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장 강호떡집 떡박사 권순연씨(글/권태용)
“호박시루떡에, 떡케익에, 새로운 떡 개발에 떡을 떡주무르듯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로 명절도 부담스러운 요즘이 됐지만, 그래도 세상살이가 어찌 돈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제수용품과 명절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이고 여기저기서 값을 깎아달라는 밉지 않은 흥정이 벌어지는 걸 보면 그래도 설은 역시 설이고 대보름은 역시 대보름이었다.
이런 명절이면 가장 바빠지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집. 차례상에 올릴 떡 주문이 밀려들고 떡국을 빼려는 사람들로 어느 때 보다 분주한 곳이 바로 떡집인 것이다.
사랑방 안동에서도 때를 놓칠세라 신시장에서 제일 맛있다는 떡집을 찾아 사람 사이를 누볐는데, 마침 차가운 겨울비가 내려 시장바닥은 더없이 질척거리고, 궂은 날씨 속에서도 대목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강호떡집.
떡 하나로 강호를 평정해서 강호떡집이런가, 입에 떡떡(!) 달라붙는 그 맛이 강호에 견줄 데가 없어서 강호떡집이런가.
그러나 설 대목을 맞아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빠 보이는 모습에, 그저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아쉬운 발길을 접어야했다.
떡집을 하면 그래도 굶을 염려는 없고 먹고 살겠다 싶어서 시작했지
설을 지나 다시 강호떡집을 찾았을 땐 이제는 한숨 돌릴 수 있겠거니, 이제는 조곤조곤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웬걸, 봉화에서 안동까지 일부러 떡을 주문하러 오신 할머니에, 맞춘 떡을 찾아가시는 아주머니, 간식꺼리로 일 이 천 원씩 사 가는 젊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오며가며 사람들이 떡을 찾는데, 평소에 사람들이 이렇게 떡을 좋아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아니래. 평소에는 안 바빠. 설은 지났지만 그래도 대보름까지는 바쁘지. 어른들께 인사하러 댕기니까. 하루 중에서도 오후 서너 시 이때가 바쁠때지.”
강호떡집 권순연(56) 사장의 이야기다.
“떡집은 시간이 너무 지루해. 새벽 6시에 문 열어가지고 밤 8시가 넘어야 끝이 나니까.”
설 대목 때는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바빴다고 하는데, 새벽 6시부터 시작해서 문 닫을 때까지 허리한번 제대로 못 펴도 장사가 잘 될 때는 마냥 신이 난다고 한다. 지금 자리에서 떡집을 시작한지도 올해로 벌써 10년이 넘었다.
“떡 하는데 이름이 알려지는 게 한 4년 정도 걸리더라고. 힘드는 거 치면, 이게 수고로 따지면 그만큼 안남아. 처음에는 기름방도 하다가 채소장사도 하다가 떡집을 하면 그래도 굶을 염려는 없고 먹고 살겠다 싶어서 시작했지. 옛날에는 이 자리가 강호여관 자리랬고, 주변에 강호이발관도 있어서 우리도 강호떡집이라고 이름 붙였지 ”
매일 같이 쌀이 드나드는 떡집이니 설마 굶기야 하겠나 싶어서 시작했다는 떡집일. 그렇게 시작한 이 일로 삼남매를 다 키워냈다.
요즘은 새로 개발한 호박시루떡이 잘 나가
“대목 때는 떡국 같으면 하루에 한 말, 전체적으로는 하루에 떡하고 떡국하고 한, 두말 정도? 옛날에는 떡국을 개인 쌀 불려 가지고와서 다 뺐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 없어. 전부 사가지고 가고. 경제적으로. 자기네 먹을 만큼만 사 갖고 가. 떡국도 옛날에는 집에서 다 썰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 없어.”
그래도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빵 대신 떡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새롭게 힘이 난다고 한다. 지금 강호떡집에서 만들어지는 떡은 종류별로 줄잡아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
열 가지가 넘는다. 찰떡이라 해도 겉에 무엇을 바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같은 떡이라 해도 소로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종류가 또 달라진다.
“그날따라 종류가 다르거든. 연세 많은 분들은 찰떡 종류 많이 가지고 가시고. 젊은 분들은 새로운 떡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자꾸 연구를 해 가지고 개발을 하고…. 지금 인기 있는 것이 감자떡 호박떡. 요즘은 호박시루떡이 잘나가. 그냥 호박을 해서 떡을 하니까 인기가 없어. 식으니까 맛없고 내가 먹어 봐도 안 좋아. 그래서 호박을 넣어서 시루떡을 하니까, 재료도 제일 좋은 걸로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해.”
