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파는 문서, 매매문기(賣買文記)(글/정진영).jpg)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고파는 일들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상사의 일부이다. 그것은 잡다한 일상의 소모품에서부터 토지나 가옥, 노비와 같이 오랜 세월을 두고 소유해야 할 것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일상의 소모품을 사고 파듯이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권리를 배타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계약서가 있어야 하고 실재의 매매행위가 수행되고, 그리고 법적으로 확인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시대에도 매매문서가 많이 작성되었고, 오늘날까지 다량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매매문서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그것은 대체로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왜, 어떻게 파는지, 그리고 팔고자 하는 이[財主]와 증인, 문서 작성자[筆執]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착명(着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모든 절차가 완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토지나 가옥, 노비 등의 매매에 원칙적으로 관에 신고하여 허락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이들을 사고팔기 위해서는 매매문서와 함께 매매를 청원하는 문서[所志]를 관에 제출하고, 관에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문서[立案]을 발급해 주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매매문서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러 문서가 하나로 연결된 것을 점련문기라 한다. 그러나 토지 등의 매매를 위해 관에 신고하여 확인절차를 거쳤던 것은 그 시행 당시부터 그리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다만 매매 당시에 작성한 문서(이를 新文記라 한다)와 이전의 문서(이를 舊文記 혹은 本文記라 한다)를 함께 수수함으로써 매매관계가 성립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점련문기(粘連文記)의 형태가 아니라 여러 장의 신구문기가 묶여져 있는 형태의 문서이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매매문기 가운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토지문서이다. 매매문서의 작성은 파는 이의 몫이다. 파는 이가 양반인 경우에는 대체로 양반이 아니라 그의 종이 직접적인 당사자로 나선다. 사고파는 일에 양반이 직접 나선다는 것이 아무래도 명예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먼 곳에 위치한 전답의 경우에는 노비가 관리하고 있었으니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순리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는 상전은 위임장을 작성해 주었는데, 이를 패지(牌旨)라고 하였다. 패지의 내용은 “어디의 전답을 얼마에 팔아 들여라” 라는 식이다. 사는 이 또한 이를 근거로 해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패지가 첨부된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사정에서 조선시대에 전답을 사고 판 사람을 대충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대충이라고 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노비인 경우는 노비가 실재 주인인지 아니면 상전의 대리인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는 이 누구이고, 파는 이는 누구이며 왜 팔았을까? 이것은 역사연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무엇을 사고파는 일은 ‘내 것’이라는 사유의 개념이 확립되고 난 뒤의 일이다.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의 개념이 생긴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하늘 아래 모든 땅은 ‘나라 님’의 것이라는 왕토사상(王土思想)이나, 아니면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공유(共有)의 개념 또한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적(私的) 소유권은 종종 법적 제도적으로 제약당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토지의 사적 소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니 토지에 대한 매매가 이루어 질 수 없었다. 그것은 사전(私田)의 확대와 이로 인한 토지제도의 문란에서 고려의 멸망 원인을 찾고 있었던 조선의 건국 주체세력의 비상한 각오와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의지는 이런 저런 제도적 미비와 함께 특히 지배층의 강렬한 사유화의 욕망에 그 초심을 지키기 어려웠다. 토지의 매매가 전면적으로 허용된 것은 세종 6년(1424)이었다.
세종 6년 이후 토지매매는 활발하게 전개되어 갔다. 토지를 사고팔았던 것은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에 걸쳐져 있었지만, 양반층에서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양반들이 가진 토지가 많았으니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많은 토지를 가졌던 양반들이 가진 것의 극히 일부를 판다한들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많은 경우 양반들의 토지 매매란 서로 바꾸거나 가까운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들은 점차 먼 곳의 토지를 가까운 곳으로, 척박한 땅을 문전옥답으로 바꾸어 나갔다. 반면에 파는 이가 농민들인 경우에는 비록 손바닥만한 땅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 삶의 전부였다. 따라서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했으랴. 그런 이들이 땅을 판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아마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 농민들이 땅을 판 사연은 지난 흉년을 견디지 못해 얻어먹은 환자나 장리곡을 갚기 위해서였다. 아마 거듭해서 흉년이 들었을 것이다.
토지를 판 사정이 이렇게 달랐듯이 그 결과도 엄청나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양반들이 거주지 주변으로의 토지집적을 통해 지주제를 강화해 갔던 반면에 하층농민은 자기 땅의 상실과 함께 양반 지주들의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것은 서로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고 동시적이며 원인과 결과를 만들면서 역사의 도도한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조선후기의 지주제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립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노비와 노비문서
토지와 가옥 등과 마찬가지로 노비도 사고팔 수 있었다. 사고파는 대상이 된다는 건 노비가 인격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정도로 취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조선시대의 노비를 서양의 노예와 같이 취급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노비는 사고 팔리는 대상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가정을 꾸리고, 자기의 토지와 가옥을 소유할 수도 있었다. 또 호적대장이라는 국가의 인구 혹은 부세대장에도 버젓이 독립된 주호(主戶)로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노비가 노비를 소유할 수도 있었다. 토지를 소유하고, 호적대장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그들은 국가에 납세의 의무와 권리를 지닌 어엿한 공민(公民)이었다. 조선시대 노비란 사민이면서도 공민이었고, 소유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그 주체가 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존재였다.
