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우울하게 했던 두 가지 일(글/이정희)늘 사회현상을 접하고 그중 기사거리를 골라 취재하고 또 방송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대개 보도 이후엔 그냥 스쳐가기 마련인 하나의 ‘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최근 몇 개의 기사거리는 한참을 생각하게 했다.
사회복지사업은 봉인가?
말로만 듣던 일부 사회복지사업의 이면을 취재할 기회가 됐다. ‘사회복지’라는 특성 때문에 얘기 자체가 조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그냥 모른 채 할 사안은 분명히 아닐 정도로 문제는 충분했다.
지난 11월, 국비가 지원되는 장애인요양시설을 안동의 한 복지법인이 영주에서 짓겠다고 시비를 요청해와 논란이 됐다. 시의회에서 시설 건립비로 국·도비 보조 75%를 제외한 25% 보조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진통이 컸다.
결국 어렵게 예산이 통과됐지만 착공에 임박해 이 복지법인은 영주시에 사업포기서를 제출했다. 영주시의회에서 타지 법인이라고 반대하고 있고 마침 자부담할 1억여 원의 돈도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영주에서는 처음부터 지역유지가 만든 특정 복지법인이 이 사업을 따왔으며 자신들이 따 온 사업을 맡기 위해 안동의 유명 복지법인을 내세웠다는 사실(이 특정 법인은 2003년 12월 사업신청 당시엔 법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주시 담당간부는 이 같은 사실을 공적으로나 사적인 자리에서 수시로 밝혀왔던 터였다.
오비이락인지… 영주시는 안동의 유명 복지법인이 낸 사업포기서를 접수받고 곧바로 이 특정법인으로 사업자를 변경했다.
사업이 결정될 당시 유명복지법인과 함께 신청서를 냈다 탈락했던 조계종 복지재단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진행 경과에 대한 설명이나 사업자를 다시 모집해서 선정하는 행정절차가 일체 생략된 채 특정 법인에게로 사업이 넘겨졌기 때문이다.
새롭게 사업을 넘겨받은 문제의 이 법인은 비슷한 시기, 복지법인을 급조해 노인요양시설도 편법적으로 따냈다. 더구나 국·도비와 시비를 15억 원 이상 지원받고도 자부담은 한 푼도 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사회복지시설은 건립비와 운영비 대부분이 정부에서 지원되지만 악용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법인이 일정 부분 자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취재가 시작되자 경상북도는 문제의 이 법인이 자산이 적고 자부담도 거의 없어 복지사업을 할 능력이 없다며 사업자 변경신청을 영주시로 반려했다.
영주시는 사업 자체를 보건복지부에 반납하든지, 아님 새로운 사업 주체를 정해 복지부의 허가를 얻든지를 결정해야 했다.
영주시는 공개모집을 통해 새 사업자를 선정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업 자체를 보건복지부에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특정 법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복지행정은 어느 누구의 이해도 얻기 힘든 처사였다.
영주시 행정의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복지시설 설치사업의 첫 번째 판단기준이 장애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영주시 장애인복지사업은 특정인을 위한 ‘특혜’였다.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영주시는 결국 사업반납 방침을 철회하고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해 장애인요양시설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복지시설은 건립비와 건립 이후 운영비 전액이 정부에서 지원되지만 사후 관리·감독은 해당 지자체에 있다. 해당 지차제는 서류로 모든 감사를 펴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복지법인은 되물림 되고 있고 중요한 자리는 친인척이 맡고 있다. 일부 부도덕한 사회복지사업가들로 최근엔 ‘복지 재벌’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중증 장애인을 내세워 사회복지시설을 사업수단으로 잘못 이해한 지역 유지들의 편법에, 유명 복지법인의 대표가 앞장서고 자치단체는 이상한 행정을 계속 펴나간 것이다.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할 사회복지사업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분명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무늬만 사회복지를 걸친 일부가 조용히,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회복지를 펴는 다수를 욕보이겠거니… 애써 위로해 보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시각 장애인에게 주어진 묵은 라면
지난 12월 30일, 영주시장애인협회는 매년 그랬듯이 후원으로 들어온 라면을 장애인 회원들에게 한 박스씩 나눠줬다.
라면을 받은 장애인들에게는 귀한 선물인 셈이다. 점심 등을 이 라면으로 떼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라면을 전달받은 시각장애인들은 며칠씩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고 한다. 그중 한사람이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유통기한을 확인해 본 결과 후원받은 라면은 유통기한이 무려 넉 달이나 지난 것이었다.
앞을 볼 수가 없으니 유통기한이 지난 줄도 모르고 라면을 받아 끓여 먹었던 거다. 정상인이라면 빛깔이나 맛이 이상해 도저히 먹지 않시사포커스았을 라면이었다.
이렇게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을 받아먹었던 시각장애인들은 모두 8명, 농사를 짓거나 혼자 사는 노인 등 대부분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라면은 모 단체가 시각장애인협회에 전달한 것이었다. 직접 구입하지는 않았다고 하고, 여러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아마도 식품 대리점 같은 곳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재고로 쌓인, 처치 곤란의 라면을 얻어 후원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당사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났는지 전혀 몰랐다고 밝혔지만 글쎄, 정말 유통기한이 넉 달이나 지난 줄도 모르고 8박스나 되는 라면을 후원했을까… 석연치 않다.
이번 역시 후원자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받은 시각장애인들은 또 한번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앞 못 보는 것도 슬픈데 먹을 수 없는 라면을 먹으라고 전해주다니 말이다.
내가 후원한 것도 아닌데 기자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우리는 앞을 볼 수 있는 일반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이들에게 상처를 준, 중죄를 지은 기분은 아마도 나뿐 만이 아닐 것이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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