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를 피우는 두 남자 이야기(글/이미홍)
“지금은 제 철이 아니어서 꽃이 거의 다 져서 생각만큼 이쁘지는 않은데 어쩌죠. 봄에 오셨으면 정말 이쁜데…” 하며 연신 아쉬움을 토하면서도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비닐하우스 화원에 들어서서 야생화 무리들을 보며 웃는 김재창(36)씨와 김재곤(30)씨. 그런 재창씨 재곤씨와 함께 올망졸망 포트에 담긴 채로 하우스 안에 가득한 이름모를 꽃들이 소박하게 사람을 반긴다.
마침 하우스 안에는 먹물 옷을 입은 보살 한 분과 스님 한 분이 암자에 있는 거처에서 기르기에 마땅한 꽃이라도 찾는 듯, 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소리로 한참을 꽃을 둘러보고 몇 가지 모종을 놓고 망설이기를 여러 차례, 이것저것 묻는 눈치더니 아쉬운 눈길로 나지막한 야생초가 핀 포트를 몇 개 사서 들고 나가신다.
야생화 농원 준비기만 2년여
아직은 시작단계여서 인터뷰를 하기에는 이르다면서 조심스레 건넨 재창씨의 명함에는 종자관리사와 식물보호기사라는 직함이 곁들여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재창씨가 일단 제대로 꽃에 대해 공부를 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는 이내 야생화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로 전문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입증했다.
올해 문을 연 식물원으로서는 제법 규모도 안정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어디에서 지원이라도 받아서 시작했나 싶어 물어보았더니 아니란다.
“순수하게 저희가 가진 자본으로 시작을 했어요. 지금까지는 지원없이 순수하게 우리 힘으로 해 왔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서 내년부터는 정부 지원을 좀 받으려고 하고 있어요. 전망은 괜찮으니까 준비를 착실히 해서 지원을 좀 받으면 앞으로 더 좋아지리라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 비닐하우스 2동하고 야외재배지까지 전체 규모가 2천평 정도예요.”
“현재 이 곳에서 키우고 있는 야생화는 약 100가지 정도 되고, 그 중에서 주로 생산하는 것은 3-40가지 정도, 그 외에 시험적으로 종자를 증식하고 있는 중인 것들도 많아요. 출하하는 종류나 수도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진다고 봐야죠. 반응에 따라 수량을 축소할 수도 있고, 반응이 좋으면 특정 품목을 대량재배해서 출하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죠. 지금 시험 중인 종자까지 다 합치면 한 200여종은 되는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준비를 했기 때문에 종자의 경우 학교에 있으면서 모은 것도 있고, 교수님한테 얻은 것들도 있고, 회사 있으면서 구해 놓은 것도 있고, 전국야생화협회나 야생식물원 같은데서 종자를 받아오기도 해요. 요즘은 야생화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곳이 전국적으로 많이 퍼져 있고 야생화 동호회도 많아서 종자를 들여오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보면 돼요.”
대학에서 야생화 연구하면서 농장 해보고파
“저희가 야생화 농장 문을 올봄에 정식으로 열고나서 벌써 여섯 달이 지났네요. 그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저희들이 직접 작업을 다 했죠. 5월 달까지는 동생 혼자서 거의 다 했고, 제가 5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합류하고부터는 둘이서 같이 해 오고야생화농원 야외 재배지 있죠. 그런데 일이 조금씩 늘어나서 내년부터는 작업할 아주머니를 몇 분 쓸 생각이예요. 저하고 동생은 판로 개척이나 출하 같은 일들을 전문적으로 맡고요. 물론 무엇보다도 식물을 잘 자라게 하는 게 기본이지만요. 앞으로는 사람도 더 늘 거니까 일을 체계적으로 나누어서 하려고 해요.”
