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장 김광림씨(글/류선경)얼마전 '소리바다'의 음악서비스 중단은 우리에게 저작권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정보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며 저작권, 즉 지적재산권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재산권 보호를 위해 특허를 우선적으로 내놓는 사람도 늘면서 특허청은 점차 일상인들에게도 가까운 기관으로 다가오고 있다.
안동사람들에게 경제관료로 익숙해져있는 그가 특허청에 몸담고 있다는 소식은 다소 의외이었다. 그러나 그는 경제관료로 자신을 연마했듯 특허청업무에 몰입해 있었으며, 기자에게 특허청의 업무를 상세히 아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특허청이 이렇게 대단한 곳인 줄 몰랐습니다."
강남특허청 서울사무소, 퇴근시간을 넘긴 저녁 7시반 대전에서 올라온 김청장은 서울사무소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광림 특허청장은 30여년의 공직생활을 경제, 재정부서에서 일했지만 특허청이 이렇게 대단한 곳인 줄 몰랐다고 입을 열며 특허청 이야기에 흥을 냈다 .
특허청, 출원인이 접수한 발명기술을 심사하고 권리를 부여하는 곳. 김 청장 역시 첫 부임때는 일반사람들이 가진 상식 선에서 이곳을 생각했다. 그러나 권리를 취득하는 것 이상 취득한 권리를 사장시키지 않고 사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사업화 방안을 구상하고 지원을 해주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또 지식재산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 바로 발명지원도 특허청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국내 총생산기준으로 세계 13위이지만 지난해 특허출원 건수는 28만9천건으로 세계 5위이다. 특허청은 세계지식재산권기구로부터 세계 10대 국제조사기관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세계 179개 회원국중 국제조사기관으로 지정된 국가는 10개국에 불과하다
김청장은 인터뷰 내내 자료를 전혀 들춰보지 않고도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일일이 제시해 가며 특허청 자랑을 펼쳐놓았고, 30년 경제관료의 관록을 보여줬다. 또한 우리 국민의 창의력과 열정을 발명과 기술개발, 사업화로 승화해 우리 경제의 지식기반 산업화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청장은 특허실사처리기간이 23개월이나 되는 현실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독일 10개월, 미국 13.6개월, 일본 21개월) 그 이유가 인원에 비해 출원건수가 많기 때문이며 인력증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의지를 보였다. 특허청은 지난 7월 모든 특허민원에 대해 온라인화를 완료해 이메일을 보내듯이 인터넷으로 특허출원서를 제출할 수 있고, 인터넷뱅킹으로 수수료를 납부할 수 있다. 각종 증명서도 홈페이지를 통해 교부한다.
우리나라의 전자출원은 세계최고이다. 전세계에서 전자출원이 가능한 나라는 5개국밖에 없고 이중 지식재산권 전체에 대해 출원이 가능한 나라는 한. 미. 일 세 나라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한국이 월등하다. 한국은 전자출원율이 82%이지만 미국은 2%에 불과하고 일본은 변리사만이 전자출원을 할 수 있다. 초고속인터넷보급율 세계 1위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또 사업능력이 없는 발명가를 위해 온·오프라인 특허기술 장터를 열고 있다. 사업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자금 지원을 하거나 투자 펀드를 조성해 준다. 출원중인 기술에 대해서는 기술성을 검토한 다음 벤처기업 관련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박람회를 개최해 특허제품의 유통도 지원하고 있다. 특허청은 총사업비 1400억원을 들여 특허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청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 특허출원과 전자출원의 우수성에 대해 알지 못했으리라.
안동사람인 덕분에
안동사람들 사이에서 김광림 특허청장은 소문난 진돗개 애호가로 꼽힌다. 그는 퇴근하면 현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진돗개 우리로 달려가 오물도 치우고 먹이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김청장은 "진돗개의 충직함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그는 진돗개혈통보존협회 회원일도 뒤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다
"경제부처의 일이 많아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반겨주는 건 진돗개였습니다. 주차장이 집에서 5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면 벌써 우리집 개들이 짖기 시작합니다. 개들이 짖으면 이웃들이 그 사람이 귀가했구나 하고 알 정도였으니까요."
김 청장은 진돗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분양도 해준다. 단 3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단독주택에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배우자 역시 진돗개를 좋아해야 합니다. 남편이 출근하면 부인이 돌봐야 하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개가 아프면 수술비 정도는 댈 수 있어야 합니다."
