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보컬 각시탈을 찾아서(글/이미홍)
내가 각시탈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지난 가을 무렵이었다. 안동에 아줌마들로 구성된 보컬이 있는데, 안동국제탈춤축제에서 공연 하는 걸 누가 봤는데 괜찮더라, 한 번 만나보면 어떻겠느냐 하고 누군가가 제안을 했던 것 같다. 괜찮을 거 같았고 안동 같은 보수적인 곳에서 용감하게 보컬을 하다니, 도대체 어떤 아줌마들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각시탈 리더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아직은 내세울 것도 없고 어렵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사랑방 편집기자가 이번에 취재가 가능할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가을호를 내고 다시 전화를 했다는 거였다. 두 번, 세 번, 결국 시달리다 못해(?) 마음이 약해진 아줌마들 덕분에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각시탈의 여섯 아줌마 각시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각시탈 보컬그룹 결성이 되기까지
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각시탈의 시작은 두 여자의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일을 벌인 건 김미숙씨랑 김은순씨였다. 여중, 여고 동창생으로 음악을 좋아했던 둘은 전부터 만나기만 하면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보컬을 만들어서 음악을 같이하자고 얘기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월, 둘이서 만나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이러지 말고 본격적으로 한 번 해 보자고, 그리고는 둘이서 계획을 짜고는 음악을 가르쳐줄 선생님께 의견을 구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제일 먼저 섭외한 사람이 세컨드 기타 이태순씨. 그리고 베이스의 류은선씨, 드럼의 황미희씨와 오르간의 최미화씨가 며칠 간격으로 합류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없는 싱어 김윤옥씨까지 7명이 각시탈 창단 멤버였다. 그런데 중간에 싱어인 윤옥씨가 빠지면서 그 후로는 여섯명의 멤버로 각시탈을 꾸려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여섯명으로 각시탈을 꾸려갈 생각이다.
그런데 모두들 하는 이야기가 자신이 악기를 선택했다기 보다 악기가 자신들을 선택했단다. 더군다나 초보인 미희씨나 미화씨, 은선씨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피아노의 미숙씨를 비롯해서 기타를 하는 태순씨나 은순씨는 소시적부터 배운 실력이 있어 일찌감치 결정이 되어 있었고, 남아있는 건 드럼과 오르간, 그리고 베이스 기타였다. 미희씨도 미화씨도 베이스 기타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생초보였던 두 사람은 각자 남아있는 악기 중에서 미희씨는 드럼을, 미화씨는 오르간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주위에서 추천을 해서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된 은선씨가 베이스를 맡게 되었다. 은선씨는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베이스가 뭔지도 몰랐다는 은선씨는 그러나 하면 할수록 베이스에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하면 할수록 베이스만의 매력을 느껴요. 지금은 정말 베이스를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라는 은선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위에서 한마디씩을 한다. 한마디로, 은선씨처럼 음감 뛰어나고 음악에 관해서 관심도 많고 빠른 사람이 베이스를 몰랐다는 건 믿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정말이라고 은선씨가 아무리 정색을 해도 별로 어째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은선씨는 다행히 음악을 하는 조카가 베이스기타를 몇 개 가지고 있어서 급하게 SOS를 쳤다고 한다. 뒤늦게 끼가 발동한 외숙모의 도전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기꺼이 기타를 보내온 조카 덕분에 은선씨는 집에서도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은선씨의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져 멤버들 말에 의하면 일취월장 몰라보게 달라져 곡을 받으면 가장 먼저 곡을 마스터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주기에 이르렀다고.
