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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현장에서 학습된 시간과 어린 삶을 생각한다(글/권두현)

시간이란 무엇인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가 시간이 흐르면 변화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며 우리의 몸과 생각도 그와 같다.

시간을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화살표 쪽에 가깝다.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사실 다시 돌아갈 필요성도 없다) 그런데 우리들은 시간을 단순히 직선의 화살표로 보지 않는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지난 주 이번 주가 그리 다르지 않고, 한달 만에 달이 뜨고 지며, 한해는 여전히 사계이다. 따라서 삶에서 바라보는 시간은 뭐랄까 굳이 표현한다면 용수철과 같은 화살표로 표기될 것이다

이점을 볼 때 물리적(?)으로는 시간이 절대적 변화를 말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사람의 삶 속에서 시간은 순환되면서 인식된다. 그러한 순환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문화적 장치를 만들어간다. 하루, 한달, 일년은 실제 절대적인 시간이지만 물리적 규칙을 이해하고 거기에 합당한 문화적 장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세시풍속이나 기념일은 1년이라는 시간의 반복을 믿는 과정에서 나온 문화성이며 인간의 의식이 이를 통해서 축적된 결과인 것이다.

문화적 시간

반복되는 한해 한해 문화적 축적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소위 나이를 먹어간다. 순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선이 있는 것이다. 나이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이, 소년, 청년, 어른, 노년 등의 명칭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 도대체 문화적으로 아이와 어른은 어떤 차이가 있나?

다소 억지스러운 해결점이지만 아마도 어른과 아이들의 구분은 시간이 정해준 사회성의 습득이 아닐까. 말하자면 어른이란 결국 형식화된 문화를 얼마나 습득하고 있는가에 대한 척도이며 아이라는 것은 그러한 사회성을 덜 이해하고 체득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간적 전개에 따른 생물학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즉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는 것은 노동력을 일정하게 구비한 생물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저러한 측면에서 아이와 어른의 척도란 시간과 문화습득, 노동력이라는 관점이 적용된다 하겠다.

물리적이고 생물적 접근을 떠나 문화 습득과정에서 인간은 일정한 단계를 밟게 된다. 잉태와 더불어 시간의 저촉을 받기 시작한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 너머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흐름을 열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소위 일생의례이다. 구체적으로 한 인간이 태어난 후 성인이 되고, 혼인을 하며 환갑을 맞고 죽음에 이르고 제사의 대상이 되는 과정이 그것이다.

성인이 되는 길

관례는 소위 일생중 성인이 되는 의식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인(成人)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도 성인증명, 소설에도 성인증명이 있다. 따라서 성인이 아닌 사람은 사회적으로 제약이 많다. 그런데 성인을 증명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는데 그것은 태어난 지 19년이 되면 성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누구나 가만 있어도 19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자연 성인이 된다. 즉 성인이 되는 것은 오래 살면 된다. 참 쉽다.

성인이 되는 시간이 19세로 하는가 18세로 하는가에 관한 논란도 있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권별로 성인에 대한 나이가 다른 경우를 볼 수 있다. 결국 성인은 저절로 되지만 단순한 나이로 성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태사묘에서 유교문화에서 지켜진 전통 성인식이 있었다. 남자를 관례(冠禮)라 하고 여자를 계례(笄禮)라고 하는 이 성인식은 복잡한 차례를 거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관례와 계례의 절차는 대체로 인근의 어른을 불러서 성인식을 치루는 사람의 공증인이 된다. 이 공증인은 관계례의 중심에서 성인이 되는 사람에게 다양한 훈도를 내려주고 남자의 경우 상투와 갓을 씌어주며 여자의 경우 비녀를 해 준다.

성인식은 비단 유교문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교적 의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민중들에게도 성인식이 있었다. 소위 ‘들돌들기’가 그것이다. 나이가 차면 일정한 무게가 나가는 돌을 머리에 치켜듦으로써 성인으로써 힘을 인정받고, 동등한 노동력을 보증받는다. 이 의례를 거치면 품앗이, 두레노동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민중들의 성인식인 들돌들기는 단순하지만 마을사회라는 단위 사회성원이 되는 의미있는 과정이다. 유교문화의 성인식은 위엄있고 정제되어 이루어지며 복잡한 사정을 가지지만 나름의 절차마다 의미를 내포한다. 어떤 방식이 더 낫다라는 평가보다 어쨌든 공증받는 문화적 절차로서 자기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유교적 전통속에서는 들돌들기는 의미 없을 것이며 민중들의 노동협력체 속에서 ‘갓’은 의미가 없다. 같은 성인식에도 다른 이해방식과 삶의 통과방식이 적용되는 것이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성인이 되는 시간이 다를 수도 있으며, 또한 성인식이 의미하는 것도 다르다는 것에서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 문화적으로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것은 성인이라는 것이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음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통사회에서 성인이 되었다는 것과 지금 사회에서 성인이 되었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전통사회와 지금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회성과 문화적 학습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것에 대한 답은 각자가 다를 수 있으며 답을 실천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가져다 준 선택적 필수인 성인식을 거치면서, 아니 성인이 되었다는 것에 얼마만한 우리 시대의 가치를 심어주고 있는가를 검토하여야 한다. 과연 우리가 인식하는 성인의 학습된 문화가치가 학습되지 않은 문화성보다 낮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아이와 어른이라는 구분이 마치 어른의 삶이 더 건강하고 아이의 삶이 더 선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나쁠 때가 있고 아이들이 더 인간답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어리다

관계례 현장에서 필자는 한동안 이점을 고민하였다. 사회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과연 학습되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보다 낮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가 원하는 성인의 학습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 답을 내리기에 아직 어리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