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가는 전문대 입시(글/이정희)
대학은 요즘 전쟁중이다. 4년제 대학은 속은 타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점잖은 전쟁을 치루고 있다. 그러나 전문대는 피 튀기는 그야말로 혈전을 벌이고 있다. 좀더 깊이있고 전문적인 학문을 탐구한다는 대학 본연의 성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지금의 입시 현실을 지켜보면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전문대 입시, '정말 이대로 좋은가'보다는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가 더 걱정되는 부분이기에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입정원 역전시대>>>
올해 대학 입시는 사상 처음으로 모집 정원보다 수험생 수가 적은 이른바 '대입정원 역전시대'가 시작됐다. 대학에서 필요한 신입생은 전국적으로 73만명인데 수험생 수는 67만명, 단순한 수치 계산으로도 대학에 들어갈 학생이 한참 모자란다.
전문대 입시 경쟁이 심각하기로 이름난 대구. 경북도 이 같은 상황이 그대로 적용된다. 4년제와 전문대의 입학정원은 9만명이 넘지만 수험생은 6만여명에 불과해 자그마치 3만명이나 부족하다. 이 때문에 올해 전문대 입시는 사활을 건 전쟁이 되고 있다.
전형이 시작되기 전부터 신입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동원됐다. 누가 더 효과적인 홍보와 유치 전략을 짜는지 입시. 홍보 담당자들의 머리 싸움이라고나 할까.
<<<신입생 확보를 위한 몸부림>>>
지난해 9월부터 신입생 모집에 나서 원서접수를 4차, 5차에 걸쳐 실시했다. 각종 장학제도를 마련해 신입생의 50% 이상에게 장학금을 주고 성적 우수 학생에게는 미국과 일본 등지로 해외연수를 시켜주고 있다. 전 강의실 냉난방 완비에, 최신 시설로 캠퍼스 꾸미기, 일부 대학은 밥값을 빼면 사실상 기숙사비를 받지 않는다. 울산의 한 대학은 자동차를 입시 경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교수별로 담당지역과 학교를 정해 전국 팔도를 발로 뛰고 학생들을 직접 모셔와 홍보를 펼치고 진학 담당 교사들에게 밥을 사 주고 술을 사 주는 것 따위는 아예 말하지 않겠다. 원서접수가 마감되고 각 대학의 경쟁률이 나오면서 신입생 확보를 위한 몸부림은 더욱 처절해졌다.
합격자 발표가 나지도 않았는데 학과별로 지원자들에게 등록을 해 달라며 전자우편을 보내고 전화를 걸고 교수들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 부모와 학생을 설득하고 있다. 인근의 일부 대학은 아예 장학금을 현금으로 내주고 있다. 대학 게시판에는 '70만원을 준다고 했는데 왜 30만원만 계좌에 입금돼 있냐'는 웃지 못할 글이 올라와 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그 돈을 써버리고 4년제나 다른 전문대로 가버리면 어떻게 돈을 다시 돌려받을 것인지 걱정이 아닐까 싶다.
<<<비교육적, 비도덕적 입시행태>>>
전문대 입시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이유는 이 정도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학생을 담보로 전문대와 교사들 사이에 돈이 오가고 있다. 한장에 4-5만원 하는 전형료를 받아 그 수대로 고3 담임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더 심한 경우는 원서를 쓰고 등록까지 마치는 조건으로 학생 한명당 얼마씩 계산해 교수와 고3 교사 사이에 은밀하게 돈이 건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고3 학생 10명이 특정 대학에 원서를 쓰거나 입학하게 되면 10명 만큼의 돈을 교사가 받는 식이다. 돈으로 학생을 사고 파는 인신매매가 전문대 입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문대 입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사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 배경에는 폐과와 실직 등이 교수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모대학 학장이 교수들에게 정원의 70%를 채우지 못하면 과를 없애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는 사실은 웬만한 대학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문제는 막가는 전문대 입시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1월 초) 지역 전문대는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평균 경쟁률이 4대 1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북 북부지역 몇몇 전문대는 2대 1이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년제와 다른 전문대의 복수지원자를 감안하면 평균 4-5대 1은 돼야 정원을 채울 수 있다고 봤을 때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한국 전문대교육협의회에서 정원감축 방안이 다시 거론됐다. 강병도 전문대교육협의회장이 정원의 10%를 스스로 감축하도록 대학끼리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사실 전문대 당사자들도 함께 살기 위해서는 정원을 줄이는 길 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대도시나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대학들은 정원감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대학은 살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사라져야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많은 전문대학들이 교육부 차원의 인위적인 정원감축과 신규 대학의 설립을 조절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힘있는 대학의 반발을 사며 정원을 강제하기에는 부담이 많을 것이다. 또 정당하게 신규 설립허가를 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결국 경쟁력 없는 대학이 기업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통, 폐합 됐다.
얼마 뒤쯤이면 우리나라에서도 문을 닫는 대학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경쟁력에서 밀려 대학이 문을 닫는 것보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교육적, 비도덕적인 입시 행태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돈으로 학생을 거래하는 교수와 교사들이 교육 일선에서 과연 어떤 교육을 시킨다는 것인가? 교육자적 양심을 가진 전문대학의 학장을 비롯한 입시 관계자, 교육당국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