드러머인 미희씨도 드럼이 처음이기는 마찬가지, 베이스는 자신 없고, 그래도 본 건 있어 신들린 듯이 드럼을 두드려대는 드러머를 연상하면서, 그래 한 번 해보자 하며 드럼을 선택했다. 처음 드럼을 배울 때는 힘 조절을 못해 몇 시간씩 연습을 하고 나면 온 어깨며 팔이 아파 내가 왜 드럼을 했던가 후회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은선씨처럼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 미희씨도 이제는 드럼 말고 다른 건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맘인 것 같다. 실제로도 드럼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한다. 그룹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오는 사람들 중에 대다수가 드럼을 하고 싶다고 한단다. 공연에서 미희씨가 신나게 드럼을 치는 모습이 그만큼 멋지게 보였다는 이야기다.
평균 연령 40대의 아줌마 보컬 각시탈.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갑자기 민감한 반응들을 보인다. 해서 평균 연령 40대, 드럼을 하는 미희씨가 제일 막내라는 것만 밝히기로 한다. 아줌마들의 보컬 결성에 대한 남편들의 반응을 묻자 누구랄 것도 없이,
“남편들 반응요, 당연히 처음에는 다들 반대를 많이 했죠. 보수적인 안동 남자들이 어디 가나요? 그런데 지금은 남편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다들 정말로 좋아해요. 다른 분들도 공연할 때면 와서 악기도 옮겨주고 후원도 많이들 해 주시고, 그렇게 이해도 해 주고 도와도 주고 하니까 이렇게 하지, 안 그러면 힘들지.”
하고 하나같이 말하는 아줌마들, 한마디로 자신만만 당당하다.
각자의 개성으로 똘똘 뭉친 보컬 각시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게 그 곡이지만 음악을 좀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아 그 곡 괜찮겠구나 싶을 만치 선생님이 편곡에도 신경을 많이 써 주셔서 한 곡 마스터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악기마다 특징을 살려서 편곡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파트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야 하니까 어렵죠. 그리고 코러스를 넣어서 곡에 따라서는 멤버들이 같이 코러스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코러스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곡이 훨씬 더 살고 괜찮다고 다른 보컬하시는 분들이 다들 부러워해요. 멤버들이 다 학교 때 합창반이나 음악반에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고 해서 우리가 다행히 코러스가 좀 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공연을 해 보니까 한 시간 이상 계속해서 싱어 한 사람이 아홉 곡 열 곡 되는 곡들을 쉬지 않고 다 소화해 낸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싱어가 빠지게 된 후로는 각자 한 곡씩 곡을 받아서 싱어를 돌아가며 하고 있어요. 음색이 달라서 자신한테 맞는 곡을 받아서 연습을 해 보고 괜찮겠다 하고 멤버들이 인정을 하면 그 곡은 그 사람의 곡이 되는 거죠.”
태순씨의 경우는 음색이 저음이면서도 허스키해서 팝송을 주로 부른다고 한다. 옆에서 은선씨가
“나는 지금 받고 싶은 곡이 왁스의 곡들이야. 화장을 고치고 같은 것 부르고 싶어.”
하니까 미숙씨가 얼른
“그건 곡이 연주하기가 어려워서 안돼!! ”
하며 장난스럽게 받는다. 장난스럽게는 받지만 멤버들 중 한 두 명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어째 은선씨 음색에 그 노래가 어울리는 건 인정하지만 은선씨한테 맞게 편곡된 화장을 고치고를 악기로 연주할 걱정이 먼저인 것도 사실인 모양이다.
옛날에는 그저 그 노래가 좋으면 가사를 외워서 부르면 그뿐이었지만 이제는 악보가 먼저 떠오르는 멤버들이다. 전체가 소화할 수 있는 곡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간혹은 자신의 음색이랑 맞지 않는 곡을 받아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부르고 싶은 딴 노래가 있어도 각 파트 악기에 맞추어 곡을 편곡하기 때문에 연습에 맞춰서 다른 노래를 불러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그걸 가지고 불만을 삼는 사람은 없다. 보컬은 노래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연주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은 곡들이 ‘어디쯤 가고 있을까’를 시작으로 하나하나 새롭게 자신들의 노래로 만들어온 곡들, ‘천상재회’, ‘하얀민들레’, ‘여행을 떠나요’, ‘고귀한 선물’, ‘해바라기꽃’, ‘숨어 우는 바람 소리’, 그리고 관객이 관객이니만큼 트로트 곡을 넣는 것도 좋겠다 싶어 요즘 새로 연습을 시작한 처녀뱃사공, 찔레꽃, 소양강처녀, 동백아가씨, 흑산도아가씨, 섬마을선생님으로 이어지는 트로트 메들리, 모두가 지난 일년동안 각시탈 아줌마들을 울고 웃게 만들며 각시탈의 얼굴이 된 노래들이다.