이 시점에서 야생화를 둘러보러 온 사람을 안내하느라 조금 늦게 자리한 동생인 재곤씨 할 말이 있는 눈치여서 재곤씨가 동생이라고 일을 더 많이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솔직히 혼자 일하려니까 힘이 좀 들었어요. 일이 힘든 거 보다는 제 시간이 조금도 없다는 게 문제였죠. 일의 성격상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안되니까 혼자 있을 때는 꼼짝 못하거든요. 그러다보니 거의 24시간 묶여있었다고 봐야죠. 그게 참 힘들었던 거 같아요. 덕분에 청춘 사업도 물건너 갔죠.”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위치한 훼암 식물원
본인은 믿거나 말거나 라지만 한참 있다가 형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또 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영 빈 말은 아닌 듯싶다. 재곤씨가 나름대로 불만을 가질 만했다고 형인 재창씨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처음 야생화 화원을 하기로 계획한 것도, 야생화를 전공한 이도 형 재창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재창씨는 화원을 시작할 기반이 잡힐 때까지 직장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를 짓는 일에서부터 밭을 갈고 종자를 뿌리고 미리 시험 재배를 해 보는 일까지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 했다. 물론 형 재창씨가 직장 일을 마치고 와서 일을 거들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준비 기간이 2년여가 걸렸으니까 재곤씨가 혼자서 일을 한 시간이 많았을 것은 당연지사인 거 같다. 비록 품앗이는 동생보다 덜했지만 야생화 화원을 하기 위해 형 재창씨도 그 기간 동안 나름대로 많이 바빴다.
“제가 대학 때 원예를 배우면서부터 대학원 때까지 계속 야생화를 전공한 교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배우다가 대학원도 야생화를 전공으로 택해서 1년 정도 공부하다가 논문 준비를 앞두고 이쪽으로 눈길을 돌린 거죠. 직접 실경험 위주로, 농장을 제가 직접 해 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어요.”
그래서 교수님에게 부탁해서 묘종도 구하고 조언도 얻고, 다니는 종묘회사에서도 야생화에 관련된 일을 자진해서 맡아하며 자료도 구하고, 종자도 확보하고, 그리고 전국적인 야생화 관련 단체나 동호회 사람들과도 얼굴을 익혀 야생화에 관련된 알짜배기 정보들을 수집하고 지난 2년간의 시간은 그에게도 그렇게 온통 지금의 야생화 식물원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한 시간들이었다.
평생의 반려자인 결혼상대자도 그 과정에서 만났다. 회사에서 마련한 야생화 전시회에 꽃구경을 온 그녀를 그가 일찌감치 찜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의 전공이 화훼였다고. 그녀와의 결혼도 혹시 야생화 농장을 위한 필연적인 만남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동생과 함께 훼암식물원 문 열다
그리고 올해 5월 그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훼암식물원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야생화 농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늦봄부터 가을까지 시간이 흘렀다. 5월부터 훼암식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출하하기 시작한 야생화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야생화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꽃이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생존력이 강해서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키우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강점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 반응이 생각보다 좋더라구요. 가을에 열린 2003국제탈춤축제 때는 부스를 얻어서 야생화 전시회도 하고 판매도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나름대로는 성공적이었어요. 야생화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아무래도 친근감도 더 느끼는 지 행사 기간 내내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어요. 덕분에 이제는 이 곳을 알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꽤 많은 편이예요. 처음에는 주로 야생화 관련 동호회 분들이 많이 찾았는데, 이제는 일반 소비자분들도 입소문으로 듣고 위치를 물어 물어서 찾아오시기도 해요. 그런데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데다 이런 한적한 곳에 위치해서 길 찾기가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시내에서 길안 방면으로 오다가 안동정보대학교 지나서 나오는 첫 번째 마을인 신덕리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다리를 건너서 뚝방을 따라 가다가 추월 마을을 향해 난 하나뿐인 외길 포장로를 따라서 오른쪽으로 난 산비탈을 따라 오는 게 길 찾기가 쉬워요.”
실은 우리도 전화로 위치를 듣고 길안 방면으로 난 길을 따라 찾아간 참이었다. 참고 삼아 말하자면 그 길을 찾아 그렇게 포장된 외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오른쪽에 첫 번째로 나타나는 큰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아쉽게도 그 비닐하우스 모두가 야생화 식물원은 아직 아니지만, 미처 실망하기도 전에 그 옆으로 야트막한 산자락에 포근하게 감싸인 훼암식물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아담한 비닐하우스 두 세 동이 앞뒤로 선 게 눈에 들어온다. 잘은 모르지만 산도 바람도 물도 자연 그대로인 것이 들꽃인 야생화들이 자라기에 딱 좋을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 품목이 너무 많아서 모든 품목을 다 재배해서 출하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죠. 게 중에는 까다로운 놈들도 더러 있고요. 또 일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품종이 따로 있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품질도 우수하고 반응도 좋은 몇 가지 품목을 중점적으로 키워서 보급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제 나름대로는 앞으로 활엽성으로 실내에서도 잘 키울 수 있는 상록성인 품종을 주종목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야생화는 봄부터 가을까지 철따라 꽃이 피고 지기 때문에 꽃이 피는 시기가 길지 않거든요. 그래서 남쪽 지방에서 주로 자생하는 상록성인 야생화나 야생초 품종을 들여와서 시험 재배를 해서 특히 겨울 같은 때 오래오래 두고 보며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지금 시험 단계인데 저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여기 있는 이 만년초도 그 중 하나고요.”
