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어찌 감당할꼬?(글/안병렬)
설익은 사랑이라 때로는 미워도 하였습니다.
하 얕은 사랑이라 때로는 저주마저 하였습니다.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라 때로는 부여잡고 울고도 싶었습니다.
어떻게 그분처럼 그렇게 거룩한 사랑으로 여기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쏟을 수 있을까요?
이는 내가 재작년인가 한 해를 보내면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연변에의 아가>라 제목 붙여 쓴 노래이다. 섬기며 사랑하며 살리라는 내 다짐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었던 것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미워하고 짜증내고 욕하고 한 자신의 삶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사랑이란 걸 다시 한번 보고 느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내 자신이 그 사랑을 듬뿍 받아 참으로 큰 기쁨을 경험하였다.
이곳 왕청현(중국 연변)의 한 마을에 한국의 경상북도 안동 부근에서 온 분들만이 약 80여 세대 모여 살고 있는데 아직도 말씨는 물론 많은 부분 안동 고유의 풍속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연변의 안동 마을”이라 이름을 붙이고 안동에 알렸더니 안동 MBC 방송국에서 찾아와 취재하여 다큐멘타리를 제작하고 이를 방송하여 높은 시청률을 올린 일이 있었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이 마을 노인 분들을 어떻게 고향 구경을 좀 시키고자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이 가을에 그 일이 이루어져 노인 열 분을 모시고 갔던 것이다.
처음 여러분을 모시고 한국 고향 구경을 시켜드린다고 하니 도무지 믿으려 하지를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낯도 모르고 아무 관계도 없는 우리들을 무엇 때문에 그 큰 돈을 들이며 데려다 구경을 시켜주겠느냐고 믿지를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나를 의심하는 사람까지도 있는 듯하였다. 그래 사전에나 사후에라도 나에게 돈 한 푼 주시는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하여도 곧이듣지를 않는 듯하였다. 하도 답답하여 “여러분이 후조(여권)를 내고서도 못 가게 되면 내가 그 돈을 변상하여 주겠다.”고 설득하여 겨우 이해를 구하였다. 그럼에도 막상 후조를 내려고 돈 300원씩을 내게 되니 또 돈이 아까운지 확인을 하려고 하였다. 후조까지 내고서 못 가면 어쩌느냐고 하는 것이다. 그래 전화를 받은 내자가 하도 딱하여 “그렇게 못 믿겠으면 못 가시죠!”라고 하였다가 나에게 야단을 맡기도 하였다. 이 분들에게 이런 공짜의 서비스는 전혀 예상이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예상도 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져 2003년 9월 23일, 평생에 처음 있는 나들이를 위해 집을 나서 연길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24일 드디어 한국 서울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이제 정말 가는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그래도 왜 이렇게 지나친 대접을 받는지 의아해 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기분은 인천 공항에 내리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리는 순간부터 너무나 융숭한 대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중 나온 강선생 내외분의 따뜻한 환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환영한다는 커다란 프랑카드며,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의 식사며, 도착 후의 갖가지 환대는 이분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이었다.
도착 이튿날부터의 관광, 천년 고도 경주에서의 이 모습 저 모습은 오히려 서먹서먹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감포로 해서 포항, 영덕으로 동해안을 돌며 평생 처음 바다를 보고 손을 담가보는 즐거움은 더욱 추억거리가 되었을 것이고 서울에서는 경복궁 덕수궁의 고궁이랑 노량진 수산시장의 구경도 볼만하였고 국회의사당에다 KBS구경 등도 놀라왔지만 무엇보다 63빌딩의 구경은 평생 엘리베이터도 처음 타보는 이들로서는 신기함 그 자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경보다 이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많은 분들로부터 받은 충심으로의 환대이었던 것이다. 온 시내의 기관과 시민이 다투어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주며 심지어 용돈까지도 주는데 이르러서는 아연 황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숙박지인 “우리집”의 원장 장영자 여사는 마치 자기 아버지, 어머니인 양 모시어 그들로 하여금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잠 재우고 식사 대접하는 기본적인 일에 신경 써서 잘 해줌은 말할 나위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어 옷을 챙기어 주고-낡은 옷 이외에 새로 50만원어치나 샀다고 하였다-온천에 가서는 손수 한 분 한 분의 때를 밀어줌에는 그만 이분들로 하여금 울음을 삼키게 하였던 것이다.
