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손짓(글/김윤한)

칫골에는 모두 네 기에 묘소가 있다. 조부모 내외 산소와 증조부산소 세 기는 일찌감치 마치고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 기분으로 동생과 함께 마지막 묘소, 안동댐 바로 물가에 터를 잡은 증조모 산소에 닿았다.


해마다 벌초를 하지만 이곳 묘소에 닿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물론 이 묘소는 다른 묘소에 비해 풀이 덜한 까닭도 있지만 이제 한 곳만 하면 곧 하산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이곳 산소는 안동댐 수몰이 되기 전만 해도 우리 집 바로 뒷산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내려다보고 있는 안동호 깊고 푸른 호수 , 바로 그 아래가 우리가 살던 고향 마을이었다.


그러던 것이 댐으로 말미암아 수십 년 동안 곁길을 돌아 반대편 마을을 지나 산을 넘어서 이렇게 벌초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니 해마다 벌초는 우리 가족들이 유격훈련처럼 고통스러운, 꼭 한번은 거쳐야하는 연례행사였다. 묘소 곁에 돋아난 너삼이며 상수리나무 가지를 쳐내고 벌초를 마치고 우리 형제는 증조모 묘소 앞에 엎드려 부복을 했다. 어디선가 죽은 자들의 영혼인 듯 이름 모를 새 소리가 들려왔다.


묘소 아래에 펼쳐진 고향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검푸르고 깊은 물만이 가득 차 있었다. 어느 곳에도 우리가 어릴 적 뛰어 놀던 운동장이며 골목길, 미끄럼틀은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 어딘가에 시린 눈물이 고여오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제 그렁저렁 올해 벌초를 모두 마쳤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제저녁 일기예보에서도 그런 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져 왔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져 왔다.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네시가 넘어 있었다.


벌초는 다 마쳤지만 우리가 차를 세워 둔 움골까지 가려면 넘어 왔던 산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길이라 나뭇가지들을 해치고 원점까지 돌아가려면 족히 한시간은 걸릴 것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을 안 데려온 게 잘한 일이다 싶었다. 하기사 다 큰 녀석이라 아무리 비가 오더라도 이만한 산길 정도는 달음박질 쳐서라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렇게 날씨가 궂은 날 자식을 함께 데리고 다니는 부모심정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것.


오늘 아침에 아우와 함께 둘이서 부산을 출발한 전날 아침까지도 아들 녀셕은 우리와 벌초를 함께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방학을 맞아 이제 오후 부산에 다니러 온 제 이종사촌 때문에 이번 벌초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오후 네 시면 아직 해가 있을 시간인데 사방이 깜깜해져 왔다. 빗방울은 오리나무 잎사귀를 힘차게 갈기며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자 땅에서는 안개 같은 것이 스물스물피어 올랐다.


숱하게 벌초를 다녔지만 늦여름 탓에 한 번도 비를 만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어제 저녁 아홉 시 뉴스 일기예보에도 비 소식은 없었다. 기상캐스터 아가씨가 양산을 펴 들고 방긋방긋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이 산중에서 사정없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도구라고는 아무 것도 준비된 게 없었다. 게다가 이 산중에서 비를 피해 들어앉을 처마 같은 건 더더욱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리 형제는 그렇게 쫄딱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한 이십 여 분을 걸었을까. 낫으로 나뭇가지를 쳐 길을 만들며 한 십여 미터쯤 앞서 가던 아우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안경알에 습기가 차서 앞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급히 안경알을 소맷자락을 훔치고 아우를 향해 달려갔다.


남겨진 아우는 온통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우가 쓰러진 곳은 누군가 시신을 이장해 가고 난 묘터 자리였다. 묘를 이장하면 시신이 묻혔던 그 자리는 도로 흙을 채우고 가면 좋으련만 대개는 관이  묻혔던 자리를 그대로 두고 가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어떤 곳에는 널짝까지도 그 자리에 버리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안동댐 주위에는 이렇게 묘터를 이장해 간 자리가 매우 많았다. 서울이나 부산 등 전국 각지로 이사간 사람들이 해마다 이곳까지 와서 수 시간 산길을 걸어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우리도 몇 번인가 부산에 있는 공원묘지로 이장할 생각을 했었지만, 이 정도라도 입에 풀칠하며 사는 게 다 묘터 덕분이려니 해서 이장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빗물이 등짝을 타고 줄줄 흘러 내렸다. 뿐만 아니라 드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과연 우리가 가고 있는 이길이 제대로 돌아가는 길이 맞는지도 의아스러웠다.


