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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라 가는 길(글/김용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중국에 가보고 싶었다. ‘황하’와 ‘장강’의 나라, 유비나 관우 혹은 조조가 살던 나라, 두보나 이태백의 나라, 주희와 맹자의 나라, 아아 무엇보다도 공자의 나라. 수 천년 동 아시아인들의 태산이요 북두였던 공자. 이제 중국에 왔으니 어찌 공자를 찾지 않을 수 있으랴.

한 달 반의 어학 연수기간을 곰곰이 점검해 보니 춘절(설날)이전인 17일 이후의 며칠 시간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은 그렇다 치고 누가 이 여행에 함께 가주나? 혼자라도 갈 참이었지만, 이국 땅에서 그것도 완전 초행길이니 솔직히 겁도 났다. 다행히 연수기간 동안 함께 방을 썼던 ‘통우(同屋:룸 메이트)’ 이명진 선생님이 동행의 뜻을 보인다. 고마웠다. 그 후 배태호 선생님이 호응을 보이고, 또 이선영 선생님도 참가했다. 이젠 됐다. 더 이상의 인원은 곤란하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곳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고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택시의 정원이 네 명인데 우리도 꼭 맞춘 듯이 네 명이다. 우리는 어언대학 뒤의 한국인촌에 있는 한국인 여행사에 기차표를 의뢰했다. 12월 29일 밤 11시 기차의 ‘루안워(부드러운 침대 기차)’였다.

북경 역의 야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조명은 휘황하고, 건물도 웅장하다. 그래, 13억 인구의 중심 역이 아닌가. 우린 모두 기념 촬영을 하고 역사로 들어갔다. 배태호 선생님은 참 길눈이 밝은 사람이다. 그 큰 역사, 많은 사람, 처음 타보는 중국 기차에 모두 어리둥절한데 그는 잘도 찾아 들어간다. 이층으로 된 루안워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공중에 뜬 느낌이 이런가? 다리를 건너거나 굴을 통과함이 몸으로 다 느껴졌다. 모두 뜬눈으로 밤을 새운 듯했다. 새벽 나절에 우리는 취푸(曲阜)역에 내렸다.

새벽에 밟은 공자의 땅

여기가 어디냐? 여기는 공자의 땅이다. 이천 수백 년 전 이곳에서 태어난 공자의 자취를 더듬으러 해동의 백면서생이 여기에 왔다. 지금은 온통 공자의 이름으로 뒤덮인 취푸. 하지만 이곳은 원래 공자의 땅이 아니다. 이곳은 주공(周公) 땅이었다. 옛날 주(周)나라 무왕이 포악한 은(殷)나라의 주(紂)왕을 쳐 없애고 주나라를 세웠다. 그 후 무왕은 어린 아들 성(成)왕을 남겨두고 죽었다. 왕이 어려 삼촌이 섭정을 했다. 섭정의 삼촌은 권력을 잡고, 주나라 팔백 년의 기틀을 다졌다. 그는 유가적 통치 이념을 정립하고, 친인척의 반란을 잠재웠다.

그리고 왕이 장성하자 자신의 모든 권력을 깨끗이 돌려준다. 성왕은 이 삼촌의 처분이 너무도 고마워서 삼촌의 아들 백금(伯禽)을 제후로 봉하여 노(魯)나라 땅을 주고, 주공에 대해서는 천자와 같은 예악으로 제사 받들기를 허락했다. 그 노나라의 수도가 취푸다. 주공의 후손들은 이곳에서 수백 년 임금노릇을 한다. 공자가 꿈에서라도 찾아뵙기를 원했던 성인 주공. 비록 수백 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지만 그는 분명 공자의 스승이었다. 그 주공의 땅, 공자의 땅에 내가 온 것이다. 그래도 우리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택시 기사들이었다.

