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당과 농운정사의 퇴필들(글/김언종)서원 서당 정자 등에 높다랗게 걸어놓은 글씨 치고 못 쓴 것이 있을까만 도산서원에 걸린 현판과 편액의 글씨는 눈 여겨 살펴 볼 명필이 많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신라의 김생(金生)과 함께 명필의 대명사가 되어있는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글씨 '도산서원(陶山書院)' 네 글자가 전교당(典敎堂) 마루 위에 높이 걸려 있을 뿐 아니라, 학문은 말할 필요도 없고 글씨에서도 일가를 이룬 퇴계선생의 친필을 새긴 현판과 편액이 여러 곳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도산서원 경내에 걸려 있는 퇴계선생의 글씨는 '도산서당(陶山書堂)'을 비롯하여 '암서헌(巖栖軒)' '완락재(玩樂齋)' '농운정사( 雲精舍)' '시습재(時習齋)' '관란헌(觀瀾軒)' '역락서재(亦樂書齋)' '광명실(光明室)' 등 모두 여덟 종이다. 그런데 시습재와 함께 농운정사의 한 방을 구성하고 있는 지숙료(止宿寮)의 현판이 없다.
퇴계선생의 《도산잡영(陶山雜詠)》가운데 '지숙료'를 읊은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판이 있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보존이 허술할 때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세 글자는 퇴계선생의 친필 가운데서 집자(集字)할 수 있으므로 그 복원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이런 까닭으로 '지숙료'를 본문의 설명 범위안에 포함시켰다. 글씨의 예술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이제부터 명명(命名)의 연유에 대해 아는 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도산서당(陶山書堂)'은 도산서원의 중심이므로 어떤 연유로 생긴 글자인지 그 자원(字源)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도산서당(陶山書堂)
陶山書堂의 도(陶)는, 원래는 중국 고대의 보편적 주거형태인 움집에서 밖으로 나올 때 딛던 흙 계단을 상형한 글자이다가 파생된 뜻인 언덕이란 뜻으로 더 널리 쓰이는 부( )를 형부(形符)로 하고, 그릇을 빚고 있는 사람의 상형으로 도기를 본뜻으로 하는 요( 陶자에서 왼쪽의 를 뺀것)를 성부(聲符)로 하여 만든 형성자(形聲字)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포( )는 사람의 상형, 부(缶)에서 윗 부분의 오(午)는 진흙을 짓이기는데 쓰이는 공이의 상형이 변한 것이고, 아랫부분의 감( )은 돌확의 상형이다.
도(陶)의 본뜻은 무엇일까? 현전하는 최초의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재성구(再成丘)이다. 제음(濟陰)에 있다."라고 하였다. 재성구는 포갠 언덕이라는 말인데 사발 위에 사발을 포개어 놓은 듯한 모양이라는 뒷사람들의 풀이가 이해를 돕는다. 제음(濟陰)은 산동성에 있는 지명이다. 그러니까 도(陶)는 원래 지금의 산동성 정도현(定陶縣)에 있는 좀 특이한 모양의 산 이름이었는데 그런 모양으로 생긴 산 이름으로 일반화되기도 했다. 도산서원이 자리잡은 언덕이 과연 그런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퇴계선생은 [도산잡영 병기(陶山雜詠 幷記)]의 앞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지산의 한 지맥(支脈)이 동쪽으로 뻗어 도산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 산이 포개어 졌다하여 도산이라 이름지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산 가운데 옛날에 도기 가마가 있었다 하여 그 사실로 이름지었다 한다…."
산(山)은 산봉우리 세 개의 상형에 바탕 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이런 글자를 사람들은 흔히들 상형문자라고 말하는데 엄격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이 글자는 상형에 바탕 한 글자이지 그 자체가 상형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자를 가리켜 상형문자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모든 한자는 상형을 넘어서서 부호화(符號化)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한자는 부호이지 그림이 아니다.
