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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둔치, 생명력 넘치는 자연생태공원으로(글/임세권)

지난 늦은 봄, 6월 어느 날이었던가, 가족들이랑 이른 저녁을 먹고 낙동강변 둔치를 찾았다. 강변에 널찍한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나는 그 아름답던 벚꽃길도 이제는 추억속으로 사라지는구나 하고 무척이나 아쉽게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나는 쭉 뻗은 도로를 늘상 차로 달리면서도 벚꽃길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강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가도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난 봄 벚꽃길이 여전히 거기 있음을 알았고 또 어쩌다 찾은 그 강변에는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아름다운 꽃밭이 가꾸어져 있음을 발견하고는 가족 모두가 감탄해 마지 않았다.

아, 안동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있구나. 꽃밭에는 왕원추리를 비롯해서 영산홍, 말발도리, 흰민들레 등이 활짝 피어 아직 남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정말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도시 속에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공원이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일 년 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갔을 때 도심 곳곳에 있는 깨끗하게 단장된 공원들을 보고서 얼마나 즐거워 했던지, 우리는 그때 이야기들을 하면서 캄캄해질 때까지 강변을 거닐다 들어왔다.

이제 여름이 다 가고 다시 계절은 가을로 들어섰다. 지금쯤 낙동강 둔치 꽃밭은 어떤 모습일까? 망초가 넘실대고 예쁜 잔대꽃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고 한쪽에는 코스모스라도 넘실대지 않을까? 나는 다시 낙동강 둔치로 갔다. 꽃밭은 생각과 달리 쓸쓸했다. 아니 쓸쓸하다기보다는 황량했다. 꽃은 모두 떨어지고 말라 붙은 잎새들이 쓸쓸하다기 보다 주변을 지저분하게 더럽히고 있었다. 계절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버려진채 있었다. 등나무 덩쿨 밑의 벤치 주변에는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고 누가 고기라도 구워 먹었는지 검게 그을린 은박지들이 구겨져 있었다. 주차장에는 중장비 면허 시험 준비를 하는지 커다란 레커차들이 운전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주차를 하려니 그 큰 차들이 언제 내 차를 들이받을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봄에 감탄해 마지 않던 멋진 공원이 그만 황량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그래도 시민 몇이서 강변으로 산보도 하고 천천히 조깅을 즐기기도 했지만 공원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좋은 시설은 만들어 놓으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안동시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관리 인력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관리도 못할 지경이면 무엇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이런 것을 만들어 놓았을까? 나는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도 났지만 혼자 화를 내봤자 뾰족한 수도 없으니 강물만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오고 말았다. 강 중심에는 상류에서 내려와 쌓인 모래톱이 섬을 이루고 갈대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새 벌써 오리들이 날아와 강물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 새벽 낙동강에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강 복판 갈대숲 속에서는 오리떼가 푸득일 것이다. 안개 저 너머로 반변천 물살이 반짝이고 멀리 약산 삼각봉이 이제 막 뜬 햇살을 가리며 역광 속에 우뚝 서 있다. 저녁에 영호루에 오르면 멀리 낙동대교 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강물에 낙조가 물들고 이어 어두워진 영남산 그늘 아래 하나 둘씩 불빛이 반짝이면 안동은 또 다른 아름다운 그림을 내놓는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 강변을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환경으로 가꿀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강변 꽃밭을 그렇게 썰렁하게 만들었을까? 아직 산에, 들에는 온갖 가을 꽃들이 만발해서 가을 기분을 내고 있는데 정작 꽃밭은 왜 그리 황량하게 버려졌을까? 이제 그날 저녁 혼자 생각해본 내 나름대로의 강변 꽃밭 가꾸기를 정리해 볼까 한다.

