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철도원 생활, 시로 쓰는 권영수씨(글/이미홍)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천명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었다. 자신의 한 점 부끄러움까지도 숨길 수 없는 시인의 시는 그래서 맑고 깨끗하다. 시란 그만치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만 되는 일임은, 한 줄의 시가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영혼의 소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나는 시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이 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의 그것보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다. 하여, 내가 안동역으로 권영수씨(57)를 찾아간 것도 그가 단순히 30년 넘게 철도원 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시를 쓰는 철도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뚝뚝한 사람이 시를 쓴다고?
그를 만나러 가기 전날, 이웃이야기의 주인공이 이번에 시집을 내는 철도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시집 제목이라도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리저리 뒤져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기차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권영수씨를 만나고 보니 나의 헛고생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차로는 우리의 주인공이 가판까지 찍은 작품집이 마음에 차지 않아 출판을 일단은 백지화했기 때문이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한 또 하나의 이유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수줍고도 무거운 입 때문이었다.
실제로 개찰구를 지나 철로를 따라 난 철길을 건너 권영수씨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그를 찾아갔을 때, 몇몇 사람들은 의아해 하는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이 무뚝뚝하게 생긴 권영수씨가 시를 쓴다고? 하는 듯한 표정들로 그를 새삼 돌아보는 이도 있었다. 마침 열차가 지나가지 않는 시간이라선지 사무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우리가 인터뷰를 위해 조용한 곳을 찾아 나오자 다소 실망하는 기색들이었다. 아마도 그가 도대체 어떤 시를 쓸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한 곳을 찾아 권영수씨가 우리를 안내해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역장실이었다. 물론 역장실 옆에 붙은 사무실로 들어가서 "조용한 데가 필요한데 역장실 좀 써도 되지요?" 하고 양해를 구하기는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건 거의 통고(?)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무례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달리 말하는 법에 익숙지 않다고나 할까, 오히려 사무실의 사람들이 그런 권영수씨에게 익숙한 듯 보였다. 내가 만나본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좀 무뚝뚝하긴 해도 그야말로 마음이 다인 경상도 사나이였다. 어쨌든 대뜸 그가 역장실로 안내한 덕분에 우리는 역장님(박이남)이 자리를 비운 역장실에서 권영수씨의 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57년 조촐한 인생고백서 너무 그립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궁금함을 참지 못해 그가 어렵사리 결심하고 준비한 작품집을 내지 않기로 한 까닭부터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글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출판하지 않기로 했죠 뭐."
라며, 견본으로 몇 권 제본해 놓고 보니 미숙한 점이 너무 많아 출판을 포기 했노라며 좀 전에 머쓱해하며 우리에게 건네주었던, 앞에 놓여 있는 책자를 가리킨다. 제복 입은 그의 사진 위에 소박한 글씨로 "너무 그립습니다"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지은이; 권영수라고 덧붙여져 있을 뿐인, 그 어떤 꾸밈의 흔적도 없는 황갈색 표지의 작은 책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꾸밈이 없기는 그의 시도 마찬가지였다. 85년 무렵부터 일상에 관한 글들을 조금씩 쓰곤 했는데, 시를 쓰기 시작한 지는 겨우 2년여가 조금 지났을 뿐, 시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생활하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느낌들을 적어본 것이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는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책장을 넘기며 거기에 실린 짧은 수필들과 시들을 읽고 있노라니 권영수씨의 57년 인생이 그 속에 다 들어 있었다. 내가 읽어 본 그 어느 누구의 수상집보다도 솔직했고 소박했다. 그것은 부끄러움 없는 영혼의 조촐한 인생고백서이자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시인의 서툰 몸짓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을 꼽으라면 그는 주저없이 아내를 만난 것과 기차와의 인연을 꼽는다.