겨울나기 월동준비
형인 재창씨에 비해 유난히도 말을 아끼는 재곤씨지만 꽃에 대한 애정만큼은 형에 결코 못지 않다고.
“저희 집이 처음에는 시골에 있다가 안동 시내로 이사를 갔는데, 저는 어릴 때 시골집에서 흙냄새 맡으며 지천으로 널린 꽃이나 나무 속에서 사는 게 너무 좋았어요. 워낙 식물을 좋아하신 부모님 덕분에 시내로 가서도 집안에는 늘 식물을 키웠어요. 화단도 가꾸고 분재도 하고. 덕분에 분재도 굉장히 오래전부터 했어요, 제가. 아버지나 형의 영향도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원래 꽃을 좋아했거든요. 저희 화단에 꽃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는 이름도 잘 몰랐지만, 청사화 국화, 매화, 금잔화 하여튼 꽃이 많았어요. 그래서 형이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처음 이 일을 계획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동생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추진했어요. 동생이 원래부터 꽃을 좋아해서 화훼에도 관심이 많았고, 또 금속 공예를 전공해서 화분이나 화분받침대 같은 것을 매치시키는 감각도 있고 해서 같이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같이하는 방향으로 계속 준비를 해왔죠. 실제로 시작을 해 보니까 동생이 만든 동공예 화분 받침대나 직접 고른 화분을 손님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형제가 같이 뜻을 모아 이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부모님들은 솔직히 걱정이 많으셨다고. 그렇지만 부모님은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쪽을 택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2천여 평에 옹기종기 뿌려진 온갖 꽃이며 나무들에 물을 주고 김을 매 주는 일에서부터 정성껏 키운 꽃을 제철에 맞춰 내가는 일까지, 부탁하지 않아도 미리 나서서 해 주시는 부모님이나 직장 일이 끝나는 대로 오셔서 틈나는 대로 지주대도 손보시고 잡풀도 베어주시는 큰 형님이 없었다면 일 년도 안 되는 기간에 이렇게 기반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두 사람은 안다. 다행히 가을꽃이 피는 시기가 지나면서부터 일거리가 많이 줄었다. 덕분에 두 사람이 차분하게 월동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지금 저희가 요즘 주로 하는 일이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 준비에요. 추위에 많이 약한 품종은 삼중보호막을 치고, 나머지는 이중보호막을 치고 있어요. 시설 채소 같은 건 겨울에 난방도 해야 하고 연료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안해도 돼요. 야생화는 추위에 강해서 웬만하면 이중막이면 되거든요. 얼죠, 살짝 얼어도 봄이면 또 살아나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얼어서 죽을 거 같은 데 영하 6도 7도, 8도 돼도 웬만한 건 죽지는 않아요. 날씨가 풀리면 또다시 살아나죠. 물론 추위에 약한 품종은 겨우내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죠. 사실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저희가 시험재배 하면서 풍란도 많이 키웠는데, 겨울에 한참 추울 때에 많이 얼어 죽기도 했죠. 햇빛보기 같은 온도 조절에 실패해서 그랬죠. 농사가 다 그렇지만 저희는 특히 날씨에 정말 민감해요. 봄에는 봄꽃 피고 여름에는 여름꽃 피고 가을에는 가을꽃 피고 하니까 자연 계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날씨 따라 꽃 상태도 달라지거든요. 제 때 알맞게 개화를 해야 출하를 하는 데 지장도 없으니까요.
