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를 만드는 여자 김명숙씨(글/이미홍).jpg)
햇살이 온 몸에 내려앉는 게 좋아 마냥 햇볕 바라기를 하고 있어도 좋을 것만 같은 가을날이었다. 골목어귀에 서 있는 고된 풍파를 견뎌온 듯 군데군데 옹이가 진 떡갈나무를 지나 이층벽돌집을 찾아 들었던 날은.
골목이 끝나는 곳 대문 밖에 수필문학회 회원이면서 조각보를 잘 만든다는 여자 김명숙씨가 나와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볕이 아까워 우리가 오기 전에 염색 작업을 했다며 편한 차림이었는데, 그 얼굴이 참으로 수수하면서도 정갈하게 다가왔다. 그이를 따라 들어간 집 안도 주인을 닮아 있었다. 밖은 양옥으로 된 붉은 벽돌집이었는데 그 안은 너르면서도 조용하고 정갈한 게, 그 방에 있는 다듬이돌이며 남포며 앙증맞은 다기류 들이며 그런 오래된 소품들과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한편으로 편안한 맛이 있었다. 벽에 걸린 조각보며 마름질한 옷이며 곱게 염색된 천을 보고 있노라니 차를 내오던 주인이 그걸 본 모양이다.
“저건 오래 전에 염료를 써서 염색했던 건데 따뜻해 보여서 걸어둔 거고, 자연 염색은 그 느낌부터가 달라요. 지금 밖에 감 염색을 해 놓았는데, 감염색은 염색하고 말리고 염색하고 말리고를 여러 번 해야지 제 빛깔이 나거든요. 저는 옛날부터 왜 그런지 우리 것들 중에서도 오래된 것들에 마음이 가요. 요즘 나오는 것들 중에도 예쁘고 멋진 것들도 많은데, 그런 것들은 그저 아, 예쁘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도 마음으로부터 욕심이 나거나 한 번 만져보고 싶다거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보면 욕심이 나서 눈에 뜨이는 대로 구해 와서 곁에 두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시간나면 그냥 한번씩 들러서 마음이 가는 대로 소품 위주로 많이 구입을 하는 편이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욕심을 내서 마음먹고 가면 이런 것들이 손에 안 들어와요. 그냥 오가는 길에 하루같이 들르다보면 어느 날 내 물건을 만나는 거예요. 한 번은 산책 갔다 오는 길에 눈도장이나 찍으려고 들어갔는데 저 구석에 둘둘 말려 있는 게 있어 보니까 옛날에 직접 염색한 오래된 천 두루마리더라고. 그걸 가져와서 지금껏 아껴 아껴가며 조금씩 끊어서 쓰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내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귀한 발견이었어요.”
조각보를 만들면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서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데, 이제는 조각보 작업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 밖에 안 해요. 그런데 이 조각보를 하자니 자연 염색을 안 하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마침 몇 년 전에 염색을 배워놓기를 잘해서 조각보 만들면서 제가 생각하는 색깔의 천을 염색해서 만들어 쓰니까 좋아요. 그리고 저처럼 조각보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꼭 필요하구요. 염색이란 게 참 까다로워요. 같은 재료로 해도 사람마다 천마다 그 색상이나 느낌이 다 다르게 나와요. 황토나 감이나 먹이나 이런 것들은 특히 더 그래요. 원래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거기서는 염색이나 이런 것들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당 있는 넓은 집을 구한다고 구해서 온 게 지금 사는 집이라고 한다. 그것도 그녀는 시골에 있는 마당 너른 집을 구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그 나이에 여자 혼자 살기에 아직은 시골살이가 힘들다고 만류하던 차에 아는 분이 마침 집을 지어서 세를 놓는다기에 여기로 전세를 얻어들게 된 게 삼 년쯤 되었다고 한다. 마음 놓고 욕심껏 염색을 하게 된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리라.
“염색한 걸 그날그날 기록을 해 놓는데, 가계부 위쪽에 염색한 양과 횟수를 적어놓죠. 그런데 조각보는 염색 작업도 그렇고 이게 정말 조각보가 작아도 조그만 조각조각 하나하나 바느질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려요. 그러고 제가 사람이 작아서 그런지 작은 조각 천들을 좋아해서 하다 보면 나는 조각들이 자꾸자꾸 작아져요. 그러다보니까 어떤 때는 조각보 하나 만드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수이 잘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안돼요.”
