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논쟁(글/이장춘)“우리는 앨범에서 빼 주소!”
학기 말에 행정실 직원들이 선생님 호칭을 붙여줄 것을 요구했다가 나온 말이다.
“행정실 직원들에게 선생님 호칭을 쓸려거든, 내 얼굴은 빼 주소!”
이번엔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한 교사가 맞받는다.
학기 초, 이 학교에서도 선생님 호칭을 써 줄 것을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와 함께 교육부와 대학교 및 일부 교육청과 학교에서도 이미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 사회 안에는 교사이외에 행정직(일반직, 식품위생직, 기능직)과 비정규직(과학조교, 전산보조, 체육순회코치, 조리종사원)에 속하는 직원들이 있다. 흔히 교사와 이들을 통틀어 교직원이라 부른다. 이들은 이른바 ～주사, ～양, ～씨, ～여사 등으로 불리며, 때로는 학생들에게 아줌마, 아저씨로 통칭되기도 한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마음 상해 있다가 마침내 재작년부터는 기존 호칭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교육행정직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붙이는 ‘주사’라는 호칭은 공무원 6급(시청 계장급)에 해당하는 직급인데, 듣는 이들은 계급적·권위적·봉건적이고 비하적인 호칭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그들은 학교직원에게 선생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당위성으로 다음 몇 가지를 든다.
첫째, 선생님이란 용어는 교사를 비롯한 그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다.
둘째, 교사는 교사자격증을 딴 것이지 선생님 자격증을 딴 것이 아니다.
셋째, 일용직 보조원을 포함한 모든 학교 직원들은 모두 교육적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없고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이다.
과연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만이 선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교사는 교과 이외에도 생활지도와 인성지도를 담당하지만 교사만이 독점적으로 선생님이라 불릴 근거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사회에서 ‘사장’이라는 용어처럼 보편적으로 쓰인다 해도 학교 안에서조차 분별없이 쓰여도 될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편 반대하는 쪽에서는 우리 조상님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부터 두 가지 직업에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교사와 의사의 경우에 스승 사(師)를 붙이고 그 외에는 모두 선비 사(士)를 썼다. 100여 년 전에 비로소 생긴 교회 목사도 스승 사를 쓰게 되었지만, 변호사·박사·기능사 모두 선비 사(士)를 쓰고 판사·검사는 일 사(事)를 쓴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안에서 모두 선생님으로 호칭하면 교사와 일반직간에 구분이 안 된다. 이제까지 해 오던 일을 왜 바꿔서 혼란을 일으키려 하나? 학생과 동년배의 교무보조에게도 선생님으로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사실 어떤 교사들의 솔직한 고백처럼, 교사들의 권익을 침해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큰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얼굴을 잘 대면하지 못하는 교감 선생님을 가끔 ‘아저씨’라 부르기도 한다.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아저씨인지 학생들은 혼란스럽다. 교감 선생님을 아저씨로 호칭하면 안 되듯이 아저씨를 선생님으로 부를 수 없는 일인가? 선생님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한정하더라도 교과를 지도하는 일만이 가르치는 일인가? 학교에는 의도적인 표면적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은연중에 가르치는 잠재적 교육과정도 있다고 교육학 교재에는 적혀 있다. 학교 직원들도 교사들과 함께 한 울타리 안에서 교과 이외의 일로 지도하기도 하고, 본보기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옛날 동양 교육은 상행하효(上行下效)로 이루어졌다. 스승을 비롯한 윗사람이 행하는 일을 본받는 교육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파스데라스테이아’라는 것이 있었다. 성인 무사가 자신을 따르는 청소년을 특별히 귀여워하여 일정기간 함께하면서 지도하는 일인데, 이러는 가운데 성인의 훌륭한 정신적 자질이 은연중에 전수되기도 한다.
교단일지학교 안에서도 어떤 학생들은 학교 직원을 특별히 따르는 경우를 더러 본다. 학교 직원들이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사회적 고학력화에 따라 그들은 교사들과 거의 대등한 학력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들의 일에 대해서도 전문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학교 직원에게 교육에 대하여 이해를 높여주는 일정한 연수를 받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본다. 학생들과 항상 접촉하는 이들에게 교육적 소양을 높여주어 그들에게도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곧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앨범에 교사 아무개, 행정서기 아무개 등으로 쓰자는 안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선생님’ 논쟁은 앨범에 어떻게 기재하느냐 하는 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여러 학교에서는 일찍이 열린 사고로 이 문제를 해결한 바 있고, 어떤 교육청에서는 각급 학교에 ‘직원 상호간의 적절한 호칭 사용권장’이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울지 몰라도 선생님 호칭의 공유는 학교 구성원들 상호간의 이해와 존중을 통해 평화로운 학교 공동체를 이루는데 한 몫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선생님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 학교 직원들의 위상만 높여주는 일일까? 진정으로 학생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두고 생각해 볼 문제로 여겨진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