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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웃음으로 벨을 울리는 마음의 배달부 김금화씨(글/이미홍)

어린 시절 읍에서 제법 떨어진 시골동네에서 살았던 나의 일과 중의 하나는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당시로는 드물게 아버지께서는 신문을 구독하고 계셨고, 신문이 아니더라도 아버지가 보시던 '새농민' 이나 언니가 간혹 신청해서 구독하곤 하던 '여학생' 같은 잡지 나부랭이들도 심심찮게 오곤 한 데다가 간혹 언니나 내게로 오는 편지들도 있고 해서 우리집은 동네에서 우체부 아저씨가 가장 자주 들르는 두 세 집 가운데 하나였다. 때문에 본래 독서광이었던 나로서는 당시 그 우편물들을 받아서 하나하나 바닥이 날 때까지 읽는 것이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그런 까닭으로 우체부 아저씨가 올 대쯤이 되면 골목 어귀에 나가서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 소리를 멀리서부터 알아듣고 기다리는 것은 나만의 은밀하고도 즐거운 임무였다.

이윽고 집배원 아저씨가 도착하고, "보자 오늘은 뭐가 왔나?" 하시며 우리 집 우편물을 골라내는 아저씨의 손길을 따라 마음을 설레이던 그 시간들. 아저씨가 자전거 머리를 돌려 골목을 빠져 나가시기를 미처 다 기다리지 못하고 매 손길은 바삐 편지 꾸러미로 가곤 했었다. 그때 내게 우편물을 주면서 씩 웃곤 하시던 아저씨의 그 말 없는 인사가 지금도 생각난다.

홍일점 집배원으로의 입성

저녁 7시, 퇴근 시간이 제법 늦었다고 생각하면서 들어간 안동우체국 우편집배실은 저녁인데도 더운 날씨 탓인지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작업이 한창이었다. 문 앞에서 김금화씨를 찾으려니가 담배 한 대를 물고 휴식을 취하시던 집배원 중의 한 분이 저리로 들어가 보라며 손짓을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서성대며 종이 가르는 소리가 바쁘다. 설핏 보기에도 엄청 많아 보이는 우편물들 속에서 어린 시절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곤 했던 그 집배원 아저씨들이 편지를 가르고 있었다.

그 북새통 속에서 집배원인 김금화씨(39)가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돌아본다. 돌아보며, 인사하며, 손은 연신 구역별로 나누어진 칸막이 안으로 쉴새없이 우편물들을 나누어 넣는다. 하나하나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 꼽히는 편지, 편지들. 편지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나는 일순간 멍해졌다. 내가 편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아슴프레하고 애틋한 이미지가 그 많은 우편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며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않던 때에 멀리 있던 친구에게서 오는 편지가 주는 그 반갑고도 소중한 감동, 그것이 저 수 많은 편지들 중에 하나였으리라는 사실이 어리숙한 내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탓이다.

저년 시간도 제법 지났는데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고 우편물 분류 작업에 너무도 열심이어서 자리에서 일어서기 미안해하는 김금화씨와 함께 조용한 구내 식당으로 갔다.

넓은 구내 식당 안은 조용했다. 그런데 김금화씨는 세 사람만의 조용한 그 공간을 금새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움직이는 듯한 살아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내가 만난 김금화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활동하는 반경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그 넘치는 활기 속으로 끌어들여 끝내는 전염시켜 버리고 마는 사람, 그 앞에 있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야기에, 그리고 그녀의 생기에 감염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드는 그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그녀만의 힘이자 무기이기도 했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이렇게 그녀를 만나게 된 사연의 출발이기도 할 터였다.

그녀는 여러 가지로 특별했다. 그녀는 서른 세명이나 되는 서얀동 우체국에서는 물론이고 150명이나 되는 안동의 집배원들 중 유일한 홍일점 여성 집배원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 때문에 그녀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더 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처음에 나는 그녀가 홍일점 집배원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대접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를 정말로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건 그녀의 삶의 철학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삶에 있어 때로는 신중함보다는 무모한 용기가 필요한 때도 있음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IMF의 시작과 함께 구조조정 이야기로 어수선할 때, 그녀는 그때까지 하고 있던 우체국 예금, 보험 설계사 일을 그만두고 남자들만의 일이라는 집배일에 망설임없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남자들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아직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보니 주위의 만류나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마침 집배원 한 사람이 퇴직해서 자리가 하나 비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된 금화씨는 그 길로 우편 집배실 과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남자들도 하기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니 다시 생각해 보라는 과장 앞에서 그녀는

"과장님, 저를 여자로 보지말고 한 사람의 일꾼으로만 보아 주십시오. 나는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일을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한 번 시켜보시고 그 때 가서 판단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당차게 이야기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설득당한 쪽은 당연히(?) 과장님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집배원이 되었다.

