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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생 김길환씨, 환갑을 맞다(글/이미홍)

2005년 올해가 1945년 광복이 된 이래로 60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을 것이다. 해방된 지 60년,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웠던 혹은 어려웠던 지난 이야기들을 애써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한 순간도 그 역사를 비켜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의 어느 한 시기 어느 한 지점에 서 있게 되는 것이 개인의 운명이요 삶이기 때문이다. 1945년, 그 해에 온전한 내 나라의 주인으로 태어난, 해방둥이라고 불렸던 이들의 삶 또한 그러했다. 우리의 굴곡 많고 지난했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낸 60년이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다 굴곡질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었다. 인생살이 육십 년, 우리의 해방둥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환갑을 맞이하고 있을까?

안동 옹천에 정착해 살아온 지 25년

우리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마리스타 야간학교를 통해서였다. 다 늦게 못 배운 공부를 하러 등록을 한 사람들 중에 1945년생은 단 한 명이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이가 바로 이번호의 주인공 김길환 씨였다.

안동시 북후면 옹천으로 김길환씨를 찾아간 날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날들 중의 하루였다. 바람이 매서웠다. 우리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는 바람에 그 매운바람 속을 그새 두 번이나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었다는 길환씨는 이까짓 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런 얼굴로 우리를 골목 안 오래된 집으로 안내했다. 오밀조밀 옛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는 집 안은 좁아도 있을 것은 다 있는 그런 모양새였고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 그렇듯 조금 추웠다. 전도사인 부인 강화심(64)씨가 교회일로 부재한 집안은 아무래도 좀 썰렁했다. 그러나 손이 온다고 미리 전기장판을 켜 놓고 기다리던 그 마음 앞에서 춥다는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집 안 곳곳에서 그들 부부가 얼마나 아끼고 절약하며 사는 지를 말해주는 증거들, 오래된 장롱, 낡았지만 깨끗이 빨아서 매달아 놓은 커튼, 오래된 주전자, 한 켠에 쌓여 올려진 책들, 교인들이 가져다주었다는 잘생긴 늙은 호박들하며, 우리 앞으로 당겨 놓아주는 낡은 전기스토브 같은 물건들이 방안에 차곡차곡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 집안에선 하나도 버리는 것이 없을 거라는 데 내기를 걸어도 좋을 정도였다.

충남 서산이 고향인 길환씨가 이곳 경상도 옹천에 정착해 산지가 어느덧 25년이라고 했다. 따져보니 그때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무렵이었다. 전쟁 통에 부모 잃고 어릴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어쩌다보니까 굴러굴러 여기 경상도까지 오게 되었다는 길환씨, 여기에 그때 지금의 풍산 한지공장 하는 이가 하던 제지공장이 있었는데 마침 제지기술을 배운 게 있어서 거기서 일을 하게 된 게 인연이 되어서 그야말로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친구가 당시 이 집에 방을 얻어서 세를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중간에서 집사람하고 다리를 놓아준 거죠. 그런데 내 처지가 그렇다 보니까 주위에서 다들 반대가 심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장모님이 나를 잘 봐 주셔서 인연이 된 거죠.”

비록 장모님이 내 편이기는 했지만 객지생활에 홀홀단신 서른일곱 살 노총각 길환씨가 넘어야 할 산은 많고도 많았다. 부인 강화심씨는 당시 시집을 갔다가 이혼을 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서 살고 있었는데, 겪으면 겪을수록 사람이 성실하고 똑똑한 것이 길환씨 마음에 꼭 들었다. 화심씨가 세 살이나 연상이라는 것도 아이가 둘이나 딸렸다는 것도 길환씨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옹천 강씨들의 고집은 만만치 않았다.

부인 화심씨를 비롯해서 처갓집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안이었다. 길환씨네는 바닷가라는 특성상 대대로 불교를 믿었던 집안이었지만 죽어도 안된다는 강씨들의 반대에 화심씨한테 장가들기 위해서 개종을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열심히 교회도 나가고 성경공부도 했다. 그에게 있어 화심씨를 만난 것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가정을 갖고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며 사는 것 그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그는 화심씨한테 고마워하며 장가를 들었다.