멤버들 모두 각자 받고 싶은 곡을 가지고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말없이 들어왔던 미화씨, 묻지도 않았는데 생초보가 오르간을 맡아 다른 사람들만큼 따라가지를 못해 다들 고생시키고 있다고 지레 고백을 한다. 은선씨도 미희씨도 초보긴 마찬가지건만, 음감이 뛰어나다고 다들 인정하는 은선씨나 멋있어 보인다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드러머인 미희씨에 비해, 행여 한 박자라도 놓칠 세라 뒤쳐질세라 따라가기 바빠 미화씨 자신은 공연 때도 얼굴 한 번 들기 힘들단다. 힘은 힘대로 들고 멤버들한테는 미안하고 속은 상하고 이래저래 맘이 안 편해 보이는 미화씨다. 처음에 초보면서 무턱대고 보컬에 들어올 때는 취미 활동도 하고 음악을 통해 봉사 활동도 하면 좋겠다 싶어 선뜻 시작했는데, 일단 시작하고 보니까 막말로 다들 장난이 아닌 거다. 다들 자신보다는 음악적 실력들도 있는 거 같고 이왕 하는 거 잘 하고 싶은 욕심들도 생기고 거기다 입소문까지 더해져 공연 요청도 자꾸 들어오고, 오르간은 아직 미화씨 맘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여주지 않는데 멤버들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하다.
“제가 사실 제일 늦어요. 그래도 원래 처음부터 취미와 봉사 활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저는 처음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사실 우리가 프로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멤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저는 제 나름대로 부족하지만 즐겁게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실력을 쌓아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르간이 또 제일 구석이예요. 사실 앞에 나와도 오르간 건반 치느라고 고개 처박고 구부리고 있으니까 나는 문제야. 나도 맘이야 얼굴 들고 근사하게 폼 잡고 그러고 치고 싶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되니까 앞에 서도 문제는 문제예요.”
하는 미화씨를 두고, 은선씨도 은순씨도,
“미화씨 자체가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사람인데, 맘대로 안되니까 스트레스 받는거지. 대신 미화씨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잖아. 선생님이 목소리 좋다고 칭찬도 많이 하고. 여기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 아무도 없어. 나도 처음에 기타기초반 강습 한 달 받은 실력으로 치려니까 어깨는 아프지 기타는 맘대로 안되지, 스트레스 엄청 받았지. 그러니 어떡해, 연습할 도리 밖에. 지금은 익숙해지니까 무거운 줄 모르지만 처음에는 기타가 너무 무거워서 두 시간 연습하고 나면 어깨가 너무 아파서 나중에는 어깨에다 수건 받치고 연습하고 그랬어. 곡을 새로 받으면 녹음해서 집에 가서 곡이 익을 때까지 듣고 또 듣고. 기타 메고 가서 치고 또 치고.”
한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몫만큼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소리들로 들린다.
그렇게 서로 각자 힘들어하면서도 연습을 하고 음을 맞춰보고 하나로 음이 맞을 때까지 다시 하고 다시 하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첫 공연의 설레임
그리고 보컬을 결성한 지 여섯 달, 아는 사람을 통해서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멤버들 모두의 첫 반응은 반갑다기보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직 아무 것도 보여줄 게 없는데 사람들은 자꾸 재촉을 했다. 하지 말자, 하자 의견들이 분분했다. 그런데 부탁을 받은 자리가 아파트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축하잔치 자리라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부담이 없는 편한 자리라는 주최측의 설득에 각시탈 멤버들도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좀 빠른 감은 있었지만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하는 첫 공연이었다.