매일 조그마한 조각 천을 들고 오늘 한 조각 내일 한 조각 그렇게 이어가는 날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그 천들이 이어져 조각보가 되어 있다.
만들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잘가요
육 년 전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난 후, 그녀는 정말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사는 게 견디는 게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아무 것도 못하고 맥을 놓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때 가까이 지내며 옆에서 힘이 되어 주던 이들 중에 조용하고 얌전한 후배 하나가 있었는데, 그 후배가 어느 날 시어머니가 바느질을 즐겨하셔서 틀로 풀주머니 같은 것도 만드시고 밥상보도 만드시고 하시는데 언니가 좋아할 것 같아서 가져왔다며 가로 오십 센티, 세로 삼십 센티 정도 되는 틀바느질로 만든 조각보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걸 집에 가져와서 펼쳐놓고 보는데 마음도 편안해지고 참 좋더라고요. 그전에는 바느질은 좋아해도 조각보 같은 걸 만들어볼 생각은 안했었는데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이걸 한 번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거라면 나도 뭔가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그리고 그걸 밝은 날 햇볕에 비쳐보는데 너무 고와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내가 한 번 만들어보자 싶어서 그게 계기가 돼서 조각보를 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셈이죠. 처음에는 틀바느질로 했는데 그런데 하다 보니까 이게 아니다 싶더라고요. 아주 작게 박으려면 아무래도 손으로 하는 게 확실하거든요. 뭐니 뭐니 해도 기계보다는 손이 제일 정확하고 섬세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바느질로 조각보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만들어 놓으니까 사람들이 보고 너무 이쁘다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걸 만들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잘 가는 거예요.”
아마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그이가 그렇게 조각보에 빠져들어 간 것은. 시간이 잘 간다는 것.
행복한 글쓰기를 했던 시절
중매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낳고 그리고 글 쓰는 재미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남편은 학교를 그만두고 목장을 하고 싶어 했다. 남편이 남편의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가자고 했을 때 그이는 부천에서 주부백일장에 장원을 하고 문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다. 백일장 현수막이 내걸린 것만 봐도 가슴이 뛰었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흔쾌히 그러마 했다. 그때는 마음이 그랬다. 남편을 믿기도 했고 그리고 어디에 가서 살던,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모르던 나이였기도 했다. 지금 스물 여섯인 딸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이었다. 그렇게 안동으로 내려와서 남편은 목장을 일구었고, 그녀는 안동수필문학회와 주부문학회에 들어가 나름대로 문학회 활동도 하고 남편을 도와 목장 일도 하면서 바쁘게 살았고 열심히 글도 썼다. 젊은 날 그는 그렇게 남편 그늘에서, 남편에 기대어 살았다. 글 쓰는 아내를 자랑으로 여겨 이것저것 하지 말고 책 읽고 좋은 글만 쓰라고 책을 사다 나르던 남편에 기대어 그는 행복한 글쓰기를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가고, 남편 없이 그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시내로 이사를 나오고, 안팎으로 난 생채기를 주워 담고, 그러고 나서 온전히 시간이 통째로 주어지자 정작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는 게 맞으리라. 사람은 가고 없는데 남편과 함께 심었던 나무가 이제 십 년이 넘어 훌쩍 자라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이제 그 집 생각은 나지 않는데 나무 생각이 많이 나지만 그래도 잘 안 간다고 한다. 아직도 그 집에 가면 슬퍼지기 때문이다.
작은 것 한 가지에도 정성을 들이면 표가 나요
한 이삼년은 그에겐 정말 너무나 힘든 순간들이었다. 시간이 많아서 책을 죽어라고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가슴 속에 뭔가가 쌓이고 쌓여서 곧 폭발할 것 같은데도 아무 것도 말이 되어 글이 되어 나오지 않는 상태, 할 말은 많은데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때 잡은 게 조각보였다. 조각보는 그에게 무엇보다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조각보를 이어가는 어느 순간 그는 아무 사심도 없이 오로지 바느질 한 가지에만 온 마음을 쏟았다. 그러면서 알았다. 바느질은, 조각보는 욕심을 버려야만 되는 일임을. 한 순간 작품에 욕심을 내어 무리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바늘땀에 표시가 나고 마는 이치를. 그리고 이상하게도 바느질을 하면 잡생각이 다 나가는 거였다.
