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황조롱이의 포란과 부화, 원앙이의 목숨건 이소(글/이동수)

겨우내 우리들과 하루 종일 위장 텐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지내던 오리들도 시베리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3월이었다.



숨바꼭질을 하며 함께 밤을 새웠던 수달들과도 이별을 했다. 그들도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위해 꼭꼭 숨어 들었다.  수달 탄생의 신비로움을 추적할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적어도 나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을 훼손하거나, 남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기본 정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탄생을 지켜보기 위해서는 숨어 있는 집을 찾아야 하고, 거기에 카메라까지 설치하려면 녀석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심지어 출산의 포기까지 가져 올 수 있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고 수달보호협회장이 경고했다.)


 


분명한 건, 자연다큐를 제작하는 이유가, 보다 더 자연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연을 일깨워 주고 보호해서 더불어 사는 생활을 알리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촬영을 하며 그 일대 야산과 곳곳에 놓여져 있던 수많은 올가미와 덫을 기억한다. 그것은 동물들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의 목을 겨냥하는 것처럼 보였다.)


밤새 텐트에서 꼬박 지새고 새벽에 낙동강 모래 사장에 나오면 봄기운이 정신을 맑게 했다.

암벽을 바라보며 황조롱이를 기다리다

3월의 어느 따뜻한 날.
이제 거의 원시인이 되어 거기서 수달과 원앙이들과 함께 생활한 지 4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겨우내 촬영을 하며 함께 지냈던 수달과 원앙이들과도 이별하고, 아침 무렵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황조롱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절벽으로 사라졌다. 그곳은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다. 녀석은 강물 위를 선회하고는 매번 같은 곳으로 자취를 감췄다. 아. 이곳 어디엔가 비밀의 장소가 있는 것이로구나. 가능한 몸을 움직이지 않고 한쪽에서 숨어서 오전내내 황조롱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황조롱이가 사라지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절벽 가운데 틈이 벌어진 곳으로 녀석은 한번씩 몸을 숨기고는 구담의 강위를 순찰하러 나서곤 했던 것이었다. 적어도 황조롱이는 이곳 구담의 먹이 사슬 피라미드에서 제일 위쪽을 차지하는 맹금류에 속한다. 그래서 반경 2-3Km의 제공권과 그 아래 영토를 다스리고, 동식물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 황조롱이를 찍어야 한다. 그들의 비상을 하루 종일 지켜보아야 하고, 산란과 포란도 찍어야 한다.
일단 회사로 와서 촬영 장비를 다시 점검했다. 나는 모습을 찍기 위해서는 망원 카메라가 필요했고, 산란과 포란을 위해서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또, 절벽위는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 산악 훈련을 한 암벽 전문가도 찾아야 한다.


 


나와 카메라맨 임호진(현 제일미디컴 대표), 카메라보 안윤식(현 제일미디컴 실장) 셋은 밤 늦게 까지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했다. 다행히 처음 촬영 시작할 때 이러 저러한 장비와 카메라를 임호진이 서울 세운상가와 청계천, 용산 전자 상가등을 발품을 들여 돌며 제법 준비해 둔 터였다. 망원카메라는 55X(배) 중계차용 카메라를 갖다 놓기로 하고, 그 옆에 ENG 카메라를 대기 시켰다. 그리고 둥지에는 Pin Hole 카메라를 설치해야 했는데 케이블과 전지 기타 부대 장비를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암벽타기는 안동대 산악부에 부탁을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된 암벽의 핀홀 카메라 설치는 저녁 무렵 어둠이 스미고 나서야 대충 정리 될 수 있었다.(그날 하루 종일 카메라를 들고 암벽을 탄 안동대 산악부 윤영우씨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


 


이제부터는 절벽 앞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해야 한다. 밤새 강을 보고, 강 가에서 아침을 맞았던 겨울에서, 이번에는 암벽과 마주하고 하늘을 보며 봄을 나야 하는 것이다. 겨울 내내 텐트 안에서 추위와 싸웠다면 이제는 그 안에서 또 폭염과 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런 것이다. 자연 다큐의 촬영은 시간과 날씨와 자신과의 끝없는 대결의 장이다. 끈기 있게 버티고 팽팽하게 긴장하고, 그리고 돌아오는 그들과의 사랑. 자연과 대화하려면 그 속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라. 자연을 저절로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리라.

