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진기자 박영대씨(글/김영희).jpg)
그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싸이(Cyworld, 인터넷 미니홈피, 1인 매체)를 하는 사람과 싸이를 하지 않는 사람. 물론 그는 싸이를 하는 사람이다. 그의 싸이(www.cyworld.com/dongasannae)를 가봤다. 방 이름은 ‘가을이집’이고 가을답게 황금빛 물결이 넘치고 있는 작은 호수가 있고, 최신 유행곡인 이정의 ‘나를 봐’가 경쾌하게 흘러나온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이곳저곳 둘러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특히 그가 올려놓은 사진은 거의 환상이다. 10월 13일에는 이라크로 파병되는 군인이 애인과 키스하는 멋진 사진이 올려져 있고, 가을소풍 나온 고등학생들이 나무에 기대 말뚝박기하는 사진, 특히 내가 부러워한 것은 가수 이수영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다. 여러 개의 사진첩이 있지만 ‘박영대가 만난 사람’이라는 코너에는 나 뿐만이 아니라 그의 싸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수애, 이수영, 감우성, 강동원, 권상우, 유지태, 최민식 등의 연예인들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의 인터넷 세상에는 직업인으로, 친구로, 조카에게는 다정한 삼촌으로 후배들에게는 믿음직한 선배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따뜻함과 넉넉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쟁의 핵심 현장인 바그다드를 취재하다
그의 홈피 사진을 통해 눈치를 챘겠지만 이번에 만난 안동 사람은 동아일보사 사진부 박영대(32) 기자이다. 그는 1973년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고 와룡이 고향이다. 지금은 폐교가 된 대동초등학교 마지막 졸업생이었고, 경안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나와 대구 계명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대구매일신문사 사진기자를 거쳐 현재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로 있으며 지난 2003년 7월에는 한국사진기자협회가 선정한 ‘이달의 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또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 이승엽 선수의 300호 홈런을 취재한 ‘신화의 담장을 넘기다’로 제6회 스포츠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2003년 4월 22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만난 단란한 가족들과 함께‘이달의 보도사진상’은 이라크전 종군취재로 동료기자 두 명과 공동수상했는데 2003년 3월 10일부터 종전 후 4월 27일까지 47일간 이라크와 쿠웨이트 등 전장을 취재한 것이다. 그 내용은 동아일보에 28장의 사진으로 게재되었고, 〈신문과 방송〉 2004년 2월호에 ‘이라크 파병과 종군취재’라는 특집기사에 박영대 기자의 글이 한 꼭지 들어있다. 거기에는 ‘종군취재 이런 점에 주의하라’라는 제목으로 이라크를 먼저 다녀온 입장에서 앞으로 취재할 기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정보들을 담고 있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이라크 파병 자이툰 부대의 소식으로 우리도 함께 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인데 최근에는 테러에 대한 위협으로 더욱 전쟁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더 심각하게 전쟁을 느끼는 사람들은 아마 기자들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종군기자들은 자신의 몸을 방어할 무기나 장비도 없이 전장을 가야 하므로 그 스트레스는 엄청날 것이다. 우리가 안방에서 편하게 알권리를 누리는 그 시간에 죽음을 무릅쓴 기자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박영대 기자가 이라크를 취재하던 그 때도 세계 각국 기자의 사망과 실종 소식이 연일 나오던 때이다. 당시의 취재 상황을 박영대 기자의 글로 잠시 인용해 본다.
‘쿠웨이트에 주둔하며 미군의 보호 아래 이라크 남부 바스라 지역만 취재하다가 전쟁의 핵심 현장인 바그다드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기자로서 직무유기라 생각해 4월 15일 새벽 4시 동아일보 이라크 전쟁 특별취재진은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이라크 입국을 감행했다. 미군 부대배속 기자가 아닌 일반기자가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이라크에 들어가 취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미군의 호위 없이 통과해야 했다. 변변한 군복조차 걸치지 못한 채 나뒹굴고 있는 이름모를 이라크 병사들, 눈을 뜬 채 숨진 병사들도 있었다. 취재 차량에 큼지막하게 ‘PRESS’라고 써 붙였지만 이게 안전판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비무장 차량이라는 것을 알려줘 약탈자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취재 중 힐라에서 미군에게 검문을 당하는 이라크인들을 앵글에 담기 위해 감각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두 장 정도 셔터를 눌렀을까 검은 M16 총구가 렌즈를 가득 메웠다. “HOLD UP” 미군병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머리끝이 설 정도로 공포감이 몰려왔다. 15시간을 달려 도착한 바그다드는 안전지대가 아니라 어느 기자가 총에 맞았다느니, 약탈당했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식뿐이고 음식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고 식당에 가는 것조차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바그다드 시내에서 시위대를 취재하던 중, 길을 잃고 6시간 정도 취재진과 떨어져 혼자 행동한 적이 있다. 부대배속 외신기자들과 무언가 다른 사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가 무사히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으니 다행이지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이런 위험한 현장에 간 것을 알면 부모님과 형제들은 얼마나 근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힘든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기자로 살아가는 그에게는 보배로운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기자가 되기까지
그는 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에 신문방송학과를 택했고, 대학에 다니면서 ‘보도사진연구회’ 활동을 하며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사진기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은 대학 3학년 때의 일로 당시 대구방송국과 청구건설 후원으로 AP통신 본사를 견학하게 되었는데 본사 로비에 전시된 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것에 매료되어 사진기자가 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교를 10년 만에 졸업 했는데 그간의 이력이 화려하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1년 했고, 학교를 휴학하고 호주와 일본 등 여러나라를 배낭여행 하고, 안동관광호텔에서 10개월여 동안 직장생활도 했다.