서(書)는 형부 률(聿)과 성부 자(者)로 구성된 형성자이다. 형부란 의미가 들어 있는 부분을 말하는데 의부(義符) 혹은 의부(意部)라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 한자의 반쪽에는 의미의 범위를 나타내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수(部首)라 불리는 218자가 그런 역할을 한다. 옥(玉)자가 들어 있으면 반드시 옥과 관계된 글자이며 마(馬)자가 들어간 글자는 반드시 말의 종류 형태 등을 나타내는 글자인 것이다. 착( )은 동작을, 역( )은 병을, 수( )는 손으로 하는 갖가지 동작을, 알( )은 반드시 죽음과 관계되는 것을 나타내도록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률(聿)부에 들어 있어야 마땅할 서(書)자가 엉뚱하게도 가로 왈(曰)부에 들어 있긴 하지만 률(聿)은 붓과 붓을 잡고있는 오른손을 상형한 글자이다. 이 붓대롱이며, 二는 붓끝이 변한 것이며 나머지는 손이다. 書(서)자에서 발음기호로 쓰였다가 윗 부분이 생략된 자(者)의 원음은 주에 가깝다. 서(書)의 원음이 수에 가까운 것이어서 발음기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여 좀 번거롭겠지만 자(者)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이다. 윗 부분이 채소 줄기와 증기의 상형이 변한 것이며 아랫부분은 솥의 상형이 변한 것이다.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하는 것 이라는, 사물을 구별하는 단어로 가차 되어져서 널리 쓰이자 자(煮)자를 만들어 본뜻을 보존해 두었다. 는 타오르는 불꽃의 상형인 화(火)자의 변형이다.
당(堂)은 성부 상(尙)과 형부 토(土)를 합한 형성자이다. 상(尙)의 자원(字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商)의 약자로 보기도 한다. 상(商)은 상족(商族)을 상징하는 높다란 건축물의 상형이라 한다. 당(堂)은 기초를 단단히 다져서 지은 큰집이 본뜻이다.
서당(書堂)은 글자 그대로 글 읽는 집이란 뜻인데 북주(557∼581)시대의 유신(庾信)이 지은 글에 용어로서는 처음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유신은 북주의 대표적 문인이었는데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舒玄)공이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 그를 의식하여 작명했다 하여 우리나라에 더욱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 61세인 신유년(1561년) 가을에 완성한 집이다. 중 법련(法蓮)이 짓다가 다 짓지 못하고 죽은 뒤 중 정일(靜一)이 이어서 완성한 집이다. 퇴계선생은 도산서당을 구상하면서 이미 {도산잡영(陶山雜詠)} 7언 18절과 5언 26절을 지어 놓았다. 특히 7언 18절은 시로 그린 도산서당 설계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퇴계선생문집의 경신년(1560년) 조에 이 시편들이 실려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퇴계선생의 시 [도산서당]을 보자.
大舜親陶樂且安
순이 친히 그릇 구워 즐겁고도 마음편코
淵明躬稼亦歡顔
연명 몸소 농사하니 얼굴 역시 기뻤다오
聖賢心事吾何得
성현의 그 심사를 내가 얻음 아니로되
白首歸來試考槃
백수로 돌아왔으니 이에 숨어 살으리랏다
기구(起句)에서 순임금이 젊었을 때 황하(黃河)가에서 도기를 구웠다는 고사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퇴계선생은 도산이란 오랜 명칭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도산서당이 지어지던 퇴계선생 61세 때의 나라 사정은 어떠했던가. 퇴계선생과 동갑의 나이로 한 사람의 과부에 불과하던 문정왕후와 그 친동생인 윤원형이 국정을 농단하던 어지러운 시기였다. 현실에서의 개혁이 불가능함을 절감한 퇴계에 있어서 선택은 단 하나, 물러나 후진양성에 전념하는 길이 있을 뿐이었다. 도산서당은 이런 배경하에서 영조된 것이었다.
암서헌(巖栖軒)
암서헌은 도산서당 마루의 이름이다. 역시 퇴계선생이 명명한 것으로 명명의 배경에는 퇴계선생의 주자에 대한 존모의 마음이 들어있다. 이 이름은 주자의 {운곡이십육영(雲谷二十六詠)}의 하나인 [회암(晦庵)]의 전구와 결구인 "오래되어도 자신이 없으니 암혈에 살면서 본받고자 하노라(自信久未能, 巖栖冀微效)"에서 따온 것이다. 암(巖)은 바위가 본뜻이고 서(栖)는 서(棲)와 같은 의미의 글자로 깃들다가 본뜻이므로 암서(巖栖)는 산의 암혈(巖穴)에 산다는 뜻이다. 세속사람들이 모여 사는 평지가 아니라 산간의 암혈에 산다는 것은 고사(高士) 은사(隱士) 처사(處士)들의 바램이었다. 비록 때로 조정에 나아가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도 하는 퇴계였지만 뜻은 항상 산중에 있었음을 상징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암서헌은 巖穴之士(암혈지사)인 隱士(은사)가 사는 집이란 뜻이다. 퇴계선생의 시 [巖栖軒(암서헌)]을 보자.