고향에서의 흐릿한 기억, 그리고 떠돌이 생활

1945년 3월, 그가 십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을 때 세상은 그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 품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형들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그가 태어난 바로 뒤에 해방이 되었지만 세상은 어수선했고 부모님은 6.25 전쟁이 일어날 즈음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연히 그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다. 큰 형들이 배를 타던 기억, 형들과 함께 서산 바닷가에서 갯조개 캐며 뛰놀던 기억, 그러다가 형이 들고 있던 괭이에 머리가 찢어졌던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나이 찬 형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쟁 통에 십남매나 되는 형제들이 부모 없이 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나이가 어렸던 그와 형들은 각각 고모네로 작은 아버지네로 그리고 남의 집으로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들 어려워 한 집에 형제들을 받아줄 수 있는 친척은 없었고 그나마도 고마울 따름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는 친척집을 나와 시장 바닥에서 심부름도 하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도 배우고 그러면서 지내기 시작했다. 그게 떠돌이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제법 머리가 굵어 자리를 잡은 곳이 인천 바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흔히들 말하는 그 꿀꿀이죽을 먹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PX 물건들을 몰래 받아 팔아서 돈을 벌었다. 그 시절 미군부대 주변에는 소위 양공주라 불리는 아가씨들이 있었고 그들을 관리하는 마미(큰엄마)가 있기 마련이었는데, 그가 세 든 곳의 주인 아주머니가 그 마미였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 온 분이었는데 피난길에 아들을 잃어버리고 딸 셋을 데리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분이었는데 길환씨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보살펴 주었다. 그 마미의 도움 덕분으로 그곳에서 그는 제법 많은 돈을 모았고 결혼해서 정착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마미가 있는 그 집에는 젊은 여자들이 많았고 혈기 왕성했던 그는 그 중의 한 아가씨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다. 한달 뒤 그 여자는 소설 속에서처럼 그의 전 재산을 들고 도망을 가 버렸다. 한겨울이었다. 그 여자를 찾아, 돈을 찾아 헤매다 그는 숫제 미쳐버렸다. 종이 조각이 바람에 날리는 것만 봐도 지폐뭉치로 보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그는 그 바닥을 떴다. 그리고 그가 다시 떠돌다가 일자리를 따라 내린 곳이 이 곳 옹천역이었다.

당시만 해도 옹천은 우시장도 있고 제지공장도 있고 해서 늘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이었다. 장꾼에 노름꾼에 사람들이 벅적댔고 시장 바닥에 도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그가 애초부터 이곳에 정착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친구 소개로 만난 화심씨로 인해 그는 마음을 새로 먹었다. 이런 여자면 나도 새로 시작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그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가지게 되었다. 부인과 두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화심씨와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셋째가 태어나면서 가족은 다섯으로 늘어났다. 몸은 힘들었지만 길환씨는 행복했다.

못 배운거 한가지 그거 빼고는 살아온 날에 전혀 후회가 없어요

그런 길환씨도 화심씨도 한 가지 가장 큰 한을 꼽으라면 아마 못 배운 한을 들 것이다. 살면서 두고두고 한이 되는, 못 배웠기에 겪어야 되는 그런 서러움을 몸으로 겪으며 산 세월들이었기 때문이다. 애들이 다 크고 아내 화심씨가 늦게나마 공부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길환씨하고 나란히 마리스타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길환씨에게는 아마도 배움의 연은 끝내 없었던 모양으로 그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신 화심씨가 그의 몫까지 두 배 세 배로 공부를 했다.

“못 배운 거 한 가지 그거 빼고는 내 살아온 날들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어요. 어디 가도 나는 떳떳해요. 우리 집사람이 내 몫까지 같이 등록을 했는데, 저는 경비 일을 다니고 있었는 데다가 어릴 때 형한테 쇠스랑으로 다쳤던 때문인지 머리가 온전치가 못해서 같이 공부하러 다니지를 못했어요. 배우고 싶은 마음이야 있었지만 하려고 해 봐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 나는 부지런히 보고 듣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해요. 대신에 집사람 공부 뒷바라지는 제가 열심히 했지요. 저는 항상 그랬어요. 당신이 내 몫까지 해라, 내가 힘닿는 데까지는 뒷바라지 해주마고요.

