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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피어싱′에 담고 싶었던 것들(글/조희진)

1572년(조선 선조 5년) 가을, 갑작스럽게도 젊은 사대부들의 귀고리 착용이 조정에 공론화되는 일이 일어났다. 선조는 “젊은 사내들이 귀를 뚫고 귀고리 하는 풍조를 금도록 하다. 신체(身體)와 발부(髮膚)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毁傷)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초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사내아이들이 귀를 뚫고 귀고리를 달아 중국 사람에게 조소(嘲笑)를 받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로는 오랑캐의 풍속을 일체 고치도록 중외(中外)에 효유(曉諭)하라. 서울은 이 달을 기한으로 하되 혹 꺼리어 따르지 않는 자는 헌부가 엄하게 벌을 주도록 할 것으로 승전(承傳)을 받들라”는 금령을 내리고 곧 시행했다. 짧은 전교였지만 내용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귀고리 하는 풍조를 금지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후로’ 귀고리 하는 풍조를 고치도록 하라는 전제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귀고리 하는 풍조를 흔히 볼 수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이때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사대부들의 귀고리 착용이 금지된 데에는 대체 어떤 이유가 숨어 있었던 것일까.

귀고리 착용 금지령의 발단이 된 것은 조선을 다녀간 중국 사신들의 비난이었다. 오랑캐풍습을 유학의 나라에서 이어받고 있다는 조롱을 들은 선조가 이를 막아 보려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물론 그들의 조롱을 피하려는 의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이념이었다. 신체를 훼상하는 것은 효(孝)를 중시하는 유교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마땅치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오랑캐의 습속을 모방한 것이었기 때문에 바르지 못한 풍속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유교를 숭상하고, 국가의 이념으로 삼은 지배층의 관점에서 보면 오랑캐의 습속은 받아들일 가치조차 없는 저급 문화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받아들여 따르는 사대부들의 행동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젊은이들의 그릇된 일탈 행위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귀고리 착용 금지령은, 사부들의 귀에서 작은 장신구 하나를 떼어내는 것을 넘어서 국가적 이념을 바로잡는 일이었고 나아가 귀금속 이용을 억제함으로서 물가를 조절해보고자 했던 지배층의 의도가 담겨 있는 법령이었다.

우리는 옷을 그저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한 것, 때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외적 수단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옷이나 장신구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그 외형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옷’하면 유행이나 패션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사소한 듯 보이는‘옷’ 과 장신구들은 실상 당대의 이념과 문화, 사회, 혹은 정치적 맥락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옷을 입는 것은 생활, 그 자체이며 삶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옷을 입고, 장신구를 패용했던 사람들의 생활과 삶이 그 안에 배어있게 마련이다.

개짐이나 가슴을 가리기 위해 사용했던 허리띠와 같은 여성들의 전유물을 통해 우리는 그 옛날, 자신의 몸이 아닌 ‘사회적인 몸’에 충실해야 했던 여성들의 고충과 애환을 읽을 수 있고 경북 일원에서 많이 발견되는 살창고쟁이를 봄으로서 옷에 부여된 지역성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빨래와 바느질, 길쌈과 같은 행위는 여성의 가사노동인 동시에 재생산의 중요한 고리였고,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경제적인 영역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동안의 복식사 속에서 특별히 주목받아 본 적이 없는 대상이었다. 나는 그렇게 감추어져 있었던, 혹은 방치되었던 자투리들을 이어 붙여 보고 싶었다. 옷과 문화의 관련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을 독자들에게, 나는 또한 이 두 가지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쉽게 전하고 싶었다.

옷과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현상들이 만나고 옷에 대해 한 사회가 부여한 상징이 구성원들에 의해 일반화되었을 때 비로소 옷을 통해 사회와 문화, 종교와 상징의 법칙, 그리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옷은 사람과 삶 당대의 문화와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돋보기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