸이…, 갸가 서른 둘인데 열 셋 모두 출가를 다 시켰어.”
“돈 많이 벌었느냐고? 부자냐고?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이라. 부자는 마음이 특출해야 돼. 안 쓰고 안 먹고. 내가 아가 열 서이라. 그걸 전부 다 공부시켜서 열 셋을 다 시집 장가 보내고 했는데, 부자면 얼마나 부자겠노?”
열 셋이나 되는 아들 딸 이름도 이제는 금방 기억이 안 나는 나이가 된 권 할아버지이고 보면 아들 딸의 배가 넘는 손자들에 이르러서는 그 수도 가물가물하다. 한의원을 하는 넷째에 이어 그 많은 손자들 중에서도 권 할아버지와 같은 길에 들어선 손주가 하나 있다. 한의대를 나온 그 외손주는 지금 안동 유리 한방병원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마음이 말쑥해야 환자가 제대로 보이지
웬만한 건 이제 너무 오래해서 오히려 기억이 안 난다는 권할아버지, 용하다고 소문난 의원들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그건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야. 그거는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서 되는 거지 의원 혼자만 소문내서 되는 게 아이라. 그렇지 않나? 병을 고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소문이 나는 거지.”
말 끝에 ‘내가 제일 많이 연구하고 잘 고치는 건 축농증이라고, 그건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니 그것이 누구든 의원이 용하다는 말에는 그만한 까닭이 다 있다는 말이다.
“환자를 한참 많이 볼 때는 하루 삼 사십명씩 봤어. 그런데 지금은 별로 많지 않아. 주로 단골들이 많지. 요즘처럼 안 될 때가 없었어. 요즘은 사람들이 약을 안 먹어. IMF 때문에 너도나도 돈이 없다고 비싼 보약을 안 먹거든. 촌사람들도 아파도 돈이 없어 약을 안 먹고 참고. 요즘은 하루 한 열 명 정도 보나 그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 늦게 아주머니 한 분이 ‘할배요, 무릎이 아파요. 아파서 억지로 걷니더.’ 하며 한약방 안으로 들어온다. 진맥을 보고
무릎을 살피신 권할아버지가 처방을 하려다가 아주머니가 아들이 지어온 약이 있기는 있는데, 전에 여기서 약을 먹고는 좀 차도가 있어서 왔다고 하자, 그럼 다리 너무 쓰지 말고 그 약 다 먹고 오라고 한다. 아주머니가 나간 후 요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장사를 하는 이라고 하신다. 아주머니를 왜 그냥 갔다가 아들이 지어준 약 다 먹고 오라고 했는지 알 것도 같다. 마음이 말쑥해야, 욕심이 없어야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하셨던가.아주머니가 나가고도 한참 이야기를 들으며 메모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보니 한쪽 탁상에 기대어 하품을 하시며 시계를 보고 계시다.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멀었나? 여섯 신데, 여섯 시면 가야지. 가서 한 잠 누웠다가 밥 먹어야지. 나이가 팔 십 일곱이면 구십 노인 아이라?”
하시며 은근히 두서없는 질문으로 어른을 오래 앉혀둔 우리를 책망하시는 눈치다. 그랬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환자를 보시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만 생각했지 팔십 일곱이라는 권할아버지 나이를 잊고 있었다. 여느 노인들이라면 은퇴를 해도 벌써 몇 번을 하고 뒷방에서 소일하고 있을 나이였다. 권할아버지라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안했을까.
“그만두는 거, 그게 어려워. 아직(아침)에 여 나와 앉아서 종일 있어 봐라. 그렇게 이 자리에서만 육십 년이라. 이제 고마 태가 나. 그런데 또 고만 두면 뭘 하노. 내가 평생 노는 체질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안하고 놀고만 있지를 못 해. 그래 아침이만 또 여 나와서 앉아 있게 되지. 옛날부터 안 놀아 봤어. 한약방이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쉬어. 옛날에는 하루도 안 쉬었어.”
거기에 대해 기용씨와 기종씨는
“우리도 일을 그만두고 쉬시라고 몇 번 말씀을 드리기는 했는데, 또 한 편으로는 어른 성격에 일을 그만두시면 금방 기력을 놓으실 것 같아 말리기보다는 어른 하시는 데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예요.”
지난 60여년 동안 그래왔듯이 요즘도 한결같이 안동예식장 뒤편에 있는 옥정동 집에서 한약방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권할아버지. 권할아버지의 일과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동부초등학교 운동장을 세 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난 사십 년간 지켜온 아침운동이다. 그리고 아침 먹고 나와서 열 시부터 여섯시까지 한약방에 앉아 환자를 본다. 환자가 없을 때는 의서도 보고 명상도 하고. 그리고 여섯 시가 되면 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서 몸을 눕힌다. 내일 다시 한약방 문을 열기 위해 오늘은 이만 쉬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할아버지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일 아침 여섯 시면 권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 운동장을 돌 것이다. 동인당한약방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