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휘저우의 고 촌락에서 안동을 본다(글/임세권).jpg)
안동과 닮은 도시 휘저우
홍춘[宏村]은 글자 그대로 굉장한 마을이었다. 8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고풍스런 마을은 방문한 사람들을 고스란히 명나라 때로 데려가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시간여행의 체험을 시켜준다. 나는 10여년 전부터 중국의 구석구석을 찾을 만큼 찾았다고 생각했다. 광시[廣西]나 윈난[雲南]의 소수민족 마을들이나 신쟝[新疆]의 투루판과 같은 고도를 돌아볼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홍춘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감흥을 나에게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그곳이 마치 내가 사는 안동을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홍춘이 몇 가지 점에서 안동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곳이 같은 성씨들이 모여사는 동성마을이라는 점이고 다음은 수백년 전의 옛 집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종가와 종손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지금의 마을 주민들이 그들이 고향 마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긍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홍춘에는 소위 홍춘 왕씨(汪氏)로 불리는 왕씨 성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13세기 후반 이곳으로 이주해와서 산간 벽지의 보잘 것 없는 마을을 오늘과 같은 대촌으로 발전시켰다고 했다. 마을입구에 서면 계류를 막아 만든 큰 저수지가 있고 물 건너에 희게 빛나는 고풍스런 가옥들이 물 위에 어른거린다.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명대의 건물과 청대의 건물인데 건물은 물론이고 골목길의 바닥도 옛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거대한 버드나무와 은행나무가 각각 한그루씩 있는데 이 나무들은 풍수와 길상을 상징하는 나무로 마을 사람들이 섬기고 있어서 마치 안동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수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또 마을에 들어서서 물가를 따라가면 남호서원(南湖書院)이라는 편액이 붙은 큰 서원이 있어서 이곳이 학문을 중히 여기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중국 휘저우와 안동마을 중심에는 마을 사람들이 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둥근 못이 있고 못 가에는 지금도 빨래하는 아낙을 볼 수 있다. 월소(月沼)라고 부르는 이 못은 와호장룡이라는 무협영화에 나오기도 하여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기도와호장룡에 나오는 홍춘마을 했는데 못의 물은 돌로 포장된 마을의 골목길 한쪽을 파서 만든 수로를 통해 온 마을 곳곳으로 흘러가고 사람들은 집앞을 흐르는 그 물로 인해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집들은 규모가 엄청나게 컸는데 이는 이곳이 명대 이후 중국의 거상들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시는 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은 대체로 적장자로 이어지는 혈통과 관련된 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 집안을 중흥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들을 모시고 있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이 옛날부터 얼마나 실용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게 한다.
집안에서는 수백년동안 누려온 품위가 뿜어져 나와 찾는 이들을 조심스럽게 한다. 대문에서부터 내부 깊숙이 있는 방문까지 모든 벽과 문이 아름다운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특히 승지당(承志堂)이란 집에서 본 조각상들은 그 정교함과 내용의 다양성 그리고 양적인 점에 있어서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이곳 사람들은 승지당을 중국 최고의 민간건물로 자랑하고 있었다.
이 마을은 2000년 11월 중국을 대표하는 고촌락으로 이웃에 있는 시디[西遞]와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휘저우의 전통문화 보존
홍춘은 중국 안휘성(安徽省)의 남쪽 끝에 있는 황산시(黃山市)에 소속된 마을의 하나이다. 황산시에는 홍춘 이외에 시디, 탕위에, 탕모, 난핑, 청칸 등의 고촌락들이 있고 이들은 모두 중국 정부 또는 지방정부의 노력으로 옛모습을 다시 찾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 마을들은 규모면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홍춘과 유사하다. 이러한 마을을 돌아보면서 더더욱 가슴에 남는 것은 마을들이 아직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온전히 남아 있다는 점인데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서도 이미 사람 냄새가 사그러드는 안동의 옛 마을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한 없이 인다.
황산시는 옛날 휘주(徽州)라고 불렸다. 휘주는 정호(程顥)·정이(程이(턱이))와 주희(朱熹)의 고향이자 중국사상계를 칠백 년 이상 통치했던 정주이학(程朱理學)의 발원지이기도 한 곳으로 과거 중국의 동남추로(東南鄒魯)로 불리기도 했다. 퇴계의 고향이며 추로지향을 자처하는 안동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주기도 한다.
이제 중국은 고촌락의 보존과 관광지로의 개발이 국가의 중요 문화재 및 관광정책으로 정해지고 엄청난 예산이 투여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휘주지역이다. 이곳은 봉건시대 중국 경제의 중심지로, 사상의 중심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건축물의 보고로, 중국 최대의 고문서가 남아 있는 곳으로, 그리고 중국 내륙의 대표적인 음식까지 아우러져 전통문화가 중국에서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대내외에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지상에 남아 있는 문화재와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들은 아직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황산시 구역 내에만도 지금까지 잘 보존된 휘주의 옛 거리·고촌락·고가옥·사당·고패방(古牌坊)·고탑·옛 다리 등의 유형 문화재가 5천여 곳이나 알려져 있다.