아무튼 노비를 사고판 문서 즉 노비문서는 그 형식에 있어서 토지문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양적인 면에서는 토지문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것은 양반들이 소유한 노비 수가 적어서가 아니다.
조선시대 노비는 양반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 그것은 양반들의 일상생활 대부분을 이들 노비에게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반들은 집 내외에 서너 명 혹은 많은 경우에는 20여 명 안팎의 노비를 두었다. 농사를 짓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취사와 난방을 하고, 물을 길러오고, 빨래를 하고, 청소하는 등의 잡다한 일들은 모두 이들의 몫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심부름으로 멀리 소식을 전하거나 어린 아이들의 유모 역할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많았던 심지어는 3, 4백 명이 넘는 노비들은 주인가와 멀리 떨어져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해서 해마다 그 몸값을 바쳐야 했다. 그러니 노비란 토지와 함께 양반들의 중요한 경제적인 기반이기도 하였다.
조선왕조 16세기, 17세기의 양반가에서 소유하고 있었던 수백 명의 노비들은 대부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원래 노비란 전쟁의 포로, 역적의 자손 등이었지만 채무를 갚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노비가 된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흉년이 거듭되어 손바닥만한 땅덩이를 팔아 목숨을 연명하던 양인 농민들 또한 양반가에 의지하여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노비신분으로 둔갑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이런저런 사정에서 형성된 노비들은 양반들의 적극적인 경영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것은 바로 이들을 노비가 아니라 양민들과 적극적으로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양천교혼(良賤交婚)은 이 시기 양반가의 노비 증가에 아주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제 노비가 전인구의 6, 7할이라고 표현될 정도였다. 노비의 소유와 증가가 이렇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노비를 사고팔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나를 파는 문서, 자매문기
양반들의 노비 소유의 증가는 결국 양민(良民)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국가의 공적 재산을 빼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양민들은 국가에 호세(戶稅)나 군역(軍役), 혹은 잡다한 부담을 담당하는 공민(公民)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이를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양민의 노비화를 막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강구되었지만, 성과를 거둘 순 없었다. 정책을 입안하고 운영하는 관료들 또한 양반들이었으니, 가재는 게 편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정책들이 다 동원되다가 마침내 영조 6년(1730)에는 종모종량법(從母從良法)이라는 것이 실시되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노비는 어머니의 신분에 따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노(奴)와 양처(良妻)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양민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갖 논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 그대로 지켜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양반들의 노비소유를 억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제 남자 종들은 양인의 처를 얻어 그 자식을 양민으로 키울 수 있었다. 전일에 노비수를 늘리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 이제는 도리어 그 반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노비들은 가혹한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온갖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주인의 감시와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으로 도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 가서 살아가리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도망한 노비의 상당수는 다시 잡혀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도망은 계속되고 있었다. 도망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노비의 도망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많은 노비를 관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도, 경제적인 실익도 없었다. 특히 먼 곳의 노비들은 보다 일찍부터 주인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들 먼 곳의 노비들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양반들의 집에는 기껏해야 서너 명의 노비만이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비 자식이 대를 이어 노비가 되리란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노비에 의존하던 양반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진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노비의 존재는 필요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노비 공급원은 모두 끊어졌다. 남의 노비를 사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 이상 노비의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노비가 되겠다고 나선다면야 더 바랄 바가 없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그냥 노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 보상 없이 노비가 될 리도 없었지만, 인신(人身)을 구속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 없이 큰 돈을 투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에서 남이 아니라 자신이나 처자식을 노비로 파는 문서가 19세기 노비문서의 주종을 이룬다. 이를 특별히 자매문기(自賣文記)라고 한다.
스스로를 팔아야만 했던 이유는 병든 남편의 약값을 갚을 길 없어서, 눈먼 아버지를 위해, 참으로 애닮은 가지가지의 사연에서 비롯된다. 그 참담한 정경을 눈에 선히 그려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더욱이 손도장까지 꽉 찍었으니 달리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그러나 비록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절박함이 그것에 감히 항거할 생각조차 앗아가 버렸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노비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19세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전기에도, 16, 17세기에도 있었다. 다만 스스로를 팔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많은 몰락농민들은 재워 주고, 먹여 주고, 소작지나마 때어 준다면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양반가의 호구단자나 분재기에 슬그머니 그 이름이 올라가면 영락없는 노비 신세가 되었다. 달리 문서에 손도장 찍을 일도 없었다.
자신을 노비로 팔아 굴종과 예속의 삶을 스스로 택한다는 건 비극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몸(노동력)이라도 팔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는 이리 많은 시간과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신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계약서에 도장 찍어 취업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아직은 먼 세상의 이야기다.
보잘것없는 매매문서, 그 한 장 한 장에는 가난하고 힘없던 인간들의 절망감과 가슴 시리 게 아픈 사연들이 거대한 역사의 물결과 함께 얼룩져 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