김청장은 수많은 진돗개를 분양했다. 특히 2000년에는 역사적인 분양을 하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한 1쌍의 진돗개 중 암컷 평화는 바로 김청장이 기르던 개였다.
김청장은 경제기획원에 첫 발령이 나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쟁쟁한 명문대 출신들 속에서 무난하게 지금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을 "안동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안동사람에는 참으로 많은 뜻이 내포돼 있다.
우리가 흔히 안동사람들을 말할 때 안동상인을 비유로 들곤 하는데 아마 그가 말하는 안동사람이라는 것이 이 안동상인일 것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한없이 무뚝뚝한, 그러나 아부 할 줄 모르며 주어진 일만을 고지식할 정도로 묵묵히 하는……
그 뿐인가! 그는 안동사람이라는 것은 공직에 나설때도, 취직때도, 결혼때도 엄청난 프레미엄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택리지의 글귀처럼 조선인재의 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의 인재 반이 안동에 있다는 말을 우직하리만큼 신봉하고 있다. 그의 얘기를 듣다보니 안동에서 15년을 살고, 이제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진짜 안동사람이 아닌 것이 못내 서운할 지경이다.
안동시 옥정동 동부초등학교 주변 우체국장이던 할아버지의 관사에서 큰 집, 작은집이 어울려 무려 20명이 넘는 대가족들 사이에서 자란 그는 제삿날, 쌀밥을 먹으려고 잠들지 않고 버티던 유년시절의 기억과, 된장국에 든 된장덩어리를 고기로 알고 먹던 우리네 어른들의 힘겨운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체험한 촌사람이다.
김청장은 아침마다 할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리며 예절을 배웠고, 한자를 깨쳤으며, 손주들의 머리를 손수 깍아주시고 대신 이발료를 통장에 넣어주시던 할아버지를 통해 검약한 삶도 배웠다.
중학교 1학년에 올라,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를 따라 할아버지 품을 떠나게 됐고, 삯바느질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매일 새벽 4시 50분 안동역에서 서울에서 도착한 신문을 받아 팔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친 고학생이기도 했다.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도 어머니 생각에는 목이 메는가 보다. 그가 가슴에 새기고 사는 세가지, 안동과 어머니, 그리고 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의 후렴구이다. 짐작컨대 빈곤과 결핍을 경험하고, 개인보다는 전체와 조직을 우선하며, 규율에 매어 살아온 우리 기성세대의 한이 그에게도 있을 것이다. 장남이라는 책임감의 무게를 견뎌야 했으니 그 한이 더하면 더했을거다.
그런 그가 이제는 원도 한도 없다고 말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안동사람인 덕분에 무난하게 살 수 있었으니 이제 됐다고 말한다. 김청장의 말 속에서 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처신해 온 이면을 읽으며 그가 그의 남은 삶도 향기롭게 잘 마무리 할 것으로 보였다.
출향인사 모임 상락회
상락회는 안동 출향인사들로 구성된 전국 사무관급 이상의 공직자 모임이다. 올 2월 정기 총회를 통해 상락회장이 된 김청장의 상락회와의 인연은 지난 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청장은 86년 일본 아시아 경제연구소를 방문하면서 이 연구소에서 구주지역 출신인사들의 리스트를 파악해 관리하고 있는 것과 지역경제를 연구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돌아와 안동지역 출향인사들도 삼삼오오 유사한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소모임들을 묶어 상락회로 재구성하게 된다.
지금 상락회에서는 580여명의 출향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출향인사들의 안동을 근원으로 한마음이 돼 일하고, 지역의 크게 작은 일에 힘이 되고 있다 더구나 몇 몇 인사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상락회 결성 취지를 더욱 빛내고 있다.
김청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의 공보관과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공보관은 김청장이 아래 직원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본 일이 없지만 가끔씩 연수원에 가져다 놓은 진돗개를 찾아가는 것을 보며 진돗개를 통해 감정을 다스리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기자는 안동과 인연을 맺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 법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또 그인연이 김청장에게로 이어져 오늘 그가 사는 법을 보았다. 자신의 근본과 고향의 의미를 인생의 지표로 세우며 사는 사람, 그리고 현재의 좌표를 항시 둘러보며 자신을 추스리고 감정을 다스리며 사는 사람, 이제 40줄을 눈앞에 두고 나는 그를 통해 내 인생의 지표를 점검해본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