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마령리에 남겨진 것(글//사진/이현정).jpg)
봄이 더욱 반가운 것은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일 게다. 바람도 쐴 겸 나선 발길은 어느 새 임하댐을 거슬러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댐 상류지역에 닿아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누런 물때가 말라붙었을 뿐인 이곳은, 그래도 한 때는 누구누구네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마을길과 돌 제방이 알려 주었다. 강가의 나무 한 그루가 봄맞이를 하는 대신 봄바람에 무심하게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1992년 임하댐이 준공되었다. 임동면 마령리의 사람들은 그 이전에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갔을 것이다. 올해가 2005년이니 여기 남아 있는 흔적들은 13년 이전의 것들인 셈이다. 논바닥에 벗어 놓은 고무장화가 마치 어제 벗어 놓은 것 같이 생생하여 세월을 무상하게 만든다.
지금도 건널 수 있을 만큼 크고 튼튼한 다리가 마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경운기 몰고 가는 강씨, 논물 보던 김씨, 오랜만에 고등어 한 손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누구누구네 할배,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꼬맹이들까지 그 다리 위로 무수히 오고갔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다리 주변에는 비료 봉투와 큰 고무통, 새참 때 시원하게 마셨을 막걸리 병들이 마령리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령리에는 13년 전 사람들의 흔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장한 무덤 흔적들 사이 휑한 바닥에 툭 불거진 것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다. 고인돌에는 책에서나 보았음직한 윷판모양의 성혈과 다른 무수한 성혈이 새겨져 있다.
2005년 3월 어느 날, 임하댐 수몰지구 마령리에는 청동기 시대와 13년 이전의 흔적이 함께 세월에 묻히고 있었다. 나는 그 언저리를 서성거리다가 발자국 몇 개를 남겨놓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