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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돌아보는 학가산(글/윤천근)

영주에서 본 학가산

겨울 날씨는 늘 수상쩍다. 3한4온이라는 말은 그 수상쩍음을 합리화하려고 슬며시 법칙성을 갖다 묶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마저도 요즘에는 시효가 마감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학가산을 멀리 두고 한번 돌아보자는 계획을 오래 가지고 있다가, 사랑방의 방장하고 어렵게 시간약속을 하고 카메라 챙겨들고 아침 일찍 만난 날, 방장의 제 1성은 “오늘은 안개가 끼어 학가산이 잘 안 보이네. 그동안은 날씨가 추워서 학가산이 멀리서도 깨끗하게 보였었는데…”였다.

그 말은 우리의 택일이 잘못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택일이야 점가치 나눠보고 한 것이 아니니 누구에게 따로 시비 걸 이유는 없는 일이겠지만, 계획한대로 언제나 척척 일이 풀리는 신통력을 갖추고 있지 못함이 은근히 한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학가산의 원경을 눈으로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으므로, 멀리까지 시야가 깨끗하게 확보되는 날씨는 필수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기댈 것은 오직 해가 뜨면 안개가 걷힐 것이며, 그러면 시야가 확보될지도 모른다는 것 뿐이었다. 우리는 우선 영주 쪽으로 나가보기로 하였다.

학가산을 설명하는 자료에 의하면 학가산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영주, 서쪽으로는 예천, 남동쪽으로는 안동이 똑같이 15키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고, 세 고을을 이어주는 국도가 삼각형을 이루는 가운데 870미터 (높이)로 솟았다. 그런 만큼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 (부르는) 이름도 많다. 영주에서는 정산이 평평하(게 보인다고 하)여 선비봉이라고 하고,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게 보인)다고 하여 문둥이봉, 예천에서는 모습이 수려하다고 하여 인물봉으로 부른다. 예천 보문면 기곡리 북북서 방향의 내성천 건너에 있는 느릅실마을에서 보면 학가산은 정말 학처럼 보인다.”

방장이 인터넷에서 뽑아온 자료는 여러 가지인데, 주된 내용은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계획은 현장에서 이 기록의 진위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영주 쪽으로 나가는 국도는 새롭게 단장을 하여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2차선의 길과 4차선의 길은 다만 노면의 폭이 달라지고, 주행영주 문수면 수도리에서 본 학가산. 영주에서 보면 정상이 평평하게 보인다 하여 ‘선비봉’이란 이름을 얻었다. 영주는 학가산의 북쪽에 위치하며, 영주 쪽에서 보는 학가산은 그 동북쪽 측면의 모습이다.

속도가 달라진다는 차이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와 동행하는 길이냐, 효율성만을 강제하는 길이냐의 차이를 갖기도 한다.

길의 효율성은 점과 점을 이어주는 것이다. 4차선의 국도는 차단과 속도라는 두 장치를 통하여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식을 강화시킨다. 한번 그 길에 올라서게 되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길로부터 내려설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의식과 가장 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고속도로인데, 나는 4차선 국도 역시 고속도로와 동질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모세혈관이 폐기된 길, 대동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4차선 국도나 고속도로인 것이다.

반면에 2차선 국도는 아직 모세혈관과 이어져 있는 길, 언제라도 샛길로 빠져들어가 주변지역의 삶과 문화를 기웃거려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는 길이라고 여겨지는데, 이것은 혹시 나만의 어줍잖은 생각은 아닌지 모르겠다.

4차선 국도를 80키로 속도로 내달리다 보니,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영주 풍기 사이의 직선도로에 이르러 있었다. 너무 빨리, 너무 멀리 온 것이었다. 내친 김에 풍기까지 가 보기로 하였다. 전에 방장이 학가산을 잘 조망할 수 있었다던 풍기 동양대학교 주변까지 가 보았으나, 학가산 방향에는 잿빛 안개만이 가득하였다. 보다 가까이 가야 학가산의 형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되짚어 나와 영주 근방에서 2차선 국도로 내려섰다. 영주에서 예천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문수역 앞쪽으로 돌아들었을 때, 여전히 뿌연 안개에 감싸인 학가산이 드디어 우리의 시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문수역 앞에 멈추어 서서 오래 학가산을 지켜보았다.