우린 어차피 택시를 이용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통통하고 마음 좋게 생긴 기사에게 우선 아침 요기 할만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한국 관광객을 태운 이 친구는 기분이 무척 좋은 듯 흥분한 목소리였다. 그는 우리에게 말할 여유를 주지 않고 아주 큰 목소리로 쉼 없이 떠들어댔다. 보통화인지 산동 방언인지조차도 구별이 안가는 그의 말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말의 맨 마지막에 우리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하오 마(괜찬습니까)?”라는 말 뿐이었다. 짧은 중국어로 우리의 계획을 말하니, 특별 손님을 받았다 싶은지 그는 더욱 흥분한 목소리로 취푸의 볼 꺼리를 설명한다.

혹시나 싶어 맹자의 유적지도 가능한가 물었다. 그는 “메이 원티(문제 없습니다)”를 연발했다. 25km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관광의 순서를 정했다. 아침 일찍이 조우청(鄒城:맹자의 고향)으로 가서 멍미아오(孟廟:맹자 사당)와 멍푸(孟府:맹자 집안의 저택)를 먼저 보고, 다시 취푸로 온다. 취푸에 와서 조우공미아오(周公廟:주공 사당)와 얜미아오(顔廟:공자의 수제자 안회의 사당)와 루청(魯城:옛날 노나라 성)을 보고 점심 식사를 한 후 공자의 유적지를 본다. 그리고 취푸에서 1박을 한다. 자, 상쾌한 출발. 우리는 오른쪽 문이 고장나서 밖에서 열어야 하는 그의 고물 택시에 올랐다.

맹자와 주공의 흔적

영성문! 붉은 색의 아름다운 문이 숲으로 뒤덮힌 멍미아오를 지키고 서 있다. 입구를 들어서니 청나라 강희제가 세운 거대한 비각이 서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짜고 있던 베를 잘랐다던 곳에도 아담한 비가 서있고, 땅에 묻혔다가 벼락에 의해 드러난 우물 등의 볼거리가 있었다. 멍미아오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했다. 전각의 곳곳에 여자 복무원들이 하품하거나 뜨개질을 하고 있을 뿐 멍미아오를 구경온 관광객은 우리 네 사람 이외에 몇 명밖에 없었다. 사당에는 아성전(亞聖殿)이라는 종서 현판이 걸려있다. 맹자의 곁에는 그의 제자 악정자(樂正子)가 배향되어 있었다. 아성이라. 두 번째 가는 성인이라는 의미일 터인데... 나는 잠시 이런 가정을 해보았다.

사도 ‘바울’이 없었으면 예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세계화는 분명 바울의 힘이다. 마찬가지다. 맹자가 없었으면 공자의 사상은 애초부터 세상에 전파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공자를 성인으로 추앙하고, 특유의 논리와 강기로 무장하여, 무수한 이설들을 전투적으로 싸워 잠재워버린 사나이였다. 기어코 상대방을 제압하기를 즐기는, 그래서 내 마음에 좀 덜 드는 이 사나이.

멍푸는 참으로 아담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멍푸를 보는 둥 마는 둥하며 밖으로 나오니 추운데서 기다리고 섰던 기사가 반가워한다. 우리는 여행사에서 약속 받은 대로 공리라는 아가씨에게 전화를 해서 지난에서 뻬이찡으로 돌아가는 표를 예매해야 했다. 기사가 무슨 전화를 하느냐고 묻는다. 사정을 설명하면서 표 한 장에 40원씩 구입료를 줘야 된다고 하니 이 사나이가 갑자기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이 많아진다. 아차, 뭔지 모르지만 잘못 건드렸구나. 그 사람 특유의 허스키보이스로 우리에겐 말할 여가도 주지 않고 떠들어대는데 눈치로 감을 잡아보니 지난에서 뻬이찡으로 가는 기차는 얼마든지 많은데 왜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느냐는 것 같았다. 너무 시끄럽고, 또 그의 얘기가 옳은 듯해서, 공리에게는 사정이 변경되었다고 전화하고, 지난에 가서 우리 스스로 표를 사기로 했다. 우리가 자기 말을 따르는 듯하니 그는 무척 의기양양해 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더니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다.