휘주문서로 알려진 고문서류들은 1950년대에 처음으로 발견될 당시에 이미 10만여 건에 달했다고 하며 20세기에 들어와서 갑골문, 한진(漢晋)의 간백(簡帛), 돈황 문서, 명청 당안의 발견에 이은 중국 역사 문화상 다섯 번째 대발견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 각지의 도서관·박물관·당안관·대학교·연구기관 등에 소장된 것이 20만여 건이 된다고 알려져 있고 현재도 휘주 민간에 흩어져 있는 것이 최소한 10만여 건 정도는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보고로서의 자부심은 마침내 휘학이라는 학문분야를 독립시키게 되었으며 휘학의 연구는 베이징에 있는 사회과학원의 휘학연구중심과 안휘대학의 휘학연구중심이 앞장서서 자료의 수집과 체계적 분류 보존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이들 휘주의 마을들과 문화재들은 관광자원으로서 농업에 의존하고 있던 주민들에게 새로운 부를 창출해주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관광계획을 세우고 엄청난 수입을 얻게 되자 문화재의 보존이 소득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체득하고 스스로 규약을 만들어 문화재와 생태환경을 보존하는데 노력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국가 예산이 본격적으로 투여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이르러 이 마을들은 빈촌에서 부촌으로 급속히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90년대 이후 중국 국내의 관광 붐이 크게 불기 시작한 것과 관련되며 관광이 자연풍광을 즐기는 것으로부터 문화관광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과도 밀접히 연관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시디마을과 홍춘마을은 자발적으로 문화재보호에 나서고 있다. 특히 2002년 6월 18일에 시디마을의 노인협회는 전체 촌락의 사람들에게 “세계문화유산의 보호는 나로부터 시작하자”라고 제의하고, 동시에 유엔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해 마을이 보존되고 관광지로서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은 빠른 속도로 변화되는 사회에서 전통문화의 완벽한 보존만이 그들에게 큰 수입을 보장해준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깨달은 데서 나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휘주와 안동은 매우 흡사하다. 유교를 정신적 바탕으로 삼고 있는 문화적 전통도 그렇고 같은 성씨들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형성과 존속, 그리고 많은 고건축물과 고문서류, 앞으로의 경제적 수단이 오직 전통문화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도 두 지역이 동아시아에서 같은 운명을 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안동사람들과 안동문화
그러나 안동의 하회마을을 되돌아보면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어 온 문화재지정과 그 이후의 마을 관리, 주민들이 떠난 텅빈 마을, 어떻게든 마을에 남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난마처럼 얽힌 문화재 행정, 이 모든 것들이 하회를 하회답게 유지 보존하는데 실패하게 했으며 지금 겨우 약간씩 주민과 행정이 의견조정이 되어 정상화를 모색하기는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안동이 가지고 있는 전통 고가옥 자료들은 엄청난 수이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잘만 보존된다면 휘주 못지 않게 전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받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중앙정부의 집중적인 예산 지원이 전제되어야 하며 학자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조사, 연구, 개발과 관련된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일들이 얼마나 시급한지는 고건축을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 일반인들이라도 안동의 옛 마을들을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안동에 안동사람들의 노력으로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3년이 지났는데 그 삼년동안 국학진흥원에 모여든 목판이 3만 수천장이고 고문서와 전적들이 8만여점에 이른다. 이들 목판과 고문헌들은 수십년간 방치되어 도둑들의 손길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일부이다. 그러나 아직도 개인소장의 문화재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은 문중내의 여러 가지 이유들로 아직 국학진흥원 수장고로 이전하는데 주저하고 있지만 현재 여러 종류의 유물들을 위탁하고 있는 문중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의 문화재들이 빠른 시일 내에 안전한 곳으로 모여들 것으로 확신한다.
이 국학진흥원은 국가가 건축비를 대긴 했으나 경상북도와 안동시의 운영지원을 받는 재단법인이다. 따라서 예산과 인력의 부족은 앞으로의 일들이 그리 쉽게 되지 않을 것임을 예견케한다. 그러나 휘주의 여러 마을들이 기울인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처럼 안동의 각 문중도 이러한 국가적인 문화재들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또 정부의 노력으로 쓰러져가는 안동의 고건축물들이 다시 일어나 안동과 경북일대의 곳곳에 휘주와 같은 전통마을들이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최근 안동시와 황산시가 협력도시로 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협정이 형식적인 것으로 시장과 시장이 얼굴내기 정도로 끝나지 않고 진정 두 지역이 서로 힘을 합쳐 세계 속에서 빛나는 전통문화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 하였으면 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