생태환경 즐길 수 있는 수변공간 만들자

우선 꽃밭이 썰렁한 것은 꽃이 없기 때문이다. 꽃밭에는 겨우 두메부추가 몇 군데 무리를 지어 피어 있었고 이제 거의 다 져서 시커멓게 변색이 되어가고 있는 옥잠화가 한쪽 구석에 겨우 꽃 송이들을 힘겹게 매달고 있었다. 연못가에 물봉선이, 또 들국화나 개망초라도 화사하게 피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작은 꽃들을 강변에서 만나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꽃밭은 너무 봄꽃 위주로 심어져 있었다. 천천히 꽃밭 주변을 거닐며 본 팻말에는 수수꽃다리, 병꽃, 철쭉, 말발도리, 영산홍, 흰민들레, 왕원추리 등 사월에서 유월사이에 피는 봄꽃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여름꽃이라야 범부채, 부들, 까치수염 등 몇 되지 않았다. 가을 꽃들은 거의 찾기 힘들어 두메부추나 옥잠화가 고작이었다. 무궁화가 한 쪽에 피어 있었으나 이를 야생화 무리 속에 넣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에 꽃밭을 만들려면 봄 여름 가을 두루 볼 수 있는 꽃들을 골고루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년생 같으면 계절이 바뀌어 꽃이 지면 뽑아내고 계절에 맞는 새 꽃을 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울에 필 눈꽃까지 생각하면 사시사철 언제 찾아와도 꽃이 활짝 피어있는 그런 꽃밭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나.

다음으로 꽃밭이 재미없는 것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산에 피는 꽃은 작은 동산이라도 만들어 심으면 훨씬 더 보기 좋을 것이다. 흙을 조금만 더 부어 나지막한 동산을 만들고 바위덩어리도 몇 개 얹어 그 틈에 철쭉과 진달래가 피어 있다면 지금처럼 평지에 적당히 구획을 나누어 심은 것보다 훨씬 더 생명력이 느껴지고 자연상태에 어울리는 그런 꽃밭이 되지 않겠는가? 산책로도 지금처럼 자로 그어 재단하듯이 직선으로 만들게 아니라 동산 위 바위 옆을 구불구불 지나도록 산길도 만들고 평지길이라도 곡선을 주어 정말 시골길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면 작은 공원이라도 사람들은 한쪽에 시끄러운 도시가 있음을 잠시나마 잊고 자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변으로 나가보면 이 곳이 왜 이렇게 썰렁한지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둔치를 만들면서 쌓은 강변 제방이다. 강변에 나가 강위를 보거나 아래를 보자. 화강석을 잘라 비스듬히 경사지게 쌓은 둔치 벽이 직선으로 뻗쳐 강과 둔치를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왕 돈들여 만드는 것, 자연을 자연답게 만들어줄 수는 없는지. 제방 벽도 좀 군데군데 곡선을 살려준다면 강물이 쉬어갈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거기에 물고기들도 편하게 놀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지 않고 머물다 흘러 갈 것이고 둔치와 강물 사이의 화강암 제방에도 풀도 자라고 버드나무도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둔치와 강물을 연결시켜 하나의 자연으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덧붙인다면 둔치 위를 지나는 도로와 둔치 사이의 높은 경사면을 살아있는 자연으로 만들어주어야겠다는 것이다. 그곳이야말로 버드나무도 심고 벚나무도 심어서 강이 그대로 길위로 올라오도록 해주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 둔치의 꽃밭이 강과 하나가 되어 또 다른 자연을 만들게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강 자체를 좀더 강답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강은 하류쪽에 수중보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물을 고이게 만들었다. 영호루 앞의 강물 수량을 어느정도 유지시켜 강과 도시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안동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그리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는 강물을 인위적으로 가두어 두는 것이라 강의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낙동강이나 반변천변을 다녀보면 수량이 많지는 않아도 크게 가물지만 않으면 보기 싫지 않을 정도의 물이 흐르고 있고 또 전보다 줄어든 수량으로 인해 엄청나게 넓은 습지가 조성되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아름다운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중보를 없앤다고 해도 보기 흉하게 강바닥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대와 버들 그리고 온갖 수초들이 어울리는 습지가 형성되어 철마다 온갖 철새를 볼 수 있는 훌륭한 자연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이렇게 멋진 강과 강변을 되살려 놓아도 유지관리가 안되면 차라리 하지 않느니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고기도 구워먹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치우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꽃밭이 옆에 있다해도 아무도 이 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지켜야할 수칙도 만들어야 할 것이고 모두가 그것을 지키도록 엄격한 관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낙동강을 가꿀 수만 있다면 안동시민들은 사철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 뿐 아니라 철마다 찾아오는 철새들과 강물의 물고기들 그리고 개구리며 풀숲을 날아다니는 잠자리들, 여름 밤의 반딧불까지 온갖 자연을 벗하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꽃동산을 옥동 강변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또 안동시쪽 만이 아니라 강 건너까지 이를 확대한다면 그야말로 안동은 멋진 생태도시가 되지 않겠는가? 안동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안동의 훌륭한 전통문화 유산과 함께 이런 멋진 생태환경까지 즐길 수 있다면 안동은 그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이런 나의 바램이 그냥 하루 저녁 꿈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