황조롱이의 탄생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는 텐트 속에서 한명은 암벽에 설치해 놓은 핀 홀 카메라를 들여다 보고 한명은 텐트 밖으로 뾰죽히 내민 카메라로 황조롱이를 추적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한번도 우리에게 한번만에 모든 것을 주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지칠때 쯤해서 하나씩 보여 줬다. 일주일을 건장한 체격의 남자 넷이서 좁은 텐트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사실, 별로 말이 없는 경상도 남자 셋이 한 텐트 안에서 생활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견디기 힘들다.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뭔가 화가 난 것 같고, 말을 하면 촬영에 지장을 준다.)


 


마침내 신호가 왔다. 그것은 암벽에 설치해둔 몰래 카메라로부터 였다. 어느날 아침에 구담습지로 출근(?) 하고 막 일과를 시작할 무렵 안윤식이 핀홀 카메라를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카메라 한쪽 귀퉁이에 보라색의 작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셋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보려 했다. 황조롱이의 알이 틀림 없었다. 카메라가 제대로 설치 되지 않아 모니터 화면 한쪽 끝에 겨우 보일락 말락 걸쳐 있었다. 암벽을 타고 올라가 카메라를 다시 설치 했다. 황조롱이는 모성 본능에선지 날아 가려  하지 않았다. 자칫열흘에 걸쳐 여섯 개의 알을 낳은 황조롱이. 어미는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날라 새끼에게 먹이고 있다.


날카로운 부리에 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녀석을 잠시 외출 보내고 겨우 카메라를 다시 설치했다. 황조롱이 알이 두개가 카메라에 잡혔다. 메추리알 만했다.


 


그때부터 황조롱이와의 고된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암수 두 마리의 녀석들은 한 마리가 알을 품을 동안 한 마리는 밖에서 집을 지키거나  먹이를 사냥해 왔다. 개구리, 작은 쥐, 도롱뇽등의 들짐승들이 작은 암벽 사이의 둥지 위에 즐비했다. 열흘에 걸쳐 모두 6개의 알을 산란했다. 그리고는 포란. 녀석은 끈기있게 알을 품었다. 하루 종일, 잠시 먹이를 찾아 나가는 것 외에는 하루종일 알 위에서 눈을 말똥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 위에서 졸거나 허튼짓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아. 저렇게 아기를 낳는 일은 눈물겨운 것이었구나. 황조롱이는 가끔씩 알을 부리로 돌려가며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 있었고, 그동안 수컷도 지극정성으로 암컷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돌봐 주고 있었다.


탄생! 한달을 그렇게 정성들인 황조롱이는 아기의 탄생을 맛보았다. 갓 깨고 나온 새끼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사흘동안 모두 다섯 개의 하얀 꼬마 황조롱이가 알을 깨고 나왔다.(알 하나는 부화하지 못함) 거의 움직임도 없고 몸만 뒤척인다. 어미는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날라서 옆에 두었다. 암컷은 자기가 먹기도 하고 가끔씩 새끼들에게 먹이기도 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둥지 밖에서 수컷이 울음소리를 내면 암컷은 재빨리 나가 먹이를 받아 온다. 수컷은 점점 더 먹이 사냥에 바빠졌다.

5월이 되면서 우린 바빠졌다.

4월 한달내내 암벽 앞에서 황조롱이와 알과 새끼와 지냈다. 이제 낙동강가의 풀들도 제법 푸른 빛을 내고 있었다. 5월이 왔다. 겨우내 짝짓기를 하던 원앙이도 어디선가 알을 낳고 포란에 열중하고 있을 터였다. 카메라맨 임호진(현 제일미디컴 대표)은 황조롱이의 먹이 주기와 비상을 열심히 땀흘려 가며 찍고 있을 동안 우리(나와 안윤식씨)는 원앙이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근처 산을 집중적으로 뒤졌다. 멧비둘기 새끼 두 마리가 둥지에서 눈만 말똥거리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잠시후 어미가 날아와 먹이를 주고 갔다. 아마 새들의 새끼 중에서 가장 못생긴 놈이 바로 멧비둘기 일 것이다.


