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세계화의 주춧돌(글/안동mbc)안동정신의 맥박을 틔우다
최근, 안동의 교육?연구기관과 한국학을 연구하는 세계의 석학들이 안동문화의 저력을 하나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른바 『안동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안동학’의 시작은 새로운 지방문화 구축의 성공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시사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볼링그린 주립대학… 이곳에서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인 후지야 가와시마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해외 한국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의 중앙이 아닌, 안동지방을 연구한 학자다. 안동의 문중과 동성마을, 양반조직 등 조선시대의 지방사회와 지방행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래서, 안동사람보다 안동을 더 잘 알고 있고, 안동사람 못지 않게, 안동을 사랑하고 있다.
그는 안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가와시마 교수에게는 마음속 한 켠에 묻어두고 있는 큰 스승이 있다. 바로, 안동의 향토사학자 고 서주석 선생이다. 그가 안동을 더욱 가까이서 접할 수 있도록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해 준 사람이 서주석 선생이기 때문이다.
가와시마 교수는 서주석 선생을 통해서 안동의 가치를 발견하게 됐다. 서주석 선생은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향토사학에 뛰어들어 향토학의 전형을 만들어 냈다. 중졸 학력으로 제재소를 경영했던 서선생은 늘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고민했고, 한국사의 근간이 되는 가족사에 관심을 뒀다.
선생은 20년의 여생동안, 안동문화권의 각 문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족보를 조사하고, 가문에서 배출한 인물들을 낱낱이 기록했다. 선생이 남긴 300여권의 노트에는 여생을 바쳐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들이 좁쌀만한 글자로 빽빽이 정리돼 있다.
매일같이 발로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직접 확인하고 고증한 결과를 토대로 사라지거나 묻혀있던 역사를 밝혀낸 것이다. 그 가치는 결코 가볍이 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서주석 선생이 남긴 이 방대한 자료는 후학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연구기반을 마련해 줬다.
한국 향토사학계에 선구자적인 족적을 남기고 간 소극 서주석 선생은…퇴계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진정한 학자의 모습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가와시마 교수와 서주석 선생, 이들이 안동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문화의 주춧돌로, 안동문화를 밝혀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백년 삶 속에 녹아있는 흔적들이 바로 기록이요, 역사적인 증거다.
안동문화는 잠자는 문화가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살아 숨쉬는 문화다.우리는 안동의 생활문화 속에서 그 근거를 찾아, 새로운 지방문화를 이끌어내는 실험도구로 사용하고자 한다.
반가음식, 조선 최고의 손님맞이 전통
음식은 인간관계를 묶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강력한 연대의 힘을 발휘했던 안동문화권에서 음식은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다.
종가의 가장 큰 책임과 의무는 봉제사와 접빈객… 접빈객은 문중을 찾아온 사람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의무였다.
종가는 문중을 대표하는 곳이기 때문에, 손님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다른 문중과 서로 관계를 맺고, 잦은 왕래를 벌여왔기 때문에, 손님을 맞고 대접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했다. 음식은 바로 이 손님맞이의 가장 훌륭한 수단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요리서, 『수운잡방』...16세기 안동의 탁청정 김유가 쓴 이 요리책은 종가에서 500년 가까이 간직돼오다, 80년대에 들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책은 손님접대에서부터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요리법, 작물재배법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17세기 정부인 안동장씨가 저술한 최초의 한글 요리서, 『음식디미방』
안동장씨는 퇴계학맥을 이은 경당 장흥효의 딸로, 여성군자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학덕을 소유했다. 장씨부인은 이 책을 대대로 되물림 해서 안살림을 맡아하는 여성들의 지침서가 되도록 했다.
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1700년대 말의 요리서,『온주법』…
현존하는 이 3권의 요리책은 모두 안동문화권에서 발견됐다. 책에는 지역적 특색을 살린 반가음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술에 대한 서술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은 전체 항목의 절반 가까이가 술이고, 온주법은 거의 대부분 ‘술’에 관한 내용이다. 각 종가를 대표하는 50여종의 술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간혹 농서나 부분적으로 술을 언급한 사례는 있지만, 전문적으로 양조법을 기록한 예는 드물다.