"1968년에 임시직으로 철도에 들어와서 정식 직원이 되고, 차표를 파는 역수에서부터 열차에 승차해서 근무하는 차장, 그리고 작은 역의 부역장을 거쳐 지금 하는 일(그의 제복에는 열차운용팀장이라는 명패가 달려있었다)까지 35년을 철도 밥을 먹고 살았지요. 그 덕에 자식들 다 키우고 오늘날 이만치 살고 있으니 철도와의 인연이 정말 크지요."
라는 권영수씨, 알고 보니 그가 아내를 만난 곳도 기차역이었다.
"처음 임시직으로 철도에 들어와서 안동역에서 근무할 때였죠. 야간에 대합실 순찰을 돌다가 집사람을 처음 봤지요. 노란 한복을 입고 댕기머리를 길게 땋은 고운 처녀가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었지요. 그게 지금의 집사람이었어요."
그는 그 때의 심정을 아내에 대해 쓴 글에서 마치 감전이 된 것처럼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래서, 뭐-, 결혼을 하게 됐지요. 뭐."
연애과정의 어려움 내지는 구애를 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던진 질문에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한순간 나는 낙담했고, 그리고 깨달아야 했다. 애초에 그는 그런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시시콜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의 대답에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가 건네준, 그의 삶이 통째로 담긴 책이 있었다. 그리고 목차만 잠깐 훑어보기만 했는데도 거기에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으므로. 집에 돌아와서 책을 폈을 때 그런 나의 기대가 어김없이 맞아떨어졌음은 물론이다. 덕분에 나는 군데군데 블록이 생긴 부분을 디스크 조각 모음을 하듯 그의 이야기에서 빠진 부분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가 결혼 이야기 끝에,
"알고 봤더니 우리 누이하고 잘 아는 사이였더라고요."
라고 던진 한마디는, 첫 만남 뒤로도 몇 번을 더 마주쳤지만 여간해서는 마음을 열지 않던 화순씨였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의 아내 안화순(55)씨와 그의 사촌 누이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절친한 동무여서, 사촌 누이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영수씨에 대해 알게 된 화순씨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당시의 가난한 연인들이 그랬듯이 손을 잡고 걷고 또 걸으며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드디어는 결혼을 하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였다.
늘푸름 민들레방 사이버 시인
그런 그가 어떻게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을까. 그의 대답은 이번에도 간단했다.
“회사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으면서 인터넷의 재미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인터넷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시 동호회를 알게 된 뒤로 자주 접속하다 보니까 나도 시를 써 보고 싶어서 한 편씩 써서 올리게 된 거지요.”
알고 보니 그는 오프라인에서는 한 번도 시를 발표한 적이 없는, 오로지 다음(늘푸름)과 세이클럽(민들레방)의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서만 시작 활동을 해 온, 사이버 시인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의 동료들도 가까운 두 세 명을 제외하고는 그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집에 있는 구형 컴퓨터를 인터넷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최신 사양으로 바꿀 때만 해도 자신이 시를 쓰게 될 줄 몰랐던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시를 쓰고 싶게 만들었을까? 그건 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게 어느 날 부터인가 그는 아무도 모르게, 평소에는 무뚝뚝한 모습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부드러운 가슴 속 이야기들을 시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쓴 시를 사람들이 과연 읽어줄까 싶었는데, 잘 쓰지도 못한 제 시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편, 두 편 올리게 된 것이 이제는 시를 쓰고 있지 않을 때도 일하는 순간을 빼고는 머리 속에서 항상 시를 구상하고 있지요."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 올리기가 망설여졌던 자신의 시를 읽은 사람들의 관심과 독려의 말들이 담긴 길게 달려있는 리플(Re;)을 보면서 놀랍고 기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덕분에 용기를 얻은 그는 카페에 마련된 시 창작 강의를 통해 시 공부도 하면서 시 쓰기를 계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년(2002년)에는 동호회 회원들끼리 작품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도 가졌다는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더 선호하는 권영수씨는 역시 가지 않은 모양이다.
