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글/김연숙)
사고파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새벽 장에서 크고 속이 찬 배추를 고릅니다.
짠 소금물에 듬뿍 적셔 하얀 소금을 술술 뿌려서 이리저리 굴리면 이내 여인처럼 부드러워지는 배추는 다소곳합니다. 붉은 고춧가루에 젓갈 양념과 나만의 약초 육수를 부어서 푹 불리고 무와 부추를 맛내기로 곁들입니다. 뽕잎, 드릅, 돌산갓, 깻잎, 버섯, 총각무, 배추를 가지고 날마다 번갈아 가며 만드는 게 제 일입니다.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하고 양념을 버무리면 신이 나서 팔이 아픈 것도 잊고 나만의 공간에서 만드는 즐거움에 빠집니다.
사계절 약간의 가격 변동이 있을 뿐 무엇이나 흔해진 세상 속에 우리의 밥상도 다양해졌습니다. 조상들의 지혜로 수천 년을 이어온 발표식품이 밥상목록 일호였지만, 밀려드는 외래종에 어느 집에서는 외면 당하고 이국땅에서는 환영을 받기도 하는 김치입니다.
새참으로 가지고 간 짠지
시골에는 이맘때쯤이면 모내기가 시작됩니다. 소와 사람의 힘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기에 이모작을 하는 우리 집은 온 가족이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논도 한 곳에 경지정리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다락논과 들판에 나뉘어 있어, 몇 며칠 사람을 사기도 하고 품앗이도 하면서 모를 냅니다.
비는 또 왜 그리 자주 오던지 논에서 허리에 삿갓을 두르고 얼굴이 퉁퉁 붓도록 일하시는 어머님이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일꾼들의 새참을 우산과 함께 들려 보내셨습니다. 비 오는 날이라고 뜨끈한 수제비에 밥과 시큼털털한 짠지를 주셨는데, 논둑길을 조심조심 가다 팔짝 뛰는 개구리에 놀라 새참과 함께 풍덩～ 논으로 넘어졌습니다. 밀폐된 그릇도 없던 때, 흙탕물에 밀가루 반죽과 떠다니는 배추짠지비에 흙탕이 범벅이 된 나는 속도 상하고 음식이 아깝기도 했습니다.
모내기를 하시다 새참을 기다리시던 할머님께서 멀리서 보시고 달려오셨습니다. 할머님은 넘어진 아이를 챙기기보다는 일꾼들의 새참이 급해서 얼른 집으로 달려가셔서 남겨놓은 음식을 모조리 가져가다 새참을 다시 준비해오셨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손이 크셔서 늘 넉넉하게 음식을 만드셨기에 가끔 동네 어르신들이 포식한다며 좋아하셨습니다.
모내기철에는 겨울 음식이 군둥내가 나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고기가 흔하지 않았던 그때에는 군내 나는 짠지도 없어서 푸근히 못 먹고, 아끼고 아껴서 먹었습니다.
수랏상에 올랐다는 돌산 갓김치를 비롯해 김치만으로도 푸짐한 밥상을 차릴 수 있지만 홀로 밥상일 때가 많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시큼털털한 짠지도 아껴먹던 때가 그립습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 이런 것일까요?
붉은 축제의 향연
김치는 하는 날부터 그 싱싱함, 익으면 익을수록 유산균이 풍부함과 각각의 김치 맛을 즐길 수 있으며, 푹 삭아 군내가 나기까지 버릴 것이 없는 보물입니다.
맵고 짜고 단 양념들이 채소들과 어우러져 벌이는 붉은 축제의 향연,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지킴이 문화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면 더 풍요해짐을 가르쳐 줍니다.
김치는 나에게 정성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오시는 손님에게는 먹음직스러움으로 대접하는 잔칫상입니다.
김치 속에는 내 꿈이 살아있고 고향의 추억이 묻어있으며 겨울을 준비하는 양식이기도하지만 언젠가는 세계의 사랑을 받는 보물이기를 기대해봅니다. 붉은 가슴을 활짝 열고 어느 누구 앞에서나 당당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립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