영주 쪽에서 보는 학가산은 정상이 평평한 모습이라 하였다. 그래서 선비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문수역 앞에서 보는 학가산은 과연 정상이 평평한 모습, 마치 벽면의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고려자기 주발을 엎어놓은 형상이었다. 그런데 왜 선비봉이라 한 것일까? 바르고 단정한 모습이라서? 험준해 보이지 않아서? 그것 외에 따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영주는 학가산의 북쪽 멀리에 위치한다. 영주 쪽에서 보는 학가산은 그 동북쪽 측면의 모습이다.

학가산의 북쪽 강역은 내성천이 확정하여 준다. 내성천은 영주 쪽에서는 학가산 북쪽 영역을 확정하여 주고, 예천 쪽에서는 그 서쪽 영역을 한정지어 준다. 영주의 대부분 지역은 학가산에서 보면 내성천 저쪽편에 놓여진다. 굳이 풍수의 논리를 원용하지 않더라도, 산은 물을 넘어서지 못한다. 내성천 이쪽의 학가산 쪽으로 붙은 영주영역은 수도리 정도인데, 수도리까지 학가산 영역으로 포함시킨다면 너무 범위가 넓어진다.

그러므로 영주는 학가산 기슭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학가산을 조망하는 지역으로 보는 것이 옳을 터이다. 영주는 풍기와 함께 무엇보다도 소백산 영역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예천에서 본 학가산

영주시 문수면에서 내성천변을 타고 서행하면 예천군 보문면에 이른다. 보문면은 보문산으로부터 면의 이름을 취한 것일 터인데, 보문산은 학가산 서쪽으로 좀 떨어져서 위치한다.

1861년에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서 봉화 쪽으로 흘러내린 지맥이 한쪽에서는 온혜 쪽으로 내려서면서 영지산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태자산으로 갈라져 나와 서남행 하여 학가산 쪽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학가산을 포함하는 작은 산맥은 동서로 펼쳐져 있는데, 동쪽으로는 어름산을 만들어 낙동강과 만나고, 어름산 서쪽에서 천등산을 밀어올린다. 천등산은 아래쪽으로 뻗어내려 저수산을 지어서 안동을 끌어안고, 서쪽으로는 옹천 위쪽에서 박달산과 만난다. 박달산은 서쪽으로 조골산으로 이어지고, 조골산은 서남행하면서 동쪽 날개로는 하가산, 서쪽 날개로는 보문산을 만든다. 하가산은 남행하여 하지산을 만드는데, 그 한 갈래는 하회의 병산으로 이어져 나가 낙동강을 만나 멈춰 선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현장과는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을 갖는다. 김정호에 의하면 보문산은 하가산 위쪽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간 독산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지도에 의하면 학가산 아래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간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퇴계가 낙동강 동쪽으로 붙어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고, 도산 역시 낙동강 동쪽에 그려져 있는데, 사실은 퇴계나 도산은 낙동강 서쪽으로 그려지는 것이 옳다. 이러한 사례들은 김정호의 작업이 위대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일정하게 한계를 갖는 것이었음을 증거하여 준다.

어쨌든 학가산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속에서는 하가산(下柯山)으로 표시된다. 그것은 낙동강의 두 지류, 청량산으로부터 안동으로 흘러내리는 낙강과 영주로부터 예천으로 흘러내리는 내성천 사이에 횡으로 넓게 펼져져 있는 산맥의 흐름 속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작은 산맥 속에서는 가장 높은 산에 속하는 것이다.

예천의 보문면은 보문산에서 이름을 가져다 쓰고 있지만, 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성천 동쪽 영역을 학가산과 보문산이 반분한다고 할 수 있다. 지도상에서 볼 때, 학가산과 보문산 사이의 갈마령이 두 산의 경계를 가르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판단이 그릇되지 않다면 보문면은 보문산 영역보다 더 넓은 지역이 학가산 영역에 속한다고 하겠다.

“보문면은 예천에서 6번째로 넓은 면으로 22개 행정동, 13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구는 총 2천 30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내성천 건너, 학가산 쪽으로는 산성, 우래 등이 있지요.”

전우대 보문면장의 말이다.