"일 때문에 못 가기도 했지만, 무리하게 먼 길 가서 밥 한 끼 먹고 오는 것보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시 한 편 구상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랬지요."한다.
시를 쓰면 마음이 저절로 순화되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게 좋다는 그는 요즘은 이, 삼일에 한 번씩 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철도원들은 24시간 교대 근무이다 보니까 일하는 틈틈이 머리 속으로 구상을 하고 다듬고 고치고 해서 주로 쉬는 날에 시를 올린다고 한다. 그럼 지금도 시 구상 중이겠다 싶어 지나치듯 물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두 세 가지 시상이 떠올라 적어본 게 있다며 그가 주머니 속에서 손 떼가 묻은 메모지 몇 장을 꺼낸다. 이리저리 고치고 다시 쓴 시구들이 혹은 밑줄이 쳐진 채로, 혹은 두 번 세 번 덧손질이 된 채로 아직도 작업 중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중 한 편은 어느 정도 틀이 잡힌 듯 제법 연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내일쯤이면 인터넷에 권영수씨의 시 한 편이 또 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 속에 그의 인생 오롯이 담아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봇물은 걷잡을 수 없다고 했던가? 일단 시를 쓰기 시작하자 그의 가슴 속에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 켜켜이 내려앉아 있었던 추억들이, 얽힌 실타래가 마침내 풀려 실을 감는 아낙의 손사래를 따라 일어나 술술 달려 올라가듯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풀려나오며 그를 자꾸만 재촉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살아온 한 평생이 그의 시 속에 고스란히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해방 후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그로 인해 아버지 없이 자라야했던 날들만큼 살아갈수록 더해만 가는 아버지에 대한 뿌리 깊은 그리움을 그는 시로 썼다. 남편에 이어 하나 있던 누이마저 어린 나이에 먼저 보내고 오로지 그만을 위해 살다 간 가난했던 어머님의 눈물도 시로 썼다. 그에게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소리내어 말해본 적 없는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도 고운 시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시에는 기차 이야기가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강을 사이에 두고 기찻길과 마주보고 시작되었던 고향마을 성곡동 시절 이후로 평생을 그와 함께 걸어온 오십칠 년의 길동무인 기차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시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아버지에 대한 통곡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철도원의 고됨도 보람도 어느 것 하나 기차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내가 가지런히 앉아 있던 대합실 의자, 아버지 없던 어린 시절 끝도 없이 내달리던 철로길, 승무원이 된 그를 보며 눈물 머금으시던 어머니, 훌쩍 세월을 건너뛴 것처럼 어느새 이만큼 나이를 먹어버린 그 만큼이나 몰라보게 빨라지고 현대적으로 바뀐 기차, 그 모든 것들은 제각각인 듯 보이지만 그에게는 결국 하나였다. 그것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하여 그의 시에는 꾸밈이 없다. 몰라도 삶을 억지로 꾸밀 수는 없는 법이다.
가끔 안동역에서 기차를 타거나 내릴 때 혹은 선로에서 무료하게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선로를 따라 열차의 이 쪽 끝과 저 쪽 끝머리 부분을 한 번쯤 휘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맑고 차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노라면 열차가 도착하고 출발할 때마다 빨간색 기와 초록색 기를 들고 선로 옆에 서서 정지와 출발을 알리는 철도원 아저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객 30회(주말 32회), 화물 46회, 하루 76번 안전을 점검하고 기차의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두 사람 중에서 그 사람이 사이버 시인 권영수씨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서서 기차를 맞고 보내며 그 철로가에서 그의 시가 익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시가 푹 익어갈 어느 즈음에 그는 퇴직을 할 것이고 또 그 어느 즈음에 잘 익은 시집 한 권을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오늘도 그의 주머니 속에는 채 익지 않은 시어들이 그의 굵은 손마디 사이에서 뛰놀고 있을 터이다.[안동]