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제조공장 대안냉동을 찾아서(글/권태용)

대기업 회장의 투신자살 소식을 비롯해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살기는 예전보다 나아졌다지만 정작 세상살이는 더 팍팍하고 예전만 못하니 내쉬느니 한숨이요 나오느니 짜증일 터. 여기에다 기온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노라면 어디 시원한 곳은 없을까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여름이다.
이 여름에 가장 시원하고 바쁜 곳은 뭐니뭐니해도 얼음공장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없이 살던 시절.
그 시절 그 여름에는 얼음 한덩이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낸 수박을 양푼에 담고, 송곳과 바늘로 쪼갠 얼음만 넣으면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던 날들이었다.
그 시절 수박은 또 왜 그렇게 잘 익었던지. 칼을 대기만 해도 쩍쩍 갈라졌고, 벌건 속살이 부끄러운 줄도 모른채 금새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에다 차끈한 얼음만 더해지면 삼복더위도 거뜬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하고 시원한 얼음일지라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결국 녹아 사라지는 법. 서민들의 여름을 서늘하게 식혀주던 그 얼음도 얼음가게도 이제는 하나둘씩 세월 속에 녹아내리고, 안동에서는 딱 한군데만이 얼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얼음보관창고 안은 영하 20도인데. 바깥 온도는 한창 더울 때 30도 넘어가니까 50도 이상 차이가 나지요. 방한복 입고 들어가도 5분 내로 나와야돼요. 오래 작업을 못해요”

한여름에 한겨울 털옷이라니…

안동시 용상동 대안냉동상사. 얼음공장을 찾았을 때는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올 여름 장마가 끝나고 막 더위가 고개를 들던 날이었다.
500평이 된다는 꽤 넓은 공장에선 마침 냉동창고의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한여름에, 두툼한 한겨울 털옷을 입은 일꾼들의 품새가 생경했다.



“감기는 뭐 거의 달고 있다고 봐야지. 우리는 냉동보관창고하고 겸업을 하는데 보관창고 안은 영하 20도거든. 바깥온도는 한창 더울 때 30도 넘어가니까 50도 이상 차이가 나.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몸에 균형이 안맞아. 겨울에는 바깥온도가 워낙 낮으니까 안에 들어가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때도 있어요. 한겨울에는 일하기 쉬운데 여름에는 작업하기가 힘들어요. 얼음이 어는 곳은 얼음탱크만 영하 13도고 그 위는 상온이거든. 그래서 작업하면 덥지만, 보관창고는 방한화 방한복 입어도 들어가서 5분 내로 나와야돼요. 오래 작업을 못해.”

새벽마다 긴줄서던 얼음공장

대안제빙의 정사영 대표(52)가 얼음으로 안동 사람들의 여름을 책임진지 올해로 27년째.
6명의 직원과 함께, 무게 135kg 짜리 얼음을 하루 50개씩, 6톤 정도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지금이야 냉장고 없는 집이 어디 있을까만은 처음 얼음공장을 시작했던 70년대 말 당시에는 얼음이 참 귀했다고 한다. 있는 사람들이야 냉장고를 이용했지만, 없는 사람들은 얼음으로 음식을 보관하고 여름을 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옛날 한창 성수기때는 하루 10톤 이상씩을 생산했지만, 그 얼음도 모자라서 새벽마다 긴 줄이 이어지곤 했다고.


“78년도가 아주 귀했죠. 그때는 안동에 얼음공장이 두군데였어요. 금곡제빙이라고 있었고 그다음이 우리 대안냉동. 그때는 새벽 4시부터 얼음을 사러와요. 그래도 얼음을 다 주지를 못하니깐 표를 나눠줬어. 순번표. 얼음생산이 한정적이라서 보통 얼음을 4시부터 생산하면 9시 되면 그날 생산량이 다 떨어져. 근데 이건 밤새기를 한다고 해서 얼음이 계속 나오는 게 아니거든. 처음 물을 담아가지고 얼음이 돼서 나올때까지 48시간이 걸려야 돼. 그래야 되는데 날씨는 덥고 가수요상태가 되니까 48시간을 얼리지를 못해. 그럼 보통 36시간만에 얼음을 댄다고. 속이 덜 얼어가지고 뻐꿈한 얼음 상태로 막 나오는거야. 그래도 소비자들은 그거라도 있어야 되니까 줄을 서고. 그런 얼음도 없어가지고 9시 되면 끝나. 그러면 문닫아야되지. 얼리는 시간을 가져야되니까 무조건 공장문을 닫고...나중에 오라 그러지.”


