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에서 보리밥집 하는 강구용, 강옥령씨 부부(글/김영희)
“안동에 내려가서 친구들을 만날 때 서울서 뭐하냐고 물으면 보리밥집 한다고 그래요. 그러면 친구들이 시시하게 생각해요. 우리집에 와본 친구가 높은 손님도 많이 오는 유명한 집이고 멋진 곳이라 해도 안믿어요. 거짓말한다고 그러죠. 사실 우리집에 전두환 전 대통령도 다녀갔고 장차관들도 많이 오고 그래요.”
과천에 정부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오해하지 않을텐데, 그렇지 않으면 사실 그런 보리밥집이 어디있냐고 할 만하다. 과천시 문원동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옛날에’는 음식점으로서는 흔치않게 5백여평의 규모를 자랑한다. 규모에 못지않게 하루에 찾는 손님 또한 평일에는 4-5백명, 주말에는 7-8백명에 이르고 직원도 20여명에 이른다. 한 달에 파는 보리밥이 만 오천 그릇이 넘는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이 보리밥집의 주인이 바로 강구용(49), 강옥령(47)씨 부부이다. 안동시 북후면 옹천2리가 고향이고 친정은 일직면 광연이다. 경안고등학교와 안동여고를 졸업했다. 강구용씨는 옹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옹천에서 안동시내로 나와 학교를 다녔고 서울로 오기 전까지는 안동 남문동에서 금방을 운영했었다.
결혼과 동시에 옹천에서 4대가 한 집에서 생활했는데 친정아버지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친정아버지가 월남해서 혼자이다 보니 식구가 너무 단출해서 어릴 때부터 식구 많은 집으로 시집가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침 장손인 강구용씨를 만났고 선뜻 시할머니까지 계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옹천2리에서도 시댁의 집안이 넓어서 명절에 제사지낼 때는 절하는 사람만 70여명이 될 정도였는데 그 많은 식구들을 건사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보통 한 끼에 다섯 번 이상 밥상을 차려야 하고 콩 한 가마니를 장을 담글 정도로 규모도 큰 살림이었다.
다행히 친정어머니가 손끝이 매운 사람이라 그 솜씨를 물려받아 음식만들기에 어려움은 덜했지만 힘들게 시집살이하는 딸 때문에 친정어머니는 늘 걱정이었다. 하지만 친정아버지는 그 경험이 언젠가는 든든한 힘이 될 것이라고 격려해주었다.
대가족으로 사는 것이 힘은 들었지만 가장 고마운 것은 무엇보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란 밑거름이 된 것이다. 어른들과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나 정서교육으로 이어져 주변에서 칭찬할 정도로 반듯하게 자라난 것이다. 현재 대학 3학년에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있다. 큰 아이가 아홉 살 때 까지 함께 살았다.
과천에 정착해서
91년, 좀 더 넓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며 안동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정착한 곳이 과천이다. 당시 과천 서울대공원에 리프트 타는 곳에 매점 자리가 났는데 그걸 하기위해 상경했다. 9년 정도 리프트 매점을 하다가 IMF로 경제도 어려워지고 하던 사업도 여러 번 실패해 돌파구를 찾은 것이 보리밥 집이었다.
안양 계원예술학교 뒤로 들어가면 보리밥집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근동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평소 갈 때 마다 ‘이런 거 하면 잘 할 자신 있는데…’ 하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옛날에’란 이름도 미리 지어놓았는데 막상 상호 때문에 의견충돌이 약간 있기는 했다. 남편이 ‘하회마을’을 강력히 고집했기 때문이다.
힘든 시집살이를 벗어나 서울로 이사간다고 할 때 친정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울었는데 폐가가 되다시피해 쓰러져가는 집을 인수해서 보리밥집을 하겠다고 하니 기가막혀서 또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옥령씨는 집과 주변 경관을 보고 반드시 된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고 또 그만큼 열심히 했다. 둘이서 온 힘을 다해 하나하나 고치고 다듬고 만들어나가 오늘날의 ‘옛날에’를 일궈냈다.
