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단자(戶口單子)와 준호구(准戶口)(글/정진영)예나 지금이나 한 나라의 지배나 통치는 사람과 산업에 대한 파악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호적제도는 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패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정창원(正倉院)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의 촌락문서는 호구뿐만 아니라 우마(牛馬)와 과실나무, 뽕나무 수까지 파악하고 있고, 고려시대의 호적은 비록 원본 상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등사, 혹은 전재(轉載)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호적은 고려의 것을 많이 참고했던 것으로 보이나 선초 이래 그 제도가 완비되어 1896년 신호적법이 반포되기까지 매 3년마다 계속적으로 작성되었다. 특히 조선후기 대구와 단성, 울산 등지에서 작성된 호적대장은 현존하고 있어서 조선시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호구단자, 호적, 준호구
조선시대 호적의 작성은 호 단위에서의 호구 신고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 만들어진 문서를 호구단자라고 한다. 단자란 ‘물목단자’나 ‘혼수단자’에서와 같이 호내의 인구를 하나하나 나열한 것을 말한다. 호구단자는 2통을 관에 제출하는데, 관에서는 이것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통호(統戶)를 기재하여 1통은 호적대장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1통은 되돌려 준다. 각 호에서 제출한 호구단자를 면리와 통호별로 수합하여 정리한 호적은 그 규격이 아주 큰 장부였기 때문에 호적대장(戶籍大帳)이라고 하였다.
호적대장이 만들어지면 관에서는 이를 증빙하는 의미에서 혹은 이런저런 요구에 의해 호적대장의 기록을 다시 등사하여 주었는데, 이를 준호구라고 하였다. 준호구란 호적대장에 근거하여 관에서 발급한 것이니 오늘날의 주민 혹은 호적등본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호구단자와 준호구, 혹은 호적의 내용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같을 수밖에 없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는 매 3년마다 작성되고 발급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문서의 하나이다. 그러나 여타의 고문서와 마찬가지로 양반가, 그것도 주로 명문의 종손가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는 내용상 동일하다 하더라도 <사진 ①,②>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형식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차이는 단자는 별행인 반면에 준호구는 계속 이어 기록된다는 점, 단자의 첫머리는 면단위 이하의 거주지명과 호구단자(혹은 호적단자)라고 표기되지만, 준호구에서는 발급 연도와 관청에 이어 근거가 된 호적의 식년이 기재된다는 점 정도이다.
주호와 호주, 그리고 가장
호구단자나 준호구는 흔히들 호주(戶主)라고 하는 ‘주호(主戶)’의 거주지와 관에서 부여한 통호(統戶), 주호의 처와 혈연 가족들, 그리고 솔거하고 있는 노비, 고공(雇工) 등 현재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호와 그 처의 4조(四祖)도 기록된다. 이들은 단순히 이름과 나이만이 아니라 직역이나 본관 등도 함께 기재된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확인해 주는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인은 붉은 인주를 사용하나, 고쳐 씌어진 글자의 유무를 표시하는 주협무개인은 묵인(墨印)이다.
호적자료의 기재 사항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 호적자료의 주인공을 호주라 하지 않고 주호라 한 것은 이것이 법제적인 용어이고 또 오늘날의 호주와는 그 의미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호주라는 용어는 그다지 흔하게 쓰이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날의 호주는 가장(家長)의 지위를 가지지만, 주호란 가장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호를 대표하여 국가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책임자나 대표자 정도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복잡한 문제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호라는 것과 호적자료에서의 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호에 대한 이 같은 이해는 가족법 개정의 핵심사항이 되고 있는 호주제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그것은 호주제가 우리 고유의 전통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면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호주제를 핵심으로 하는 호적법은 분명 조선시대의 호적법과는 다르다. 조선시대의 호적은 일차적으로 국가에서 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하기 위한 장부인 것이니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파악한 오늘날의 호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가 아니라 주호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4조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서 4조란 4대의 조상이란 의미가 아니라 부ㆍ조ㆍ증조와 외조를 지칭한다. 4조에 대한 기록은 자연히 주호와 처의 세계(世系)를 확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지니고 있었던 직역(職役)을 통해 국가에 대한 의무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직역이란 직업과는 다르다.