드디어 7월 2일, 용상의 한 아파트 앞마당에서 각시탈의 첫 번째 공연이 있었다. 첫 공연에 대해서 말하라니까 다들 새삼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나는지 가슴들이 들썩여진다.
“사람들이 호응해 주는 것을 보니까 가슴이 막 벅찬 게 우리 모두 그때 감격해 가지고 공연 끝나고도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내 자신이 달리 느껴졌다고 할까 아무튼 첫 공연의 그 느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 같애.”
라는 태순씨의 말에 모두들 그때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나도 그랬다며 동의를 한다.
용상동 아파트 공연을 시작으로 영남방송에 각시탈이 소개되는가 했더니 영남방송에서 주최 한 송현 명가타운 노래자랑에 연이어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면서 안동MBC의 사람과 세상이라는 프로에도 소개가 되고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그러다보니까 각시탈은 본인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리고 미처 준비가 다 되기도 전에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되어버렸다. 거기다 특히 신시장에서 공연을 한 후에는 주변 반응이 더 폭발적이었다고.
같은 아줌마라는 공감대 때문인지 보기 좋다고 너무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같은 아줌마로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면서 주위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고 한다. 미숙씨가 일 때문에 청송에 갔는데 거기서도 알아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은선씨네 아파트 앞에 영덕에서 회 팔러 오는 아줌마가,
“은선씨, 텔레비전에서 봤어. 내 이제 은선씨 팬이야.”
하면서 회도 한 접시 더 주고, 고추장까지 덤으로 주기도 한다.
“그런데 첫 공연 후 여기저기서 공연 요청이 들어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보내느라 다들 힘들었어요. 올해 우리가 공연을 해 보니까 제일 힘든 게 뭐였나 하면 올해는 결성을 해서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일 때까지 공연을 안 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연습이 덜 된 상황에서 처음 공연을 어떻게 나가게 되었는데 그 후로 계속 섭외가 들어오는 거예요.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더울 때 계속 공연을 나가게 되고 그러니 공연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공연 연습 하다보면 제대로 기본 실력을 쌓을 시간이 부족한 거죠.
그런 상태에서 공연이 계속 되니까 발전도 안되고 잘 안되니까 서로 스트레스만 받고, 무대는 점점 더 커지게 되니까 부담은 또 늘어나고. 그래서 지금은 좀 차분히 연습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사실 처음이라 거절하는 것도 몰랐어요. 처음 안동지에서 취재 얘기가 나왔을 때도 사실 싱어도 나가고, 공연 때문에 스트레스도 쌓이고 그런 것들 때문에 멤버들이 모두 안 좋을 때였어요. 그래서 나중에 실력도 좀 더 쌓고 다들 편안하게 여유도 생기고 할 때 하자고 했는데...,
연말이라 지금도 여기저기 공연 요청은 들어오지만 당분간 좀 자중을 하려고요. 그래 다 거절을 했는데 지난 번 위문공연을 했던 대성병원에서 전부터 인연약속이 돼 있던 거라 12월 29일에 대성병원에서 올 한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공연으로 연주 봉사활동을 하고 그날 저희 망년회를 하려고요. 올 한해 반성도 하고 내년 공연 계획도 세우고 해야죠. 1주년 공연을 할 지 말 지 그 이야기도 하고요. 정식 공연은 아니더라도 지인들 불러놓고 조촐하게 할까 하는 이야기들도 있고요.”