“내가 바느질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건 작은 것 한 가지에도 정성을 들이면 표가 난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조각보를 왜 좋아하냐 하면은 조각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거예요. 내가 조각보에 대해 궁금해서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어떤 책에서 보자기라는 말에는 복 복자라 할 때의 복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복을 싼다는 의미의 보자기인 거지. 그래 지금 전해져 내려오는 보자기를 보면 한 번도 쓴 흔적이 없는 보자기가 고대로 내려온다고 그러거든요. 옛날에 천이 귀했잖아요. 그런데도 엄마들이 없는 시간에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항상 좋은 마음으로 그 조각보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속상한 마음이나 시간을 때우려고 만든 게 아니라 정말 좋은 마음을 정성을 들여 복을 싼다는 의미로 그 조각보를 만들어서 시집가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줬다는 거죠. 엄마의 정성과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아는데 시집간 딸이 어떻게 그 조각보를 함부로 쓰겠어요? 쓰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한번씩 꺼내어보고 그랬겠죠.”
그리고 조각난 자투리 천을 모아서 만드는 것이다 보니 조각보가 궁중에는 없었던, 오직 민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지극히 서민적이면서도 그 소박한 아름다움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녀가 조각보를 아끼는 이유이다.
“옛날에 애기씨들이 제일 처음 바느질을 배울 때 자투리 천하고 실도 끊어서 줬다고 해요. 왜냐하면 실 하나도 아껴 쓰라는 거죠. 그리고 그 조각보 하나를 만들면 거기에는 모든 바느질 기법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홈질, 상침, 감침질, 공그르기, 그래 조각보 하나를 하면 바느질 기법을 다 배우는 거죠. 그리고 조각보가 다 되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검사를 해서 잘못한 거는 다 뜯어서 다시 하게 했다고 해요.”
뜯어서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고 하는 사이에 바느질도 배우고 조각보를 만드는 여인네들의 마음도 자연스레 배웠으리라. 옛날 어머니들이 조각보를 만들던, 조각난 천 하나라도 허투루 하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정성으로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어 내던 그 마음을 그녀는 잊지 않으려 애쓴다.
“어떤 때, 내가 필요한 천이 내게 없을 때는 한복집에 가서 필요한 천을 끊어다 잘라서 쓰곤해요. 어찌 보면 그게 조금은 조각보 정신에는 어긋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요즘 남는 조각 천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자투리 천으로 만든 조각보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거든요. 자투리 천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라 바느질하기도 배로 힘들고 조각보를 자연스럽게 잇기도 어렵거든요. 그렇지만 만들어 놓으면 정말로 자연스럽고 은은한 게 좋아요. 그래 작년에는 제가 삼베 조각으로만 조각보를 만들었는데 그거 같은 경우에는 한복집에 자투리 천을 모아 달라 미리 부탁을 해서 그 집에서 일년 동안 모은 자투리 천을 얻어다가 작업을 했거든요. 그때 제게는 그 자투리천이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존재였어요.”
그가 자투리 천을 천군만마라 일컬을 만치 소중히 하는 걸 아는 염색을 하는 한 친구는 자신이 염색한 건 물론이고 같이 염색을 배우는 사람들한테까지 부탁을 해서 염색한 샘플 천을 있는 대로 구해다 주기도 한다.
그네도 봄부터 가을까지 볕이 좋은 날을 골라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염색을 해 놓는다. 감 염색, 먹물 염색, 황토 염색, 치자 염색, 천에 따라 날씨에 따라 주물럭거리는 그날그날 팔의 기운 따라 횟수 따라 그 빛깔도 느낌도 천차만별인 천들을 하나 가득 방안에 들여 놓고 내보이는 그 표정이 참으로 넉넉해 보인다. 온 겨우내 들어 앉아 마음 놓고 조각보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소박하게 전시회라도 한 번 가져보고 싶은 생각
처음 조각보를 만들기 시작하고서 얼마동안은 달라는 대로 줘 버리는 바람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래도 요즘은 내가 만든 걸 저리 좋다 하고 이뻐하는 데 싶어도 좀 자제를 하는 편이다. 한 땀 한땀 이어나간 조각보 어느 하나 정성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없고 같은 작품이 하나도 없는데, 사진으로 저장해 놓은 것도 없는데 줘 버리고 나면 다시 보지 못하는 게 너무 허전하기도 하고 해서, 얼마 전부터는 만든 조각보들을 나름대로 좀 모으고 있는 중이다.
