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석문집성 발간 및 학술대회(글/편집실)우리는 2002년 6월에 개최된 월드컵 기간동안 환희와 열정을 모두 불살랐다. 한국이 경기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모여 '대한민국'·'필승 코리아'를 목청 높여 외쳤고, 골이 터질 때마다 옆 사람과 얼싸안고 기쁨을 같이 나누었다. 하나의 염원을 담아 우리가 단결하는 그 모습들이 이제는 부산아시안게임으로 이어져가는 것 같다. 월드컵 경기 때는 남측만 하나가 되었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서로 응원을 주고받을 정도로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합·화합·공동체,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저력이자 가슴 깊숙이 간직한 아리고 쓰라린 열망일 것이다.
{안동}지 73호(2001년 3·4월호)에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심우영)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하 국학원)의 설립 배경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것이 주 내용이었는데 특히 나라가 위기에 처해져 있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즉 유교적 공동체의식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국학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것이 국학진흥원의 염원이었다.
그 방법으로는 국학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고, 흩어져 있는 국학 기초 자료를 조사·수집·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연구와 함께 일반인들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국학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학원이 선도하고자 했던 이러한 국학운동은 {한국금석문집성} 발간과 학술대회 개최로 그 시작을 알렸다.
국학원에서는 그동안 국학 기초 자료를 조사·수집·보존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서로 남아 있는 자료 외에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금석문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고(故) 청명(淸冥) 임창순(任昌淳) 선생이 생전에 수집한 귀중한 탁본 자료가 안동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임창순 선생은 한학자로서 한학뿐만 아니라 금석문연구에도 조예가 깊었던 학자로서, 한국금석문을 총망라할 수 있는 총서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선사시대의 탁본을 모아 1984년에 단행본으로 발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총서를 발간하지 못한 채 타계 하셨고, 청명문화재단에서 선생의 유업을 잇기 위해 이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게 된 국학원에서는 청명문화재단과 탁본 소장자인 임세권 교수와 함께 {한국금석문집성}을 발간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한국 금석문을 총망라하기 위해 임창순 선생의 자료에 새로 수집된 자료를 추가하여, 2004년까지 삼국·통일신라·발해·고려시대까지의 금석문을 묶어 1차분으로 {한국금석문집성} 40권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책에는 현존하는 금석문 가운데 비(碑)·갈(碣)·표(表)·묘지(墓誌)·석각(石刻)·묵서명(墨書銘)·종명(鐘銘)·기명(器銘)·와전명(瓦塼銘)·토기명(土器銘)·조상기(造像記)·석탑기(石塔記)·탑지(塔誌) 등 모든 금석문이 수록될 것이다. 또한 한국에 현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제작된 고구려·백제 유민의 묘지명 등과 일본에 있는 금석문도 수록될 예정이다. 그 첫 작업으로 지난 9월 18일에 "{한국금석문집성(1)}-고구려1, 광개토왕비편"이 발간 되었다.
이번에 발간된 {한국금석문집성}(광개토왕비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광개토왕비의 도판을 수록한 부분이며, 다른 하나는 해제와 해설이다. 도판은 글자의 크기가 너무 커서 실물크기 50%로 축소해서 수록했다. 한 면에 6자씩 수록했으며, 비첩형식으로 탁본 원본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글씨가 새겨진 곳, 깨어진 곳, 글자가 없는 곳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해제 및 해설은 임세권(안동대)·이우태(서울시립대) 교수가 맡아 집필하였다. 그 내용은 해제와 판독문 및 번역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해제는 광개토왕비에 대한 개관과 도판으로 수록된 청명 임창순 선생 소장 탁본에 대한 고찰로 구성되어 있다. 판독문 및 번역문은 그동안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광개토왕비문을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조표를 함께 수록해서 눈길을 끈다.
광개토왕비 탁본은 처음 발견된 1880년대 초 이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그러나 1890년 이후에는 탁본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석회 바르기를 함으로써 1890년 이후의 탁본은 연구 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금석문집성} 제1권에 수록된 광개토왕비 탁본은 임창순 선생이 소장하였던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초기 탁본 가운데 연대가 가장 확실한 것이다. 중국인 탁공(拓工) 이운종(李雲從)은 이 탁본의 발문에서 제작연대가 광서(光緖) 기축(己丑)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광서 기축년은 바로 1889년이다. 그래서 이 탁본은 현시점에서 광개토왕비를 판독하는 데 있어서 아주 귀중한 자료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한국금석문집성}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 금석문들을 집대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 동안 1차 자료를 구하는 어려움으로 인하여 부진하였던 한국 고·중세사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금석문의 서체는 서예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이기에, 이 분야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학술대회 한국금석문의 세계
{한국국금석문집성} 발간과 더불어 한국 금석문의 세계라는 학술대회가 9월 27일 국학원에서 개최되었다. 이 학술대회는 조동원(성균관대) 교수가 [한국학과 금석문]이라는 기조강연으로 막을 올렸다.
제1부는 한국 금석학연구의 실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임세권(안동대)교수와 허흥식(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가 각각 발표하면서, 한국 금석학 연구의 동향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임세권 교수는 [조선시대 금석문 연구의 실태](朝鮮時代 金石文 硏究의 實態)라는 발표를 통해 조선시대 학문으로서 금석학이 성립될 수 있었던 시기를 18·19세기로 상정하면서, 그 이전에는 금석자료가 대부분 옛 명필들의 글씨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조사·수집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18·19세기에 진행되었던 금석학연구는 경학 범주에 머물고 있던 조선의 학문 세계를 새로운 근대적 학문으로 바꾸려는 개혁 작업이었다고 평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연구가 사회의 변화와 어떻게 일관되어 움직여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였다. 허흥식 교수는 [한국 금석학의 현황과 과제](韓國 金石學의 現況과 課題)라는 주제로 현 시점에서 탁본의 간행과 정리 방향을 제시하였다.
특히 금석문목록정리 표준시안을 제안하면서, 탁본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나 개인들이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전에 발간되었던 금석문총서를 보완하여 새로운 한국금석첩이 간행되어야 한다는 필요성과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전산화 작업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제2부는 예술사에서 본 한국의 금석문이라는 주제로 이호관(前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선생이 [한국 석비 양식의 변천](韓國 石碑 樣式의 變遷), 이완우(대전대) 교수가 [비첩으로 본 한국 서예사](碑帖으로 본 韓國 書藝史)를 각각 발표하였다. 이호관 선생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르는 전 시기의 석비 변화 과정을 꼼꼼히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불교적인 영향을 받아 석비가 비교적 화려한 모습을 띠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가치관 때문에 소박하고 실용적인 모습으로 변하였고, 각 시대별로도 양식의 특징에 따라 시기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음을 밝혔다. 이완우 교수는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李 )에 수록된 탁본의 서체와 그 특징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이 책에는 수록된 탁본 중 대표적인 서체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슬라이드로 담아 시각적인 효과를 살리기도 했다.
이 학술대회는 그간의 금석문 연구 동향을 점검하고 향후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앞으로 국학원에서 발간하게 될 {한국금석문집성}을 활용하여 보다 진전된 연구 성과를 배출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