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곧 사람이다(글/이은경)김진애 著『이 집은 누구인가』/한길사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아파트와 시멘트 바닥은 아이들의 타고난 생명력을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들의 작은 손으로 열기에 아파트 철문은 너무나 무거웠으며, 여린 뼈들이 충격을 흡수하기엔 시멘트 바닥은 너무나 단단했다. 여리지만 생명력으로 꽉 차 있는 애들과 십 년 넘게 호흡한 세월은 나 자신이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서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
바램이 있다면 아이들이 날마다 채소나 동물을 돌보며 자연의 품안에서 자연의 이치를 체득해 가는 사람으로 커가고, 나아가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 가는 아름다운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 바램은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서 뒹굴며 둥글둥글하게 자랐으면 하는 것이었다.
두 바램을 아파트에 살며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본 과정들을 돌아보면 눈물겹다. 베란다에 몇 개의 나무상자를 들여놓고 산에서 흙을 퍼 날라다 채워서는 나팔꽃, 고추, 상추, 호박 따위를 기른지 몇 해. 햇빛, 바람, 비, 벌과 나비가 맘대로 들어올 수 없는 그 밭을 가꾸는 일은 기쁨보다 오히려 슬픔이 컸다. 어쩌다 며칠 집을 비웠을 때 늘어져 누운 식물들을 보며 자연과 소통되지 않는 아파트란 공간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웃끼리 왕래가 뜸한 아파트에서 아이 함께 기르기, 아이 사회 만들기는 또 얼마나 힘겨웠는지. 우리 집을 통째로 개방해서 몇 년을 지내니 아이들은 스스로 부대껴가며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아이들은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오고 가던 엄마들 또한 눈앞에 버티어 선 입시대열로 아이들을 몰아 가느라 여념이 없다. 나 또한 홀로 남은 우리 아이를 보듬고 그 대열을 기웃기웃 넘보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맘때쯤 김진애씨의 {이 집은 누구인가}(한길사)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진애씨는 건축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며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100인의 지도자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는 {이 집은 누구인가}를 통해 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열두가지 제목에 달아놓고 있다. 저자는 집이란 자연과의 관계 맺기이며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내용을 담아내는 집으로서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을 돌아본다면 많은 느낌들이 살아날 것이다.
실내공간에 대한 시각의 전환
책을 읽으며 내내 즐거웠다. 살면서 답답하던 점들이 전문가의 식견과 감성에 의해 뻥뻥 뚫리는 시원함이란.
특히 구석에 대한 이야기는 실내공간을 보는 시각을 바꿔주었다. 물론 어렸을 때 기억으로나 애들이 하는 짓을 살펴보거나 몸을 겨우 숨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주는 각별함을 알고 있던 터라 장롱 한 칸을 비워 아이들이 들어앉을 수 있게 했다. 또 냉장고 포장 상자를 작은 집으로 만들어 들어가 놀 수 있게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넓어 보이는 집이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늘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집은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전시공간이 아니며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곳이란 대목이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아직 다 담아내지 못한 바램들을 담아낼 구석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거실 한구석에 찻상을 들여놓고 그 옆엔 컴퓨터 책상을 놓았다.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을 펴놓아 언제라도 쓰고 읽을 수 있게 하였더니 주로 텔레비전을 보던 공간이 우리 집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가족끼리 접촉도 많아졌다.
이 집은 어떤 성을 갖고 있는지 묻는 대목에선 놀라웠다. 어디나 내 공간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안주인과 손님 같은 바깥주인 둘 다 진정한 자신의 공간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체성이 강한 남편은 집안에서도 바램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편이다. 그러나 아직은 못다한 바램이 있을 것이다. 애들은 애들대로 바램이 따로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언제라도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그 소리를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마도 가정을 건강하게 살리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귀머거리집에 보청기 달기
나는 요즘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조그만 양철 차양을 내달 생각을 한다. 귀머거리 집에 보청기를 달아 빗방울 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실 통로에 들여놓은 조그만 들마루에 추억을 쌓아가고 싶다. 또한 한 공간에서 똥누고 몸 씻는 것이 영 마뜩찮았는데, 욕조와 변기를 공간 분리하려고 한다. 욕조에 누워있는 시간만큼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상상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작은 바램을 꼭 실현시키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연 품에 자연과 원활히 소통하는 집을 짓고 싶다. 단풍드는 가을 앞산을 바라보며 다정한 벗과 차를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고, 뜰 앞엔 남천을 심어 아침마다 그 아름다운 모습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르륵 사르륵 눈 쌓이는 소리에 새벽잠 깨는 겨울날이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고, 한여름 소낙비 내려 펴오르는 흙내음이 한지문을 통해 코 끝에 전해왔으면 좋겠다. 텃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토마토며 가지, 고추, 오이에 물을 주고 강아지와 병아리를 기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더구나 우리 집에 누구라도 와 보고 싶어한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손님 온다는 기별 듣고 사랑방에 군불 지피며 설레는 마음을 달래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