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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와 조선해, 그리고 일본해(글/정진영)

‘동해’의 현주소

‘동해(東海)’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이름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렇게 불리고 표기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세계 속의 우리의 동해는 그 이름조차 지키지 못하고 ‘일본해(日本海)’가 된 지 이미 오래이다. 이제 동해란 외국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뿐 아니다. 심지어는 우리 나라 교통부 해도(海圖)에서도 한 때 “외국사람들이 알아보게” 스스로 ‘일본해’라고 표기할 정도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동해’ 이름 찾기 운동이 전개되자 마지못한 관계당국은 ‘동해’가 아니라 그 절충안으로 ‘일본해’를 함께 표기할 것을 국제수로기구(IHO)에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IHO를 통한 우리의 ‘동해’ 표기 구걸은 일본에 의해 보기 좋게 무시당하고 말았다.

오늘날의 세계 각국 주요 지도에는 우리의 동쪽 바다 이름을 대부분 ‘일본해(日本海)’로 표기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 만든 지도에서만 동해로 표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세계 여러 나라들은 일본 해상보안청 수로부(水路部)에서 ‘일본해’로 표기하여 제작한 지도를 참고하여 ‘일본해’로 표기된 또 다른 지도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물론, 이들 지도는 우리 나라에서도 쉽게 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해(east sea)’가 아니라 그 고유한 이름인 ‘조선해(sea of corea)’를 되찾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옛 지도상에서는 흔히들 동해라고 부르는 바다를 엄연히 ‘조선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래서 울릉도에 있는 독도 박물관(http://www.dokdomuseum)에서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국내외에 홍보하는 한편 ‘잊혀진 우리의 바다, 조선해와 조선해협’의 제 이름 되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노력의 하나로 “동해는 방위개념, 조선해가 고유명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지도 전시회’를 열고, 『잊혀진 ‘조선해’와 ‘조선해협’』이라는 연구자료집도 발간하였다.

말하자면 더 이상 동해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조선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차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걸 맞는 호응을 받고 있지는 못한 듯 하다. 그것은 ‘조선해’란 이름이 아직은 생소할 뿐만 아니라 그 당위성에 대한 이해 또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해’, 동해의 고유한 이름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느 곳에든 앞에 산이 있고, 그 산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앞산’이라고 부른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앞산이란 이름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에게 익숙하고 당연한 이름이라 하더라도 지도상에 표기될 때에는 앞산이라고 할 수 없다. 앞산은 고유한 이름이기보다는 그냥 앞쪽에 있는 산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상에서는 ‘앞산’이 아니라 그 본래의 이름으로 표기되기 마련이다.

동해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동쪽의 바다라는 방위개념이 고유명사화 한 것이다. 물론 우리만의 입장에서는 동해라는 이름이 더 정겹고 분명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만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우리만을 고집할 수 없다. 도리어 세계 속에 우리 자신을 당당하게 위치 지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동쪽 바다(東海)’가 아니라 그 고유한 이름으로 표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동해’의 고유한 이름은 ‘조선해’이다.
‘조선해’라는 표기는 우리의 옛 지도와 문헌에서뿐만 아니라 바로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1907년 『대일본수산회보』(제301호)에 실려 있는 글을 보자.

“고기가 많은 것에 대하여 일본의 해안이나 많은 섬을 대부분 답사했으나 조선해(朝鮮海) 만큼 고기가 많은 것을 본적이 없다. … 이것을 보더라도 조선해에 고기가 많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고래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얼마든지 무진장 잡힌다.”

여기서 일본이 우리의 바다인 조선해에 진출한 이유는 황금어장을 확보하기 위함이고, 조선해는 우리 나라와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해라는 이름은 1876년 이른바 강화도조약에서도 분명히 표기되고 있다. 이것은 두 나라가 ‘조선해’라는 이름을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일본 해군 수로국은 이후 우리 나라 해안에 대한 정탐 내용을 수록한 『수로잡지(水路雜誌)』에서 오늘날의 독도의 지리를 설명하면서도 분명히 “조선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 잡지에서는 또한 조선해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해로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조선해’란 한국과 일본간의 문헌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 18세기 벽두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공식 명칭이다. 최근 독도박물관 이종학 명예관장은 미국 남가주대학 소장 세계지도의 분석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가주대학 소장 고지도는 모두 141종으로 거의 대부분이 1709년에서 1895년 사이에 제작된 것이라 한다.

이 141종 가운데 ‘조선해’로 표기된 지도는 100종, ‘조선만(Gulf of corea)’으로 표기된 것은 28종이었으며, ‘동해’라고 표기된 경우가 1종이었다. 그리고 ‘조선해’ 또는 ‘조선만’으로 표기한 지도를 제작한 나라별로는 영국(69종), 프랑스(29종), 미국(22종), 이탈리아(3종), 네덜란드(2종), 독일(2종) 등이었다. 반면에 ‘일본해’로 표기된 경우는 11종에 불과하였고, 그것도 모두가 세계지도가 아니라 아시아 지역 지도였다. 이를 통해 보더라도 조선해는 18세기 이후로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던 명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해가 ‘일본해’로 둔갑한 과정

우리의 바다 조선해가 ‘일본해’로 둔갑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하기 이전부터이다. ‘일본해’로 표기되기 시작한 것은 1890년 어업협정에서부터였다. 이후 일본의 한 논객은 이제 조선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일본의 어선을 이 해상에서 종횡무진케 하여 만천하에 이를 널리 알리자고 하였다.

그래서 훗날 이 해상의 주권과 관련해 다른 나라와 논쟁을 벌였을 때 ‘일본해’라고 하는 불리한 근거에 대비하자는 파렴치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서막일 뿐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이후에는 우리의 또 다른 바다인 대한해협이 ‘일본해협’으로, 1905년 2월 22일에는 우리의 독도가 일본의 ‘다께시마(竹島)’로 둔갑하였다. 또 그로부터 5년 후, 1910년에는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점되는 치욕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 바다의 침탈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패망은 그들의 침략행위로 얻어진 모든 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바다와 독도에 대한 분명한 주권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더욱이 오늘날의 일본은 과거의 침략을 반성하기는커녕 침략사의 왜곡과 함께 ‘일본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바다(日本の海)’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의 바다’에는 그들의 영해만 있지 공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다의 주권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조선해라는 엄연한 역사성과 국제성을 가진 고유한 이름을 포기하고 방위개념인 동해로 뒷걸음치고 있다.

우리에게 조선해란 이름은 바다의 주권을 의미한다. 3면이 바다인 우리에게 바다의 주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바다, 조선해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은 억지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성과 국제성에 입각한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