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글/김연숙)할머니의 청국장
간암말기, 의사선생님 마저 두 손을 들어버린 상황이었다. 돌보아 줄 가족도 자식도 없으신 일흔 일곱 살의 외톨이 할머니.
항암 치료에 그 많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해져 허전한 머리, 염색마저 포기하시고 한층 더 나이 들어 보이시던 할머니는 내 죽은 뒤에 무엇하냐며 이 약 저 약 좋다는 약 다 사드시더니 잣나무 숲 우거지고 자연식을 위주로 하는 기도원으로 들어가셨다.
늘 상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 다녀와야지 하면서 맘대로 안 되었다.
추수 감사절을 지내고 동짓날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다섯 명이서 먹을 것을 좀 사고 봉투에 약간의 용돈과 함께 찾아가자 아침부터 기다리셨는지 너무나 반가워 하셨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뜻에 맡긴 채 여러 환자들과 지내시며 몸도 마음도 평안해 보이시며 혈색도 좋으시고 통증도 없다고 하셨다.
방은 따뜻하고 숲 속의 고요가 들려주는 아늑함에 너무나 건강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덩달아 평안해졌다. 항상 음식은 자연식과 상황버섯 달인 물로 드셨고, 일체의 약을 끊고 계셨다.점심시간에는 동지라고 팥죽을 썼다며 청국장과 물김치에 콩가루 버무려 씨래기찜을 김치와 함께 주셨다.
따뜻한 방에 짚을 깔고 옛 조상님들이 하시던 방식 그대로 청국장을 띄워서 멸치, 무, 파를 넣고 끓여내 오셨는데 우리는 그 맛에 반했다. 자연식이 할머니의 건강을 지켜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상이 가득 하도록 차려 놓고도 입맛이 있네 없네 투정 하던 때를 후회하며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메주 쑤던 가마솥 생각에
군데군데 달아 놓은 무씨래기와 수북이 쌓아 놓은 배추를 보니 옛날 시골처럼 푸근한 마음에 메주 쑤던 가마솥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새벽부터 콩을 조리로 건져서 가마솥에 가득 넣고 불린 후에 솔잎 불씨에 장작을 얹으면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솥뚜껑을 비집으며 김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불 조절 잘못하면 아까운 콩물이 다 넘어 버린다고 옆에서 지켜보다가 때로는 급해서 찬 물 한바가지 타는 불 위에 휙 뿌려서 식히고 얼른 부삽으로 타는 불덩이를 꺼내기도 했다. 그 불속에 고구마 몇 개 넣어 놓고 놀다보면 어떤 때는 까맣게 타버려 먹지도 못하고, 소죽 푸는 쇠바가지에 콩 몇 줌 볶아 언 손으로 호호 불며 나누어 먹었다.
가마솥 하얀 김에 구수한 냄새가 배어 나오면 마당에서 이웃아이들과 추운 건 아랑곳하지 않고 놀던 놀이 제쳐두고 할머니에게 졸라 삶은 콩 한 그릇 얻어 동생과 친구들에게도 같이 나누어 신나게 먹곤 했다.
“애들아 너무 많이 먹으며 배탈 난다 ”
할머니의 걱정에 더 먹을 욕심에
“괜찮아요”
하며 고사리 손으로 거든다고 심부름을 했다. 온 가족이 매달려 퍼 나르고 쇠절구 찧어 베 보자기에 고이 싸 밟아 메주덩이 만들어 짚으로 엮어서 주렁주렁 시렁이 가득 차도록 달아둔다.
그리고 콩물은 된장독에 넣고 마지막 남은 콩을 그릇에 담아 짚 위에 올리고 여러 겹 덮어두면 청국장 뜨는 냄새가 온방에 베여 그곳에 놓아둔 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눈치 챌 정도로 냄새는 우리 곁을 맴돌았다.
화로 불 위 뚝배기에서 부글부글 끓던 청국장 온 가족의 영양식이며 어릴 적 꿈이 서린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번거롭고 냄새난다고 청국장 제조기에 넣어 만든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이다.
된장 하나로 한해 살림 넉넉히
음식을 만들면서 조상들의 지혜에 탄복을 할 때가 많다. 된장 한 가지만 잘 담그면 일년 내내 부엌살림을 잘 할 수 있는 기본을 정월에 시작한다. 콩과 소금으로 천천히 맛이 들면 한해의 살림을 넉넉히 꾸려갈 수 있다.
계란 하나로 농도를 측정하고 숯과 고추, 대추를 넣어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으며, 단지입구에 새끼를 꼬아서 벌레의 침입을 방지하고 대바구니를 덮어 된장의 냄새를 순하게 만드셨으니,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무공해식품이다.
약이 귀하던 옛날에는 벌에 쏘여도 된장으로 대신하고 냇가에서 고기를 유혹 할 때도 된장을 썼으니 만병 통치제로 손색이 없다.
손님들이 가게에 왔다가 별난 게 없으면,
“된장찌개 주이소”
언제 들어도 반갑고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편한 메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