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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아저씨 박기십씨(글/이미홍)

가끔 한가한 날 집안에 있노라면 밖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있다.
'아파트 베란다 섀시나 방충망 혹은 유리창을 새로 해 드린다'던가, 무언가를 아주 싼 값에 사 주거나 판다는 게 대부분인 그 소리들은 내용은 다 제각각이건만 어쩐지 한 목소리마냥 닮아있는 것 같다. 그 소리들의 진원지는 대부분 트럭을 타고 동네를 돌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동네사람들을 향해 지치지도 않고 같은 소리를 쏟아내는 확성기인데, 일정한 높낮이와 울림이 있는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왠지 그 소리가 ‘팔거나 사겠다’는 게 무엇인지 내다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른하면서도 편안하다 못해 십중팔구는 딴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그 소리들이 싫거나 짜증스럽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그 소리들이 사람 사는 소리라는 걸 내 몸이 저절로 알아서가 아니었나 싶다.

그랬다. 그 소리들에는 사람이 사는 냄새가 묻어 있었다. 누가 부르지도, 언제 왔는지도 모르지만 필요해서 돌아보면 그곳에 있는, 그런 소리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필요하기 전에는 있는지도 모르다가 어쩌다 필요해서 찾아보면 어디엔가엔 한 사람쯤 꼭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안동시 평화동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선풍기 고치는 사람 박기십(64)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리어카 끌고 골목골목 다니며 선풍기 고쳐주는 박기십씨

시내 쪽에서 송현 방면으로 오다가 태화삼거리 못 미쳐 KBS 가는 방향으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중턱에서 한숨 돌리려다 보면 바로 눈길이 가 머무는 길가 집, 안채를 옆으로 두고 나트막하게 길에 바짝 붙여 공간을 넓혀 튼 듯한 가게 문 위에 평화시트사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볼일이 있어 부러 찾아왔다면 모를까 어쩌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라면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기 그지없이 새겨진 그 간판만 보고서는 그 가게가 시트하고 관계가 있다는 것 외에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가게 문 앞에 섰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이다.

거의 대부분의 가게 문들마다에 어김없이 붙여진 각양각색의 알록달록한 광고 문구와 숫자들에 익숙한 내게는 문 위에 달랑 얹혀진 제목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선전 문구도 적혀 있지 않은 말짱한 문들이 도리어 어색했던 모양이다. 손님을 향한 그 어떤 호의의 제스처도 호객 행위도 없이 그저 길가를 향해 서 있을 뿐인 문은 그러나 사람을 지레 질리게 하거나 거부함이 없어 오히려 좋았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주인이 알은 체 하!고 들어오라고 청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우리가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서 혼자 무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박기십씨 옆으로 자연스레 찾아든 것도.

문 안에서는 박기십씨가 더운 날씨 탓인지 런닝셔츠 차림에 흰 고무신을 신고 작업대 앞에서 무슨 천인가를 재단을 해서 마름질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소파 천갈이 중이라 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렇잖아도 수리를 맡겨 놓은 듯한 선풍기며 곤로며 각종 부속품들로 가득한 가게 한 쪽을 덩치 큰 소파가 차지하고 앉아 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는 소파 갈이 이야기부터 하게 됐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요즘 박기십씨의 벌이 중에서는 소파 천갈이가 괜찮다는 것과, 그의 솜씨가 좋아서 멀리 영양에서까지 부탁을 해서 현재 일이 몇 건 밀려 있긴 하지만 힘에 부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도 그의 소파 천갈이 일이 그의 선풍기 수리 일 만큼이나 그 분야에서 알아주고 역사가 오래된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소파 시트 가는 것을 처음 배운 것은 군에 있을 때였다. 미군부대 지프차의 시트천을 갈아주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소파 시트 가는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그 덩치 때문에 소파를 가져오고 가져다주는 일은 혼자서는 무리라 싣고 내릴 때는 한 조로 함께 일을 하는 친구가 있지만, 실제 소파 시트를 가는 작업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오랜 세월을 손으로 익혀온 소파에 대한 그의 기준은 소박했다.

“소파는 일단 앉아서 편하기도 해야 하지만 모양새도 중요합니다. 소파는 기본 뼈대만 튼튼하면 천갈이만 새로 해도 새 것처럼 맵시가 나는 법이거든요. 오래된 구형 모델 같은 경우는 맵시나게 새 모델로 깔끔하게 단장해서 고쳐주기도 하지요.”