학가산의 보문면 영역은 주변 네 개 읍 면 중에서 제일 넓다. 보문면 쪽 학가산 영역에는 산성리, 우래리, 오신리, 도계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산성, 느르치, 가거리, 우평, 문래살, 오류, 신운, 수양, 장수골, 가리골, 방지미 등이 이 영역에 속한다고 하겠다.

예천 쪽에서 학가산은 학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특히 느릅실 마을에서 보면 학의 모습이 완연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느릅실 마을을 예천 쪽에서 학가산을 조망해야 하는 좌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느릅실 마을은 어디에 있는가? 안개가 많이 끼었던 첫번째 답사에서 우리는 느릅실 마을을 찾는데 실패하였다. 보문면에서는 폐동된 지 10년도 넘었다고 하였다. 폐동이 되었다고 하여도, 그곳이 학 모양의 학가산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이라면, 끝내 가서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 후, 맑고 추운 날의 두 번째 답사에서 우리는 느릅실을 찾아냈다. 도로에서 농로를 타고 조금 들어간 곳에 느릅실은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 폐가가 되어 버린 집 두 채, 한쪽 집의 기둥에는 ‘축우생산 표본농가’라는 글씨가 씌여진 사각의 나무문패가 못에 박혀 매달려 있었다. 글씨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고, 옆으로 비뚤어진 자세였다.

느릅실 마을에서는 산으로 앞이 막혀 있어서 학가산 쪽을 볼 수 없었다. 결국 학모양의 학가산을 볼 수 있는 느릅실 마을이라는 것은 마을 속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쪽의 내성천변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여졌다.

영주 쪽에서 내성천을 따라 예천 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학가산은 점점 북쪽 측면의 중앙부분을 드러낸다. 정상 부분이 반듯하게 잘려있는 토성의 학가산 모습은 사라지고, 부드러운 수성의 산들이 올망졸망 몰려 서 있는 너머로 한가운데에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올라서 있는 화성의 학가산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느릅실 마을 앞, 내성천 변에서 바라보는 학가산은 양쪽으로 뾰족한 산들을 중첩하여 거느리고 있는 가운데에 삼각형으로 솟아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학의 모양이라 할 수 있을까? 굳이 말하자면 양쪽으로 늘어선 삼각형의 군집은 날개의 형상이라 할 수 있고, 중앙의 높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학가산은 몸체의 형상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학이 내성천을 향하여 내려오는 모습인가? 그러나 학의 모습이 완연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의 시선이 인색한 탓이리라.

“학가산이 예천에서 보면 붓끝처럼 생겨서 예천에는 선비가 많고, 영주서 보면 노적가리같이 생겨 영주엔 부자들이 많고, 안동에서 보면 악산이라서 안동에는 나병환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전우대 보문면장이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라고 하였다.

붓 끝처럼 생겼다고 하는 것은 학가산만을 가지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학 모양으로 보인다는 것은 학가산과 주변 산들을 아울러서 하는 말일 터이다. 그 사이에는 보고자 하는 입장에 따라 편차가 나는 산의 형상에 대한 비밀이 있다.

나는 내성천과 평행을 이루는 여러 횡선들의 중첩된 층으로 예천 쪽 학가산의 모습을 보았다. 무수한 물결들이 밀려오는 바다의 형상, 아니면 여러 개의 발을 굼실거리는 게의 형상이라고 할까? 느릅실 마을 쪽에서는 학 또는 게의 형상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그 좌 우로 나아가는 지점에서는 여러 층으로 중첩된 학가산의 파도가 밀려드는 바다 형상이 두드러진다.

안동에서 본 학가산

예천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으로 오다 보면, 호명의 직산터널에서 도로는 산의 주맥 속으로 파고 든다. 당연히 호명 쪽에서는 학가산은 볼 수가 없다. 호명에서 예천 쪽으로 나아가면 서서히 예천 쪽 학가산의 특성이 나타나고, 호명에서 풍산 쪽으로 나아가면 안동 쪽에서 보는 학가산의 특징이 드러난다. 예천 쪽에서 학가산은 그 측면 북서쪽 중앙부분, 또는 서남쪽 후방 부분을 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물론 산이 동쪽 방향에 머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풍산을 넘어서면 학가산은 우뚝한 투구모양의 산세를 드러낸다. 자세히 보면 영주 쪽 학가산과 같은 형상이지만, 얼핏보아서는 그 점을 알아채기 어렵다. 왜인가? 영주 쪽에서 학가산은 살집이 풍부한 육산으로 조망되지만 안동 쪽에서 산은 바위로 뒤덮인 골산의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주 쪽에서 보는 것은 학가산의 북동쪽 전면 부분이고, 안동 쪽에서 보는 것은 그 남동쪽 전면이다. 안동쪽 학가산의 모습은 거칠다, 악산이다 라는 등의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안동쪽 학가산을 뒤덮고 있는 바위면이 만들어 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바위면의 울퉁불퉁한 모습은 안동쪽에서 보는 학가산도 영주 쪽에서 보는 것처럼 정상부가 평면으로 잘라진 모습이라는 것을 감추어 버린다.