11시경에 다시 취부로 와서 루청(魯城 : 노나라의 옛 성)을 보고, 조우공미아오(周公廟:주공의 사당)에 들어갔다. 루청은 돈을 꽤 들여 복원한 듯 하지만 조잡하기 짝이 없다. 조우공미아오의 입구는 매표원도 안보이고 햇볕 드는 담벼락에는 중늙은이들이 몇 명 볕을 쬐고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갔다는 매표원은 오지 않는다. 기사는 그냥 들어가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공짜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사는 다시 한 번 의기양양해 했다. 또 다시 우리의 돈을 절약해줬다는 긍지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곳은 아예 관광객이 없다. 일반적인 학궁이 다 그렇듯이 이곳의 정문도 역시 영성문이었다. 멍미아오처럼 이곳도 강희제의 비가 있었다.

노나라 첫 임금의 아버지요, 유가 철학의 기본을 세운 사람,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공자로 이어지는 중국의 성인계보에 드는 사람, 무엇보다도 공자가 제일 그리워하고 존경한 사람. 이런 사람의 사당이 왜 이렇게 찾는 이 없이 고적할까. 하지만 사당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조촐하고 아름다운 문들로 이어지는 중앙선을 따라 사당에 이르는데, 주공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다소 사실성은 떨어지지만 황제의 예악을 향유하는 12줄 면류관이 엄연하다. 일반 관광지와는 달리 나는 이곳에서 엄숙함과 역사성을 함께 느꼈다.

공자묘에서 만난 자공

이제 남은 것은 공자의 유적지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기사에게 식사를 함께 하기를 청하니 앉아서 땀을 닦으며 난처해한다. 그는 결국은 사양하고 밖으로 뛰어 나간다. 어색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의 모든 여행 안내자들은 관광객과 더불어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식사 후 숙소를 정해두려 하니 기사가 안내하는 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구경을 끝내고 보자 하고 공린(孔林)으로 향했다.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가 있는 20ha나 된다는 울창한 숲이다. 공린의 정문인 지성임방(至聖林坊)에 들어서 아름다운 돌다리를 건너면 이림문(二林門)이 나온다. 하지만 관심분야는 공자이지 공자의 후손이 아니다. 우리는 공자묘 주변만 구경하기로 결정을 봤다. 황색유리지붕을 얹은 붉은 벽 건물은 공자의 제사를 지낼 때 향단이 설치되는 곳이다. 배태호 선생님은 공자묘인줄 알고 폼을 재며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묘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한참 낄낄거렸다. 공자의 묘를 보고 묵례라도 한 번 하고 싶었으나 장사꾼 여자들이 따라다니며 방해를 한다. 공자의 먼 핏줄일지도 모르는 이 여인네들. 공자묘에다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면서 향을 사길 자꾸 강요한다. 거절해도 뿌리쳐도 그들은 다시 와서 추근댄다.

마음 좋은 이명진 선생님이 마지못해 샀다. 루청에 이어 두 번째로 사셨다. 하기사 병중이신 노모와 대입을 앞둔 아들이 있으니 기분이 남다른 바가 있을 것이다. 공자의 묘는 금색의 전서로「대성지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라고 씌여져 있다. 조선 500년 사직에 천둥소리와 같았던 이름, 서울의 성균관과 시골 향교에 이르기까지 절대적 권위의 저 이름 ‘대성지성문선왕’.
추로지향의 인상공린에서 지나칠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공자묘의 오른쪽에 있는 자공(子貢)의 여막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이다. 공자는 생전에 3,000의 제자를 두었고, 육예(六藝)를 모두 익힌 제자가 72명이나 되었다 한다. 공자의 수제자는 뭐니뭐니해도 안회(顔回)이고, 애제자는 실수 투성이 자로(子路)다. 하지만 만년의 공자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한 사람은 바로 자공이었다. 자공은 그 붕우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능변가이며 치부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늘 그의 재능이 너무 많음을 염려하고, 그에 대해 칭찬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공에게 있어 공자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누가 물었다. “당신의 그 공손함을 보니 공자가 어찌 당신만큼 훌륭할까 싶소.”하니 자공은 펄쩍 뛴다. 그래서 그는 “내가 선생님께 미칠 수 없음은 하늘을 사다리 타고 오를 수 없음과 같소!”라고 대답했다. 그런 자공이었다. 공자가 죽은 후 제자들 모두 3년상을 치르고 떠난다. 하지만 자공은 스승에 대한 사모의 정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삼년을 더 시묘한다. 그렇게 자공이 시묘하던 여막이 지금은 작은 기와집이 되어 서 있다.