지금이야 자유자재로 떡을 그야말로 떡 주무르듯 하지만, 떡집을 처음 차렸을 때는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처음에 가게를 시작할 때는 기술자를 직원으로 불러왔는데, 우리가 떡 기술을 배울까봐 안볼 때 다해. 안볼 때. 몇 달 데리고 있어봐야 배우지도 못해. 화장실 갈 때 다 해 뿌고. 그래서 나름대로 연구를 했지 혼자. 머릿속으로 해보고 실험해보고, 생각해보고 다시 또 해보고, 그래 갖고 여기까지 온 거래”
이제는 함께 일하는 사람도 권순연 씨 부부외에 세 명으로 늘었고, 호박시루떡이며, 떡 케익이며 이제는 기존의 떡에다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새로운 떡까지 만드는 떡박사가 다 됐다.
“여름떡에는 기지떡.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 겨울에는 추우면 일도 잘 못하고 (반죽이) 잘 개지지도 안하고, 제일 하기 어려운 게 감자송편. 찌면 까매지는 거. 이게 정성이 제일 들어. 보면 금방 될 것 같아도 해보면 안돼. 이건 기술이래. 하루에 많이도 안 만들어.
소 넣는 것도 그냥 넣는 것 같아도 파란거(완두콩) 하고 팥하고 양대하고 다 따져가면서 넣지. 여름에 더 하기 힘 드는 거는 기지떡.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시간이 아침에 6시쯤 개 놓으면 오후 5시정도 돼야 찔 수 있거든. 시간이 많이 걸려. 많이 하지도 못하고.”
떡맛의 비결은 반죽하고 간맞추는 거 밖에 없어
떡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떡 만큼 우리 식생활과 관련이 있는 먹을거리가 또 있을까. 생일이나 혼인, 회갑, 제사… 이렇게 생로병사의 굽이굽이마다 함께 해 온 우리의 전통이었고, 떡과 관련된 속담만 보더라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 ‘싼 게 비지떡’ ‘그림의 떡’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찰떡궁합’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개떡 먹던 입에도 찰떡 먹을 날이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이렇게 무려 백여 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떡이 얼마나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외국사람들도 강호떡집을 심심찮게 찾는다고 하니 새삼 뿌듯하다고.
“외국 사람들도 있어. 권해주는 대로 사가지고 가지. 어느 거 맛있느냐고 묻고. 떡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반죽과, 반죽에 간 맞추는 거, 소금넣는 거 하고 물 넣는 거 밖에 없어. 별 거 없어.”
그러나 별거 없어 보이는 그 비결에 떡 맛이 왔다 갔다 하니, 이것이야말로 강호떡집의 노하우요 비법이라면 비법인 셈.
떡을 사러왔던 손님(조애자 씨)도 옆에서 슬쩍 한마디를 거든다
“이 집이 맛이 있어요. 딴 집보다. 딴 사람이 하면 떡이 맛이 없는데 이 집에서 하면 맛있어. 다 같은 쌀이라도 맛있어. 딴 거 넣는 것도 아닌데 것 참 이상하대.”
기분 좋은 치켜세움. 그러나, 이런 칭찬을 받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우리가 최고 잘되는 떡집이 아니고, 최고 잘되는 집은 따로 있어. 단지, 우리는 재료를 좋은 거 쓰지. 안 좋으면 아예 안하니깐. 떡국도 딴 집보다 여러 벌 더 빼지.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세 벌 정도 빼. 재고도 남기면 안돼. 그건 철저하게 지켜야지. 아침에 해서 저녁까지 다 팔아야 돼. 다 못 팔면 이웃도 나눠주고 다 없애야 돼. 묵은 거 팔다가는 손님 떨어져.”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니까 맛이 있고, 맛이 있으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는 것일 터. 떡이나 사람이나 정성들이기 나름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 강호떡집이 심혈을 기울이는 떡은 바로 떡케익이라고 한다. 밀가루 음식 먹이는 것보다는 우리 쌀로 된 떡이 아무래도 건강에도 좋고, 우리 농민들을 살릴 수 있어서 더 좋은 게 아니냐는 권순연 씨.
“집에서 우리끼리 생일 할 때는 떡으로 케익하지. 무지개떡 식으로 해서 케익으로 만들어. 요즘으로는 호박떡케익. 호박이 노란색이니까 호박시루떡 모양으로 동그랗게… 진짜 케익하고 비슷해. 맛도 있고. 가격도 빵 케익보다 떡 케익이 싼 편이래.”
이제는 떡을 떡 주무르듯이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쉬지 않고 연구하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단번에 입맛을 사로잡는 서구식 빵의 달짝지근함이 아니라, 우리의 떡처럼 은근하게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 강호떡집을 두 번째 찾았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취재가 가능했듯이, 떡도 사람도 세상도, 어쩌면 두 번째에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 참모습인지도 모르겠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