작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소박하게 전시회라도 한 번은 가져보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을 팔라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아직 그녀는 자신의 분신 같은 작품을 팔고 싶은 생각이 없다. 정말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에는 미리, 그럼 세월없이 기다려라 하는 약속부터 한다.
“어떤 사람이 조각보 하는 걸 다래기 논 있잖아요, 다락 논이라고도 하는. 층층이 다닥다닥 붙은 그 다래기 논에 농사짓는 거에 비유했더라고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 다락논이 보기에는 정말 이쁘잖아요. 그런데 그 논에 농사짓기는 어렵거든요. 물대는 것부터 탈곡하는 것까지. 이 조각보가 그래요. 보면 이뻐서 바느질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은 보면 아 나도 저 정도는 배우면 할 수 있겠다 싶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 보면 그게 쉽지가 않다는 거죠. 첫째는 끈기가 있어야 돼요. 바느질도 바느질이지만 정성과 끈기가 있어야 돼요. 이 조각보는 느리게 하는 거거든요. 그러고 나서 나름대로 감각도 있어야 되고.”
좋은 기운으로 사는 법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자기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어떤 분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이게 하늘이 내게 준 내 일이라 생각하고 그 일에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크게 된다고 그랬거든요. 그래 바느질도 하늘이 내게 준 일이라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이게 내 길이다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거 돈 되냐고, 하더라도 제발 돈 되는 일 좀 하라고 그래요. 같은 걸 여러 개 만들어서 판다든지, 그도 아니면 작품 따로 팔 거 따로 그렇게 만들던지 하라고 조언도 가지가지죠. 그렇지만 저는 재주가 없어서 돈 되는 거 따로 아닌 거 따로 그렇게 조각보를 만들지를 못해요.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말릴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좋아요. 저를 잘 알고 아껴주는 그런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거.”
물론 그녀도 누구 작품이 어디에 났다더라 어디서 누가 전시회를 한다더라 하면 나도 한 번 내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괜히 앞서기도 하고 그럴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럴 때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각보는 시간과의 싸움이고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무 사심 없이 마음을 비우고 바느질을 하면 어느 순간 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바늘땀이 정확하게 제 자리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자칫 마음속에 언짢은 생각이라도 있으면 바늘땀이 대번에 표시가 난다.
“내가 만든 조각보가 나중에 어느 누구 손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내가 이 조각보를 좋은 기운으로 만들어야 이걸 간직하게 될 사람에게도 좋은 기운이 전해진다고 나는 믿어요. 그게 조각보를 만드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바느질을 해요. 그래 나는 바느질을 하면서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하고 노력을 해요.”
바느질을 하다 마음이 흐트러졌다 싶으면 그는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한다. 젊어서는 지나치게 격식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 멀리하던 다도를 우연한 기회에 명상을 하면서 차를 다리
고 따르는 행다를 통해 자신을 닦는 명상다도를 배우게 되었는데, 다도를 배우기를 정말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바느질을 하다가 흐트러진 마음을 붙잡는 데 명상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다가 그도 안 되면 책을 한 옆에 쌓아두고 한 권씩 읽어 내려간다. 어떤 때는 한 밤을 새워 읽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며칠을 내리 책만 읽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바느질감을 손에 잡게 된다. 조각보에 매달리다 보니 요즘은 생각만큼 글을 많이 못 쓰고 있다고 한다. 대신 열심히 읽고 생각한다. 지금 하나 쓰고 있는 게 있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 조각보를 하면서 오래오래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다.
‘다도’라는 잡지에 써 낸 그녀의 글 ‘혼자 견디기 공부’는 이즈음의 그녀가 사는 모습에 관한 이야기다. 먼 길 같지만 꿈을 가지고 시간을 견디어 가는 것.
“내가 조각보를 좋아하는 이유는 조각보를 이렇게 햇볕에 비춰 보이면 정말 그 빛깔이 더 아름답고 고와요. 사람도 그렇게 밝은 햇빛 아래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밝은 햇볕 아래에서 아름다우려면 모든 게 다 좋아야 되잖아요.”<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