공자사당과 공씨가문의 저택

공미아오(孔廟:공자의 사당)는 처음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건축이다. 앞문에 해당하는 금성옥진방(金聲玉振坊)에서 대성전에 이르는 길은 근 1km나 된다. 영성문등의 여러 문들을 지나 규문각(奎文閣)이 나오고, 다시 대성문(大成門)을 들어서면 공미아오의 하이라이트인 행단(杏壇)과 대성전(大成殿)이 나온다. 행단이란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학하던 은행나무 그늘이다. 행단이 바로 이곳인가에는 이론이 많으나, 후일 중국 조선을 막론하고 이를 본받아 모든 학궁에는 은행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행단 북쪽에 있는 장려하고 웅대한 건물이 공미아오의 중심인 대성전(大成殿)이다. 지붕은 천자의 황궁에나 쓴다는 황색유리 기와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이 너무 너무 크고 또 주변에 나무도 많아 카메라를 들이댈만한 위치를 잡지 못하겠다. 할 수 없이 행단의 정자에서 보이는 부분만 찍었다. 기막힌 핑계 꺼리다. 건물 전체를 찍지 못한 것은 내 탓이 아니고 정자가 방해해서일 뿐이라는...

이것은 사당이 아니다. 궁궐이다. 공미아오를 보고 나는 기분이 좀 착잡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공푸(孔府:공자집안의 저택)를 볼 때에는 전혀 카메라를 들이댈 기분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 한참 후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너무 사치하다. 아아 이게 혹시 문화권력이 아닌가. 정치권력에 아부하여 이루어진 문화권력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력이 아부하여 이루어진 문화권력도 역시 가능할진져. 공자든 예수든 신격화되는 것을 나는 싫어한다. 그래서 다시금 생각한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조우공미아오(주공의 사당), 그 조촐함이 훨씬 더 좋다.

숙소는 결국 기사가 아침에 권했던 곳으로 정했다. 우린 숙소에서 짐을 풀었다. 방을 둘 예약해서 남자 셋이서 한방, 그리고 이선영 선생님이 한방을 썼다. 그리고 오늘 택시비를 계산하려 하니 아침에 70원으로 약속하고는 20원만 더 달라고 한다. 왜 그러냐니까 오늘 우리 돈을 절약하게 해줬으니 그 정도는 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야! 욜마 요고 꾀가 조조다야!” 배 선생님이 그가 듣지 못하도록 한국말로 흉을 봤다. 우리는 허허 웃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어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사실 오늘 수고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내일 태산까지 얼마에 가겠느냐고 하니 150원은 되야 한다고 한다. 그는 쉴 새 없이 큰 목소리로 150원을 받아야할 이유를 설명한다. 70km의 길인데, 중간에 통행료를 내야되는 도로가 어쩌구, 왕복 요금이 어쩌구... 도대체 우리가 말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성격이 급한 배 선생님이 “스톱, 스톱! 나도 말 좀 하자.”하며 그의 말을 강제 제지시키고, 한마디하기 위해 그를 또 두어 번 제지시켜야만 했다. 140원까지 내려와서는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토론한 후에 전화할 것이니 집에 가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열심히 140원을 받아야 할 이유를 요란하게 설명하고는 마지못해 집으로 갔다. 우리는 전화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내일 아침 일찍 쫓아 올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태산을 비켜 제나라로