첫 번째 답사로부터 일주일 뒤, 두 번째 답사는 택일을 제대로 하였다. 춥고 맑은 날, 멀리에서도 학가산이 깨끗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두 번째 답사는 안동으로부터 시작하였다. 낙동강 너머, 정상동으로 향하는 안동 고등학교 쪽 다리 위서부터 학가산은 온전히 나의 시선 속으로 들어왔다. 정상동 동쪽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학가산을 조망하며 멈춰 서 있었다. 양쪽의 제방이 만들어 내는 평행의 횡선 속에 갇힌 낙동강의 물결은 얼기도 하고 녹아 흐르기도 하며 다양한 곡선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놓고 있었다. 그 직선과 곡선의 어울림, 흑 백의 조화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한 낙동강 영역 위로 시선을 옮기면, 제방의 횡선 위로 올라앉은 안동이 넓게 펼쳐져 있다. 새로운 안동, 여기저기 자리잡고 들어선 아파트의 밝은 색깔과 각진 수선들이 만들어내는 현대 안동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낙동강 건너, 멀리서 조망하기에 그 수선들이 갖는 낯설고 위험스러운 느낌은 거세되어 있다. 현대가 풍경 속에 녹아드는 것은 그렇게 먼 거리에서 뿐이다.

그 현대 안동의 수선들의 위쪽으로 안동을 북서 쪽에서 옹위하고 있는 산들이 내려앉아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위쪽으로 학가산은 무겁고 둔중한 투구모양의 모습으로 모든 횡선들과 수선들을 한데 모아 중앙에서 눌러주고 있었다.

원경으로 보는 학가산의 넉넉하고 다정한 자태는 송야천 쪽에서 924번 도로를 타고 춘파 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금제의 초입에서 보면 길이 끝나는 전면에 학가산은 길게 이어지는 살지고 완만한 기슭을 대동하고 그 너머에 버티고 서서 고향집 대문께에서 길 떠났던 자식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마중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따사로운 양광은 그 기슭에서 부서져 내리고, 우리는 그 산의 품에서 우리의 생활이 평안하리라는 느낌으로 조금쯤은 마음이 들뜨기조차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학가산이 서후의 주산임을 발견하게 된다.

“자품리, 대두서리가 학가산 마을이지요.”

강호일 서후면장의 말이다.

자품리에는 88가구 238명, 대두서리에는 115가구 322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백현, 간리, 천주, 자품, 창풍, 웃창풍, 구억마을, 한두실, 오동정 등이 있다.

학가산은 서후의 산이기도 하고, 또 북후의 산이기도 하다. 북후는 무엇보다도 면 소재지인 옹천에서 학가산을 질러 넘어서 영주시 문수면 쪽으로 나아가는 928번 도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학가산을 품고 있는 면이라고 할만하다.

“학가산이 분포하고 있는 면적으로 치면 서후 쪽이 더 넓습니다.”

안성종 북후면장의 말이다.

“그렇지만 서후하면 천등산이라고 보아야 하고, 아무래도 학가산은 북후와 더 관계가 있지요.”

928번 도로를 타고 학가산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디서부터 학가산 영역이라고 하여야 할지 나누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운산으로부터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선을 넘어서야 학가산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월전리까지는 학가산 영역에 편입시키기 어렵고, 석탑리, 신전리 쪽이 학가산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자연부락으로는 운곡, 구싯밭, 청골, 새터, 마우실, 북절골, 감나무골, 개랄, 구역들, 구듬실, 압령골 등이 있다. 북후면의 강문하 총무계장이 정리해 준 자료에 의하면 석탑리에는 69호 145명, 신전리에는 117호 275명이 산다고 한다.