그런데 이제는 지금 하는 과정까지만 하고 그만해라 해요. 우리 집사람 나이가 올해 육십 넷이예요. 내 맘에는 집사람이 오십 대여섯만 되어도 대학교까지 더 하라고 하고 싶지만 이제는 집사람도 나이가 있고 몸이 안 따라주니까 힘이 들고요. 맘이야 지금도 우리 못 배운 한을 원없이 풀어주고 싶죠. 그치만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만족해요. 그전에 안동에 공부하러 다닐 때는 내가 늘 자전거로 태워줬는데 요즘은 내가 못 태워줘요. 지금은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느라 대구까지 가니까요. 우리 집사람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어요. 제가 큰 아들 대학 4년, 딸 고등학교 3년, 전문대 2년 그리고 집사람 3년, 그리고 대학교 2년 다니다가 지금 군에 가 있는 막내까지 이렇게 공부 뒷바라지를 했어요.”

남들 자식 많은 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돈 한 푼도 없이 맨몸으로 벌어서 학교를 시키다 보니까 딴에는 죽을 고생을 했다는 길환씨. 부부가 도둑질 말고는 돈이 된다는 일은 다 했다고 한다. 왜 안 그랬겠는가? 그러다 보니 살면서 자연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빚 낸 거 갚고 나면 돌아서서 또 빚내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지금은 시집 장가가서 아들 딸 낳고 잘들 살고 있다. 그 많던 빚도 이제는 거의 다 갚았다고 한다.

“우리 집사람은 그 못 배운 한이 커서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어요. 중학교만 나오고 고등학교 보내 달라는 걸 장인이 오빠들 때문에 더 학교를 못 하게 한 거죠. 그래 늘 배움에 목말라 했어요. 그래 내가 그러면 공부를 해라 하고, 이왕이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 해서 제가 전도사 공부를 하도록 권했어요. 그때 집사람이 교회에서 권사로 있었는데 제 맘에는 권사들 중에서도 어째 집사람이 허드렛일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은 게 속이 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왕이면 공부를 해서 전도사가 되라고 제가 그랬죠. 처음에 집사람이 이 나이에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엄두를 못 내는 걸 제가 가서 등록을 했어요. 그리고는 제가 전도사 2년 과정을 집사람 공부 뒷바라지를 한 거죠. 집사람이 원래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데다 남들보다 열심히 해서 2년 만에 전도사 시험에 합격을 했어요.”

처음 전도사가 되고 난 후 부인 화심씨는 1년간 옹천교회에서 전도사로 일을 했다. 당시 전도사 월급이 23만원이었는데 그걸 집안 살림하는 데 쓰지 않고 대부분 전도하는 일에 쓸 만치 열심히 전도를 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 자기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딴에는 열심히 산다고 하는 데도 사람들 보기에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사람들이 참 이상해요. 우리가 없이 산다고, 내가 객지사람이라고 그런지 어쩐지 주위에 아무 이유 없이 자꾸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마침 대구에서 목사로 있던 사위가 좀 와서 도와 달라 해서 거기 가서 일을 봐 주다가 영주에 있는 서강교회에서 전도 일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와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5년째 거기 교회에서 일을 보고 있어요.”

그때부터 길환씨네는 주일이면 부인이 전도사로 있는 서강교회에 가서 예배를 본다.
아내 화심씨는 교회에 안나가도 전화상담에 복지관 일에 공부에 그리고 가게 일에 하루 이십사 시간이 모자라도록 바쁜 사람이라며 길환씨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시장안 옷가게. 길환씨 장모님이 하던 가게를 결혼하면서부터 물려받아 쭉 계속해 오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옹천시장 안 여기가 다 판자촌이었어요. 판자촌을 지어 불하를 해서 면에서 세를 받았어요. 지금은 이제 건물을 새로 지어서 개인불하가 다 되었지만요. 그래 우리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때 불하를 받았지요. 전에는 장사가 꽤 잘 됐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교회일로 바빠서 자주 가게를 비우게 되니까 문을 닫아 놓는 날이 많지요. 게다가 이제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장사가 통 안돼요.”

아내 화심씨의 친정동네는 알아주는 옹천 강씨 집성촌이었다. 자연 이웃간에 무슨 일이 있으면 같이 웃고 같이 우는 끈끈한 정을 과시해 주변 동리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 그 든든한 울타리는 길환씨처럼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오래오래 넘기 힘든 벽이기도 했다.