“학교 졸업했는데 취직도 안하고 그러고 다니면 백수로 보고 걱정을 하지만 학생이면 괜찮게 보잖아요.”라고 하며 자신의 긴 학교생활을 변명했지만, 그에게서 젊지만 자신만의 인생을 잘 경영하고 있는 젊은이의 자신감을 볼 수 있었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내 뜻대로 내 삶의 방식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능력과 자신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도 휴가를 사용해서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중국을 다녀왔다고. 배낭여행 철칙 중 하나는 절대 혼자서 여행한다는 것이란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그가 사진기자가 된 데에도 그만의 도전정신과 용기가 큰 몫을 했다. 2000년 대학 4학년 봄에 대구매일신문사에서 사진기자를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자격은 전 해 8월 학기 졸업자와 그 해 2월 졸업자였다. 그는 이제 막 4학년에 등록한 학생이니 당연히 자격조건에 미달이었다. 여느 사람이었으면 아예 원서조차 낼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원서를 냈다.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실기시험을 통과하고 면접에서 언제 졸업하느냐는 질문에 공부를 잘하면 8월에 졸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해 사진기자 한 명을 뽑았는데 그가 합격했다.
재미있는 일은 또 있다. 그가 매일신문사 기자로 있은 지 1년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동아일보에서 경력기자를 모집한다는 기사가 났다. 경력은 만 2년 이상인 자였다. 그는 또 용기를 내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최종심사에 2명이 올랐는데 그가 있었다. 면접관들이 2명 다 뽑을 것이라고 해서 편안하게 면접을 치뤘는데, 알고 보니 그 혼자서 합격한 것이었다. 지방지 기자로 있다가 중앙지 기자가 된 사람은 이제까지 두 세명 정도 있을 뿐인데 그것도 지방대 출신은 그이가 유일하다. 우리나라 일간지 기자들 중에서도 지방대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동아일보에서 경력기자 모집하던데 원서 안내나’ 하고 농담으로 말했던 선배들도 진짜 합격한 것을 알고는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도 서울까지 면접을 보러가야 하니까 할 수 없이 휴가를 내야했다. 한 번은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고전적인 방법을 썼지만, 최종면접일에는 대구지역 보도사진전 개막일과 겹쳐서 곤란했다. 그런 중요한 날 막내기자가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중요한 손님이 왔다고 둘러댔는데 주변에서는 그때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고 한다.
일을 막 배우고 나서 떠나게 되어 미안했지만 선배들이 가서 잘하라고 많이 격려해 주어서 힘이 되었고, 매일신문사 윗선에서도 동아일보에 전화해 부탁을 한 것을 알고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또 매일신문사에서 힘들게 수습을 지냈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실패 없이 쉬운 인생을 살아온 것 같지만 그는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 방면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또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외국어 실력도 쌓아 일본어에 유창하고 영어도 수준급이다. 거기다 현실의 벽에 미리 주저앉지 않는 용기와 자신감도 있다. 그가 비록 나이는 어리고 인생을 오래 살진 않았지만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이라면 본받을 점이 많을 것이다.
사진 속 세상읽기, 일이 즐겁다
지방이나 서울이나 일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취재 인원이나 행사의 규모, 일간지의 치열한 경쟁 등은 익숙치 않은 것들이었다. 오전에 노숙자 취재가서는 자장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저녁에 고건총리 취재가서는 근사한 저녁 만찬을 하는 것 등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또 너무 잘 하려고 하다보니까 동료들이 5컷 찍을 때 10컷 이상을 찍어야 마음이 놓인다든가 하는 오버행동도 있었지만 2년 6개월이 지나면서 이제 완전히 적응을 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년 2월에 있은 ‘남북육로관광개통’ 취재 건이다. 모든 신문사가 북한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럴 때는 풀 취재단(Pool, 공동취재단)을 보내는데 4개 신문사 기자가 대표로 가게 되었고 그도 참여하게 되었다. 비무장지대를 내려오는 북측공연단과 군인들의 행렬을 찍었는데 그의 사진이 채택되었다. 취재 다음날 토요일 전 일간지 1면에 그가 금강산에서 전송한 사진이 실렸다. 비록 박영대란 이름이 아니라 공동취대단의 이름이었지만 그 기분은 정말 대단했단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라면 유독 동아일보에서만 그 사진을 싣지 않고 다른 사진을 실었다는 것쯤.
사진을 찍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경쟁도 치열한데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것이 일이고 아직은 너무 즐겁다고 한다. 우리나라 신문사에 길이 남을 멋진 사진기자가 되길 바래본다.
서울 생활이 바쁘지만 그는 지금도 두 달에 한 번 꼴로 안동엘 가서 와룡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온다.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아서 부모님도 본인도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좋은 남편이 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을 무척 예뻐한다고 대답한다.
가져간 93호 안동지를 보다가 이웃이야기 기사를 보고 본인도 관광봉사 자격증이 있다고 했다. 안동시장이 주는 1기 관광봉사자격증을 받았는데 몇 개월간 주변의 문화재를 일본어로 설명해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을 안동이 고향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나면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온 그 인생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번에도 신문사 기자의 일상을 들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건실하고 씩씩하게 일하는 그 젊은이가 고향 후배라는 사실이 흐뭇하다. 신문이든 잡지이든 내용위주로 보았고 마음에 드는 글이면 글쓴이가 누구인지 보았는데 취재 이후로는 사진에도 유심히 눈이 간다.
TV뉴스를 볼 때 열심히 취재하고 있는 박영대 기자를 찾아보거나 동아일보를 보는 우리 독자라면 ‘사진기자 박영대’라는 이름을 찾아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싶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