산길이라는 것이 어디에나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언덕이 있고 해서 도무지 이곳이 저고 같고 이곳 같아서 분간할 수 없는 지라 이렇게 헤매다가 어둠을 맞으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도 들기 시작했다. 먼 곳의 산세를 보고 내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인가 길을 잘못 들어서 갔던 길을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혹시나 이 산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119구조대에다 신고라도 해야 할 것인데 휴대폰을 승용차 안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어떻게든 어둡기 전에 이 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우리 형제는 몹시 지쳤다. 그때였다. 바로 눈앞에 큰 느티나무가 산안개를 가르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무척 반가웠다. 해마다 산소를 다녀가지만 이 느티나무만큼 우리에게 길잡이 노릇을 해 주는 것은 없었다. 산 중턱 높은 곳에 있어서 어디에서나 잘 보일뿐더러 멀리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는 이 나무를 보고 길을 바로 잡으면 틀림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잠시나마 소낙비마저 피할 수 있었다. 우리 형제는 함께 느티나무 아래로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와닥와닥 잎사귀 빗물 쏟아 붓는 소리가 요란했다. 우선 나무 아래에서는 내려 붓는 빗줄기를 피할 수는 있지만 굵은 빗줄기들이 한꺼번에 어깨 위로 주르륵 흘러내리기도 했다. 늦여름 비는 좀체 그칠 줄을 몰랐다. 오전 이른 시각 같으면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산을 내려가련만 지금은 그럴만한 처지가 못되었다. 시간은 벌써 다섯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번개와 천둥마저 치기 시작했다.


느티나무 바로 앞 십여 미터도 채 못되는 곳에는 국수방집 맏아들의 묘가 있었다. 묘가 생긴지는 십 년도 채 안되었다. 그 묘가 국수방집 맏이의 묘라는 것을 안 것은 재작년인가였다. 아버지와 함께 벌초를 하러 왔다가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국수방집 맏아들은 나 보다 열 살 가까이 많았으니까 살아 있다면 올해로 50쯤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안동댐 수몰 이후 그 보상금으로 서울로 이주를 해 갔다 한다. 그러나 짧은 밑천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렸고 부인마저 암으로 죽었다 한다.


그래서 마침내 목을 매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는 이야기를 집안 제사 때 친척들에게서 전해들었다. 한이 많은 그의 시신은 결국은 집안 논의를 거쳐 고행 땅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느티나무 고갯마루에 묻히게 되었다 한다.


큰일이었다. 아우와 함게 목매 죽은 국수방집 맏아들 이야기를 하고 잇는 동안에도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온 천지를 쩌렁쩌렁 울리며 천둥이 내리쳤다. 천둥이 칠 때 큰나무 밑에 있으면 버락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천둥이 치는가 싶더니 이내 번개가 번쩍하고 숲 속을 푸르게 비추었고 이내 다시 천둥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때 우리는 국수방집 맏아들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번갯불 사이로 드러난 그의 무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무덤 앞에는 죽었다는 국수방집 큰아들이 이 폭우를 온 몸으로 맞으며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우리 쪽으로 무어라 손짓을 해가며… 틀림없이 죽었다던 국수방집 큰아들이엇다. 커다랗고 호리호리한 키, 검은 피부, 메부리코, 광대뼈, 찢어진 눈…그는 흡사 공포영화에서나 나오는 귀신처럼 번쩍이는 푸른 번갯불을 배경으로 서서 우리를 향해 애처롭게 살려 달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옴을 느꼈다. 그의 얼굴에는 핏물인 듯한 무엇이 검게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금새 사라졌다가 번개가 칠 적마다 다시 소름끼치는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형제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음 산봉우리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번갯불 저 뒤편에서는 그 역시 우리를 향해 따라오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오다가 아우와 나는 동시에 앞으로 꼬꾸라져 엎어졌다. 급하게 도망가다가 칡넝쿨에 다리가 걸려 정신없이 앞으로 처박히고 만 것이다.


무릎에서는 무언가 끈적끈적하는 것이 흘러내렸다.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었다. 우리 형제는 다시 몸을 추스르고 골짜기 아래쪽을 향해 힘차게 내달렸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산을 거의 내려온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는 이윽고 처음 출발했던 움골 입구 우리 승용차로 돌아왔다. 승용차 안에 들어오자 빗줄기가 하염없이 자동차 시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젖은 옷이 문제가 아니었다. 급하게 차에 시동을 넣었다.


그런데 그 앞에는 국수방집 아들의 귀신이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으며 창백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 귀신은 점점 우리 앞으로 천천히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리고는 우리 차 옆에 세워둔 검은 승용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우리 둘 형제는 겸연쩍어 결국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죽은 자네 선친과 어릴 적 한마을에 살았었고 잘 아는 사이'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우리는 천천히 시내쪽으로 차를 몰았다. 비는 점점 더 억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몹시 추웠다. 히터를 틀었다. 와이퍼를 최고로 빠른 속도로 작동했지만 워낙 많은 빗물 때문에 도저히 속력을 낼 수 없었다. 그 청년의 차도 계쏙 우리 차를 따라 왔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서안동 나들목에서 우리는 대구쪽으로 진입했고 그 청년의 차는 춘천 쪽으로 갈라져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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