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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가족의 외침(글/이정희)

우리 지역에서는 일어날까말까 한 인기 연예인의 교통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연예인이라는 대중성 때문인지라 서울(MBC)의 취재요청을 비롯해 데스크의 취재지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진 만큼 정신없이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연예인과 교통사고가 나면 이렇게 억울하게 당해도 됩니까?”

“우리 형님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닙니까?”

내심 피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기자의 양심을 찌르는 바로 그 일 말이다.

인기 연예인의 교통사고 소식

지난 8월 12일 새벽, 한창 주가를 올리던 힙합 댄스그룹 ‘원티드’와 최정상을 달리고 있던 인기 댄스그룹 ‘동방신기’일행이 교통사고가 났다.

새벽 2시 50분 쯤, ‘원티드’의 매니저 신모씨가 몰던 카니발 승합차가 영주시 풍기읍 부근 중앙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앞서가던 5톤 화물트럭을 들이받았다.

차량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찌그러져 당시의 처참함을 짐작케 했다.

이 사고로 차에 타고 있던 멤버 3명 가운데 서재호(23살)씨가 숨지고 나머지 멤버 2명과 매니저 신모씨, 코디네이터 등 3명은 중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경북지방경찰청 고속도로 순찰대가 사고처리를 담당했는데 1차 조사 결과로는 운전자 신씨가 새벽 시간이라 안개와 맞은편 차량의 전조등 불빛 등으로 앞차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졸음운전이 아닌가 추정했다.

원티드의 사고가 난 지 10분 뒤, 불과 5km 떨어진 지점에서 이번에는 동방신기 멤버들이 탄 시보래 밴이 역시 앞서가던 에스페로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는 또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

휴가 길에 나섰던 에스페로 승용차 운전자인 41살 김모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함께 타고 있던 김씨의 부인과 9살, 7살 난 딸과 아들이 크게 다쳤다.

동방신기 멤버 5명을 비롯해 매니저, 운전자 등 7명도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동방신기의 사고 원인 역시 졸음운전으로 추정했다.

이들은 전날 밤, 부산 해운대에서 있은 음악전문 케이블방송 M.NET 공연을 마치고 당일 서울에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뒤 오후에는 강릉 경포대에서 KM TV의 공연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사고가 나자 많은 방송과 신문에서 앞 다퉈 소식을 전했다. 연예계의 무리한 스케줄이 빚은 예견된 일이었다고 나름대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경제난과 네티즌들의 불법 MP3 파일 내려받기 등으로 재정난에 빠진 연예기획사들은 일주일에 3-4일은 돈이 되는 지방공연을 뛸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위 잘 나갈 때 가능하면 많이 뛰어야 하고 신인인 경우엔 최대한 많은 방송에 출연을 해야 얼굴이 알려지기 때문에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다반사다.

이 때문에 일명 로드매니저로 통하는 운전사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맞추기 위해 목숨을 건 곡예운전을 감행하게 된다.

시간을 다투는 공연 일정에 아찔아찔한 심야운전,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관행화된 연예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리고 개선돼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의 아픔

그러나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 뒤에는 힘겹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아픔이 묻혀 있었다. 동방신기의 차량에 받혀 숨진 에스페로 승용차 가족의 이야기다.

숨진 41살 김모씨 가족은 대구 사람인데 부인과 어린 아들.딸 이렇게 4식구가 중고차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나는 길이었다.

김씨부부는 IMF사태 때 직장을 잃은 뒤 온갖 궂은일을 하며 고생을 하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차량 정체를 피해 새벽시간을 골라 모처럼 만의 가족 여행길에 올랐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동방신기가 탄 밴에 받혀 김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부인, 아들, 딸이 크게 다친 것이다.

동방신기는 사고 직후 안동병원으로 이송됐는데 그날 병원은 전국에서 걸려오는 문의전화와 앞마당에 장사진을 친 10대 팬들로 마비가 되다시피 했다.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은 동방신기를 걱정해서였다. 동방신기는 정오쯤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이 가족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고 이 가족을 취재하는 언론사 역시 한곳도 없었다.

나에게 전화를 한 사람은 숨진 김씨의 남동생이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동방신기 쪽에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보험사에선 와 보지도 않고 보험처리 됐으니 그런 줄 알면 된다고 한다.’
‘형님의 시신을, 남은 가족을 대구로 이송하고 싶은데 타고 갈 응급차가 없다.’
‘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울먹이며 호소를 했다.

“우리 좀 도와주세요.”
사실 취재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론 이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기사는 결국 ‘연예인 사고’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 가족과 유족에 대한 미안함에,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나의 무능함에 마음 한구석이 아직도 짠하다. 고인의 명복과 남은 가족의 행운을 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