우리는 928번 도로를 타고 학가산을 넘어 보기로 하였다. 옹천에서 출발하면서 자동차의 미터기를 눌렀다. 옹천에서 월전마을까지는 6키로미터. 경사진 고갯마루 끝의 터진 틈으로 학가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갯마루가 액자역할을 하여, 그 사이의 학가산의 모습은 조명을 담뿍 받고 있는 그림과도 같다.

고갯마루 위에 올라서자 학가산과 신전마을이 눈 아래 펼쳐진다. 산마을과 산의 굴진 능선들, 풀어헤쳐 놓은 밭들, 밭 사이에 휘돌아드는 농로의 모습까지가 신선하고 아름답다. 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방장은 여러 번 와 본 곳이라서인지 내가 감탄하는 모습을 슬며시 넘겨다보며 카메라만 들이댄다. 이 양반은 마치 자신의 정원을 구경시키기라도 하는 듯이 나에게 감춰둔 비경을 슬며시 보여주고 나의 감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스스로 즐기는 취미를 갖고 있다. 나의 감동의 크기에 따라서 그가 마음 속으로 만들어 갖는 미소의 크기도 달라지리라.

“거기 신전리 밭에 메밀을 대대적으로 심어 봤는데, 메밀꽃 필 때 내려다 보면 경치가 좋아요.”

안성종 북후면장의 말이 기억났다.

“내가 볼 때는 설경이 제일 좋아요. 가을 단풍은 별로 없어요.”

설경과 메밀 꽃 흐드러지게 핀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동일한 미학적 관점이 안성종 북후면장의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리라.

학가산의 전경이 주는 감동은 석탑리를 지나서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석탑교를 넘을 때까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내성천 너머, 석탑교의 영주 쪽 끝에서 우리는 정차하여 석탑교와 저 너머의 석탑리, 그 뒤로 펼쳐져 있는 학가산 영역을 오래 돌아보고 있었다. 푸른 띠를 두른 안동버스가 석탑교를 넘어와 영주시 문수면 방면에서 돌아나가 석탑교 저편의 석탑마을 초입에 정거하여 있는 것이 보였다. 우연일까? 주홍색 띠를 두른 영주버스가 석탑교의 영주쪽 영역에서 정거하여 두 세명의 사람들을 내려 놓았다. 그들은 석탑교를 건너서 석탑리 쪽으로 걸어갔다.

“신전 석탑 주민들은 안동보다 영주를 더 자주 출입합니다.”

안성종 북후면장의 말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학가산 영역

산의 영역을 확정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고, 어찌보면 무의미한 작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학가산 영역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워놓고 있는 만큼, 억지로라도 그 경계를 확정하여 둘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학가산의 북쪽과 서쪽 영역은 내성천이 나누어준다. 그러나 보문산과 만나는 서남쪽 영역은 내성천을 경계로 삼을 수 없다. 여기서는 갈마령이 기준점이 되어 도계에서 갈마령으로 이어지는 301번 농로가 보문과 학가를 나누는 경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서남쪽과 동남쪽의 경계를 확정함에 있어서는 풍산읍의 상리천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가산의 관음절 쪽에서 흘러내린 물길은 계명원을 거쳐 상리천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갈마령에서 악대를 거쳐 이 상리천의 지천을 따라 가설되어 있는 101번 면 도로를 타고 내려와 상리천과 만나는 선이 학가산의 서남쪽 경계가 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상리천의 본류는 안동시 서후면의 서쪽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가르고 내려온다. 이 시내를 타고 9번 군 도로가 동행하기도 한다. 오동정에서 백현 사이, 안동시 서후면에 속하는 학가산의 동남쪽 경계는 바로 이 선에 의하여 나누어질 수 있다.

남은 것은 동북쪽 영역인데, 이 부분은 서후면의 백현에서 북후면의 운곡과 구싯밭으로 나아가고, 거기서 202번 리 도로를 타고 가서 석탑리의 개랄에서 내성천으로 들어가는 개울물을 따라가는 선이 경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상으로 대충 계산하여 보았을 때 약 60평방키로미터 정도의 넓이이다.

