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음악교구 납품비리의 실체는?(글/이정희)지금 경북교육계는 교육청의 교구비리가 초유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청송에서 터진 음악교구 비리는 경북지역 전체 교육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로까지 확대됐다. 사실규명 여부에 따라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과연 경북교육의 교구비리 실체는 어느 정도일까?
엉터리 교구를 엄청난 가격에
지난 5월, 청송교육청 직원과 업자가 학교를 돌아다니며 음악교구 구매를 강요한 사실이 일선 교사들에게 목격됐다.
교육청은 학교의 요청도 없었는데 해당 업자가 만든 악기를 일괄적으로 구매해 일선 학교에 내려 보냈다.
전교조 청송지회는 정보공개를 요구해 일부 구매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교구비리 유형은 이렇다.
저렴한 교구가 있는데도 상표도 없는 저질의 악기를 비싼 값에 사들였다. 음악수업에 필요한 실로폰의 시중가격은 개당 만 2천원이다. 그런데 실로폰과 비슷한 ‘메달폰’이라는 악기를 한 개에 12만원이나 주고 샀다. 그렇다고 메달폰이 실로폰보다 월등히 좋은 교구는 아니다. 재질이 나빠 정확한 음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10배 이상 예산을 낭비한 것이다. 중학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용 가야금은 45만원짜리가 있는데도 한 개에 160만원을 주고 일괄 구매했다.
놀라운 것은 제작회사나 등록상표도 없는 저질의 악기를 교육청이 사들였다는 것이다. 싯가 5만원하는 작은북은 28만원짜리를 구입했다.
문제는 이 같은 교구비리가 청송교육청에만 그치지 않고 23개 전 지역교육청에도 의혹이 간다는 점과 비단 음악교구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엉터리 악기를 엄청난 가격에 납품한 문제의 업자가 30년 가까이 경북지역 대부분의 교육청에 교구를 납품해 왔다는 사실이다.
경북지방경찰청은 6개 교육청을 수사해 납품업자 67살 최모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수의계약으로 편의를 봐 준 대가로 돈을 받은 교육청 공무원 15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그런데 경찰조사는 수사기간은 최근 6개월로, 대상은 6개 교육청으로 한정됐다.
안동MBC 자체 취재결과 다른 교육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됐다.
인근의 한 교육청에서도 한개 12만원 하는 똑같은 ‘메달폰’을 사들여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다. 요구하지도 않은 메달폰을 전해 받은 학교에선 이 악기를 수업에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음악교사조차 이 악기를 받기 전까지 메달폰이 뭔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 교육청은 과학교구도 이런 식으로 사들여 학교에 내려 보냈다. 신경계 인체모형이 그것인데 조달청을 통해 전국 초ㆍ중ㆍ고에 납품되는 정상가는 비싸도 30만원 선이다. 그런데 무려 169만 8천원짜리를 구매했다. 기자가 서울의 한 과학교구 전문업체에 문의해 본 결과 이 정도 가격의 과학교구는 국내에선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 등지에서 수입되는 모형이 있는데 의과대학교에서나 쓴다는 것이다.
이 교육청은 이런식으로 올해만 2천5백만원 어치의 교구를 일괄 구매했다. 물론 비교견적 없이, 구속된 업자와 관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업체의 견적만 받아 수의계약했다.
비리척결에 본격적인 대응촉구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교육공무원 노조, 민노당은 지난달 말 경북교육 비리척결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키고 본격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교구비리는 구조적으로 상급자의 지시나 방조,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도 하위직 직원만 입건됐다며 경북교육청 본청과 23개 지역교육청, 교육장등 간부들에 대한 전면 수사를 촉구했다. 그리고 이달 초 감사원을 찾아가 감사청구서를 전달하고 경북교육청과 23개 지역 교육청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경북교육청은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감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고 또 감사담당자 3명 모두, 경찰조사를 받았던 지역교육청의 관리과장으로 있던 사람들이어서 감사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구비리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경북교육청은 감사담당자 3명을 다른 보직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 관련자에 대한 징계는 전혀 없었다.
경북지역 교육청의 교구비리 문제는 국정감사 자료제출 거부 논란으로 더욱 증폭됐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경북교육청이 국정감사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했다며 계속 거부할 경우 관계법에 따라 경북교육감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최의원측은 지난 2001년부터 올해까지 경북교육청과 23개 지역 교육청의 구매?입찰 관련 서류 일체를 요구했었다. 경북교육청 직장협의회는 뒤늦게 교육계 전체가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되는 게 싫어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의원실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한 교육청마다 트럭 한대분이라며 업무에 지장이 너무도 크다고 하던 경북교육청이 실제로 보내온 자료는 5박스에 불과하다며 한마디로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더구나 보내온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핵심자료 대부분이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계약 입찰과정에서 받도록 돼 있는 비교견적서 상당 부분이 빠져 있고 독점적으로 물품을 납품하고 있는 특정업체가 낙찰된데 대한 근거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교구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자료를 누락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14일 있은 경북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견적서 도장까지 위조한 모업체가 경북지역 과학교구 상당부분을 납품하고 있고 열린우리당 복기왕의원은 시중에는 없는 메달폰이 9년 전에는 메탈폰으로 교육청에 독점 납품됐다고 공개했다.
의원들은 음악, 과학, 체육교구도 대부분 특정업체가 경북지역 각 교육청에 납품을 독식하고 있고 물품도 터무니없이 비싼값이지만 조악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노당 최순영 의원은 경북교육청 관계자로부터 욕설과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하고 재차 관련자료 일체를 요구했다.
도승회 경북교육감은 본청이 물품을 계약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교구비리는 전혀 몰랐다는 답변과 국감자료 제출거부는 직장협의회가 한 일이라고 떠넘기는 등 무책임한 답변으로 2차례나 의원들의 반발해 경고를 받았다.
감사원과 교육부의 감사를 잇따라 요청
이날 국정감사에 나선 의원들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노당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교육부와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경북지역 교구비리 문제는 국회 차원의 특별감사 요구 외에도 각계에서 감사원과 교육부의 감사를 잇따라 요청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경북교육청 전체에 대한 감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주민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구를 놓고 교육청이 30년 가까이 조직적으로 비리를 저질러 왔다는데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 납품하는 교구시장 규모는 수백억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앞으로 경북교육청의 교구비리 실체가 얼마나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