“그게 그렇더라고요. 물론 처가 동네고 해서 친척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 그랬지만, 정말 어려울 때 손 내밀었을 때 선뜻 그러마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돈 때문에 설움도 솔직히 많이 받았죠. 돈 없는 설움에 혼자 뚝방에 가서 울면서 다짐을 했죠. 사람도 좋고 이웃도 좋지만 아무 것도 없는 내가 남들처럼 같이 어울리고 놀고 하다가는 안되겠다 하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 그때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그만두고 돈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어요. 남이 볼 때는 저 등신 자식 돈 밖에 모르고 친구도 모르고 이웃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으니까요. 지내놓고 보니까 그래도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그때는 내가 그만큼 살기가 절박했으니까요.”

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해방되던 해 태어났다고 뭐 별다르게 살았나요? 그때는 다 그렇게 어렵게 살았잖어유. 나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 태어난 사람들 우리 세대 모두가 다 겪은 것들을 저도 겪으며 산거죠 뭐.”

그랬다.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그래도 다들 참 열심히들 살았다. 그리고 허리 짚고 고개 들어보니 어느새 육십이다. 자식들도 다 커서 하나 둘씩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떠나고 긴긴 고생도 얼추 그 끝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는 두 다리 펴고 쉬어도 좋을 듯한 나이, 길환씨도 어느날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했다.

“제 꿈은 그래요. 이제부터는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거요. 제가 살아보니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배우고 안 배운 걸 떠나서 어떻게 살다 가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게 인생인데, 내가 남을 편안하게 해 주고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게 인생 왔다 가는 보람이죠. 아이들은 공부 시켜 주었으니 그걸로 됐고, 누구든 나머지는 능력이 되면 벌어서 남을 위해 사회에 내놓고 죽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건 집사람한테도 아직 말 안했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정말 내 힘닿는 데까지 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그래 저 산골짜기 밭 옆에 지금 내 나름대로 터를 닦아서 기초 공사를 하고 있어요. 비록 야산에 있는 거지만 들이 한 이만평 되거든요. 제가 거기다 오막살이 같이 집을 지어서 혼자 기도하는 교회를 지어 났어요. 한 이삼십 명 들어갈 장소는 돼요. 언젠가는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불러다가 돌봐주며 같이 지내고 싶어요. 하다 못해 편안한 잠자리하고 최소한의 먹을 것이라도 제공해 주고 싶은 게 제 마음이예요.

그리고 알아보니 그런 일도 이제는 아무나 못하고 일정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어야만 된다고 하고. 제 맘이야 지금이라도 그러고 싶지만 애들 데리고 와서 먹이고 입히고 할 준비가 10%라도 돼야지 아무 것도 없이 데려와서 고생시킬 거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잖어유. 그러니 많이 멀었죠. 그래도 앞으로 언젠가는 가능하리라고 봐요, 저는. 그걸 현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제 힘껏 노력도 하고 있어요.”

“혼자 기도하면서 지금 속으로 그 계획을 이리저리 짜보는 거예요. 거기에 짐승을 먹여서 수확이 나오면 그걸 가지고 애들을 먹이고 공부시킬 생각도 해 보고 농작물을 뭘 어떻게 심어서 보탬이 되게 할까 그런 걸 검토도 해보고 딴에는 혼자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지금 지어 놓은 집을 남들이 보면 돼지우리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집 지어 놓고 거짓으로 사람들 위하는 척 하는 곳 보다는 오막살이라도 내가 거기 가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 자리가 내게 좋은 자리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그런 자리를 사람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거예요.”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고 공기마저 깨끗해 아무 잡념이 없는 그곳에 있으면 길환씨는 그래서 한없이 편안하고 좋다. 어쩌다 찾아오는 쥐도 들고양이도 배암도 개미 한 마리, 나뭇가지조차도 다 친구다. 날이 따스해지면 한번 가보기로 약속을 하고 일어섰다. 밭둑에 밤나무가 많다 보니까 여름에 그늘이 져서 농사가 잘 안돼서 요즘 그 밤나무를 자르고 있다며 우리를 보내고는 지금이라도 들에 가 봐야겠다며 길환씨가 골목길 안으로 사라진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