曾氏稱顔實若虛
증씨는 안연더러 실하면서 허한 듯이
屛山引發晦翁初
병산(유자휘)은 회옹에게 가르치던 처음이라
慕年窺得巖棲義
바위에 깃드는 뜻 늦게서야 엿봤으니
博約淵氷恐自
박약공부 연빙자세 성기었음 두려웁소
완락재(玩樂齋)
완락재는 퇴계선생이 세칸짜리 집인 도산서당의 가운데 방에 붙인 이름이다. 玩(완)의 본뜻은 가지고 놀다이나 이 보다는 파생된 뜻인 玩賞(완상)의 뜻으로 널리 쓰인다. 樂(락)은 악기의 모양을 상형한 글자로 음악이 본뜻인 글자이다. 완락에서의 락은 학문 특히 성리학의 공부에서 얻어지는 희열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내원은 주자가 지은 [명당실기(名堂室記)]의 한 구절인 "즐겨 완상하여 족히 나의 일생을 마치어도 싫증내지 않으련다(樂而玩之, 足以終吾身而不厭)" 라는 말에서 취한 것이다. 퇴계선생의 시 [완락재]를 보자.
主敬還須集義功 공경을 주장해도 집의(集義) 공부 종요롭네
非忘非助漸融通 잊고 돕지 않고도 점차로 융통하리
恰臻太極濂溪妙 염계의 태극도의 묘한 경계 알고보니
始信千年此樂同 천추에 이 기쁨 같을 것을 알았노라
농운정사
농운정사는 도산서당의 부속 건물로 제자들의 숙소로 쓰기 위해 지은 집이다. 도산서당이 완성되기 한 해 전인 경신년(1560년) 음력 11월에 완성되었다. 농( )은 원래 한나라 천수군(天水郡)의 고개 이름이지만 일반적으로 언덕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농운은 양나라 때의 은자(隱者) 도홍경(陶弘景)이 지은 다음과 같은 시가 있은 후 은자의 처소라는 뜻으로 쓰였다.
山中何所有 산에는 무엇이 있는가
上多白雲 언덕 위엔 흰 구름이 많지
只可自怡悅 다만 홀로 즐길 만 할 뿐
不敢持贈君 그대께 바칠만 하지는 않네
농운이라는 이름은 이 싯구의 농상다백운에서 취한 것이다. 정사(精舍)는 학사(學舍), 서재(書齋)와 같은 뜻의 단어이다. 후한시대의 선비들이 은거하여 학생을 가르치던 장소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지식과 덕이 정련(精練)된 사람 즉 고승(高僧)의 사택이란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다. 퇴계선생의 시 [농운정사]를 보자.
常愛陶公 上雲 도홍경의 농상 구름 두고두고 사랑하여
唯堪自悅未輸君 오직 홀로 기뻐하나 임에겐 못 보냈소
晩來結屋中間臥 늦게서야 집을 얽고 그 가운데 누웠으니
一半閒情野鹿分 한가한 맘 그 반을 들사슴과 나누련다
시습재(時習齋)
시습재는 지숙료(止宿寮)와 함께 농운정사의 방 이름이다. 시습은 논어의 첫 구절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따온 것이다. 출세를 위한 과거공부가 아니라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배우고 때로 익히는 집이란 이 이름은 더욱 더 절실한 학문에의 열중과 지향을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퇴계선생의 시 [시습재]를 보자.
日事明誠類數飛 날로 명성 일삼아서 새 나듯이 익히고는
重思複踐 時時 거듭 생각 다시 실천 때때로 나아가오
得深正在工夫熟 공부가 이룩되어 깊은 맛을 얻고 보면
何 珍烹悅口 맛있게 삶은 고기 입에 맞을 정도리요
지숙료(止宿寮)
지숙의 어원은 논어 미자(微子)편에 보이는 자로(子路)와 하조장인(荷 丈人)의 고사에 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뒤쳐졌다. 마침 지팡이로 삼태기를 메고 가는 노인을 만나자 자로가 물었다. "노인께서는 저희 선생님을 보셨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일하지 않고, 숙맥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너인데 누가 네 선생이란 말이냐?" 그러고는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기 시작했다. 자로는 그 노인이 은자임을 알고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었다. 노인은 자로를 집에 묵어가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 두 아들을 인사시켰다. 이튿날 자로가 일행을 뒤좇아가서 공자에게 이 일을 아뢰었다.
