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글/임세권)옛집을 찾아가서 무엇을 보는가? 우리는 모든 사물을 앞에서만 보려고 한다. 조각 전시장에 진열된 조각품의 뒷면을 본 일이 있는가? 모든 사물은 어느 특정한 방향에서만 보이거나 기능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앞 만이 아니라 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옛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야트막한 흙담에 얹힌 낡은 기와, 흙의 부드러운 질감과 색감. 팔작지붕의 틀 속에 단정하게 흘러내린 골기와, 그리고 뒤안 한쪽에 선 감나무, 이런 것들이 앞 산의 나지막한 능선 속에 쌓인 채 정겹게 다가선다. 이것은 뒤에서만 볼 수 있는 따뜻함이고 아름다움이다. 토담 한쪽을 헐어 만든 쪽문이 뒤쪽 세상과 집안을 연결시켜준다.
<도산면 토계리, 퇴계 이황 종택>
옛 집을 돌아볼 때 예기치 않은 것에서 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다. 대청 마루를 막아 놓은 판문들의 짜임새, 판자에 남은 자귀 자욱들, 나무판자의 질감과 옅고 짙은 황갈색 톤이 만들어 놓는 추상화, 이런 것들을 보노라면 기와집 전체가 마치 거장들의 작품을 짜 맞춰 지어놓은 듯 보인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의 높은 예술적 감각은 물론 집을 지은 목수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얼마나 훌륭한 예술가들인가?
<도산면 온혜리 이강식 가옥>
집안에 들어서면 이따금 맞닥뜨리는 즐거움이 있다. 퇴계선생의 태실이 그런 황당함을 준다. ㅁ 자 집의 좁은 안마당에 안채 툇마루에 붙여서 마당으로 돌출시킨 네모난 방 한칸이 집 전체의 모양을 기발하게 꾸미면서 그 기능이 보여주는 놀라운 아이디어에 새삼 감탄한다. 네모난 하늘은 세쪽의 좁은 틈으로 남고 그 틈으로 들어온 햇볕이 온 방안을 감싼다. 퇴계선생은 하루종일 햇볕을 받는 이 방에서 태어났다.
<도산면 온혜2리 퇴계 이황 태실>
옛 집이 주는 즐거움의 또 하나는 옛 명인들의 글씨를 보는 일이다. 처마끝의 현판과 기둥이 걸린 주련에서 만나는 글씨들은 방안에 걸린 액자나 족자 속의그것을 볼 때와는 색다른 맛이 있다.그것은 글씨와 나무판 곳곳에 묻어있는 조각도의 흔적들, 그리고 퇴색된 나무결이 한데 어울려 나오는 독특한 향취이다. 이 글씨는 대원군 이하응이 쓴 취미헌 현판이다.
<도산면 온혜리 온계 이해 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