 


한마디로, 얼음이 없으면 여름을 나질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랬으니 얼음을 다루는 사람의 인기도 대단했을터. 어딜가나 공짜술은 기본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찜닭골목 쪽에 대포집이 많았는데, 얼음이 한참 귀할 때는 대포집 옆을 지나다보면 술은 늘상 공짜로 줘. 자기네 집에 얼음 좋은거 달라고, 배달 빨리 해 달라고.”


 


대안냉동에서 만들어내는 얼음은 안동을 비롯해서 청송, 영양, 의성, 영주지역으로 공급이 된다. 경북북부지역 전체에 얼음을 대고 있는 셈이다.


겨울에도 어물전이나 식당으로 얼음이 팔려나가지만 성수기 중의 성수기는 단연,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의 여름철. 1월과 7월의 매출을 비교하면 20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라니 그 일손이 오죽 바쁠까.



여름에 얼음배달을 하노라면 항상 앞섶은 축축이 젖어있었고 늘 배가 찼다고 한다.


“옛날에는 얼음 소비가 참 많았어요 아이스크림만 해도 요즘은 전부 냉동고에 넣지만 옛날에는 하드 통이라 그래가지고 얼음 채우고 소금뿌리고 그 다음에 아이스께끼 넣는단 말이래. 그걸 인제, 하루에 두 번 정도는 비닐봉지에 얼음 넣고 소금넣어서 넣어줘야돼 그래야 찬 기운이 나와가지고 유지가 되지. 옛날에 시내 구멍가게마다 하드통 두세개는 다 있거든. 그게 시내 전체에 다 있으니까 그 소비량이 굉징히 많다고. 안동 같은데도 하드공장이 있었지. 한창 얼음 모자랄 적에는 하드공장에 얼음양을 일정량 배당을 해 줘야돼. 늘 쓰는데니까 몇 장 따로 놔뒀다가 밤에 오라고. 그러면 밤에 실어주고. 연탄이나 마찬가지랬지. 연탄 귀할 때같이 얼음도 똑같았어”



그랬다. 시골마을, 어쩌다 아이스께끼 장사라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엄마 치맛폭을 부여잡고 종일 청을 부리곤 했고, 하드통의 얼음주머니가 다시 채워지기만을 눈빠지게 기다리던 날들이 있었다.



연탄같이 귀했던 얼음이었고, 여느 장난감보다 더 재미난 장난감이었다. 바로 그 얼음이 소중한 목숨들을 살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70년도 하반기에는 정전이 많이 됐거든. 정전이 많이 되면 전기를 못쓰니 냉장고도 전부 다 안되잖아요. 근데 어느 날 간호사가 오셨어. 와가지고 발을 동동 굴려 얼음 돌라고. 근데 그 양반은 줄 맨 뒤에 서 있는데 얼음이 금방 끝날 것 같은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어. 왜 그러냐니깐, 소아과에서 정전이 돼 가지고 냉장고의 주사약이 다 상한다 이거야. 그래가지고 줄 서 있는 소비자들한테 양해를 구했지. 병원에 귀한얼음집게.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무거운 얼음도 거뜬하게 옮긴다. 주사약이 다 상한다고 하니까 다들 먼저 주라고 그러드라고. 그때는 돈도 안 받고 그냥 얼음 줬지. 그때 간호사가 지금쯤 나이가 한 50대 안됐겠나”



말하자면 일종의 새치기였던 셈. 그렇게 줄을 서서 겨우 얼음을 구해가던 때였으니 가히 얼음파동이라고 부를 만 했다.