공자가 "은자로다."하고는 자로를 시켜 다시 되돌아가서 만나 뵙도록 하였다. 자로가 가보니 노인은 출타 중이었다. 자로는 노인의 두 아들에게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 어른에 대한 예절도 져버릴 수 없으면서 군신간의 대의를 어떻게 져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제 한 몸을 깨끗이 하려다가 큰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함은 대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 보이는 "자로를 집에 묵어가게 하고는(止子路宿)" 이 지숙의 어원이다. 주자의 무이정사에 있는 인지당(仁智堂)의 오른 편 방 이름이 지숙료이다. 주자는 손님과 벗을 맞아들이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하였다. 퇴계의 이 명명은 주자 지숙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止)는 머물다는 뜻이고 숙(宿)은 묵다는 뜻, 료(寮)자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작은 집이란 뜻으로 쓰였다. 퇴계선생의 시 [지숙료]를 보자.
愧無鷄黍 留君 닭과 기장 못 장만해도 임은 곧장 붙드려오
我亦初非鳥獸群 나 역시 애초에는 새 짐승떼 아니어라
願把從師浮海志 스승따라 부해(浮海)할 뜻 원커니 이를 갖고
聯床終夜細云云 밤새도록 함께 앉아 조용히 얘기하리
관란헌(觀瀾軒)
관란헌은 농운정사의 마루 이름이다. 관(觀)은 자세히 보다가 본뜻이고, 란(瀾)은 큰 파도가 본뜻인데 주자는 여울로 보았다. 《논어·자한》에 공자가 시냇가에서 제자들에게 했던 "가는 것은 저와 같은 것일진저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는 말씀이 실려 있다. 천지의 운화(運化)는 도체(道體)의 본연인데 그 변화는 잠시도 쉬지 않는 것이니 배우는 자들은 이에서 깨달음을 얻어 시시각각으로 자신을 성찰하여야 하며 잠시도 쉼이 있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담았다는 것이다.
《맹자·진심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물을 보는 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큰 물결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 이는 파란만장한 물도 알고 보면 한 줄기 근원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현상을 뛰어넘어 본체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퇴계선생의 작명에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있음을 시 [관란헌]을 통해 알 수 있다.
浩浩洋洋理若何 넓고도 양양하니 그 이치 어떻던고
如斯曾發聖咨嗟 일찍이 성인께서 이렇다고 탄식했소
幸然道體因玆見 도체가 다행히도 이로부터 나타나니
莫使工夫間斷多 공부를 할 양이면 끊임있지 말아다오
역락서재(亦樂書齋)
역락서재는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을 개설한 이래 배우러 오는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 농운정사로는 수용할 수 없게되자 숙소의 용도로 지은 집으로 생각된다. 역시 《논어·학이》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구절에서 따온 이름이다.
역락서재는 과연 전해 오는 말처럼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의 아버지가 지어서 기증한 것일까?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가 지은 [도산서당영건기사(陶山書堂營建記事)]에는 이 서재 영건에 관한 기사가 보이는데 그 기록에 의하면 이 서재는 여러 제자들과 정사성이 힘을 합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정사성의 아버지가 아들의 교육을 부탁하면서 지어서 바쳤다는 전설은 이 일의 주도자가 정사성이고 그의 아버지가 많은 경비를 대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광명실(光明室)
이상의 일곱 개(혹은 여덟 개)의 현판 글씨는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을 지은 직후에 써서 건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도서실의 역할을 하는 광명실(光明室)의 현판은 그 사정이 다르다. 이 현판은 원래 역동(易東) 우탁(禹卓)선생을 제향하던 역동서원에 걸려있던 것인데, 역동서원이 1864년 고종 1년에 정국을 주도하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을 때 도산서원으로 옮겨 건이라 한다. 이 현판은 이른바 동광명실(東光明室)에 걸려 있고 광명실과 나란히 앉아 있는 이른바 서광명실(西光明室)에 걸려 있는 현판은 이 현판을 모각(模刻)한 것이라 한다. 광(光)은 햇빛, 명(明)은 달빛을 의미한다. 책은 햇빛과 달빛처럼 이 세상의 어두움 즉 무지의 세계를 밝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원 서고의 이름이 광명실인 것은 이런 의미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상으로 도산서원에 걸려있는 퇴계선생의 글씨와 그 유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포전인옥(抛 引玉)이란 말이 있다. 벽돌을 던져서 구슬을 끌어들이다 라는 말인데 졸렬하고 성숙되지 않은 의견으로 다른 사람의 고견을 끌어낸다는 속뜻을 가진 말이다. 여러 독자들이 옥을 던져 주시기 바란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