과장하고 담판까지 하고서야 가능했던 집배원으로서의 입성은 그러나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집배원이 된 첫날, 그녀 역시도(!) 편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소녀적 감상을 모두 버려야 했다고 털어 놓는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 얼마나 무거울 수 있는가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우편물 꾸러미를 들고 언덕길 내리막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저린 팔 다리를 두드리며 주무르며 매 순간 정말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종이 한 장의 위력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생활의 활력소를 하나 더 배달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오토바이에 전날 분류해 놓은 우편물을 싣고 배달을 나간다. 그녀가 현재 맡고 있는 구역은 북문동에서 서부동, 남부동을 거쳐 삼산동 분수대 있는 곳까지이다. 그런데 바로 이웃해 있는 이 구역을 도는데 꼬박 하루가 다 간다. 그녀가 하루에 배달하는 우편물의 양은 보통 천통에서 이천여통 정도. 아침 9시쯤에 우체국을 출발해서 오후 4시나 5시경이 되어서야 우편 배달이 끝난다. 사랑방도 그녀의 배달 구역에 있는 터라서 매일 그녀를 본다는 종교씨의 말에 따르면, 그 구역으로 금화씨가 오면서 사랑방이 있는 건물 안의 모든 식구들이 우편물 배달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금화씨가 늘 웃으면서 활기차게 우편물을 배달한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게 종교씨의 말이다. 이렇게 우편물 말고도 생활의 활력소 하나를 더 배달하며 안동의 시내를 누비는 금화씨, 그녀는 평범을 거부한다.

"평범한 건 재미가 없잖아요? 남들이 가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길을 간다는 것도 매력이 있고요. 그리고 특별히 잘 나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전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좋아요. 남들이 뭐라 그럴지 모르지만 제가 특별하다면 그건 제가 이 집배 일을 정말 즐겁게 하고 있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남들 앞에서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사람이 하려고만 들면 못해낼 일은 없다는 생각을 신조처럼 달고 사는 여자 김금화. 그래서 그녀는 늘 바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누구에게 미루거나 의지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퍼우먼도 아닌 그녀가 집안을 유리처럼 매끄럽게 닦아 놓지 못해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주는 든든한 남편 심성호(41)씨와 엄마 일을 잘 이해해 주는 엄마의 팬이자 후원자인 보령이(14), 보욱이(12) 남매가 있었다.

대형 면허증을 남편 몰래 따 놓고 마음 속으로 든든해하던 그녀,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 또한 아내 몰래 대형 면허를 따 놓았더란다. 그리고 비상시에 대비해 따 둔 그 대형 면허를 살려 우편 행정 업무를 보며 그녀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던 남편은 지금 사무실에 사표를 내고 진흥회에 취직을 하더니 지금은 우편물을 실어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도 그녀 식으로 키웠다. 모든 일은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아이들과 정해 놓은 첫 번째 원칙이다. 엄마가 옆에서 하라고 잔소리를 해야하는 공부는 하지 말라는 게 그녀의 논리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하루 신나게 놀라고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남편 따라 직장따라 많이도 옮겨 다닌 드난 살이 끝에 그녀가 친정 아버지가 계신 일직에 터를 마련한 것도 친정 아버님 곁에서 같이 지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어린 시절이나마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라게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아이들은 정말로 시골 마을에서 맘껏 뛰놀며 유치원도 학원도 모른 채로 신나는 어린시절을 보낼수 있었다고. 물론 이제 첫째 딸 보령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슬슬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줄 모르는 엄마다. 학원에 가는 건 선생님들을 배신하는 거라고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학원에서 배우는 공부가 못하다거나 필요 없다는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기가 해야할 공부에 충실하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면 학원이다 과외다 이중 삼중의 에너지를 낭비하며 스트레스 받아가며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 시간만 과중 된다는 게 그녀의 계산법이기 때문이다.

보령이 보욱이는 그런 엄마의 교육법에 익숙하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잔소리를 들으며 하는 숙제보다 밥 찾아 먹고 조금 놀다가 스스로 하는 공부가 더 좋다는 것을 조금씩 체험을 통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 것에도 익숙해져 가도 있다.

"편지 왔습니다"

그녀를 두고 동료들은 사막에 갖다 놓아도 살아 남을 여자라고 한다. 서글 서글한 눈매에 늘 웃고 있는 그녀의 시원스런 미소속에 배어 있는 당당함을 무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당당함은 그녀의 사람에 대한 존중, 일에 대한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는 동료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를 때에도 호칭이나 목소리에 일일이 신경을 쓴다. 그건 같이 일하는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편물을 배달할 때도 그녀는 한 집 한 집 소홀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사람이 없어도 꼭 큰 소리로 "편지 넣었습니다."라고 소리치고 돌아서고, 그리고 우편물을 받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기분좋게 웃으며 인사부터 하고 존칭도 깍듯이 한다. 그녀는 아직 한 번도 아줌마란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건 때로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걸 그녀가 아는 때문일 것이다.

하루 종일 녹초가 되도록 일을 하고도 다음날 아침이며 사무실 가서 일 할 생각에 신이 난다는 여자 금화씨, 집배 일을 시작한 지 5년 째, 이제는 제법 일에 이력이 붙어 하루 하루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일이 좋다는 그녀, 저년 9시, 10시를 넘기기가 예사여도 좋기만 하다는 그녀가 말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예요. 저는 제 인생의 전환점에서 이 길을 선택했고,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열심히 할 거예요." 라고.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들어오기 전까지 하고 있던 우편물 분류대 앞으로 가 앉는다. 그렇게 우리는 그 곳을 나왔고 그녀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