위와 같이 본다면 학가산은 마름모꼴의 영역을 갖게 된다. 위의 세 면이 품고 있는 마을들과 풍산읍의 관음절, 악대, 대밭골, 계명원 등의 자연마을을 포함하는 것이 학가산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산읍에 속한 영역은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이다.

“서미 1, 2동과 죽전 정도가 학가산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서미는 약 77호 정도, 죽전은 약 116호 정도, 총 500-600명의 사람들이 거기 산다고 하겠지요.”

풍산읍에서 우리의 취재에 응했던 담당자의 말이다.

그러나 위에서 내가 구분하였던 마름모꼴 학가산 영역을 전제로 하여 말하자면, 죽전리의 반절정도, 약 150명 정도가 학가산 영역에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후의 550명, 북후의 550명, 풍산의 150명 등인데, 여기에 예천 쪽에 300여명이 산다고 보면, 약 1500명 정도가 학가산에 기대어 산다고 할 수 있으리라.

“산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산에 등 대고 살아간다.”

첫 번 째 답사 길에서 방장이 한 말이다. 좋은 말이다.

산은 언제나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다. 품어 주고, 기대어 살아가게 하는 넉넉한 품을 산은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산을 통하여 땅을 만나고, 산이 바라보는 곳에서 생활을 꾸려나간다. 학가산은 안동과 예천, 영주 주변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삶을 굽어보며 언제나 넉넉한 자태로 지켜보고 서 있다.

“풍산 사람들은 뒤로는 학가산 정기를 받고 앞으로는 풍산들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풍산은 아무래도 학가산과 서후나 북후보다는 관계가 적지요.”

풍산이나 영주는 안동이나 예천보다는 학가산과 좀 떨어진 지점에 놓여짐은 사실이다. 그러나 멀리서라도 학가산이 그 삶을 지켜보고 서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이가 있다면, 설령 영주나 풍산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라도 학가산은 공간의 거리를 뛰어넘어 선뜻 그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리라.

풍산읍을 벗어나 안동에 들어왔을 때 옹천에서 누른 자동차의 미터기는 60키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다 안동에서 옹천까지의 길이를 더한다면 학가산을 중심에 두고 네모꼴로 지나가는 도로를 일주하면서 멀리서 학가산을 조망할 때 요구되는 자동차 이동거리가 나올 것이다.

학가산과 현대의 삶

학가산은 사방 어디에서 보든 산만으로 우리의 시선 속에 놓여지지 않는다. 그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철탑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현대생활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것이지만, 학가산이 갖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침해하고, 인간의 지분냄새를 주변 여기저기에 풍겨 준다.

“학가산 정상에 올라가면 중계소들이 여기 저기 들어서서 전부 훼손시켜 놓았어요. 공사를 끝낸 후의 뒷마무리도 제대로 안 돼 있고…. 요새는 차가 엠비씨 중계소까지 올라가요. 거기서 정상까지는 한 30분 정도 걸으면 될까? 등산할 기분조차 안 날 정도예요. 옛날에는 정상 바위 아래에서 물이 났는데, 지금은 물도 없어졌어요.”

강호일 서후면장의 말이다.

“저는 18-19세 되었을 때 처음 학가산을 올라가 보았어요. 그 때 이미 정상으로 가는 군사도로가 있어서, 그 길을 통해 걸어올라갔지요. 그때는 군부대가 주둔했으니까… 그 길은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닦였다고 하니까 한 1960년 경에 개설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북후면 강문하 총무계장의 말이다.

1960년 경부터 학가산은 정상을 인간에게 내 줄 수 밖에 없었다. 학가산이 의식을 갖는 존재라면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할까?

인간의 영역에서 산이 언제까지나 전적으로 혼자만의 비의를 갖추고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리라. 그러나 산이 인간을 받아들이는 것과 인간이 산을 침해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신전리나 석탑리 마을이 산에 등을 대고 만들어지는 것은 산이 인간을 받아들인 모습일 것이다. 학가산의 정상까지 도로가 뚫리고 철탑들이 솟아오르고 하는 것은 인간이 산을 침해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산은 비의를 느끼게 할 때 가장 산답다. 산이 산다울 때 우리는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속기를 떨쳐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현대생활이 학가산 정상을 이용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요청한다면, 학가산의 비의성도 충족시켜 주면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