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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의사가 본 노인학대(글/김승열(안동성소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의사로 20년 가까이 살면서 의학 교과서에만 보던 사람의 몸에서 꿈틀거리는 구더기를 본적은 딱 한번 있었다. 경남의 대도시의 응급실에 근무할 때였다. 한 노인 환자가 응급실에 오셨는데, 발의 상처에 구더기가 생겨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분은 거의 아사 직전에 딸에 의해 발견되어 응급실에 오신 분이었다. 사연을 대략 들어보니 딸이 모시다가 아들과 며느리가 모시게 되었는데,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거의 석 달을 방치하여 생긴 일이었다. 그야말로 경로의 나라라고 온 세계 노인들이 부러워하던 한국도 이제 옛말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날이었다. 노인 학대에 대한 미흡한 인식은 앞으로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WHO에서 발간하는 각종 문헌에서도 ‘문화’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의 노인 학대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화의 차이로 인한 세계 기준과 또 법과 윤리, 관습간에 충돌이 예상되는 분야이다. 단적인 예로 응급실 의사로서 흔히 경험하는 바이지만, 응급실에 이른바 가망 없는 상태, 즉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내원 하는 의식 불명의 노인 환자들은 대개 의식이 없거나 거의 식사를 못한지 며칠 지나, 영안실을 사용하기 위해 호스피스 아닌 호스피스를 위해 입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접 경험한 바를 하나 더 예를 들어보면, 92살 할머니가 이미 사망한 채로 응급실로 실려 왔다. 유족들에게 물어보니 여섯 달 전부터 누워만 있다가 일주일 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신체검진을 한 결과 팔다리와 얼굴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영양실조 때문에 부은 것으로 판단됐다. 가족의 설명이나 신체검진 결과를 종합해 보면, 영양실조가 직접 사망 원인으로 보였다. 굶어서 사망한 것이다. 이 할머니는 치료를 받았다면 최소 몇 달은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망 결과만 보면 노인 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

법적으로 사망은 자연사와 변사로 나뉜다. 외부적인 원인 때문에 사망한 것을 가리키는 변사는 경찰에 반드시 신고하도록 돼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할머니는 자연사가 아니고 변사이므로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면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당연히 노인학대로 분류했겠지만 우리나라는 어찌될지 알 수 없다. 문화의 차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WHO의 기준에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명백한 노인학대나 방임인 것이다.

즉 의식이 없음에도 방임하거나, 식사를 못해도 굶겨 죽인 사례로도 기록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특유한 문화,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효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그 반대로 또한 부모의 자식에 대한 배려도 어떠한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각별하며, 또 죽음을 영원한 이별로 보는 유럽에 비해,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즉 죽은 사람도 산 사람과 함께 있다고 의식하면서 사는 한국인에게는 이렇게 유럽의 기준으로는 명백한 방임일지라도 사실은 오히려 배려일수는 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과 살아 더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편히 돌아가시는 것이 더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공유하는 감정일 것이다.

문제는 예컨대, 부모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의식하지 못하는 강요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면서 자식에게 짐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조금 일찍 죽는 것은 자살도 아니고, 타살도 아닌,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이다. 그러함에도 모든 생의 끝에 다가간 한국의 노인들이 이러한 부모-자녀간의 학대가 아니라 배려인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차라리 빨리 죽기를 바라면서 일부러 의학 치료나 필요한 요양이나 음식 등을 제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경로사상에 대한 관심

이제 배우자 학대, 성폭력, 어린이 학대와 함께 노인학대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학대인지 아닌지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환자를 대했을 때, 의사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본의 아니게 노인 학대에 동조하게 될 수도 있다. 하기에 하루빨리 한국의 문화를 감안한 노인 학대의 정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의사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한국의 문화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가족들도 명백하게 노인학대 심지어 노인을 죽게 내버려 둔 자살 방조 내지 타살로까지 규정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의료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이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사고능력이다. 그 다음 인간에게는 있으나 다른 동물에게는 거의 보기 힘든 것은 무엇일까? 의사로서 인간이 동물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의 하나로 노인 공경, 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들고자 한다. 동물들도 새끼에 대해서는 인간과 다름없이 지극한 정성을 베푼다. 그러나 동물들은 늙어서 약해진 동류(同類)에 대해서는 도와주거나 공경하기는커녕, 가차 없이 추방하는 습성이 일반적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경로는 동물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윤리나 도덕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특히 경로는 유교사회에서 두드러진다. 효가 만가지 착함의 근본이라는 효경만이 아니라, 유교의 사서삼경은 누누이 효와 경로를 말하고 있다. 경로에 대해서도 동서양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유럽은 청춘을 추구하는 문명을 가졌다. 그래서 나이 먹음을 두려워하고 감추려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유럽의 예법에서는 아주 친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이기도 하다. 그 반면에 유교가 널리 퍼진 동양은 경로문화이다. 고대 중국에서 유교가 틀을 잡은 한(漢)나라에서는 나이에 따라 작위를 내리기도 할 만큼 노인을 우대함에서 보듯이 경로사상은 동양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이는 “서양은 기마, 전투를 숭상하는 유목민이기에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반면에 농경문화에서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노인의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발달하였다”고 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실용적인 해석을 넘어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라는 측면에서, 또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들어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노인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합의 촉구

마지막으로 요즘 젊은 층에서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노인 경시 풍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즉 ‘노인에 대한 존경심 상실’이 한국에서 노인 학대인가 아닌가하는 문제이다. 노인학대에는 육체나 정신적 폭력, 폭언, 방치, 성폭력 등이 있다. 이러한 노인학대의 분류에 대해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정의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각국에서 노인들이 학대나 방임의 정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있는 ‘노인에 대한 존경심의 상실’도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유럽은 청춘을 찬양하고, 고령에 부정적인 청년 문화권이다.

따라서 청춘 위주의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유럽과 미국의 노인들에 비해, 고령을 최대한 존중해오던 전통사회나 그리고 노인에 대해 각별한 존경을 해오던 농경-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 각국의 노인들은 ‘노인에 대한 존경심의 상실’이 더욱 더 큰 상처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반면 연령에 의한 서열화의 비민주성이라는 문제가 ‘노인에 대한 존경심’과 충돌한다는 것에서, 차츰 노인들의 발언권이 약화되고 있는 한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 또한 급할 것이다.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노인들은 전통적인 존경을 받아 오던 위치에서 심하게 말하면 관습에 의한 존경 외에는 홀대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고, 이 와중에 노인의 소외감과 정신, 심리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노인들은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러한 강한 애착과 자식에 대한 애정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자식에 대한 배려로 침묵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그래서 노인은 침묵의 소수(silent minority)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남다시피 한 침묵의 소수자인 노인 학대에 대해 하루빨리 사회적 합의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의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