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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의 황토강으로 흘러 부드러운 진흙이 된 <낮추고 사는 즐거움>(글/권두현)

책을 보고 내용에 동의하기 보다는 반성할 때, ‘아 지금 나는 메말라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낀다. 누구나 그렇듯이 바쁘고 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구조에 놓여있을 때 ‘나무밑에서 자성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더욱 절감한다.

명령 2005. 4호
늦은 겨울이 계속되는 어느 봄 날, 사랑방 편집기자의 아름답고 예쁜 전화를 받았다. 서평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필자의 욕망은 그저 그렇게 그저 흐르다가 죽는 것인데, 사회적 욕망이 있다면 안동문화를 고민하는 일이다. 그래서 안동의 현대사를 가꾸는 사람들 중 사랑방 식구들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늘 빚을 느끼고 있는 후배로써, 이 전화는 명령처럼 들렸다.
주어진 책은 『낮추고 사는 즐거움』. 허! 제목이 처음에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위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하고, 폼이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슨 구도자처럼 ‘삶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끔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으며 개별적 존재가 처한 상황 아래에서 사회적으로 부딪히는 애정에 대하여 간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비견한 예로 문화활동을 담당하는 사람 중에는 문화지상주의자가 있어 문화를 모르면 삶이 잘못된 것처럼 이해하고, 또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뇌하지 않고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예를 나는 많이 보아왔다. 자신의 삶이 보다 건강하기를 고민하고, 사회적 다양한 존재의 형태를 폭넓게 이해하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것이라 믿는 나로서는 때로 이러한 문화활동이 거북하게 다가온 적이 없지 않다.

여성노동자, 여성목사, 여성농부
책 제목과는 다르게 책은 소삼하게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오는 느낌을 풀어낸 글이다. 저자는 노동운동의 중심에 선 여성노동자이며, 목사이며,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 농민이다. 이점에서 현대사의 서러움을 모두 갖추었고, 또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다.
책의 첫 장은 강원도 산골에 정착하여 살아가면서 적은 감회를 적은 글이다. 담담하다. 필자는 조화순 목사 뿐 만 아니라 땅과 함께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적은 글을 가끔 본다. 그리고 대체로 글의 정서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다. 흙이 던지는 언어, 자연이 던지는 감동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조화순 목사를 비롯하여 많은 자연속의 농부들은 저마다의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였고, 흙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 하였고, 나무와 풀이 다치는 것에 아파하고, 곤충들과 이웃하였기 때문이리라.
동일방직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 현장에 있었던 저자는 그 현장에서 여공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인 여성노동자를 만나면서 노동운동이 왜 역사에서 중요하며 문화적 가치를 가지는 가를 말해주는가를 타복타복 두드려서 부드럽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다. 특히 필자는 안기부 형사들 앞에서 오히려 여호와의 자유를 느낀 인간 조화순을 보면서 80년대 대학 시절 전경들이 군화발을 울리며 시위대를 향해서 다가올 때 내가 느꼈던 두려움이 생각났다. 그녀는 최소한 나보다는 위대한 인간이며 우리 시대의 어른임에 틀림없다.
서평여성으로써, 목사로써 그가 느낀 점은 많을 것이다. 죽음을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맞이하겠다는 저자 조화순은 그래서인지 삶에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려준다. 논리적인 노동철학도, 환경론에 입각한 생명관도, 그는 역설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몸으로 체험한 경험과 가슴에서 오는 느낌을 그저 이야기할 뿐이다. 책장 단락 단락마다 조그맣고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는 조화순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 험한 세상에 몸으로 부딪힌 흔적보다는 사람냄새만 진하게 난다. 거친 황토강물로 역사를 격랑치다가 이제 하류에 다달아 으깨져서 더욱 아름다운 진흙으로 잔잔하게 머물면서, 다시 생명의 꽃을 피우는 양분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따스하고 부드럽다. 그는 이 글에서 낮추고 살아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다. 누구에게 높여야 하며 누구에게 낮추어야 할 것인가.

늘 자유를 찾아 떠나기를
나는 평범할 수 있을까. 평범하게 삶의 정리하고, 마음과 가슴에서 얻어지는 자연 그 자체에 머무르고 흘러갈 수 있을까!
저자 조화순, 그는 이 점에서 벅차게 살아온 자유인이 틀림없다. 우리 시대 자신의 노동운동 경력은 때로 자신에게 흐뭇한 자족으로 남을 수 있었으나, 이제 그것도 떠나 또 다른 시대의 자유를 몸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나의 삶도 그러하기를! 노력하고 또 노력하게 그 길 위에 있기를…<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