결혼 20년 동안 못하나 박을 줄 모르던 고상한 안동양반도 이때만큼은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한꺼번에 일할려고 40여년을 참아왔다고 할 정도였다니 ‘옛날에’에 쏟은 노력과 정성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리밥집에 쏟은 정성
‘옛날에’를 시작한 지 이제 4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큰 규모로 성장했으니 놀랄 일이다. 이들 부부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더구나 과천 손님보다는 서울이나 안양, 인천, 수원, 분당 등 주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안주인은 먼저 장맛과 좋은 재료를 꼽았다. 무엇보다 된장과 고추장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 집에서 한 해에 쓰는 된장이 콩 스무 가마 분량 정도 되는데 그 콩을 다 안동에서 사온다고 한다. 콩 뿐만 아니라 고춧가루와 참기름 들기름 보리쌀 메밀 등 기본 재료는 모두 안동 시댁이나 친정 동네에서 최고 좋은 것으로만 엄선해서 공급해 주고 있다. 그 밖에 쓰이는 야채들도 매일매일 제일 신선하고 품질 좋은 것으로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식장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꼭 안동식으로 음식을 하겠다 이런 것은 없어도 우선 우리 입에 맛있어야 하니까 아마 안동사람 입맛에도 맞겠지요. 우리는 주방장도 전문가를 데려오지 않고 우리가 전문가로 키웠습니다. 맛을 가르친 거죠.”
사실 안동사람은 전체 손님 수에 비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오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대접을 하게 된다고 한다. 콩가루 입힌 시래기국이라던가, 가-죽이나 당귀 장아찌, 된장에 박아둔 고추 같은 것을 내놓으면 안동손님들이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고향에서 먹던 그대로의 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오경의씨나 김광림씨는 오랜 단골 중의 한사람이다.
그렇게 대접하고 또 손님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 오랫동안 대식구 살림을 하던 고향생활이 몸에 밴 것 일게다. 장사라기보다 우리집에 온 손님 대접하듯 하니 서로 편하고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집의 장맛 뿐 아니라 토속적인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공 요인인데 우선 이름부터 ‘옛날에’라고 해서 손님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식당의 위치도 산자락 끝에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다. 넓은 마당에는 정원을 꾸며놓고 여름이면 작은 연못에 물고기도 노닐고 겨울에는 모닥불을 피워놓아 정겨움을 더해준다.
방 안에는 한지로 벽을 꾸미고 실내장식은 시골에서 시할머니가 쓰시던 반짇고리와 옛날 옷장, 작은 물품들, 시아버지의 글씨, 안주인이 직접 만든 도자기, 오래된 재봉틀, 디자인을 전공하는 딸이 만든 여러 가지 옛날풍 소품들이 어우러져 안동 어느 골짜기의 옛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주인들의 세심함과 정성이 곳곳에서 베어난다. 그래서 손님들의 반응도 ‘친정집 같다’, ‘우리 시골집 같다’, ‘잔치집같다’ 등 다양하다.
잎으로의 소망
가게 문을 열고 2-3년 정도는 손댈게 너무 많아서 바쁘게 살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앞으로의 일들도 계획하고 있다. 우선 올 연말쯤이면 덕소에 700여평 규모의 분점을 낼 계획이다. 여기에서는 음식 뿐만 아니라 그동안 손님들이 원하던 장류도 같이 판매할 계획이고 도자기 공방도 같이 운영하여, 보고 즐기고 먹을 수 있는 복합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그동안 여러 단체에서 전통 장 만들기 시연회 같은 것을 해보라고 권해도 장소가 협소해 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덕소에서는 그런 일들이 가능할 것 같다. 현재 사람을 통해 시골 동네에 있는 옛날 옹기들을 수집하고도 있다.
안동에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느냐는 말에는 큰 소리로 지금이 좋다고 한다. 과천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안동사람들과 관련된 모임은 서울에서도 많이 있다. 각종 동기회도 자주 하고, 또 친구들이 아직 안동에 많이 있기 때문에 안동에도 가끔 가고 고향 옹천에도 부모님을 뵈러 간다. 안동에 내려가면 친구들 만나느라 늘 계획보다 늦게 올라오게 된다고 한다.
과천에서도 바쁜 중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남편은 라이온스 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아내는 한국부인회 과천지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으며, 온 가족이 과천시 가족봉사단 2기로 등록하여 양로원이나 소년소녀가장 돕기 등에 앞장서고 있다.
거기다 개인적으로는 도자기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몸을 늘 열 개로 쪼개서 쓴다는 강옥령씨는 느긋하게 여유부리고 있는 것을 체질적으로 잘 못하는 부지런함에다가 가게를 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알기 때문에 본인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힘이 되어주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분점 10개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니 쉬이 쉬지는 못할 것 같다. 언제까지나 푸근한 안동맛을 전해주는 ‘옛날에’로 남아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