이제 대한냉동 한군데 뿐

대안냉동도 생산규모를 늘리고 더 바쁘게 가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라는 만고의 진리에 얼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73년에 집에 어른이 공장문을 처음 열어서 내가 직접 뛰어 든 것은 77년이었거든. 제일 힘들었을 때가 78년. 얼음 파동 났을 때. 그때 5월부터 가뭄이 왔거든. 얼음 수요가 늘고 얼음파동이 나니까 우리는 공장을 증설을 했어요. 증설하면서 동시에 전국적으로는 냉장고가 어마어마하게 퍼지는거야. 얼음이 귀했으니까 얼음 만드는 냉장고가 등장을 한 것이지. 그때가 전자업계 시작 무렵이었지 아마.그래서 아, 파동은 좋지 않구나. 너무 부족하면 반대로 튀는구나... 이래 생각을 했지. 참 어려웠어. 그때는 경쟁업소도 있었으니까 가격도 내리고. 일은 많고 수입은 적어지고.”



그후 경쟁업소도 문을 닫고 지금은 제조업체로는 대안냉동 한군데, 그리고 대리점격으로 세군데(금곡냉동 자리인 안동축협 옆, 향군회관 앞, 용상동)만이 얼음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옛날에는 수박화채 용으로 음식보관 용으로, 새벽부터 줄을 서야 겨우 사갈 수 있었던 얼음이지만, 요즘은 주로 바캉스 때 야외용으로 나가는 것이 여름 수요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손을 놓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옛날에 우리 클 적에는 얼음 한 덩어리 있으면 그게 즐거움이랬지요. 하지만 지금 사정 같으면 사실 공장 문을 닫아야 돼요. 내가 몇 번 그만 할라고 마음을 먹었다가 아직까지 얼음을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손을 놓을 수도 없고, 또 북부지역에 냉동창고는 여기 뿐이거든요.”

변하지 않는 건 얼음값뿐

“여름 휴가를 한번도 못 가. 결혼하고 나서 7, 8월에 휴가라고 가족들 데리고 놀러 가본 일이 없어. 우리 애들한테도 그게 늘 미안하지 남들은 가족끼리 피서를 간다 휴가를 간다 하는데 우리는 아직 가본 적이 없어”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서 작년보다 15% 정도 매출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하니, 바로 15년째 그대로라는 얼음 가격이다. 소매 가격이 30kg에 3천원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는 해도, 온통 오르는 물가 속에서 얼음 가격이라도 시원하게 유지가 돼야 하지 않느냐는 정사영 대표.



그러나 이 일도 오래 이어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안타까움 뿐이다.


“옛날에 우리 클 적에도 그랬고 얼음 한 덩어리 있으면 그게 즐거움이랬지. 하지만 지금 사정 같으면 사실 공장 문을 닫아야 돼 그만하고 싶은데, 내가 몇 번 그만 할라고 마음을 먹었다가 얼음 쓰는 사람들이 지금 중단하면 어떡할꺼냐 이거야.북부지역에 냉동창고는 여기뿐이래. 그러니 대구로 얼음받으러 가야되는데 그럴적에는 안동에 엄청난 피해가 오질 않느냐… 어떻게든 견뎌보자고 그러드라고.
그래가지고 그대로 하고 있는데,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나는 서비스 정신으로 하는 거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고 사명감으로. 사실상 현재 얼음 만드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얼음이 사양산업이 되는 게 안타깝고.나도 인제 관둬야 되지 않은가 싶고. 자식대까지? 그때까지는 못해. 일 자체가 유지가 안 돼. 허허허”



그 옛날, 한여름 얼음가게 앞은 언제나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였다. 어쩌다가 얼음을 썰고남은 얼음톱밥이라도 거머쥐는 날에는 마냥 신이 났고 마냥 즐거웠다. 이제는 그 시절도 그 여름의 추억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추억은 늙지 않는 법. 얼음과 함께 찾아오는 유년시절의 추억은 이쯤되면 행복한 덤이 아닐까. 허허허 웃음바람을 날리는 대안냉동의 정사영 대표도 어쩌면, 바로 그 행복한 덤을 위해서, 얼음을 잡은 축축한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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