따라서 개인에게 부과된 세금의 종류라 할 수 있다. 물론 신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러나 반드시 직역이 신분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양반의 경우, 관직에 나아가거나 과거합격으로 기재되나 그러하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는 학생(學生)이나 유학(幼學)으로 기재된다. 유학이란 과거합격도 벼슬에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의 양반을 지칭하는 용어이고, 학생이란 유학으로 생을 마친 이들의 호칭이다.
반면에 상민들이라면 보병(步兵)?마군(馬軍)?수군(水軍), 혹은 이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군보(軍保)로 표기된다. 이것은 상민들이 보병이나 수군 등에 차출되어 근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에 해당하는 세금을 납부해야 함을 의미한다. 노비들은 소속관청이나 상전의 이름을 기록하여 그들의 몸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고, 몸값을 어떻게 납부해야 하는지를 표시한다.
사조(四祖) : 父ㆍ祖ㆍ曾祖 그리고 外祖
다시 4조로 돌아가 보자. 우선 주호만이 아니라 주호처의 4조도 기록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적어도 형식상에 있어서 부부가 동등함을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고려 혹은 조선전기의 부계만이 아니라 모계, 아들만이 아니라 딸도 동등하게 인정하던 양측적인 가계계승의 전통을 이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혈통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적 특권은 혈통을 통해 계승된다. 부계만이 아니라 처계(妻系), 여기에 양계의 외조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조선사회가 혈통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조선시대의 지역사회에서 명문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삼향(三鄕)이라고 하는 부?모?처향에 신분적인 하자가 없어야 했다. 신분적 하자란 향리나 서얼, 혹은 백성들과 결혼한 경우를 말한다. 이로써 양반과 상놈의 차별만이 아니라 명문양반과 그러하지 못한 양반과의 경계도 엄하게 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정에서 호적은 신분을 변별하는 자료로서의 기능도 겸하였던 것이다.
혈통과 신분에 대한 파악이 이렇듯 철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신분 상승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영남의 명문으로 자칭하는 몇몇 가문의 경우는 19세기 이전까지 결코 양반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구체적인 사정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철저하게 가계기록이 파괴되고 조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철저한 파괴와 조작은 일정한 학식과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선후기에는 재력이 뒷받침된다면 벼슬에 나아갈 수도 있었고, 자재들을 학자로 키울 수도 있었다. 관직과 재력과 학문적 배경이 갖추어진다면 가계와 혈통의 조작과 왜곡은 그만큼 쉬웠던 것이다. 이러한 가문에서 호구단자나 준호구 등 가계기록을 남겨 놓았을리 없다.
양반가의 호적자료에는 엄청난 노비들의 이름이 등재된다. 그 수가 2, 3백 명, 심지어는 4, 5백 명을 훌쩍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노비의 수에 비례하여 문서의 길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비들은 주로 성이 없이 이름으로만 나온다. 막대, 개동, 소동, 개조지 등으로 표기된다. 이름 그 자체에 ‘천한 아랫것들’이라는 의미를 담아 두었다.(노비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이 수많은 노비들 중 대체로 20여 명 정도는 주인가의 울타리나 행랑채, 혹은 멀지 않은 이웃에 거주하였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우리는 전자를 솔거노비, 후자를 외거노비라고 한다. 솔거노비들은 주로 노동력으로, 외거노비는 포나 곡물 등으로 매년 몸값을 지불하였다.
호적자료의 戶와 口
아무튼 호구단자든 준호구든 그것은 말 그대로 戶와 口(인구)의 기록이다. 흔히들 호적자료에 기재된 이런 내용은 당시의 가족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이들 자료를 열심히 통계 내어 조선시대에는 소가족제도였느니 대가족이었느니 혹은 평균적인 가족수는 얼마니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조선시대 호적자료에서 확인되는 호당 인구수를 군현별로 보면 3-4명인 경우와 4-5명인 경우가 열에 여덟 정도 된다. 그런데 나머지 군현은 2-3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고 10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호적에 등재된 호당 인구수를 실재의 가족수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왜 같은 시기에 어떤 고을에는 기껏해야 2-3명에 불과한데 이웃 고을에는 10명이 넘는가 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흔하게 보는 호적자료는 실재의 가족 단위로, 있는 그대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 양반들의 호구자료에는 딸들이 기록되는 예가 거의 없다. 그 흔했을 첩이나, 10여세 미만의 아들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20세가 넘은 아들이 미성인 경우도 허다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이가 갑자기 10여 세 이상이나 높게 기재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족보와 대비해 보면 금방 확인된다.