이들 요리서가 저술될 무렵, 안동은 퇴계학의 중심지로 꽃을 피우던 시기다. 학문교류를 위해서나, 관혼상제와 같은 유교적인 의례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동을 찾았다.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은 며칠씩 묶어갔기 때문에, 음식과 술은 늘 준비 돼 있어야 했다. 손님을 접대하거나 빈번한 제례를 치르기 위해서 술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집집마다 독특한 술을 빚었는데, 손님의 등급에 따라 접대하는 술의 종류도 달리했다. 술이 숙성되는데 걸리는 기간을 감안해 손님들의 방문 일정에 맞게 술을 담기도 했다.
수운잡방을 펴낸 광산 김씨 문중의 가양주인 벽향주는 쌀로 죽을 쒀, 누룩을 섞고 발효시킨 뒤, 밑술을 7일씩 두 차례 덧술하고, 14일만에 사용했다. 숙성기간에 따라 짧게는 일일주처럼 하루만에 먹는 술에서부터, 삼해주나 삼오주처럼 100일이상 걸린 것도 있다. 아예 독을 땅에 묻어서 장기간 발효시키는 술도 있었다. 술에서 알 수 있듯이, 안동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숙성과 발효에 있다.
숙성.발효된 음식은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보관이 가능해, 손님맞이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안동식혜 같은 독특한 발효 음식이나, 오랜 기간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생겨난 간고등어...(등).... 오늘날까지 다양한 발효음식이 전해지고 있다.
안동의 장기 보관성 음식은 산간오지에 넓게 퍼져있는 동성마을 간의 미약한 연대를 더욱 밀접하게 연결시켜 주기 위한 하나의 대응 방법이었다. 그 속에는 지역의 생활양식과 문화적 자긍심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한번 발걸음한 손님에게 그 맛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음식이다.
안동의 음식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해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손님맞이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역색 가득한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현존하는 3권의 전문 요리서를 통해 조선시대 지방문화의 중심지였던, 안동의 저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뜰집, 안동정신을 담는 그릇…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느 건축물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맞춰 시대별로 구조와 기능이 천차만별로 다양해 지기 때문이다.
□자형(입구자형) 주택인 뜰집은 안동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주택의 특징이다. 산간지형의 추운 기후와 은둔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외부와는 폐쇄적이고, 내부는 안뜰을 중심으로 모든 공간이 소통돼 있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외관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내부를 채워 넣는 구성적인 부분에서는 유교윤리를 가장 잘 적용시킨 건축형태라 할 수 있다. 일상생활의 공간에 유교적인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유가에서는 제사와 손님맞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데, 안동 뜰집의 구조와 기능은 바로 이 봉제사와 접빈객 문화를 실현하는데 맞춰져 있다.
풍산류씨 문중의 대종택, 양진당… 600여년 하회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조선 초에 지어진 이 건물은 서애 유성룡의 형이었던, 겸암 류운용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남아 생활한 곳이다. 원래 99칸이었던 이 집은 한 가문을 지켜 온 대종가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너른 마당을 지나, 정면에 일(一)자형의 기다란 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마당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자 구조를 하고 있는데, 안주인이 쓰는 몇 개의 방과 너른 대청마루가 있고, 맞은편에는 하인들의 공간인 행랑채가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한 안채는 상당히 폐쇄적이다. 외부에서 안채가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내외담을 설치해 엄격한 유교 윤리를 적용시켰다.
반면에, 사랑채는 지역사회와 각지에서 찾아오는 인사들을 맞기 위해 외부로 활짝 열려 있다. 사랑채는 1미터 높이의 축대 위에 건물을 얹어서 다섯개의 돌계단을 거쳐야 오를 수 있고, 6칸의 너른 대청은 가장 큰 규모여서, 종택의 사랑채가 지닌 품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곳은 평상시는 물론이고, 대소사가 있을 때 손님을 머물다 가게 함으로써, 확실한 외교공간으로 활용됐다.