추석 연휴 태풍 매미가 상륙했을 때 재창씨는 출장을 가고 없었고 동생 재곤씨가 화원을 돌보고 있었는데 추석인지라 오랜 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하우스 안에 비가 들이치고 비닐이 날아가고 자칫 큰 일이 날 뻔했다. 다행히 곧바로 수습을 해서 큰 탈 없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 뒤로 일기예보나 날씨를 몇배 더 꼼꼼히 챙기게 되었다고.
생활원예 체험장으로 운영할 터
재창씨와 재곤씨의 훼암 식물원에서는 야생화를 키우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생활원예 체험장도 운영하고 있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오는 대로 흙갈이에서부터 시작해 야생화 재배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만큼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있다.
야생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파종에서부터 야생화를 직접 가꾸어도 볼 수 있고 흙갈이를 해서 가져갈 수도 있다. 원하면 이 곳 식물원에 본인의 야생화를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돌볼 수도 있다. 물론 위탁 재배해서 모종이 다 자란 후에 가져가는 것도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체험학습 위주로 갈려고 하고 있어요. 와서 직접 한 번 심어보고 야생화 구경도 하고 공부도 하고 원하는 걸 사 가기도 하는 거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생활원예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려고 해요. 이 농장 전체가 체험장이 되는 거죠.”
자투리 땅까지 빼곡한 이름모를 꽃, 풀, 나무들
그런 재창씨를 재촉해 농장 구경에 나섰다. 계절을 모르고 피어 있는 꽃들, 이름 모를 수 많은 야생화들, 납작납작 엎드린 지피식물들, 물항아리에 담긴 수생 식물들을 지나쳐 뒤로 돌아나가니 고만고만한 연못들에 연꽃뿌리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하우스 뒷동에 뿌려져 있는 수 많은 종자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듯 보이는 분화, 분경까지, 거기다 주변 자투리 한 조각까지 땅이란 온 땅에는 눈에 익은 것에서부터 생소한 것까지 갖가지 꽃이며 풀이며 나무들이 다닥다닥 참 많이도 심겨져 있다.
재곤씨가 동공예 작업을 하는 작업실에는 일이 끝나는 대로 틈틈이 만들어 놓았다는 화분 받침대며 수반 같은 수공예품들이 가득하다. 화원 속에 있는 재곤씨만의 오롯한 공간이다. 형인 재창씨는 재곤씨가 뒤늦게 쫓아올 때까지 아예 그 작업실 문을 열 생각조차 안했다. 별 말은 안했지만 재곤씨만의 공간을 배려하는 재창씨의 마음이 느껴졌다. 농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던 계획들을 하나씩 줄줄이 이야기하는 형을 보며 옆에서 재곤씨가 한마디 거든다.
“형이 사실 며칠 있으면 결혼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 전에 월동 준비도 그렇고 지금 마음이 엄청 많이 바빠요. 형이 결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더 안정이 되겠죠. 형수님 될 분도 사실 화훼를 전공했거든요. 제가 먼저 결혼할 뻔도 했는데, 청춘 사업할 시간이 없어서 기회를 놓쳤다니까요. 사실 저도 장가갈 나이가 됐는데…”
하는 진담반 농담반인 듯한 재곤씨의 말에,
“걱정마라 너도 곧 따라 결혼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대로 나처럼 너하고 전공이 같은 사람하고 결혼하라니까. 나는 야생화를 전공한 사람이랑 결혼을 하니까 니가 공예를 전공한 사람이랑 결혼을 하면 그야말로 되는 집안이 되는 거지. 서로 잘 통하고 사업에도 좋고.” 하는 게 듣고 보니 가까운 데서 찾으라는 뭔가 의미있는 말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게 어째 결혼에 들뜬 재창씨가 앞질러 가는 듯 하다.
비닐하우스를 돌아나오다가 눈길이 가 멈춘 곳에 봄이면 제일 먼저 핀다는 꽃인 노란 복수초가 몇 포기 철을 모르고 피어 있다. 복수초가 피는 내년 봄에, 온갖 꽃들이 피어 장관인 4월에, 아니 5월이 더 좋다며 그때 꼭 찾아오라며 배웅하는 재창씨와 재건씨의 얼굴에 엷어진 초겨울 오후 햇살이 걸려 있다. 얼마 후면 저 자리에 한 사람이 더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얼마 후면 또 한 사람이 더해져 네 사람이 저 자리에서 들꽃을 사랑해서 찾아드는 사람들을 반길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