그의 말처럼 작업대 위에서 방금 새로 마름질된 아이보리 시트 천이 소파에 새로 입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거죽이 벗겨진 채로 맨 몸을 내보이고 있는 소파지만 그의 손길이 몇 번쯤 더 간 후인 며칠 뒤면 감쪽같이 새 소파가 되어 누군가의 거실을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낡고 오래된 것을 새 것으로 바꾸어 놓는 그의 솜씨를 이야기 하자면 실은 선풍기 이야기부터 해야 했다. 애초에 그를 찾아오게 만든 것도 그가 리어카를 끌고 골목골목 다니며 선풍기를 고쳐준다는 소문이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낡았다고 물건 내버리고 하지 않습니다."

그가 리어카를 끌고 안동 시내를 누비며 선풍기를 고치고 다닌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인 강원도 속초를 떠나서 내려오다 멈춘 곳이 안동이었다는 것과 그가 안동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시작한 일이 선풍기나 석유곤로 같은 전기 제품이나 고장난 기기들을 고쳐 주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은 없었고 공고 출신으로 다행히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30여 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곤로가 있었고, 선풍기는 부자집에나 가야 구경하던, 이른바 무선시대였다. 당연히 처음에는 곤로 고치는 일이 제일 많았고, 선풍기를 고치는 일은 어쩌다가 한 번이었다. 그러던 것이 전자제품 시대가 되면서 차츰 곤로 대신 선풍기를 고치는 일이 주가 되었고, 사는 형편들이 좋아지면서 소파 시트를 가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열에 아홉은 선풍기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그건 삼십년 동안 그가 안동 시내 곳곳을 누비며 고쳐준 선풍기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몇 번이나 그의 손을 타면서 장수에 장수를 거듭하며 다시 살아나 신나게 돌아가는 선풍기 뒤에는 그 선풍기를 낡고 볼품없다고 내다버리지 않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며 닦아주고 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제 마음처럼 알고 선풍기를 고쳐 준다.

“아직도 오래된 선풍기 고쳐 쓰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다 잘 사는 부자들입니다. 안동 시내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은 낡았다고 물건 내버리고 하지 않습니다. 석유곤로 같은 것도 시장 상인들한테는 추운 겨울 날 아주 요긴한 물건입니다. 고쳐 쓰는 사람들은 쓰다 쓰다 완전히 망가지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쓰고 삽니다. 우리나라가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잘 살면 언제부터 얼마나 잘 산다고 그러는지, 멀쩡한 데도 내다버려진 물건들 보면 안타깝고 아깝지요. 조금만 손보면 새 것처럼 쓸 텐데 싶고….”

물건을 고쳐 쓰는 사람과 고쳐주는 사람 사이에는 통하는 데가 있나 보다. 그가 부러진 날개살만 하나 갈아 끼우면, 모터만 새로 바꾸면 거짓말처럼 말짱하게 다시 쓸 수 있다는 걸 선풍기 주인도 그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선풍기든지 손만 대면 못 고치는 것이 없는 그의 솜씨를 두고 따로 수리비 값을 흥정하는 주인도 없다. 따로 출장비를 받는 일도, 수리비를 부풀려 청구하는 일도 없고, 그저 들어간 부품 값만큼만 받는다는 걸 그에게 한 번이라도 수리를 부탁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게 마련이기 때문이지 싶다. 따로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은 자연히 그의 단골이 되고 만다. 선풍기 고쳐 주러 갔다가 빨래 삶을 때 요긴하게 쓰는 고장난 석유곤로도 손 봐 주고 소리가 들렸다 말았다 지직거리는 라디오도 고쳐주는 일도 그래서 그와 단골 고객들 사이에서는 다반사인 풍경이다. 덕분에 수리를 하러 가서 가게 상호와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 한 장 건네는 외에는 따로 광고 한 번 하지 않는데도 그는 늘 바쁘다. 멀리 백암이며 청송에서도 그에게 수리를 부탁하는 전화가 온다. 아니, 그가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돈을 들이는 대신 그는 리어카를 끌고 두 발로 온 시내를 누비며 그의 솜씨를 선보이는 것으로 일도 하고 광고도 확실하게 해 왔다는 게 맞는 말일 듯하다.

요즘도 그는 특별한 볼일이 있거나 날씨가 굳지만 않으면 오전 중에는 리어카를 끌고 시내로 선풍기를 고치러 나간다. 선풍기 외에도 각종 난로며 전기 제품들도 수리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가 요즘도 제일 많이 고치는 건 선풍기다. 특히 식당이나 사무실처럼 대형 선풍기가 많은 영업점들이 그의 주된 고객이다. 한 곳에 선풍기가 여러 대인 경우가 많다 보니 고장도 자주 나게 마련이라 출장 요청이 따로 없어도 한 번씩 들르면 헛걸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큰 고장이 아닌 것은 그냥 알아서 손을 봐 주고 나오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선풍기가 한꺼번에 여러 대가 고장이 나서 그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그가 리어카를 가지고 수리를 하러 다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에게도 물론 멀쩡한 트럭이 있다. 그렇지만 그는 소파 같은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거나 멀리 영양이나 청송 같은 곳으로 출장 수리를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안동 시내 웬만한 곳은 다 리어카를 가지고 다닌다. 좁은 골목골목을 다니자면 우선 주차 문제가 걸리기도 하고, 집집이 찾아 다니다보면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많은데, 리어카로는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언제 어디서든 수리를 할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부품을 모두 싣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남들이 어떻게 보건 그에게는 리어카가 딱 제격이다. 그가 수리를 하느라 그의 리어카가 어느 골목 집 앞에 세워져 있으면 어느새 알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찾아온다. 그러면 그 골목길에서 그날 오전을 몽땅 보내야 하는 날도 있다.