일반적으로 뜰집은, 가장 안쪽이나 신성하다고 여기는 동북쪽에, 선조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제사때는 신위를 모시고, 바로 의례를 치루는 대청마루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사랑은 주로 3대가 함께 거주했기 때문에, 큰사랑과 작은 사랑으로 나눠 큰 어른이 지내는 곳을 구별했고, 안방도 상방을 둬 안채의 큰 어른이 생활하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유교적인 생활방식에 맞게 매우 짜임새 있는 구조를 보여준다. 뜰집은 내외의 구분이 엄격하면서도 안채와 사랑채는 비밀스런 통로로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손님을 접대할 때도 음식을 들고 돌아가는 일 없이, 이 통로를 이용해서 버선발로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밖에서 보면 안채는 닫혀 있지만, 내부 자체는 여러 개의 방과 부엌이 중앙의 뜰을 향해 열려있다. 안뜰은 음식을 장만하거나 아이들의 놀이터로, 혼례, 제사를 치르는 장소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집안의 대소사가 이뤄지는 공동의 생활공간이었던 것이다.
특히 안주인의 공간도, 신분이 달랐던 하인들의 공간도, 모두 안뜰을 중심으로 소통돼 있다. 이는 서울이나 호남지방이 하인들의 공간을 철저하게 분리시켜서, 위계질서를 엄격히 했던 것과는 달리, 하인들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뜰집의 사랑채는 외부의 힘을, 안채는 내부의 힘을 결합시키는 장소로 기능했던 것이다.
정자는 별채 건물로, 학문과 풍류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집 가까이 경치 좋은 곳에 지었다. 그런데, 안동의 정자는 특이하게도 마루에 온돌방이 연결돼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의 정자가 경치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마루만을 설계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온돌방과 마루의.. 닫힘과 열림은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사교의 기능에다 타향의 손님을 묶고 가게하는 숙박의 기능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낙동강이 감고 도는 안동 오천리 광산김씨 문중의 탁청정... 김 유가 지은 이 정자는 영남지방의 개인 정각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웅장한 곳으로 손꼽힌다.
탁청정은 전국에서 선비 묵객들이 끊이지 않았던 고급 사교장이었다. 이 마을을 지나는 명사들 중에 탁청정에 들리지 않은 선비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마루에는 한석봉이 쓴 현판과, 당대 명현들의 시판이 가득 걸려 있고, 앞에는 연꽃을 심은 못이 보인다. 퇴계의 선배이자, 강호문학의 선구자였던 인근마을의 농암 이현보는 이곳에서의 정취를 한 수의 시로 남겼다.
섬돌아래 네모난 연못 위 정자,
난간에 바람부니 서늘함이 밀려드네
계곡을 흐르는 냇물이 앞산을 막아,
넓은 처마 나직한 하늘, 북두칠성이 기우네
주인은 손에게 술 권해 취하게 하고,
이웃까지 불러 난간가에 술자리를 마련했네
나는 늙어 한가로이 물러나 있는 몸,
가끔씩 나를 불러 맑은 흥취를 함께 나누네
3,40명이 둘러앉을 수 있었던 누마루는 크고 작은 일을 논의하는 회의 장소로, 서로 학문을 교류하는 장으로, 손님을 맞고 풍류를 즐기는 유희의 장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정자야말로,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장치였던 것이다. 안동시 와룡면에 위치한 남흥재사…영양남씨 문중 시조의 묘제사를 치르기 위한 곳이다. 남흥재사는 시조묘가 한눈에백운정- 3,40명이 둘러앉을 수 있었던 누마루는 크고 작은 일을 논의하는 회의 장소로, 서로 학문을 교류하는 장으로, 손님을 맞고 풍류를 즐기는 유희의 장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신성한 기운마저 감돈다.
안동의 재사는 ‘재궁’이라고 부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의미도 남달랐다. 건축학적으로도 융통성과 적합성, 기능성을 볼 때 경이롭다고 할 만 하다. 그러나 지금은 고건축 학계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뜰집의 형태는 재사 건물에도 널리 활용된다. 학봉 김성일의 묘제사를 위해 건립된 서지재사는 뜰집 형태를 재실에 적용한 뛰어난 건축 실험물이다. 정면 5간, 측면 5간의 □자형으로 이뤄진 서지재사는 정면을 보면, 2층 구조로 돼 있다. 아래에는 광,대문간,외양간 등을 두고 위에는 누마루를 두었다. 건물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역할도 달랐다.
2층의 누마루는 제사를 지낸 후 음복석으로 사용했고, 대청은 제사를 지낼 때 필요한 음식을 장만하는데 쓰였다.