힘들어도 보컬 시작한거 후회는 안해요
“사실 실력으로 치면, 욕심낼려고 하면 아직 멀었는데, 연습할려고 하면 솔직히 아직 한참은 더 연습해야 하는데 사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다 음악가는 아니잖아요. 음악 실력으로 따지면 아직 멀었는데, 이제 아장아장 걸음마 떼는 수준인데, 그런데 우리 음악이란 게 할머니도 듣고 할아버지도 듣고 애들도 듣고 아줌마도 듣고, 서민들이 편하게 듣는 그런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욕심낼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고 큰 무대에서 돈 받고 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봉사 차원에서 하는 공연이 위주인데 너무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사실 공연 한 번 하고 나면 주위에서 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예요. 다 틀렸다, 엉망이다 하는 소리도 들리고요. 그치만 그런 소리 듣는다고 마음 상하고 그러면 이거 계속 못해요.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다고 좋은 마음으로 해야지 듣는 사람들도 기분 좋게 듣고요.
사실 우리가 연주봉사 활동도 더 많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실 장비 옮기는 문제부터 한 번 움직이는 게 장난이 아니거든요. 또 경비도 따라야 하고요. 공연 한 번 하기 위해서는 악기 다 옮기고 무대 배치부터 음향까지, 그리고 공연 끝나면 밤 열두시가 넘어도 악기 다시 여기 연습실로 다 옮겨놓고 자러 가야 하니까요. 보통 트럭으로 움직이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악기 들고 직접 자기 차에 싣고 옮겨야 되는 경우도 있고요.”
라는 미숙씨의 말에 태순씨하고 은순씨가 동시에,
“기타 같은 경우만 해도 기타 하나만 옮기는 게 아니고 스피커며 마이크며 딸린 장비들을 같이 옮겨야 하지, 거기다 공연 시작하기 전 연습부터 공연 끝날 때까지 계속 매고 있어야 하지, 이거 하려면 일단 체력도 받쳐줘야 한다니까요.”
하며 한마디씩 거든다.
“힘들어도 보컬 시작한거 후회는 안해요. 중간에 싱어도 빠졌고, 조금씩 갈등도 있었고, 그치만 그래도 보컬 시작한거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올해가 개인적으로 살면서 최고 보람 있었던 일 년이었고.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삶을 산 일 년이었어요. 애들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이제는 남편도 정말 좋아하고요.”
라는 은선씨의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조금 더 힘들고 덜 힘든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다들 공감한다는 얼굴들이다.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실물이 이래서 우리 모두 외모에 콤플렉스 있어요. 사진은 찍지 마세요.”
해놓고 막상 사진 찍을 때가 되자 다들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잔뜩 신경 쓰는 아줌마들. 그러다가도 연습 시간인 두 시가 다 되어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이제 연습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선생님 오시기 전에 두드리고 있어야 되는데...”
하며 자리 털고 일어선다. 아이들 다 키워내고 남편 눈치 볼 나이도 지나 이제는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은 대한민국의 40대 아줌마들도 선생님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어수선한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자신의 악기를 드는 각시들, 이내 연습이 시작되었다.
줄 고르고 음 고르고 목소리 가다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왁자지껄 웃으며 수다 떨던 아주마들은 간 데 없고 여자들의 수다소리 가득하던 연습실에 하나 둘 낯 설은 소리들이 차오른다. 미숙씨의 피아노 소리가 맑게 울리는가 했더니, 퍼스트 기타의 은순씨와 세컨드기타의 태순씨, 그리고 은선씨의 베이스 기타가 각기 제 소리를 내고, 그리고 오른쪽 약간 뒤에서 미화씨의 오르간 소리가 곁들여지고, 줄곧 말이 없던 미희씨의 드럼 소리가 힘있게 울린다. 취재 때문에 어수선하고 들떴던 분위기가 가시고 멤버들이 차츰차츰 악기에 몰두하고 한창 연습에 빠져들 즈음 연습실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섰다. 늦은 오후의 겨울 하늘은 흐린 잿빛인데 각시들은 어느새 우리를 잊고 자신들만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