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미완성의 선거(글/조동진)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6.13 지방선거의 의미와 선거전 분위기 그리고 선거운동과정과 출마자 현황 등 6.13 지방선거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다소 오래된 느낌은 있지만 지방선거의 중요성에 비춰 6.13지방선거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일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닐 것으로 생각한다.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속에 막을 내린 6.13 지방선거! 광역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그리고 광역비례대표의원을 선출한 6.13 동시지방선거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남긴 미완성의 선거였다.
첫째 역대 선거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6.13 지방선거 투표율은 역대 선거사상 최저인 48%로 유권자의 정치불신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을 극명하게 드러낸 선거였다.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등 대도시는 모두가 50% 이하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지방중소도시도 마찬가지였다. 경북지역의 평균 투표율은 60.4%로 지난 95년 첫 지방선거 76.7%, 98년 2대 지방선거 64.9%, 2천년 16대 총선의 64.6%보다 낮았다. 안동과 영주, 문경은 모두 70%를 밑돌았고 청송과 영양, 봉화, 예천 등 농촌 일부지역이 그나마 80%를 육박하는 높은 투표율을 보여 위안이 됐을 뿐이다.
이번 6.13 지방선거는 월드컵 경기와 겹쳐 국민적 관심이 저하된 요인도 있지만 투표율 저하는 유권자의 정치불신과 무관심이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다. 선전벽보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아예 가정으로 배달된 선거공보와 소형 인쇄물을 뜯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초의원의 경우 후보자를 제대로 알고 찍은 사람은 드물었던 게 사실이다. 만나본 유권자의 상당수는 기초의원도 정당공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기호 1번이 한나라당인줄 알고 찍었다는 유권자가 많았다는 것은 유권자 의식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후보자마다 정책대결이 아닌 흑색선전과 비방, 폭로 등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불법선거는 극에 달했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심리는 정치불신과 무관심으로 연결됐으며, 결국 투표불참의 결과로 나타났다. 신성한 주권은 참정권 포기라는 암담한 결과를 가져왔고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말로만 되풀이 되는 理想(이상)이었다.
둘째 극심한 불법선거를 빼놓을 수 없다. 혼탁·불법선거는 낮은 투표율과 함수관계를 지니며 선거과정에서는 물론 선거후에도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대구지방검찰청은 대구, 경북에서 선거사범 207명을 입건해 이 가운데 30명을 구속했는데, 이는 지난 2대 지방선거에 비해 선거사범은 2배, 구속자수는 5배나 늘어난 것으로 금품살포가 가장 많았고 흑색선전, 상호비방의 순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구, 경북지역 기초단체장 당선자의 42%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단체장의 당선무효 사례로 이어져 재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겨우 봉합된 지역민심은 불법선거의 후유증으로 다시 갈라지고 찢겨질 위기에 놓이게 됐다.
셋째 선거때마다 나타난 지역주의의 재현과 중앙정치의 개입으로 인한 지방정치의 실종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구.경북지역에는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대구지역 8개 기초단체장 전부와 경북지역 23개 단체장 가운데 문경과 김천을 제외한 21개 지역을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다.
현정권 출범직후인 지난 98년 지방선거 때부터 불기 시작한 반 DJ정서의 한나라당 바람은 2천년 총선을 거쳐 이번 선거에서도 싹쓸이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된 결과를 가져왔다. 올해 처음 도입된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명부제 투표에서도 한나라당은 여전히 일당독주의 현상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대구에서 76%, 경북에서 75%의 높은 득표율을 보였고 민주당은 대구, 경북에서 7%대의 저조한 득표에 그쳤고 반짝 바람을 탔던 한국미래연합 역시 한계를 드러내며 참패했다.
광역의원 역시 대구, 경북을 가리지 않고 한나라당의 독무대로 대구는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24개 의석 모두를 싹쓸이 했고, 경북지역은 지난 선거에서는 10개 지역을 잃었지만 이번에는 51개 선거구 중 48개 지역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한나라당은 대구, 경북에서 광역단체장에서부터 광역의원에 이르기까지 완벽에 가까운 한나라당 체제구축에 성공했지만 이는 지방정치의 실종과 자격미달 후보의 당선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기호 1번 묻지마 투표는 한나라당 후보의 무더기 당선과 인물검증의 부재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 인사의 재입성을 가능케 했고 반면 참신성을 내세우며 인물론으로 맞섰던 전문직 출신들의 의욕은 꺽일 수 밖에 없다.
정당공천이 없는 기초의원은 경북북부지역의 경우 당선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초선으로 물갈이되고 30-4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실질적인 일꾼을 요구하는 유권자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넷째 미흡한 선거제도의 문제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전과기록과 병역, 납세 등 개인신상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전과기록자, 병역미필자, 납세를 이행하지 않는 상당수 후보가 제도의 미비함으로 당선됐는데 대구, 경북에서 전과기록이나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후보자 187명이 단체장과 광역, 기초의원에 당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당선자의 31%가 넘는 것으로 열명 중 3명이 전과자나 병역,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후보자 개인신상 정보공개가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으로 한계를 지닌 인터넷 공개를 벗어나 전과사실과 병역, 납세 등을 유권자가 알기 쉽게 선거공보물에도 명기하는 등 출마자의 신상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끝으로 4대 선거가 동시에 치뤄지고 특히 처음으로 정당명부제 투표까지 곁들여지다보니 철저한 후보자 검증이 되지 못한 채 능력부족의 후보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도시지역에서는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특정 정당과는 무관한 기호 가번의 후보들이 70%나 당선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의 복잡한 4대 부문 선거를 단순화 또는 분리해서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공감을 얻는 부분이다.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지방선거였지만 이번 선거에서 시민, 사회단체 후보자의 의회 진출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 대목이다. 의성군 기초의원 선거에서 농민단체 소속 6명이 당선되고 구미시는 노동계 후보 2명이 의회에 진출했는가 하면 포항지역에서는 시민연대회의가 내세운 시민후보 가운데 2명이 당선되는 등 일부 지역에서는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교두보 마련에는 성공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동, 농민, 환경 등 시민단체 후보의 진출은 지방자치에 생활정치를 접목하고 지역의 이익과 관심이 우선이라는 지역민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로 다양화된 사회의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진정한 지방자치제의 정착은 아직도 멀고도 험한 길임을 일깨워 주었다. 지방자치라고 하지만 명목과 형식에 불과한 것이 오늘날 지방자치의 현주소로 무늬만의 지방자치에서 벗어나 실질과 내용을 담은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유권자는 물론 당선자 모두가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의 정착에 나서야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난 단체장의 권한으로 인사를 단행하는 등 인사권의 독립과 국세의 전향적인 지방세 전환, 지방교부세 확대 등 제도적인 정비가 시급하다. 이에 앞서 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 등 지방정치와 중앙정치의 연결고리를 단절시켜 지방정치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와 병행해 단체장과 의원 등 당선자 스스로도 측근 중심의 인사나 차기선거를 겨냥한 선심행정에서 탈피하고 유권자 역시 말로만의 참여와 관심이 아닌 지방자치의 실현에 행동으로 나서고 실천해야할 때다.
지난 십 년간 우리의 지방자치는 느리게나마 발전을 거듭해왔고 성과 또한 과소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발전의 당위성을 안고 있는 지방자치는 주민참여와 지방의 일은 지역민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다는 지방분권시스템을 확립할 때 앞당겨 질 것이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노력하고 실천하려는 뜨거운 가슴에서 출발하고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