“돈벌이 해서 좋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재미도 있고, 리어카 끌고 쉬엄쉬엄 다니며 일하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우리 애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이제 그만 쉬라고 하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라고 합니다. 물론 돈이 좋기야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일하는 재미가 있어야 사는 맛이 있죠. 다행히 건강에는 자신이 있어 리어카로 하루 오십 리 길을 다니지만 그 재미에 아직은 힘들거나 어려운 줄 모르고 합니다.”

그러나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리를 하는 날 보다는 그렇지 않은 날이 많을 것은 뻔한 이치다. 때로는 급히 수리를 부탁하는 바람에 용상동에서 태화동까지 리어카로 이동해야 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그는 힘들다고 거절하기보다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기꺼이 고쳐주러 가는 쪽을 택한다. 그가 하는 일이 일이기도 하거니와 원래가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기 보다는 미리 찾아가서 고장난 거 없나 살펴보고 고쳐주는 게 그가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리어카를 끌고 일을 나가든 집에 있든 그가 늘 바쁠 수밖에 없는 게 이해가 간다. 그는 일이 있으면 하는 사람이 아니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인 까닭이다.

“나는 노는 날이 없습니더. 비가 오거나 해서 일이 없는 날에는 부품 정리하느라 더 바쁩니더. LG, 삼성, 신일, 한일 회사별로 모델 규격별로 일일이 부품을 정리해 놓아야 필요할 때 제 때 제 때 찾아쓸 수 있으니까요. 기종이 오래된 것들은 부품이 생산되지 않은 것들도 많지만 전 그런 부품들도 일일이 품을 팔아서라도 어떻게든 다 구해 놓으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아직까지는 제가 못 고친 선풍기가 하나도 없었는데, 앞으로는 모르겠습니다.”

말이 쉽지 단종된 지 십 년이 훌쩍 넘은 나이 든 선풍기의 부품을 일일이 갖춰 놓는 일이 그저 될 리 없다. 꼭이 그렇다고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그가 두 발로 부지런히 골목을 누비며 수리를 다니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에는 이 부품 구하기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버려지는 선풍기나 난로는 물론이고 온갖 전자제품을 주워 와서 말짱한 부품을 따로 챙겨 놓는 것은 그에게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기본적인 사항이다. 그 중에 제법 쓸만하다 싶은 것들은 그가 거의 완벽하게 구비해 놓은 부품들과 그의 솜씨를 거쳐 새 선풍기로 다시 태어나 팔려가기도 한다.

박기십씨네 삼남매가 새로 산 선풍기 앞에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어떤 선풍기든 새 것처럼 고쳐내고야 마는 아버지를 둔 탓이었다. 그 귀신같은 솜씨로 그는 여름에는 주로 선풍기를 고치고 겨울에는 곤로나 난로를 고쳐서 안에서 묵묵히 살림하며 그의 일을 도와온 동갑내기 부인 장춘녀(64)씨와 함께 세 아이들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게 잘 키워냈다. 삼남매가 원주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위로 둘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돼서 직장에 다니고 있고 막내는 아직 대학 2학년이다.

서른 이쪽에 고향 떠나 안동에 와서 평생 이 일을 하며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아버지로서 자식들 앞에서 떳떳할 만치 열심히 살았고, 길을 가다보면 언제고 그를 알아보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만큼 자신의 일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선풍기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데가 많지 않습니다. 서울에는 워낙 인구가 많아 더러 있는 편이지만 지방에는 별로 없어요. 이 근방에서도 대구하고 포항, 안동에 있는 정도지요. 오래된 부품은 AS센터에 가도 구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선풍기 수리만 삼십년을 한 나한테 들고 오면 고치거든요. 그렇지만 지금은 나이도 있고 욕심 부리지 않고 내 속도대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재개발로 인해 삼십년 동안 터전을 삼았던 평화동 언덕배기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게를 옮겨야 하지만 그는 그저 담담하다.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그는 가게를 옮겨도 따로이 광고는 안할 참이다. 다만, ‘그때도 아침이 되면 리어카를 끌고 선풍기를 수리하러 나가면 그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