식사를 하면서 공부가(孔府家)에서 생산한다는 38도짜리 백주를 마셨다. 평소 술을 잘 안마시는 이명진 선생님은 물론 이선영 선생님까지 취하게 했는데, 기독교도인 배 선생님은 요지부동이다. 하기사 그는 술을 안 마셔도 유쾌한 사나이다. 기분이 참 좋은 날이었다. 기쁜 이유가 무얼까? 좋은 벗들과 여행한다는 느낌, 중국에서 처음 하는 여행이 성공할 것만 같은 기대, 산동 지방의 질박한 사투리를 조금은 알아듣기도 했다는 즐거움이었다.

이튿날 아침 7시가 다 되었는데도 이 친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오라고 한 건 아니지만 오지 않으니 좀 섭섭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차를 타야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의 그 목소리가 들린다.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 아침식사 끝날 때까지 다른 곳에 있은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는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싶어 다시 120원으로 하자고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협상에서 우리가 졌다. 정황이나 표정으로 봐서 그의 요구가 별로 과장되지 않은 듯해서 양보한 것이다. 밖에는 꼭 우리나라 스텔라와 비슷한 상해대중 생산의 세단형 자동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가 차에 오르니 운전석에 다른 사람이 탄다. 우리의 허스키보이스는 창 밖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동업자인가보다 하며 출발한 한참 후에야 아차 하며 후회를 했다. 그 친구와 사진이라도 한번 찍을 걸. 이름도 알아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새 운전사에게 그 친구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그는 “숑띠(兄弟:형제)”라 대답했다. 의외였다. 그는 못생기고, 발음도 부정확하고, 성급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미남형이고, 발음도 아주 모범적이고, 침착한 듯했다. 눈매가 무척 닮았다. 형제가 분명한 듯 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말수가 너무 적다. 시원섭섭했다.

차는 북쪽으로 북쪽으로 달린다. 시골인데도 공기가 무척 나쁘다. 안개인지 석탄을 땐 연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도로가 참 시원하게 뚫려있다. 태산으로 지난으로 가는 도로가 이것일 것이다. 그래 이 길이 그 길일지도 모른다. 지도를 펴 보니 이 길은 태안을 거쳐 지난에 이른다. 지난에서 옛 제(齊)나라의 수도 임치(臨淄 : 지금의 치박淄博)는 바로 옆이다. 그렇다. 이길밖에 없다. 그 옛날 바람둥이 문강(文姜)이 오가던 길. 옛날 제나라의 공주인 문강은 노나라 장공(莊公)에게 시집을 왔다. 그러나 그녀는 처녀시절부터 자신의 친오빠인 제나라 양공(襄公)과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애인이 그리운 문강은 남편을 설득해 친정 나들이를 한다. 그러다 그들은 근친상간의 간통 현장을 남편에 들키게 되고, 남편인 노장공은 도리어 처남이자 정부인 제양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 비극적 결말도 그들의 애정행각의 결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 후에도 계속 이 길을 오가며 밀회를 즐겼다 하니... 그래서 이런 시가 있다.

문수 강물은 도도히 흐르고
길가는 사람들 많고 많은데
노나라 가는 길 저리 넓어도
제나라 공주님 방황하시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가도가도 구릉지 하나 없는 벌판을 달리다 보니 안개사이로 갑자기 너무도 거대하고 웅장한 산이 ‘짜안’하고 나타난다. 저게 태산인가보다. 그렇다 태산은 벌판의 끝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그래서 1800m의 실재 높이보다 위용이 더욱 장엄하게 느껴지고, 산중의 산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로이 황제 자리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이 태산에 와서 하늘에 봉선(封禪)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한다. 황제로서의 신고식인 셈이다. 저 산이 바로 그 산이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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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보내준 김용주 선생은 성창여고에 중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이글은 지난 2003년 12월 15일에서 2004년 1월 25일까지 중국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길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를 여행하면서 느낀 깊은 인상을 적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