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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한 임대용 대사(글/임종교)

나는 안동을 떠나본 일이 없다. 태어나 자란 곳도, 학교를 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기까지 이곳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거참, 요즘 사람 치고 참 답답한 사람이로군 할지도 모르겠다.
모성회귀 능력 탓인지, 조금만 바깥으로 다녀도 불안하고, 얼른 돌아오고 싶어진다.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특별나서도 아니지만, 난 그냥 내 자란 이곳이 좋다. 그뿐이다. 아마 이곳에 사는 것이 습관 들여져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빠르게 사는 곳에 적응하기 힘든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일지 모르겠다.

나와는 판이하게 반대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다 고향의 품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이 있다. 임대용 대사.
그는 2000년 12월 퇴직하기 직전까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총영사를 지냈다. 그의 외교생활 30년 중에 20년은 거의 해외에서 살았을 만큼 세상구경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모여서 담소 나누고, 바둑두고, 등산가고, 골프치고… 하는 편안한 퇴직공무원 생활을 뒤로하고 안동 금소동 그의 고향으로 찾아든 이유는 이렇다.
"퇴직하면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난 여기가 고향이고, 조상 대대로 금소에 15대째 400년 정도 살았으니 늘 마음에는 (퇴직하면) 고향 와서 산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직장이 있을 때는 직장 따라 어쩔 수 없이 객지에 살지만, 직장이 끝나면 우리가 고향으로 들어와 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의 이런 자연스런 포부가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건 아마도 그렇지 않은 우리네 현실때문일거다.

그 비근한 예로 든 것이 바로 전직 대통령들에 관한 것이었다. 무슨 욕심이 남아 그 주변을 어리대고 계신 것인지, 김영삼 대통령은 거제 가서 살고, 전두환 대통령은 합천 가서 살고, 노태우 대통령은 팔공산 가서 살고, 다들 내려가 자신의 고향을 위해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산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맑은 세상이 되어있지 않을까 말이다.
남은 여생 고향에서 고향사람들과 어울려도 보고, 그가 겪은 여러 가지 경험들을 기회가 된다면 학생들한테도 나누고 싶었던 그는 현재 경주 서라벌대학, 가톨릭 상지대학, 영주 동양대학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주로 서양문화나 세계정치쪽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남북관계나, 미국테러사건 같은 것들을 위주로 학생들의 국제화 마인드를 키워주고 싶어 열성을 다하는데 생각만큼 받아주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가슴한쪽엔 언제나 가야할 곳 고향

그러면서 준비하는 것이 과수농사다. 농사쪽으로는 한번도 경험이 없는 초자인데다 그저 그런 서울사람의 여가생활 쯤으로 그려질지 모르는 그런 선입견도 있었을텐데 그는 근 1년동안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나름대로 난 만족합니다. 푸근한 맘이 있쟎아요. 산을 봐도 반갑고, 땅을 봐도 반갑고, 지금은 농사지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농협 조합에 가입도 했고요, 거름도 스물 남은 트럭 들놔났고, 올겨울부터 해서 내년 봄까지 키 작은 사과 열마지기 정도 해 볼려고,"

그는 요즘 이 사과농사 때문에 한껏 꿈에 부풀어있다. 동양대학교 강의를 나가면서 본 과수원의 사과 빛깔에 매료돼 키 작은 사과나무를 심어보기로 결심했다는 그.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인가, 그러나 사물에 대한 감동, 사람에 대한 감동으로 그는 촉촉해 있었다. 적어도 메마른 사람들보다는 웃질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과 농사 짓는 걸 보니까 힘들어도 참 재밌겠더라고요, 특히 키 작은 사과는 1.2년 크고, 3년되면 과일이 열고 말이지. 사과가 익는데 그 빛깔이 내가 본 어떤 색깔보다 예쁜 색깔이더라고, 내가 그 색깔에 혹했어요. 나도 참 저런 걸 만들어 수 있을까하는 그런 희망, 색깔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어요. 완전히 안 익고, 익어가는 순간의 그 분홍빛, 어디서든 볼 수 없는 색깔이더라고"
싱글벙글이다. 농사이야기를 하고 학교에 나가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는 그런 밝은 모습이었다.

임대사의 기억 언저리에 남아있는 고향은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선친이 대구에서 공무원을 하셨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이곳을 방학 때면 와서 있고 했었지요. 근데 어릴 때 기억이 참 오래 남아 있어요. 개울가에 모래무지도 하고, 겨울 되면 나무 썰매 만들어서 얼음 지치고 하던 것이."

가슴 한쪽 언젠가 그 푸근한 곳으로 가야할 곳, 고향이란 이름으로 담아온 안동 금소리.
그러나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고향과 그가 막상 맞닥뜨린 고향은 같은 모습일 수 없었을터, "충분히 생각했고, 큰 기대를 하고 내려온 건 아니니까… 힘든 것도 있었지요. 다만 내가 어느 정도 적응하고 만족하고 살수 있느냐 그게 문제인데...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십니다. 요즘은 농협에 가서 놀기도 하고, 농장 같은데 다니면서 견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즐겁습니다."

다인안동이라고 했던가. 안동엔 인재가 많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지명도를 가지고 자기 영역을 가꿔있는 사람들 중에 안동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은 안동출신이면서 외무부 장관을 하던 이상옥 장관이 설마하면서
"미스터리 진짜 안동 가 있는가?"하며 확인전화를 거셨던 모양이다.
"진짜 안동 와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내려 오십시오"
라고 농담삼아 건네기도 했다.

해외로 다니느라 그는 중간중간에도 고향에 들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애착이 더 유난하게 느껴진다. 고향에 대한 막연한 자부심은 그가 안동에 오면서 좀더 구체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기도 하다.
"안동을 사실 잘 몰랐다고요. 막상 내려와서 안동의 유적지라든가, 문화재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면서 안동에 대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더 깊은 게 있더란 말이지요. 점점 더 내가 여기 온 게 헛되지 않았구나 잘했구나 하는 걸 느껴요."

그는 얼마 전부터 안동권발전연구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안동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문제를 놓고 세미나도 하고, 모르는 것도 배우고, 이런 시간들이 그에게 정말 소중하다.
우스개 소리였지만 콜롬비아에서는 수도인 보고타에 제2의 도시쯤 되는 메데진이라 도시 사람들이 옛날부터 정계, 학계, 재계등 많은 인력들이 진출해있다고 한다. 그런데 메데진이 고향이 사람들은 보고타에 살면서도 애기를 낳을때는 꼭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낳고 온다는 것이다. 들어본 즉슨 그만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전부 안동에서 애를 낳으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 그는 중남미에서 10년, 브라질에서 5년 콜롬비아 3년, 파라과이 2년, 미국 3년, 포르투칼 3년 뉴질랜드 2년반 이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그가 제일 미안한 건 다섯 딸들이다. 아버지를 따라 학교 옮기기를 수십번, 가장 적게 옮긴 딸들은 8∼9번, 특히 넷째딸의 경우는 고등학교만 4번에 14번 정도를 옮겨다녔을 정도다. 그래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잘 자라준 딸들이 늘 고맙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 혼자 내려와 있다. 아직 아내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대학교 2학년 막내딸의 뒷바라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맘 편하게 일 하기가 요즘 세상에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는 그걸 조금 지난 나이에 즐기고 있는 것이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그는 완벽하게 그렇게 떠나 있었다. 행복이란 단어가 아주 적절히 어울릴 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