 


그리고 습지 한가운데 2미터 가량되는 나무 군락에서 작은 새 둥지를 발견했다. 알은 없었다. 이제 막 알을 낳기 위해 어떤 녀석인가가 새로 꾸민 것 같았다. 모두 캠코더로 찍고 기록을 해 두었다. 며칠 후 드디어 원앙이의 둥지를 찾아 내었다. 책에서 본 그대로 고목 나무 속에 알이 열대여섯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알 크기는 오리알 보다 더 커 보였다. 어미는 가끔씩 날아와 알을 품고는 날아 갔다.


그동안 황조롱이는 어미가 주는 먹이를 먹으며 쑥쑥 자랐다. 입을 벌릴때는 목구멍이 빨갛게 다 들여다 보였고 다섯 마리가 서로 먹이를 먹으려고 어미에게 보챘다. 먹이를 조르는 소리도 제법 시끄러워졌다.



5월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바빠졌다. 황조롱이의 새끼 돌보기도 찍어야 하고, 원앙이의 포란도, 멧비둘기 새끼의 집 떠나기도, 수리부엉이의 둥지 찾기도 해야하고…… 봄은 모두에게 바쁜 계절이다. 자연은 절대로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봄이 되면 모든 생명들이 잉태하고 여름이면 자라서 가을을 지나 겨울에는 그 모습을 감춘다.

원앙이의 목숨 건 이소

원앙이도 알을 깨고 새끼가 나왔다. 5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 11시 40분경부터 한 두 마리씩 나오더니 오후 5시경 12개 정도가 부화를 마쳤다. 원앙이는 한달이상 몸을 못 가누는 황조롱이와 달리 24시간 이내에 완전한 활동을 한다.



내일쯤이면 녀석들도 이소를 시작할 것이다. 비상대기를 준비했다. 가지고 있는 카메라 모두를 원앙이 집 앞에 설치하고 나무에서 원앙이가 뛰어 내릴 것에 대비했다.(원앙이 새끼는 2m 높이의 나무에서 뛰어내려 어미와 함께 강으로 간다) 다음날 새벽 6시. 배가 출출해서 지프차 안에서 컵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침 9시. 아무리 기다려도 오늘은 날아 갈 것 같지 않다.


 


10시. 어미 원앙이가 한번쯤 나무 위로 올라가 바깥의 동정을 살피지만 날아 가지는 않았다.


 


11시. 아직도 그대로 새끼들을 품고 있고 새끼들은 어미 등위에 자꾸 기어 올라 간다. 나무 등걸 둥지 사이로 햇살을 받아 재롱을 부리는 원앙이 새끼들의 모습이 무척 귀엽다.


 


낮 12시. 어미 원앙이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망을 본뒤 순식간에 밖으로 뛰어 내리듯 날아 갔다. 이어서 새끼들이 어미를 따라서 나무에서 뛰어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맞은 편에서 촬영하고 있던 임호진에게 무전기로 다급하게 “원앙이들이 뛰어내린다”고 알렸다. 이어서 3-4분 동안 정신없이 촬영을 하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원앙이 둥지 나무 등걸 바로 앞은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자칫 원앙이가 자동차에 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미 원앙이와 새끼들은 뛰어 내린 풀 숲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모두 15-6마리의 새끼를 이끌고 어미는 혼자 밖을 내다 보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오후 3시. 거의 3시간을 기다렸지만 원앙이는 움직임이 없다. 오후 3시 30분. 어미 원앙이가 도로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도로 위 횡단을 감행했다. 순식간이었다. 15-6마리의 원앙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동차가 지나기 전 모두 도로를 가로 질렀다. 우리 셋은 카메라를 갖고 있었지만 겨우 한대만이 촬영에 성공했다.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지나다니는 도로 횡단에 성공한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원앙이의 목숨을 건 이소는 그날 우리들에게 흥분과 큰 기쁨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이른바 ‘대박’을 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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