안동의 재사건물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제사준비를 위한 공간 외에 여관처럼 수많은 방이 딸려 있다는 점이다. 유교윤리로 보면, 제사는 가장 중요하고도 엄숙한 의례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혈맥과 학맥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된다. 이 여관방은 바로 이들을 묵고 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동의 각 문중은 1년에 단 3, 4일을 쓰기 위해 대규모의 재사를 건축했다. 묘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이었던, 재사는 뜰집, 정자와 함께 안동의 강력한 인적연대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거대한 재사 누마루에 모여앉은 후손들과 팔도의 유림들은 이러한 안동문화의 전통을 전국으로 이식시켜 나갔다.
세방화의 노력
오늘날 우리는 지방화가 곧 세계화라고 하는 이른바, 『세방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찬란했던 지방문화의 힘을 되살려 제2의 지방문화를 창출하는 일은 세방화 시대의 과제다.
지방문화의 자생력을 디지털 시대에 맞는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는 일은 그 과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안동지역에서는 과거의 문화적 역량을 다시 꽃피우기 위해 여러 분야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문화 컨텐츠 사업은 지방문화가 세계화 될 수 있는 가장 발 빠른 노력이다. 안동의 한 벤처기업은 100여개가 넘는 전국의 고건축물을 실체와 같은 모습의 3D 영상으로 복원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택과 정자, 서원, 향교, 주막, 관아... 고건축물의 구석구석을 3차원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통해서 사이버상에 영구적으로 복원해 냈다. 이 업체는 앞으로 고건축물과 당시 지형을 복원하고 여기에 각종 전승 설화를 가미해서 사이버 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네티즌들은 머지않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수백년 전의 안동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세계화를 향한 다양한 지방문화 육성의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적인 문화축제나 캐릭터 개발과 같은 노력들을 통해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도산서원 인근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최근 이곳에 전국 문중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목숨처럼 지켜왔던 조상의 서책과 목판을 국학진흥원에 꺼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국학진흥원은 국학연구를 목적으로 지난 2001년 문을 열었다. 개관 2년만에 고서와 목판 9만점을 수집했다. 이 가운데는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국보와 보물급 자료들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도산서원에서 5백년간 단 한차례도 반출되지 않았던 퇴계선생의 친필 서한과 문집 6천점과 4천장의 목판이, 이곳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국학진흥원은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목표로 목판 10만장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목판 10만장은 팔만대장경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목판을 보관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장판각 건립공사가 이미 착공됐다. 문중에서 잠자고 있던 지적 유산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국학 연구의 새로운 물꼬도 터트렸다.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책 발간과 유교문화 전시를 통해 학계와 일반인에게 자료도 제공하고 있다. 이는 활발했던 지방의 출판사업과 교육문화를 오늘에 잇는 작업이다.
안동문화가 과거 지방문화의 한 중심이었던 것처럼, 문화적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은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
지역문화, 세계화의 주춧돌!
우리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 한국 정신문화의 고향으로 안동을 꼽는다.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적 토양 위에서, 퇴계로 인해 꽃을 피운 안동문화는 한국 전통문화의 든든한 주춧돌이다.
퇴계가 이룩한 학문과 사상은 실천하는 삶 속에 있었다. 이는 지역문화 곳곳에 스며들었고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근간이였다.
뿌리를 지키려는 봉제사와 접빈객을 중심으로 한 음식문화, 덩실덩실 춤사위를 통해 사회의 탈을 풀어낸 하회탈의 미소속에서, 그리고, 종가?서원?정자?재사 등에..유?무형의 모습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는 과거 안동문화의 저력을 분석해 내면서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안동문화가 지방문화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독자적인 지방문화권을 형성해 문화적 지방주의를 향유한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속에서 생성된 문화의 단면이 시대별로 켜켜이 현재의 생활 속에 깊숙이 녹아 있다.
새로운 지방문화의 창출은, 과거 안동문화가 그랬듯이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정신적인 가치, 즉 새로운 시대의 비전과 강력한 연대의 힘이 발휘될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과도하게 중앙집중화 된 한국사회가, 어떻게 지방화에 성공해 국가의 균형발전을 가져올 것인가? 그 명쾌한 해답을 찾아내야 하는 지금, 안동문화는 제2의 지방화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 역할은 우리 스스로의 몫일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