이뿐 아니다. 40, 50대 평민의 장정들도 많이 누락되었다. 이들은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었을 것이고, 오늘날로 본다면 호주였음이 분명하다. 가장이 누락되었다면, 결국은 집 자체가 호적에서부터 누락된 것이 된다. 이것은 호적이 당시에 실재했던 모든 가호를 다 파악하여 등재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래서 호적에 올려져 있는 호는 실재의 60, 70퍼센트 심지어는 반 정도에 불과하다고도 한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조선시대의 호적이나 호구자료가 현실의 호와 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를 두고 어떤 연구자들은 호적제도가 문란해지고,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아주 간단해 진다. 그러나 이 같은 이해는 조선왕조에 애꿎은 누명을 덮어씌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조선시대사 인식에도 큰 오류를 범하게 한다.
변하지 않는 호수와 인구수
조선시대 호적작성의 원칙은 모든 호와 구를 파악하여 하나도 누락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칙일 뿐이었고, 물론 그대로 실행될 수도 없었다. 조선시대의 호적은 오늘날의 인구센서스와 같이 정확한 호수와 인구수를 파악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에서 필요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자원의 확보에 있었다.
국가의 기본적인 세금은 토지에 부과하는 전세(田稅)와 호를 단위로 부과하는 호세(戶稅), 평민의 남정(男丁)에게 부과하는 국방의무(軍役) 등이 있다. 토지세는 토지대장을, 호세와 군역은 호적대장을 기초하여 부과되고 징수된다. 결국 호적대장에 등재되는 호수와 남정들은 곧 세금의 단위이고, 이를 부담해야 할 담당자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세금의 부과와 징수를 위해 군현 혹은 면리단위로 호수와 인구수를 일정하게 책정해 두었다. 호수와 인구수가 늘어나면 그만큼의 부담이 더 늘어나게 마련이다. 도리어 흉년이 들면 수령들은 그 직위를 걸고 호구수의 감액을 감영에 호소해야 할 판이었으니, 어찌 있는 그대로 다 등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조선후기 내내 군현단위에서 호구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던 것이다.
개별 호를 단위로 한 호구단자나 준호구의 기록은 물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마을 단위로 배정된 액수에 맞게 네다섯 집 중 한 집만을 호적에 올리기도 하였고, 반대로 한 집을 두 집으로 나누어 호적에 올리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호적에 올라가는 집은 당연히 호구단자를 제출하고 준호구를 발급받게 된다. 만약에 호수와 인구수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면 호당구수가 많아지거나 적어지게 된다. 가령 배정된 호수는 20호, 인구수는 40명인 마을의 경우는 한 호에 2명 정도 세우면 될 것이지만, 20호에 300명이 배정된 고을이라면 평균적인 호당구수는 15명이 될 수밖에 없다. 호당구수가 높은 지역은 함경도 국경지대와 제주도 등 군사적인 요충지였다. 이 지역에는 군대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호수를 줄여 그 부담을 줄임으로써 다른 지역의 주민과 세금부담을 공평하게 했기 때문이다.
호적 작성과 관련하여서는 많은 부정이 자행되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하고 절실했기 때문이다. 호적에 올라야 할 호와 인구수를 맞추기 위해 관리들이 유령의 집과 허명(虛名)으로 채우기도 하였고, 평민들의 군역을 면제해 주기 위해 슬그머니 유학이라는 호칭을 달아주기도 했다. 당연히 불법이었고, 부정이 기재되기 마련이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본래의 나이보다도 3, 4세 혹은 10여 세 이상 높게 기재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었다. 나이를 높이는 이유는 수직(壽職)을 받거나 군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나이 70이 넘으면 품계를 받을 수 있었고, 60이 넘으면 군역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