이 모든 광경을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며 깨닫고 다시 한번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고개가 숙여졌다. 먼저 아직도 훈훈한 안동의 인심, 나아가 한국인의 인심을 본 것이다. 왜 이토록 따뜻이 맞아주는가? 그저 동족에 대한 사랑, 동향인에 대한 사랑 그것뿐이었다. 이 사랑이야말로 진정 순수한 사랑이 아닌가? 이들에게 베푼 사랑은 전혀 대가성이 없는 사랑이다. 이들에게서 무엇을 얻을 것이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또 나아가 이 사랑은 아무에게 알려지지도 않는 사랑이다. 신문에도 TV에도 나오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하는 사랑이다. 이게 참사랑이다. 이 순수한 사랑을 보면서 필자는 사랑하노라고 여기 연변에 산다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그 순수한 사랑 앞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대비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필자를 감격하게 만든 것은 이 노인 분들이 그 사랑에 진정으로 고마워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는 그 순수한 마음씨였다. 대접하시는 분들이 무얼 사서 대접하려면 어쩔 바를 모르며 지겨우리만큼 사양하시는 그 모습에서 나는 순수한 우리 옛 조상들의 그 본성을 만나는 것 같아 더없이 푸근함을 느끼었다. “어쩌면 저렇게도 순진할 수가 있을까?” “어찌 저렇게도 진심으로 죄송해 할까?” 나 같으면 저럴 때 그저 덤덤히 앉아 그 대접을 그저 그대로 받으며 “고맙구먼” 할 뿐일 것만 같았다. 오만해진 내 자신의 마음 구석, 무디어진 내 가슴을 들여다보며 한없이 부끄러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나를 감격하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연길에 도착하여서다. 애초에 이분들의 집이 연길에서도 멀어 당일 도착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위의 장여사가 그러면 차를 한 대 전세 내어 가시라고 필자에게 돈을 주었다. 그러나 이분들은 당치도 않다고 기어이 사양하면서 연길에 아들, 딸들도 있고 친척이 많아 자고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연길 공항에 나오니 마중 나온 사람은 몇 되지도 않는데 바람은 씽씽 불어 며칠 간 한국의 따뜻한 기후에 젖었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남의 호의를 받아 편안히 귀가하지 않는 이분들에 대한 섭섭함이 일었다. “여기서 전세 버스로 편안히 가시면 되는데 이 무슨 고생이냐. 체면도 너무 지나치시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 그만 짜증스런 목소리로 “그래 그러면 이 돈으로 개를 사서 동네잔치나 한번 여세요” 하면서 그 돈을 드리고 말았다. 이때 마침 어느 아는 분이 차를 가지고 필자를 마중 나와 빨리 가자는 바람에 두 분은 그 차의 빈자리에 같이 탔으나 다른 분들은 그냥 공항에 두고 오게 되었다. 오면서 생각하니 그 분들을 이 차로 먼저 보내고 나는 택시로 나중 와야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분들은 죄송하여 차를 전세 내지 않겠다는 것인데 도리어 내가 짜증스러이 말을 하였으니 얼마나 섭섭하였으랴 하는 자책이 들었다. 아무리 이국이라고 한들 연길은 내 집이 있는 곳이요 이분들에겐 타지인데 내 혼자 먼저 왔으니 이런 결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껏 잘 모시고 갔다 와서 마지막 순간에 이 무슨 실수란 말인가? 나는 이 죄책감에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별 방도가 없었다.
이튿날도 이 후회에 영 기분이 편치 못하였다. 오전에 학교에 잠깐 나갔다가 오후 누워 쉬는데 노인 분들의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벌써 집에 도착하셨느냐고 하니 아니고 지금 연길이란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 안 가고 모였는데 꼭 나를 만나겠다는 것이다. “무슨 중대한 일이 생겼을까? 가을하기에 한창 바쁜 철일 텐데 무슨 중대한 일이 있기에 안 가시고 하루를 더 묵으며 나를 보자고 하실까?” 생각하다 다음 순간 속으로 뜨끔하였다. “옳지. 어제 그 일로 나에게 따질 것이로구나.”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일로 뭐 그렇게 따지고 항의할 정도는 안 되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또 그 일 말고는 뭐 그리 섭하게 한 일은 없고 또 말끝마다 고맙다고들 하였으니 아무래도 어제의 그 일에 속이 많이 상하여서 따질 것인가 보다 생각하였다. 그러면 깨끗이 사과하리라 다짐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니 전혀 뜻밖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교수님께 저녁 한 끼라도 대접하고 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오늘 하루 더 잔다고 하면서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나는 아연실색, 할 말을 잃었다. 이 순진한 사랑 앞에 그저 탄복만이 나왔다. “아, 이런 인정이 아직도 우리 이웃에 있구나? 이렇게 순수하신 분들이 아직도 계시구나.” 이 참 인정, 참 사랑, 그리고 지고한 순정 앞에 나는 실로 감격하여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그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었다. 그러면서 잠시나마 이 순진한 분들을 의심한 자신의 옹졸함을 뉘우치었다.
그러다 다음 순간 내가 기쁘게 대접을 받아들이므로 이분들이 그렇게도 기뻐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저 모든 걸 잊고 한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그리고 또 한 가닥 위로를 얻었다. “나도 남과 더불어 기쁨을 함께 나눌 수가 있구나.” 하는 기쁨이었다. 남의 기쁨에 배 아파하지 않고 같이 기뻐하는 자신이 그래도 조금은 철이 든 것 같았던 것이다. 좀 건방진 비유이지만 “여민동락(與民同樂)”이란 이를 두고 이름인가? 그러나 이 여민동락도 따지고 보면 안동 분들의 그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니, 그리고 그 사랑을 사랑으로 갚으려는 이 노인 분들의 어짊에서 비롯되었으니, 이 두 곳 분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결과를 낳게 하는 것, 이게 참사랑에서 비롯되었던가? 참사랑은 이런 결과를 낳는 것인가? 이 여행에서 나는 사랑을 느끼고 알고 그리고 이 사랑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덕을 알았으니 얼마나 얻은 것이 많으냐? 그 사랑을 베푼 안동 분들, 나아가 그 사랑에 진심으로 감격해 하는 이곳 노인 분들, 이분들의 참사랑의 어우러짐에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얻어 배우고 깨달았기에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돌린다. 그리고 이제 나의 <연변에의 아가>는 “내가 어떻게 사랑할꼬?”에서 “이 사랑을 어떻게 감당할꼬?”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